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39화 탈출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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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누구 고르지?"
다윤은 인내의 시험 의식장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던 영물들을 보고 있었다. 대충 20마리 정도의 영물들.
영물들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어필했다.
"용사님 저를 뽑으신다면..."
"제가 의식을 꼭 받도록 하겠습니다!"
"다윤 용사님 제발 저를!"
"흐음...."
다윤은 잠시 영물들 사이를 돌았다. 마치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가게 손님처럼.
재료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다윤을 바라봤다. 이윽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소녀를 집어 들었다.
"얘로 해야지."
"어? 저, 저요!"
"어 너. 잘 할 수 있지?"
다윤이 잡은 건 카멜레온 영물이었다. 나한테 꺼지라는 말 듣고, 후다닥 도망간 여자.
이랑보다 조금 작은 체구에 여자아이 형상을 띠고 있었기에, 편한 느낌이 들어 뽑은 게 아닐까?
'실제 나이는 훨씬 많을테지만.'
애초에 영물들의 기본나이는 몇백을 우습게 넘어간다.
카멜레온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자, 잘할게요! 용사님!"
"그래. 이름이 뭐야?"
"저는 레인이에요! 우와아앙~ 제가 선택받다니 눈물 날 거 같아요.."
"그, 그래.."
카멜레온 영물은 다윤을 끌어안고 한 바퀴 돌았다.
저기는 됐고 베린쪽은...
"정말 너 뽑으면 이길 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용사님. 저의 분석력으로 보았을 때. 베린 용사님이 이길 가능성이 86.5%입니다."
"그 정도나 돼?"
"그럼요. 가장 강하신 용사님이라면 충분히."
"크흠... 내가 제일 강하긴 하지!"
매의 말에 홀랑 넘어가버린 베린.
베린에게 막힘없이 술술 계획을 말하는 매. 갈색의 머리카락이 마치 부리처럼 되어있었고, 왼쪽 눈에는 청색의 반 안경이 걸려있었다.
무엇보다도 확고한 말투가 그의 의견을 더욱더 신빙성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크흠..."
"으흠..."
"아... 그냥 눈 감고 한번..."
역시 다들 꺼리고 있다. 원래는 가장 1순위의 용사였지만 삼주신과의 대화 이후에 나의 도움을 받기를 꺼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의식에 도움을 받더라도 다음을 생각하는 거겠지.'
"다들 겁을 먹은 거 같군요."
"넌... 과자."
"네? 전 스넥입니다. 용사님."
"그래 스넥. 뭐 때문에 왔어?"
"제안에 대한 답을 들으러 왔습니다."
"호랑이? 근데 난 선택 이따 할 건데?"
"알고 있습니다. 호랑이님은 첫 번째 시험을 반드시 통과하실 테니, 그때가 된다면 부디 옳은 선택 부탁드립니다."
"그건 뭐, 보면 알겠지."
스넥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인내의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인내의 시험은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에, 준비가 된다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
단, 바깥 시간으로 3시간 만에 다 나와야 하지만.
영물들 저 건너편에는 리라와 덴트,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토끼 영물도 하나 있었다. 같은 토끼인데도 불과하고 리라는 딱히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경계를 하는 눈치 였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네가 이번에 참여하는 토끼 영물이야?"
".... 그렇습니다 용사님."
"용케도 참여했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를 정도로 갑자기 의식장에 도착했다. 마치 처음부터 도시 안에 있었던 것처럼.
"도시의 감시 영역 바깥까지 나왔다가 이동 스킬도 없이 한 번에 도시로 들어오다니, 실력이 제법인가 봐?"
".... 과찬이십니다. 하찮은 토끼 종족은 암행 능력이 제법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나는 녀석을 살펴봤다.
리라보다는 조금 어두운 연보랏빛 머리카락. 머리카락은 마치 잔상이라도 남듯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은... 둘이 같이 비교하면 어느정도 비슷하지만 눈색은 완전 다른색 이였다.
'눈색이 보라색이라...'
"그래? 그럼 이번 시험은 기대해봐도 되려나?"
"용사 님의 눈에 들 만큼 뛰어나진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죠."
"그래."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용사 관람석으로 갔다. 그곳에 가면 홀로그램식의 다양한 화면이 뜨는데 시험에 참가하는 영물들의 각자의 방을 볼 수 있다.
한 바퀴를 다 돌면 1분 정도 걸릴만한 작은방. 그곳에서 영물들이 '출구'를 찾고 있었다. 두드리고, 때리고, 파내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고 있지만 저런 형식으로는 절대 탈출할 수 없다.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신의 자리 끝에 앉아있던 늑대신 리르가 말을 걸었다. 워낙 끝자리에 있어서 용사 관람석과 가까웠다.
"조금."
즐겁긴 하다. 이런 장면을 다시 보고 싶었으니깐.
"아십니까? 이 시험은 높은 존재가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따라 만든 시험이라고 합니다."
"높은 존재? 창조신?"
"네. 그렇습니다.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높은 존재는 이런 특수한 형태의 시험에 감탄해, 그와 비슷한 시험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흐음..."
창조신이 감탄할 정도의 형태라...
단순히 설정값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계속 용사 관람석에 앉아서 영물들을 지켜보았다. 베린과 다윤은 다른 영물을 도와주느라 다른 곳에 이동해 힌트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곳에는 영물들을 도와주는 다른 조력자들도 제법 있다.
"오? 카멜레온은 벌써 첫 번째 비밀을 풀었네."
역시 다윤이. 내가 조금 설명만 해줬더니, 금세 첫 번째 힌트를 준 것만으로 출구에 대한 비밀을 풀었다.
이 시험은 입구와 출구의 차이점을 잘 이해한다면 손쉽게 파악하고 나올 수 있다. 매 쪽도 자신의 능력과 베린이 건네주는 힌트를 조합해서 출구를 분석하고 있다.
"저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오겠네."
확실히 이런 게임류를 많이 해본 유저들이 도와준다면, 아무리 멍청한 영물이라도 빠져나올 수 있다.
"어디야..."
"안 보여! 안 보여! 출구가 도대체 어디인데!"
리라와 덴트는 고생 좀 하고 있네.
조력자가 없는 영물들은 자동으로 랜덤한 형태의 힌트가 나간다. 힌트의 자체의 차이는 없지만. 조력자가 바깥에서 안쪽을 보고 추가적인 견해를 주기 때문에, 조력자가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계획을 위해 일부로 안 선택한 건데... 설마 못 나오진 않겠지?
이번에는 다른 토끼 쪽을 보았다. 토끼는 생각보다 영리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출구를 찾아내고 있었다.
마치 여러 번 해본 사람처럼.
"제법이네."
역시 그만한 실력을 보유했으니 이 위험천만한 의식에 참여한 거겠지.
어느새 시간은 3시간이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사실 시간은 그렇게 의미가 없다. 애초에 안쪽과 바깥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이 3시간은 신들이 영물들을 보고 관찰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10분만에 클리어하든, 100년만에 클리어하든. 무조건 3시간이 지나야만이 나올수 있으니깐.
뭐, 조력자들의 시간제한도 있지만.
"다른 영물들도 엇비슷하네.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 녀석들고 있고. 이랑은 뭐 하지?"
이랑은 정식 참가자가 아니라, 몰래 숨어든 참가자. 불법까지는 아니지만 떳떳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급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화면을 돌려 맨 끝에 위치한 화면을 보았다. 이랑은 아무것도 안 한 체 그저 앉은 다리를 하고 앉아서 무언가를 집중하고 있었다.
우우웅...
"? 뭐 하는 거야?"
뭘 하는 건지 이랑의 주위로 분홍빛의 기력이 모이고 있었고, 이마의 땀이 송골송골 맽이고 있었다. 화면상 한 100년은 족히 지난 거 같은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랑은 긴 침묵을 깨고 눈을 떴다.
"후우.... 구조 파악하느라 오래 걸렸네."
설마 앉아서 출구를 파악한 건가? 역시 이랑..!
...이라고 생각한 찰나, 화면에 분홍빛 여우불이 돌기 시작했다. 저거 설...
"귀찮게 찾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츠츠츳-!
이랑 주위로 수십수백 개의 여우불이 생겼다. 하나하나가 웬만한 상위 스킬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마력이 느껴졌다.
하늘로 높이 뜬 여우불은 일제히 공간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쩌-
견고해 보이던 공간의 금이 가기 시작한다.
쩍-
한겹 한겹씩.
쩌적-!
완전히 부서진다. 공간의 균열이 거세지더니 하늘이 완전이 무너져 내린다. 공간은 완전히 붕괴되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콰아아아앙!!!
"뭐야?"
"뭔 일입니까?"
"이 무슨...!"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신들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탁.
폭발 속 뭉게구름 사이로 작은 몸체가 하나 나왔다. 새하얀 꼬리와 귀를 살랑거리며. 작은 몸체는 활기차게 외쳤다.
"하하! 이 몸은 탈출했다!"
"미친."
신이 만든 공간을 그냥 찢어버리고 나오다니. 내가 무슨 수를 쓰든 시험을 통과하라고 하긴 했지만, 정말 저런식으로 아무렇게나 통과할 줄은 몰랐다.
이랑은 힘을 좀 쓴 듯 살짝 지친 모습이었다.아무래도 힘을 최대한 모아 사용하다 보니 그랬겠지.
"으아......피곤해."
이랑은 별일 아니라는듯 하품을 내쉬었다.
이랑을 포위하듯 신들이 급히 내려와 이랑을 둘러쌌다. 그중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듯한 곰의 신이 이랑 앞에 다가가 말했다.
"뭐 하는 짓입니까!"
"뭘, 뭐해? 시험을 통과한 거지?"
"시험이라니! 당신은 참여 영물이 아니잖소!"
"맞는데? 확인해보던가?"
신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체 참여 명단을 확인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있을 테니깐.
이랑은 씩 웃었다.
"후후..! 이 몸이 일등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리 당신이 참가한다 한들 이런 행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이랑은 피식 웃었다.
"허가? 애초에 그런 규칙도 없는걸? 시험장을 파괴하고 나오면 안 된다는 규칙이 없잖아."
"그, 그건 당연히..."
당연히 없겠지. 어떤 영물이라도 무려 삼주신이 만든 시험장을 부술 수는 없다. 최고위신의 자식 '이랑'쯤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규칙 같은 건 없었겠지.
"후우 짜릿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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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신 이린.
수천 년 전, 월드 어드벤처 자연의 30%를 자신의 영역 안에 뒀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 그 어마어마한 영토의 기운을 한 몸에 받아, 여우라는 미물의 틀에서 벗어나 신이 되었으며. 그 신은 더욱더 강해져 고위신의 자리에 올랐다.
시간이 지나, 마왕과 악마족의 기세가 높아지고, 다른 신들이 등장하면서 영역이 축소되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력한 최상위 신들 중 하나다.
그녀가 만들어낸 기원진(氣院振)은 아무리 강한 악마나 신이라 한들, 그 영역 안에서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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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포위만 할 뿐 이랑을 제압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무려 삼주신의 힘으로 제작된 시험장을 부순 존재. 그런 존재를 함부로 건드렸다가 시험장처럼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런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한 존재가 내려왔다.
"너는... 이린의 자식인가?"
"맞아요. 오랜만이네요. 비호 아저씨."
이랑은 치마폭을 잡고 고개를 꾸벅여 가볍게 인사했다. 둘이 구면이었네.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이랑은 옷에 묻은 흙을 탈탈 털어냈다.
"저는 위반 없이 시험을 통과했는데 다른 신 분들이 이러시니 곤란하네요. 아저씨가 뭐라고 좀 해주세요."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한 거냐?"
"뭐가요? 아저씨가 보기에도 문제가 있어요?"
이랑의 눈은 장난스럽게 곡선으로 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