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35화 신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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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싫으신가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미모.
청아하게 빛나는 푸른 눈.
안쓰러워 보이는 표정.
지금까지 본 인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어 보이는 미인.
그렇긴 하다만 이건 함정일 수도 있다. 실제로 후반부 가면 서큐버스들이 자주 나타나 홀리고 다니니깐. 그거 때문에 자주 죽어...
아무튼. 지금은 중반부 이긴 하다만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210레벨 짜리 악마도 나오는데. 이제는 뭔들 나오든 당황스럽지 않을 거 같다.
"난 갑작스러운 만남을 추구하지 않는 편이라."
무작정 처음 본 사람한테 평생을 함께 하자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 줄 누가 알고?
내 말을 들은 여자는 아~ 거리며 손뼉을 짝! 쳤다.
"그럼 계속 지켜봐야겠군요?"
"엥?"
"같이 다니면서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사람인지 보면 되겠네요! 가요! 아! 그리고 아까 제가 무슨 혼혈인지 말하라 그랬죠? 저는 토끼 혼혈 이에요! 어머니가 토끼 영물이시거든요."
갑자기 생기를 찾은듯 여자는 나에게 팔짱을 끼더니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흠, 확실히 봤을 때 뭔가 토끼상이긴 해서 귀엽.... 아니, 이걸 왜 생각해.
정신 차리자 김윤! 고작 이런 거에 휩쓸릴 녀석이 아니다! 과거에 자신을 생각해!
나는 팔짱을 뺀 체 말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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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여자는 누구야?"
"아! 동료분들이 있었군요! 저는 리라라고 해요! 어머니인 토끼 영물과 아버지인 인간의 혼혈입니다."
갑자기 팔짱을 낀 체 온 여자를 보자, 일행이 의문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다고.
"이번 퀘스트에 중요한 역할이야. NPC인데 히든 퀘스트를 하려면 이 녀석이 필요해."
"이 여자가 윤 씨가 말한 그 사람인가요?"
"아니. 그 사람은 곧 올 거야."
다윤이 흐으음... 거리면서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사실 이 여자를 대리고 다닐 생각은 없다. 이만한 능력치를 보유한 NPC나 유저는 차고 넘친다.
어차피 이랑이 있으니깐 누가 오든 별로겠지만.
아무튼 리라는 토끼 영물의 혼혈 이기에, 메인 퀘스트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퀘스트를 깨려면 반드시 토끼와 거북이. 둘 중 하나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깐.
"아무튼 가보자고."
"네! 윤 오빠!"
"내가 왜 오빠야. 나보다 나이도 많은 게."
"에이, 오빠라 부르면 좋지 않아요?"
"......"
뒤통수가 따갑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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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빛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 사이로 전능한 존재가 내려온다.
"네가 신의 선택을 받은 아이들이구나."
익숙한 폭포소리가 들리고 새하얀 빛을 내뿜는 존재가 그들을 바라본다. 토끼 귀를 한 여자와 거북이 등껍질을 맨 남자가 보인다.
그들은 위대한 신을 목도하듯, 눈앞에 존재를 바라본다.
"신의 선택을 받은 아이들이여. 너희는 장차 미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신에 도달할 것이니. 이것은 숭고한 사명이요, 진리에 도달할 해답일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눈앞에 존재의 말은 너무나도 어려웠기에.
그러나 단 한 가지 만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이 일로 인해 어떤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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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이 종료됩니다! ]
[ 신의 의식까지 남은 시간은 2일 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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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바뀐 건 없네."
"이번엔 도시에 입성하자마자 영상이 나오네."
"왠지 기대되네요."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나와 같이 영상을 본 베린과 다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NPC라서 영상을 못 본 리라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윤 오빠? 무슨 생각 해요? 다른 일행분들도 그렇고."
"아무 생각 안 해."
녀석 입장에서는 우리가 영상을 보고 있던 게, 갑자기 멈춰 서서 멍 때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보다 너. 그곳에 갇혀있던 이유가 뭐야?"
"네?"
"동굴에 갇혀있었잖아. 누가 가둬놨나 해서. 혼자 들어 간거 같지는 않고."
"....."
도시를 구경하던 다윤이 깜짝 놀란 듯 리라에게 물었다.
"갇혀있었어요?"
"아... 네."
아까까지만 해도 이상한 눈초리 보던 다윤의 눈빛이 다채로워졌다. 이야기를 듣던 베린도 한마디 했다.
"혹시 죄라도 저지른 거 아니야?"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너만 하겠니."
"윽! 아직 안 걸렸으니깐 안 저지른 거거든!"
"모든 범죄자가 그렇게 말하지."
"으으..."
"저...!"
리라가 뭔가 결심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리라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도시 외각 쪽에 위치한 토끼 형상으로 된 집이었다.
"여기가 적당하겠네요."
"뭐, 숨겨야 할 내용이야? 그래봤자 신들이라면 어디서든 다 들을 수 있을 텐데."
로루닌의 영역 안에 신들이라면 도시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과 소리를 전부 알 수 있다. 물론 따로 감시를 하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 무시 하겠지만.
리라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아니에요. 저는 신의 의식의 재물이라, 이 장소는 창조신님의 보호를 받고 있거든요."
"어? 뭐라고...?"
"신의 의식에 대해선 아시나요?"
신의 의식.
일정 주기마다 진행되는 영물이 신의 자리에 오르는 의식이다.
의식을 받는 것은 당연히 영물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는 예외다. 그들은 '재물'이라는 명목으로 의식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은 주기마다 영물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재물을 바친다.
그 대가로 10번째 주기가 오는 날. 토끼와 거북이 라면 어떤 영물이든 무조건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나의 설명을 들은 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시네요... 영물들은 의식을 받는다고 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아요. 애초에 자격이 되지 않으면 의식을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죠."
신의 자리에 오르려면 자신의 수명의 수십, 수백 배를 생을 보내야하며, 그에 맞는 격과 힘을 지녀야 한다. 즉, 신의 의식이란 일종의 기도 같은 것이다.
의식을 치르면서 조금 더 신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
하지만 그것을 무시한 채, 무조건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 바로 10번째 의식이다.
"맞아요. 토끼와 거북이가 주기가 돌아오는 날, 매번 재물을 바쳐요. 그리고 10번째가 되면 남은 영물 중 하나가 신의 자리에 올라야 해요. 하지만 처음으로 이 재물이란 형식이 적용된 이후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신의 자리에 오른 토끼나 거북이는 없어요."
"의식을 받을 수 있는 건 한 마리뿐이라서?"
"네. 10번째가 돌아왔다고 해서 토끼나 거북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보장도 없으니깐요."
이야기를 듣던 다윤이 의문스럽게 물었다.
"저... 리라 씨? 다른 종족의 영물들이 도움을 주거나 하지는 않나요? 매번 재물을 보내는데..."
"... 그들은 우리를 같은 영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제물이 될 종족으로만 봐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우리를 방해하기도 해요. 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확실히 토끼나 거북이가 신의 자리에 오른다면 새로운 권력과 힘이 생긴다는 소리니깐. 그러면 의식에 사용할만한 재물을 구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신이 된 그들이 자신의 종족을 재물에 쓰는 걸 반대할 것이 뻔하다. 무엇보다 10번째 의식은 다른 종족의 영물들 에게도 중요한 의식이다.
토끼나 거북이 처럼 바로 신이 될수 있는건 아니지만, 기존의 의식보다 훨씬더 많은 재물의 힘을 받는다. 다른 종족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식인 것이다.
리라는 내 손을 붙잡고 간절히 빌었다.
"도와주세요. 전 제물이 되고 싶지 않아요..."
- 스토리 퀘스트 C / 토끼의 재물
신의 의식에 사용될 토끼 영물 혼혈, 리라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리라를 도와 그녀를 재물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만드세요.
* 거절 시 스토리 퀘스트 D가 진행됩니다.
- 리라를 재물에서 벗어나게 하기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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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년 전 나는 처음 로루닌에 도착해서 퀘스트를 진행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일반 루트.
나는 영물 중 하나인 '호랑이'를 도와 그를 의식에 받게 성공시켰다. 물론 신이 되지는 않았지만 의식에 필요한 두 마리의 재물들을 그대로 사용되었다.
당시 영혼이 뜯겨나가듯 사라져 버린 재물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이걸 당연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보상을 받으며 신나게 다음 장소로 향했지.
그때 당시에는 맞는 일이었지만 게임 속에 갇혀버린 우리라면, 과연 이 상황을 게임으로 봐야 하는 걸까?
"... 이번이 몇 번째 의식이지?"
"2일 뒤에 시작되는 의식이 10번째에요."
"네가 갇힌 이유는?"
"도망치지 못하게 저를 동굴에 가둬놓았어요. 여기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지만, 의식이 시작되면 절 데리러 오니깐. 제가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가둬놓은 거예요."
"....?"
동굴이라... 굳이 그럴이유가 있을까.
"리라인가? 그 최초로 신이 된 거북이랑 토끼 신은 어딨어?"
베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 영상에서는 봤던 처음 재물 의식을 허용한 두 마리의 영물이 신의 자리에 올랐으니깐.
"그분들은 로루닌을 떠났어요. 아마도 재물이 계속 사용되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요..."
리라가 우울하게 축 늘어져 있자. 베린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뭘 보기 힘들어서 나가. 그냥 이용해먹을 거 다 해 먹었으니 종족은 나 몰라라 하고 나간 거겠지. 넌 왜, 니네 종족 말아먹은 조상님 걱정을 하냐?"
"아...."
"그러니깐 걱정하지 말라고. 이 몸이 다 뚜까패서 너 신의 자리에 오르게 해줄게!"
베린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리라의 표정이 살짝 나아진 모습이지만, 자신감 가지고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우선 재물 의식을 끊기 위해서는 동급의 신의 영역에 도달해야 하는데, 당장에 그런 건 불가능해."
"그럼...."
"그건 뭐 방법이 몇 개 있으니깐. 걱정하지 말고. 그보다 너랑 같이 제물이 될 거북이는 어디 있지?"
"그 녀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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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아앙! 왜 하필 나야! 나야나야나야나야..."
리라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소에는 발광하며 온종일 방구석에서 구르고 있는 거북이.. 아니 거북이 인간이 보였다. 등에는 등껍질을 매고 있었고, 거북이 혼혈답게 초록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죽기 싫어... 엄마..흐아아아아앙..."
"덴트. 정신 차려."
"흑흐으... 어? 리라? 왜 벌써..? 설마 2일이 벌써 지난 거야? 안돼!안돼!안돼!안돼!"
"아직 안 지났어! 그보다 정신 차려. 용사님들이 오셨어!"
"어..? 용사님들?"
"생각보다 머저리네."
베린의 말에 살짝 충격을 받은 듯 시간이라도 멈춘 것 마냥 얼어붙었다
"죽음을 앞에 두면 그럴 만도 하지."
"윽, 나는 죽어도 저렇게 안 해."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아무튼 녀석울 진정시킨 후 탁자에 앉았다. 그 후 의식에 대한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전을 다 들은 거북이 혼혈 덴트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정말 제가 신에 오른다고요?!!"
"모르지. 오를지 안 오를지는."
정말 10번째 의식 때 신의 자리에 오른 토끼나 거북이가 없어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재물이라는 굴레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작전을 들은 리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재물의 신분으로 참여해 자격을 얻으라니... 그게 가능할까요?"
"어쩔 수 없어."
재물 의식을 끊을 방법도, 신들을 막을 방법도 없다. 한 100렙 정도만 더 올리면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무슨 수를 쓰든 막을 수 없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토끼와 거북이 영물의 참가 인원을 0으로 만드는 거야."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 영물은 종족 당 한 마리. 그 이상은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리라는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야기했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아무도 참여 안 할 예정이었거든요. 다들 협박 아닌 협박을 받고 있으니깐요. 마지막으로 참여한 10번째 의식이 200년 전이었으니, 이번에도 아무도 참여 안 할 거예요."
리라는 씁쓸한 표정이였다. 아무래도 여러 동물들이 견제를 하겠지.
의식이 끝나면 어떻게 복수할지는 아무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