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53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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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저자가 신시대의 용사…”
...강하다.
처음 용사를 마주했을 때 느낀 감각이었다. 순간 섬뜩한 감각까지 느껴졌다.
‘이만한 용사는 옛날에도 본 적이 없었는데.’
본인과 같은 고향에 있는 이들 중. 이피아는 가장 뛰어났고, 가장 강했다. 그것은 본인이 내린 평가가 아니었다.
“이피아 용사님!”
“용사님 감사합니다! 또 구해주셨군요!”
“역시 이피아 용사님이야! 다른 용사님들과 차원이 달라.”
나는 이곳의 원주민들에게 수많은 찬사를 향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용사님.”
“시아.”
사랑하는 이도 만났다.
하이엘프들의 왕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엘린시아, 엘프 도시의 주인. 엘린시아.
그녀가 나의 여정을 돕고 있다.
“어째서 다른 용사님들과는 다니지 않는 것입니까?”
“그야. 재미 없잖아. 다른 놈들이랑 다녀봤자. 칙칙하기만 하고.”
같은 고향 출신의 용사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봤고, 그들 하나하나가 다들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피아를 시기하기도 했다. 이피아 역시 이곳에 온 뒤로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저는 좋아서 같이 다니는 겁니까?”
“그래.”
“...마음이 같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아는 정령술도 뛰어났고, 웬만한 마법도 대마법사 수준으로 다뤘다. 단둘뿐이지만 그들의 모험은 막힌 적 없이 쭉쭉 이어나갔다.
최상위 악마를 만나기 전까지.
“용사님!”
“크크… 엘프 따위가 잘도 여기까지 왔군.”
“개자식이!”
최상위 악마, 오코스.
타락의 악마인 이 악마는 최상위 악마들 중에서는 격이 좀 낮은 녀석이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을 막는 데에는 충분했다.
“이 년을 다크엘프로 만들면 마왕님이 좋아하시겠지. 크크.”
“안돼!”
오코스의 손이 검게 물든다. 저것의 손이 시아가 닿게되면 즉시 타락할 것이다.
막아야 한다.
푸슉!
“...! 용사님!”
“크크크! 희생인가!”
“시아… 도망가.”
쿠당!!
이피아의 몸에 검은 기운이 스며든다. 여신에게 받은 신성한 힘과 성검이 그것에 대항하지만, 상대의 어둠이 더 어두웠다.
“용사님! 제발 일어나요!”
“...”
“크크크! 네년도 같이 타락시켜 주… 헉!”
실컷 웃던 오코스의 뒷편으로 창백한 빛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났다.
마치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빛.
빛은 어둠을 갈랐다.
“크아아아아악!!!”
“...”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피아는 흐려지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눈이 아프다.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빛은 그에게서 어둠을 가져갔다.
.
.
.
“용사님!”
“...시아?”
시아는 이피아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체온이 선명히 느껴졌다.
잠시 행복한 감각에 젖어있던 그는 이내 그녀를 살짝 떼어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일렌시아의 가호를 받던 정령신, 히아트가 그녀와 자신을 도와줬고. 그 대가로 일렌시아의 정령들을 15년간 수호하는 역할을 맡겼다.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해요. 용사님은 마왕을 상대해야 하는데…”
“아니야. 나도 매번 앞서 나갈 순 없지. 구해준 건 고맙다고 전해드려.”
“네!”
그 뒤로 15년의 기간 동안 정령들을 수호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모험에 떠날 시간이 된 날. 모험을 준비하던 이피아는 발걸음을 멈췄다.
‘어처피… 가봤자 또 이런사태가 일어날지도 몰라.’
최상위 악마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오코스에게 손 하나 써보지 못하고 당했다.
그럼 그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제라드는 얼마나 강하며, 또 마왕은 얼마나 강할까.
이피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처음으로 미지의 강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나와 다른 용사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전 당신의 선택에 맡길게요.”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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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아는 정령 숲에 돌아디니는 용사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시아와 결혼할 수 있게 됐고,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후에 고향 출신의 용사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지만. 사랑하는 이와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데 누굴 챙긴단 말인가.
“저 용사도 머지않아 나처럼 일을 겪겠지.”
이피아는 김윤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엘프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김윤 역시 같이 다니는 이성이 있다. 좀 많아서 문제긴 하지만, 어찌 됐든 사랑하는 이가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이다.
계속 모험을 하다 보면 압도적인 적을 만나게 될 거고, 자신처럼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죽겠지.
저 용사는 정령신처럼 위대한 존재가 돌봐주지 않으니까.
“나라도 녀석을 거둬줘야겠군.”
과거와 달리, 이피아는 누구를 챙겨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마침 김윤과 용사 일행은 강하기도 하니 이곳에 방위 역할을 맡기면 잘 수행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안 해.”
너무나도 쉽게 거절했다.
이피아는 김윤이 답답했다. 분명 악마를 만나기 이전의 자신처럼 착각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하다.
본인이 다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악마 따위는 문제없다고.
과거에 본인 역시 그러한 생각 때문에 시아를 제외하면 동료를 늘리고 다니지 않았다. 김윤은 동료가 많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이성이다.
‘설마 본인이 다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피아는 김윤의 선택에 어리석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 일행 중 2명은 그 김윤보다도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계속 몰아붙이다 들어서는 안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뭔 말을 그리 길게 해. 그냥 마왕을 잡기 두려워서 이곳에 숨어든 거잖아.”
“본인이 못 했다고 남들도 못할 걸로 보여? 그리고 너야말로 용사가 장난으로 보이나? 여신이 고작 기사단장 따위를 시키려고 용사를 소환한 게 아니야.”
악마에게 두려움을 떤 체, 당시 최강의 용사의 칭호를 포기하고 숨어든 겁쟁이.
과거 그가 고향 출신의 용사에게 들은 말이다. 당시에는 지킬 이가 있어서 무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최상위 악마라도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이렌시아를 건들 수 없다.
그 말은 그의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들었다.
빈사 상태로 만든다.
그를 제압한 뒤 그의 동료들까지 제압한다. 그리고 보여줄 것이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자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동료를 늘리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직접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
통통 뛰어오는 고양이 인간을 보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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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빗?”
“주인 주인 주인니이이님~~”
레빗은 나를 향해 풀쩍 뛰어 안겼다.
부비부비.
...좀 부담스럽긴 하네. 그래도 싫지만은 않은 기분이라 그대로 있었다.
“왜 오다 멈췃...”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 지능 활성화를 활성화 중입니다. ]
나는 빠르게 뛰어온 레빗 때문에 지능 활성화를 끈 줄 알았다.
“주인님 무슨 생각하냥?”
“...”
안 껐네?
지능 활성화는 사용자의 뇌 활동을 증가시키고 인지 능력을 대폭 늘린다. 즉, 발동하면 다른 사람들은 거북이 처럼 느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레빗은 그것을 가볍게 무시했다.
레빗은 내 인지 능력에 맞춰 그만큼 속도를 올린 것이다.
“오우…”
고위신의 위치에 오른 걸 알았지만, 레빗은 나의 상상이상으로 더 강했다. 이곳에 정령 신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엘린시아 전체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능 활성화를 풀고 이피아를 쳐다봤다. 허망한 표정을 짓는 이피아.
‘레빗이 그렇게 충격적 이였나?’
물론 충격적 이긴 하다.
“뭐. 싸우자매. 계속 달려들어 봐.”
“...그 어, 어떻게 그만한 존재를… 주인…”
이피아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았다.
주인님.
저 고양이 인간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분명 눈앞의 용사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
이상할 것 없다. 과거에도 용사들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름다운 외모의 인간이나 수인을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으니깐.
하지만 그들은 주인에 비해 한없이 약했다.
그런데 저 수인은 아니다.
“냐앙?”
...강하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신(神)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악마를 경계하는 그 조차 악마 따위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악마 따위.
저 존재 앞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저런 식의 주종 관계가 가능한가?’
이파아는 지속되는 혼란에 빠지는 사이,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포기한 거 같으니 궁금한 것 좀 물어볼게?”
“...”
“이곳에 최상위 정령은 어디 있지.”
“...모른다.”
“다?”
말이 짧네? 나는 손을 까닥였다. 부름에 응답하듯 레빗이 냐! 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치는 이피아.
“모, 모릅니다. 저, 정령들은 제 주관이 아닙니다. 모든 정령들은 정령신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에…”
“어쩌라고.”
“네?”
“그건 니가 알아서 찾아와야지. 내가 알 바야?”
나도 나름 협조적이게 할려고 했다. 적당히 질문도 대답해 주고, 나도 도움도 주고받고 그러려고 했는데...
저렇게 적의를 드러내고 싸움을 걸면 나도 좋게 나와줄 이유는 없다.
꿀꺽.
이피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 용사는 미쳤다. 자칫하면 이렌시아가 박살 날 수도 있다. 물론 히아트님이 있기에 박살까지는 안되겠지만, 자신과 아내가 위험해 질 것이다.
“그… 조, 좀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안내해.”
“네?”
“나 이렇게 계속 세워둘 거야? 손님 대접이 영 아니네. 확 뒤집어엎어?”
“아, 아닙니다! 귀인 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이피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김윤과 레빗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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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예요. 여긴?”
“뭐긴 뭐야. 7성급 호텔이지.”
중급 정령과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친 베린과 다윤을 불렀다.
이피아에게 안내받은 7성급 호텔으로.
“윤 씨가 돈 쓴 거에요?”
“아니. 우리가 용사라길래 지원 좀 해줬데.”
반 강제적 지원이지만.
참고로 하루에 30만 골드나 하는 미친 호텔이다. 현재 물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 물론 나는 무료로 이용 중이다. 지금껏 월드 어드벤처의 수많은 숙박시설을 들렀지만 이만한 숙소는 처음 본다.
창가는 탁 트여 시야감을 높여주었고, 깔끔하고 청아한 방 디자인과 깨끗한 침대가 내 심리를 좋게 만들어 주었다.
‘현실에서는 5성급도 못 가봤는데.’
베린은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워 편안함을 즐겼고,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레빗은 당근 꼬치 같은 걸 잔뜩 먹고 있었다.
다윤은 내가 벽에 기대고 있는 침대에 앉았다.
“계약은 일단 했어요. 그런데 중급 정령하고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게 가장 빠르고 쉬우니깐.”
정령과의 계약은 정령 관련 직업이 아니라면 그다지 효율이 없다. 그냥 조금 더 강해진다는 부수적인 스텟에 의미에 가까운 정도.
예를 들어 물의 정령과 계약하면 정령 술사는 정령을 실체화해 특수한 기술을 사용하거나, 그에 걸맞은 정령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일반 사람이 정령과 계약하면 공격에 물 속성을 추가하는 정도. 딱 그 정도만 사용 가능하다. 그 이상의 정령과 계약해도 마찬가지.
굳이 상급 이상의 정령과 계약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야 쓸게 많아서 최상급 정령을 찾는거지만.’
“그래서 뭐 했는데?”
“저는 불이요. 참고로 베린은 어둠의 정령과 했데요. 어둠이 좋다나 뭐라나.”
“해도 된다며? 하면 안 돼?”
“아냐. 둘 다 가능해.”
이전에도 말했지만 어둠의 정령은 마(魔)의 편이 아니다. 흑마법사 또한 마찬가지.
물론 그들은 어둠과 마기. 두 가지의 루트를 선택하는 것에 따라, 차이가 있다.
단순한 어둠을 연구하는 흑마법사는 배척받지 않지만,
마기를 탐구하는 흑마법사는 배척받으니깐.
물론 둘 다 인식이 별로 인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