〈 21화 〉21화 아이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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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명인이 이렇게 피곤하다니깐."
"네?"
"됐고, 앞으로 힘 필요할 때 퍼득퍼득 내놓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부를 테니깐 1초만에 대답해라."
"네..."
리비엔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펜던트의 빛을 꺼트렸다. 아마도 자고 있는 상태겠지. 나와 펜던트의 대화가 끝나자 숙소에서 뒹굴뒹굴하던 베린이 침대에 대자로 누운 채로, 고개를 반대로 내려 나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우리 언제 다시 사냥해?"
"당분간 휴식이야."
"엥? 웬 휴식. 이미 충분히 했지 않았어?"
"저도 충분히 쉬긴 했어요."
리비엔이 포획하고 공작의 장례식을 3일간 진행했고, 죽어서 스폰 된 시간 까지 포함하면 5일은 쉬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 템이 없어."
"뭔 소리야? 공작한테 받은 유니크 템들이..? 없네? 뭐야? 어디 갔어!"
"그거 퀘스트 끝나니깐 다 회수됐어."
"에엑?"
내 변수로 인해 제라드의 목걸이도 얻어서 안 뺏길 줄 알았는데, 이런 건 또 잘 회수하는 모양이다.
'사실 하나 얻었지만.'
정확히는 내가 가지고 있던 정령검 빼고 전부 회수조치 되었다. 내가 제른에게 보상 좀 챙겨달라고 말은 했지만 진짜 줄줄은 생각도 못 했다. 물론 요구 스텟 보정이 없어져서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언젠간 쓸 수 있겠지.
나만 회수 안됬다고 하면 베린이 난리칠거같으니 조용히 넘어가자.
다윤은 토끼를 머리 위에 올린 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빈털터리네요..."
"어차피 3일 뒤에 새로운 장비들 오니깐, 3일 동안 좀 쉬자고."
"난 사냥하고 싶은데..."
"그럼 갔다 와봐. 사냥이 안될 테지만."
"어? 진짜지? 사냥하고 온다."
"그래."
"좋아 폭업이다!"
베린은 상점용 커먼 단검을 들고 유유히 숙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2시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돌아와, 기운이 다 빠진 체 침대에 엎어졌다.
"딜이 안 박혀..."
녀석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쌨던 게 아니라 템이 좋았던 거라고.
-40렙 커먼 단검 - 공격력 50
-40렙 유니크 단검 - 공격력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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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은 굉장히 평화로웠다.
공작령은 공작이 사망해 잠시 동안 도시가 떠들썩 했지만, 새로 온 공작이 세금을 감면하고 안전과 평화에 노력을 쓰는 등 여러 행보를 보여, 도시는 별 탈 없이 예전처럼 흘러갔다.
다윤은 잠시 로그아웃을 한다고 했다. 어디 갈 때가 있다고 하나 뭐라나. 아무튼 50렙인 다윤이 나갈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시간. 30시간 정도는 자리를 비운다고 했다.
베린은 사냥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않은 체, 헤파이스 한테 어렵게 구한 레어 단검을 들고 사냥을 떠났다.
[ 파티원, 베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유니크 무기가 있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열심히 올리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후... 여길 다시오다니."
테라딘 외각 지역에 있는 이랑의 천 가게. 평범한 기운이 느껴지던 이전과 달리, 굉장히 기운이 무거웠다.
마치 거대한 손이 이 일대를 짓누르는 것 마냥.
딸랑~
"계십..."
"들어와."
전과 달리 이랑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작의 죽음과 나와의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는 이랑이 앉아있는 의자 앞에 섰다.
"앉아."
"괜찮습니다."
"....꿇리기전에 앉아."
"네."
기세가 섬뜩 섬뜩하다. 공작의 장례식에서 펑펑 울던 그 이랑이 맞나 살짝 의문이 들었다.
사실 만날 생각은 그렇게 없었다. 한번 나를 쫓아내기도 했고, 이랑 같은 NPC를 섭외하는 건 불가능하다시피 하니깐. 시스템으로 용병 고용이 막힌 NPC. 이랑이 딱 그 상황이었다.
"그래서."
"네?"
"네가 용사인 걸 그날 알았어. 에덴의 죽음은 필연적이었을 거야. 그렇지?"
"..... 네."
"나에게 상황을 말해줄 수 있니?"
"....."
이랑은 고용 불가의 NPC. 하지만 나는 나의 변수를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색이 바랜 붉은색으로 되어있는 천.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저의 여정에 참여해 주세요. 이랑님이 필요합니다."
"여... 정?"
이랑의 눈에 이채가 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은 것 마냥. 나는 천을 휘감아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어 탁자에 내려놓은 뒤 이랑의 눈을 바라봤다.
"네. 저와 함께 가는것이 제 조건입니다."
"... 너 뭘 착각하는 거 아니야? 난 용사가 아니야. 신은 악마를 공격할 수 없다고."
사실 대부분의 상위 레벨의 NPC들은 이렇게 영입 제안을 하면, 거절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설정상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신념, 특수한 사정 등이 있지만. 그냥 게임 설정상 밸런스 조절을 위해 그렇게 둔거 같다.
"이랑님은 신이 아니라 신의 자식입니다. 단순히 피를 이은 존재죠. 그리고 몬스터들도 마왕에 힘을 이어 받은 존재들인데, 신들이 죽인다고 뭐라 안 하잖아요?"
실제로 자기 영역에서 난동을 부리는 몬스터나 하급 악마 같은 존재들은, 신들이 아무리 죽여도 마왕이 뭐라 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만 볼 뿐. 내가 마왕이라면 다 때려 부술 텐데. 너무 편의적인 설정이 많은 것 같다.
"흥."
이랑은 짧은 팔로 팔짱을 낀 체 나를 노려봤다. 가소로운 듯 피식 웃음 지으며. 마치 너의 속셈을 다 알아챘다는 듯한 모습.
"설마 나 같은 귀여운 미인을 대리고 다니려고 이러는 거야?"
흠...
조막만한 손.
의자에 앉은 다리가 닿지 않아 허공에 뜬 발.
그리고 노려보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눈빛.
살랑거리는 하얀 꼬리와 귀.
".... 귀여운 건 맞지만 미인은... 좀..."
"뭐야!"
"좀 크고 나서 말하는 게 어떨까요?"
"너보다 밥을 몇만 번은 더 먹었다!"
정말 자연 속에서 자란 '신'다운 비유다. 아니, 비유가 아닌가? 아무튼 장난스러운 대화를 유도한 덕에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
애초에 이랑은 정신상태를 어리게 고정중 이니깐.
"그래서 가주실겁니까?"
"....너가 어떤방법으로 에덴과 맞서싸웠는지 들어보고."
이랑의 태도가 살짝 어두워졌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테라딘에 처음 왔을때..."
말 재주가 뛰어난 건 아니지만 묵묵히. 그리고 진솔되게 얘기했다. 원래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전 시즌 설정집에서 봐온 것들도 최대한 활용해서. 그러다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 그렇게 된 겁니다. 공작님은 여러 방면으로 노력 하셨지만 악마에게 목숨을 잃-"
"....."
"이랑님?"
이랑은 고개를 푹 숙인 체 있었다. 얼굴을 숨기려는 모습. 그러나 야속한 꼬리와 귀가 그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듯 축 처져있었다.
"하, 녀석이 뭐 그렇지. 전부터 알고 있었어. 녀석은 항상 어릴 때부터 무언가의 도움만 받으려 하.. 고 말이야....."
"....."
"또.. 그런 게... 한... 두 번... 이 아닌데.."
"우, 우십니까?"
"누, 누가! 운다 그래!"
이랑이 소리를 빽! 지르며 나를 노려봤다. 민낯을 보인 얼굴은 빨갛게 변한 체,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랑이 이런 표정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에덴 공작의 어린 시절부터 그를 돌봐주었기 때문에.
설정집에도 안 나온 얘기였지만 장례식에서 그녀를 봤다. 하염없이 우는 모습. 처음 봤을 때는 공작의 딸이거나 가족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얼굴을 봤을 때는 내가 알던 사람이었다.
'저거 이랑 아닌가?'
이랑이 공작과 관련되어 있고 공작과의 사제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랑은 마치 진짜 가족이라도 죽은 듯이 오열하고 있었다. 고작 사제 관계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태도.
분명 내가 알던 이랑은 자신감 넘치고 밝은 아이 의 성격을 가진 NPC였다. 그런데 저게 뭐란 말인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릿속으로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 영상이 재생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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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한테 애를 맡기는 거야.."
"누나!"
회색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아이가 풀숲을 도도도도 달려와, 여우 귀를 가진 여자아이에게 안겼다. 여자아이는 한숨을 내쉬며 품에 안긴 아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바스락.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검정 머리에 큰 키를 가진 남자. 왼쪽 눈에는 황금빛의 반 안경이 씌워져 있었다.
"넌 애가 아니다만... 이랑."
"난 몇백 년이 지나도 12살 이거든."
"참... 너도 여전하네."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종이 몇 장을 건네주었다. 이랑은 한 손으로 아이를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 종이를 받았다.
"이건 뭐야?"
"읽어봐."
이랑은 종이를 몇 장 넘겨가며 읽었다. 내용은 현재 공작위가 비어있는 테라딘 공작령에 대한 이야기였다.
".... 그러니깐 얘를 공작으로 올린다는 거야?"
"맞아."
"미쳤어? 고작 6살짜리 애를?"
"6살짜리도 황실의 핏줄이야."
"그래 피가 0.1%라도 섞였어도 핏줄이긴 하겠네."
이랑의 품에 안긴 에덴은 황실의 피를 옅게 이은 자식이고, 부모 또한 다른 핏줄에 비해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이 아이를 돌봐주고 있었다.
"... 내가 미엔 부탁 때문에 돌봐주고 있긴 하지만. 내가 정말 얘의 수호신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야?"
"황실은 그렇게 생각할만하지."
"굳이, 다른 잘난 후보들도 많잖아."
"네가 수호하는 후보가 있는데 다른 녀석들이 눈에 들어올까?"
"....."
실제로 다른 후보들도 많다. 황실에 피를 이은 이들은 많으니깐. 오히려 에덴은 다른 후보들의 눈엣가시 일 것이다. 하지만 신의 자식이 돌보는 핏줄을 감히 건들 수는 없다.
목숨이 여러개있지 않는이상. 남자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네가 그 아이를 돌본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야. 만약 네가 그 아이를 떠나게 된다면 머지않아 죽고 말겠지."
"?"
에덴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랑은 아이를 향해 싱긋 웃어준 뒤 손으로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이는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며 잠들었다.
그러고는 표정이 변한 체 남자를 올려다봤다.
"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
"누구의 탓도 아니야. 이건 이 아이의 운명일 뿐이지."
"....."
이랑은 에덴을 내려다봤다. 즐거운 꿈을 꾸는 듯 헤헤 웃으며 자는 아이. 이랑은 말없이 한동안 아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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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구!"
"...."
"할망구! 나 마법 성공했- 켁!"
에덴이 공작위에 오른지 11년이 지났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17살이 되었다. 집무실에서 일을 봐주던 이랑에게 급하게 문을 박차고 달려오던 에덴은, 쿠션을 맞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 내가 집무실 박차고 들어오지 말랬지."
"아, 하하, 미안 할망구. 좋은 소식은 빨리 전해야지!"
소년이 된 아이는 이전과 달리 누나라 부르지 않았다. 그녀의 나이를 듣고 놀라 자빠진 뒤로 호칭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할망구가 아니야."
"에이. 아무리 어리게 모습을 해도, 몇백 년을 산 으갸갹!"
이랑의 무형의 공격에 전기 찜질을 당한 소년은 그대로 다른 하인들에 의해 실려갔다. 이랑은 수많은 서류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미쳤지..."
에덴이 처음 공작위에 오른 날, 너무 어린 나이에 올랐기에 대리청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허나, 그의 아빠는 다른 황족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남은 것은 엄마 하나뿐이었는데. 전혀 정치에 재능도 할만한 기력도 없었다. 다른 친척들 또한 전무하거나, 다른 공작령에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상태.
결국 대리청정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그의 공작위의 문제가 있다는 얘기까지 돌게 되고. 결국 그녀가 나섰다.
'그냥 내가 할게. 뭐, 불만 있어?'
아무도 그녀의 발언에 이의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무려 신의 말이었기에. 그 이후 이랑은 공작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에덴이 성장하기 전까지.
정신을 차린 에덴은 밤늦게 집무실에서 일하는 이랑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업무 중에는 방해하지 말라는 엄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르륵, 사각 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더니 말이 들려왔다.
"야, 슬슬 이제 네가 공작위를 물려받아야지."
"응? 왜에에에, 할망구가 해주면 좋지."
"언제까지 내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으음... 한 30년?"
"....."
"할망구는 몇백 년 살았는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으악!"
"넌 좀 맞자 그냥."
오늘 하루는 좀 때려야 속이 시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