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36화 세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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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역 로루닌에 온 걸 환영하옵니다. 용사님들이시여."
덴트와 리라를 집에 둔체, 우리는 메인 퀘스트 진행을 위해 도시 중앙에 위치한 세계수로 왔다. 세계수 안은 무슨 신전처럼 꾸며져 있었고, 20마리 남짓한 정령들과 여러 영물들이 그곳을 가꾸고 있었다.
신의 도시라는 이명에 비해, 정령들이 얼마 없는 이유는 마왕에 의해 대부분 타락했기 때문이다.
'정령들의 도시는 따로 있지.'
뭐, 지금 거길 가려면 적어도 250렙 이상은 찍어야 하지만.
신전 내부로 들어서니 깔끔한 탁자 위 다과와 차가 올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 회색의 갈기를 가진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 늑대의 신 리르 LV.210
HP : ???
설명 - 영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신이 된 늑대의 신, 리르입니다.
신의 위치에 비해 그다지 강하지 않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 반갑다. 리르야."
"창조신님의 선택을 받은 용사님들을 맞이하게 되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너무 아부를 많이 하는걸?
하지만 이런 식의 대접은 당연하다. 창조신의 믿는 이들에게 창조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를 대우해 주는 것도 당연하지만.
신의 의식을 통해 기운을 받아 신의 자리에 오른 영물들은, 자연에서 온전히 기운을 받아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신들에 비해 훨씬 약하다.
여우신의 자식인 이랑보다, 늑대의 신인 리르가 더 약한 것이 그 증거다.
본인의 힘만으로 오른 게 아닌, 의식을 통해 다른 신들의 힘을 빌려 오른 것이기에.
나는 응접실에 앉아 음식을 집어먹었다. 역시 자연친화적이라 그런지 음식이 싱싱했다.
고기가 없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애초에 영물의 격에 들어서게 되면 식사정도는 필요가 없어지니깐.'
"용사님들은 곧 있으면 열리는 의식에 참여하는 영물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들을 돕는다면 용사님들에게도 축복이 전해지니 나쁘지 않은 일이겠죠."
다른 곳들과 달리 신들이 용사들은 극진히 대해주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용사들은 창조신의 부름에 응답해 다른 세계에서 온 신의 사도들.
창조신을 성역처럼 여기는 신들이라면, 그들을 대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좋아. 누구든 가능하나?"
"물론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바로는 이번에 700년을 살아온 늑대 영물이 하나 있는데..."
역시 자기 종족을 추천하네. 이러려고 신이라는 위치에 안 맞게 용사들을 맞이 해주는 거겠지. 용사들이 돕는다면 자신의 종족이 의식을 받을 확률이 올라가니깐.
"그럼 리스트 좀 줄래? 정리해둔 게 있을 거 아니야."
"아! 기다리십시오."
리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는 파티 채팅을 활성화했다. 가능하면 길드 채팅을 쓰고 싶지만 길드를 만들면 해야 할 일도 많고 복잡하니깐.
[-베린 / 뭐 어떻게 하게?]
[*김윤 / 일단 지켜볼 거야. 선택은 나중에 하는 방식으로.]
[-김다윤 / 그걸 신들이 허락할까요?]
[*김윤 / 상관없어. 저들은 거절 못 할 테니깐.]
창조신의 사도들인 용사들이 이 의식에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의식의 격이 올라간다. 굽신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약 다른 용사. 즉, 유저들이 있다면 거절하겠지만 지금은 우리밖에 없다.
절대 거절할 수 없겠지.
"기다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명단입니다."
리르는 종이로 된 명단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명단에는 각종 영물들의 정보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대충 15마리 정도 있는 거 같은데...
한참을 종이를 넘겨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있잖아?"
"네? 무엇을 말씀이신지.."
명단 안에 토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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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예상치 못한 요소인데."
우리는 의식에 대한 설명과 내용을 들은 뒤, 다시 덴트의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대로라면 영물 중에 토끼나 거북이가 없어야 했지만, 토끼 영물 중 누가 의식 참가를 선언했다.
이렇게 된다면 리라가 신의 의식을 받을 수 없다. 거북이 쪽은 없어서 덴트 쪽은 받을 수 있지만.
우리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리라가 말했다.
"전 상관없어요. 저를 재물에서만 어떻게든 벗어나게만 해주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신의 자리는 탐내지도 않아요."
"순서가 바뀌었어."
"네?"
"신의 자리에 오르냐 마냐에 문제가 아니라 올라야지만이, 재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재물이라는 형식의 의식은 단순히 암묵적인 약속이 아니다.
창조신이 두 영물을 신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법칙.
시간이 지나고 그것을 공증한 신들이 자리에 없다고 한들, 여전히 법칙은 강력한 힘에 엮여있다. 그것을 끊으려면 신과 맞먹는 힘을 지니거나, 스스로 신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리라가 바들바들 떨었다. 예정된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거겠지.
"흠."
뭐, 이쯤 할까. 놀려먹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방법은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있어."
"네? 뭐, 뭔데요."
리라의 기대가 가득한 듯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좀 귀엽네.
나는 세 손가락을 편 뒤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첫 번째는 재물을 바꾸는 것. 다른 토끼 영물로 바꾸는 건데... 그건 싫겠지?"
"... 저 살자고 남을 대신 죽이진 않아요."
그렇게 말한 리라는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듯 표정을 찟뿌렸다. 누군가에게 당한 기억이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나는 리라를 손목을 힐끔 본뒤 고개를 돌렸다.
"두 번째는 제일 쉬운 방법인데. 참가하는 영물을 참여 포기를 시키는 것."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동족의 영물분들은 거의 다 알아요."
"나도 어떤 녀석인지 확인차 탐색 스킬을 좀 써봤는데 안 나왔어. 이 도시에는 없다."
"... 아마도 의식이 시작하면 돌아오시는 걸 거예요. 다른 영물들에게 공격받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 모든 토끼와 거북이를 다른 영물들이 감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감시하는 건 오직 재물뿐.
주기가 돌아오면 그때부터 토끼와 거북이들을 일일이 감시하지만, 미리 의식에 참여할 영물은 미리 도시에 빠져나간 후 의식 날 돌아올려는 심산인 것이다.
제법 머리를 쓴 일이지만 리라에게는 악재가 되었다.
".... 왜, 왜 200년 동안 안 하다가... 갑자기..!"
"200년 동안 안 했으니 혹시라도 해보려 하는 걸 수도 있지. 매번 돌아오는 기회도 아니고 말이야."
주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는 적게는 3년 많게는 5년 정도의 텀을 지닌다. 즉, 10번째 의식을 치르려면 적어도 30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
벌써 몇 번의 기회를 놓쳤으니 도전해 볼 만도 하지. 리라는 잠깐 고개를 숙이다 나를 올려다봤다.
"... 세 번째는요?"
"세 번째는 신을 잡는 것."
"... 네?"
나도 확신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가능하기는 하다. 물론 내가 잡는 건 아니다. 잡을 사람은 따로 있지.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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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루닌에는 수많은 영물들이 살고있다. 그들은 신의 의식이 오기 전 원탁회의를 가진다.
정확히는 원탁이 없으니 그냥 회의지만.
종족을 대표하는 여러 영물들이 의자에 둥그렇게 앉아있었고, 가장 높은 의자에는 거대한 몸체의 호랑이가 앉아있었다.
호랑이는 말했다.
"벌써 10번째 의식인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총 410번의 의식이 치러졌고, 이번이 10번째 의식입니다."
호랑이 옆에 앉아있던 뱀이 말에 대답했다. 뱀과 두 자리 정도 떨어져 있던 여우가 기가 찬 듯 웃었다.
"이번에는 토끼가 참여한다고 하네. 애들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거야?"
"어이 여우. 우리도 모든 인원을 관리할 수는 없다. 다른 종족에서 지원이라도 해주면 모를까."
여우와 정 반대편에 앉아있는 매. 반 안경을 낀 매는 홀로그램 형태의 종이를 넘기며 말했다. 매의 말에 여우는 의자를 쾅! 쳤다.
"하! 매 종족이 관리하는 대신, 너희에게 여러 번 의식을 양보하지 않았나? 그런데 무슨 헛소리지?"
"그것도 다 옛날 말이다 여우. 우리는 200년 전 이후로 의식을 받지 않았어."
"그건 너희 실력으로 차지해야지. 그리고 안 준 건 토끼 랑 거북이가 참여하지 않아서다. 아! 혹시 너희를 주지 않아서 일부로 감시를 안 한 건가?"
"... 건방지군. 언제까지 너희를 그냥 볼 거라 생각하나."
"하! 건방? 그게 매 종족에 나올 말인가? 신도 둘밖에 없는 하찮은 종족 따위가..!"
"뭐라고?"
순간적으로 회의장에 거대한 기가 넘실거렸다. 신만큼은 아니지만 오래 산 영물은 어느 정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누가 하나 선을 넘으면 바로 전투로 벌어질 상황이었으나,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
가운데 앉은 호랑이가 엄포를 내리자, 의자에 앉아있던 모든 영물들이 순간적으로 위축됐다. 한창 신경전을 벌이던 여우와 매도 이내 조용해졌다.
삼천 년을 넘게 산 호랑이는 모든 영물들이 인정하는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이기에.
"칫.."
"크흠."
여우와 매가 기를 누그러트리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으나 차마 일어서서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
"의식이 코앞인데 뭣 하는 짓거리들이지? 괜히 시작부터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의식이 끝나면 싸워라. 의식이 끝나면 누가 죽든 신경 안 쓸 테니 말이야."
"..... 젠장."
"아, 알겠습니다."
쾅!
그 순간 회의장의 입구 쪽이 부산스럽더니누군가 달려왔다. 달려온 것은 늑대였다. 땀을 뻘뻘 흘린 모습.
호랑이 옆에 앉아 있던 뱀이 불편한 듯 그를 노려봤다.
"늑대. 회의 시간도 어기고 뭐 하는 짓입니까?"
"하아... 하아.. 죄송합니다. 리르님의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얘기?"
"네. 용사님들이 이번에 의식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움찔했다.
용사. 창조신들의 사도들.
그런 자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번 의식에 필히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는 씩 웃었다.
"늑대.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리르님의 말대로라면 사실입니다."
"용사님들은 총 몇 분이시지?"
"세분이십니다."
"세명이라..."
생각보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충분히 도움을 받을만한 가능성이 있다. 다른 영물들또한 세명이라는 말에 기대하고 있다.
혹시 본인이 이번 의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의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단 한 영물뿐. 그 말은 총 3마리의 영물이 용사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소리다.
"좋다. 그럼 토끼의 참여를 막을 순 없을 거 같으니, 오래전 했던 것처럼 진행하고 회의를 마무리 짓겠다."
"네!"
"알겠습니다."
"좋아, 한바탕해보실까."
영물들은 의식을 고대하며 회의장에서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