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78화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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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페루아는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저건 매혹이 없어도 홀릴 것 같네.
만약 하페루아를 포함한 월드 어드벤처 미모 투표를 했다면, 압도적인 차이로 1등을 할 거 같은 미모다.
"마왕이 이렇게 약할 리도 없고, 약하면 이렇게 나올 리도 없지. 게다가 레빗까지 그대로 뒀잖아."
"아냐. 고양이는 귀여워서 안 때렸는걸?"
하페루아는 쿡쿡 웃었다.
"특이점을 찾으러 온 것치고는 최강자를 건들지도 않았어. 마왕은 그냥 싸우러 온 것 같지만."
마왕이 한대 컷이라니.
길 가던 슬라임이 웃고 갈 이야기다.
분명 하페루아는 뭔가를 노리고 왔다. 단순히 특이점만이 아닌 무언가.
그게 아니라면 같은 특이점을 가지고 있는 최강자를 건들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깐.
"뭘 숨기고 있는 거야."
"흐응.... 김윤. 지구에서 온 평범하디 평범한 유저."
"....."
"이지만... 너는 특별해. 너는 최강자와 아~주 비슷하거든."
"뭐가? 이름이?"
고작 그런 이유라면 실망할 것이다.
"응."
".... 진짜?"
"응."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개판을 만들었다고?
"이름은 중요해. 너 같은 하나의 게임 차원에만 돌아다니는 녀석은 모르겠지만, 두 개 이상의 차원을 돌아다니는 초월자(超越者)가 되면 이름의 중요도가 높아지거든."
"개명하면 되잖아."
그렇게 중요한 이름이라면 개명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페루아는 벌레를 쳐다보듯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게 쉽게 될 거였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그건 그렇네."
"시작부터 정해진 이름이어야만 가능해."
"천명(天命)? 그런데 나랑 최강자랑 이름이 같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 이름이 같으면 뭐 더 세지나?"
하페루아는 나의 물음에 씩 웃었다.
알듯 말듯 한 미소.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 같기도 했다.
"초월자의 이름이 같으면, 그 초월자가 가진 차원세계의 힘을 사용할수 있어."
"어?"
"수많은 차원의 세계에는 초월자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구분하거든. 수많은 이명들을 가지고 있어도 '김윤' 하나로 인식하는 거지."
그러면 그 말은 내가 초월자가 되면 최강자의 능력을 고스란히 쓸 수 있다는 소리인가?
순간 행복 회로를 돌리다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네가 그렇게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얼마나?"
"글쎄? 네가 만나온 이레귤러들도 한 200년은 걸렸으려나?"
....200년? 그게 뭔 개소리지.
"이레귤러는 특이점을 이용해도 200년. 다른 녀석들은 1000년은 훨씬 더 걸릴걸? 차원을 넘는다는 건 절대 쉬운 게 아니거든."
아득히 많은 시간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1000년이라니.
정말 이게 게임이 맞나?
“그런데 초월자랑 이레귤러의 차이점이 뭐야?”
“초월자는 말 그대로야. 차원 세계를 넘을 정도의 존재를 ‘초월’(超越) 한 존재. 그리고 이레귤러는… 뭐, 음… 비밀~”
“....그냥 알려주면 안 되냐.”
왜이리 비밀을 가진 놈들이 많아.
“안돼~ 본래의 세계에서 다시금 우리 아빠를 잡으면, 그때 말해줄게.”
"... 자기 아빠가 죽는 걸 너무 반기는 거 아냐?"
"우리 아빠는 불멸(不滅)이니깐. 몇 번 죽는다고 해도 문제없어."
"거참 무심한 딸이네. 마왕이 울겠다."
"원래 그런 거 잘 아는데 뭘."
근데 이상하네. 아까까지만 해도 적이었는데, 왜 이리 친숙하게 느껴지는 거 같지?
"아무튼 이만 가볼게, 확인은 다 한거 같으니까."
"이렇게 다 망쳐놓고?"
물론 특이점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지만 최강자의 영상이 엉망이 됐다.
검술 강기-진 말고도 쓸만한 걸 더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흐응... 뭘 바라는 걸까?"
"좀 쓸만한 거라도 줘봐."
"쓸만한 거라..."
하페루아는 곰곰이 생각하다 나를 빤히 보았다.
찰랑거리는 검 보랏빛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적당한 크기의 붉은 뿔은 반짝 거렸고, 마치 루비를 박아 넣은 듯한 눈 역시 반짝 거렸다.
....이거 매혹이 풀린 거 맞겠지?
정신이 나갈 거 같은데?
"이런 거?"
"...!"
"냥?!!"
갑작스러운 입술의 감촉에 순간 뇌가 멈췄다. 입술 사이로 혀가 들어왔다. 혀는 잠시 내 입을 돌아다니다 그대로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갔다.
하페루아는 눈웃음을 지으며 몸을 살짝 떼었다.
...요즘 따라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기는 거 같...
"뭐, 뭐 하는 거야!"
"어라? 이런 거 원하는 거 아니었어? 평소에 그런 거 많이 생각하던데?"
물론 미모에 반할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키스하고 싶다고는 생각한 적 없다.
...진짜다. 진짜로 없었다.
"그래, 뭐 그랬겠지. 그래도 어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에게 키스당한 기분은?"
"...생각 읽지 마라."
"참, 애가 숙맥이네."
하페루아가 쿡쿡 웃었다. 손에 든 칼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차마 밸 수 없었다.
이미 그녀는 멀리 날라 올랐으니깐.
"그럼 안녕~ 본 게임에서 보자고."
쩌억!
보랏빛 포탈이 그녀를 삼키더니 그대로 허공에서 사라졌다.
"젠장, 완전 놀림당했잖아."
사실 그녀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건 단순히 미모에 반했거나,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강했다.
마왕보다도 훨씬 더.
적어도 무명이나 보석을 만든 미르틱 루니움과도 전혀 꿇리지 않을 실력자.
"... 그런데 왜 악마 NPC지?"
정말로 마왕의 딸인 건지, 아니면 이레귤러가 규칙을 뒤바꿔 악마의 공주 역할을 차지한 걸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보면 알 수 있겠지."
"주인님! 위험했다냐!"
"그래. 고마워."
레빗은 변신을 푼 채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녀석이 없었으면 그대로 하페루아 한테 이리저리 휘둘렸겠지.
"그나저나 최강자는 어디로 갔지?"
나는 하늘로 날아올라 최강자를 찾았다.
마지막 악마의 심장을 꿰뚫은 체, 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 최강자, 김윤.
"...베린 용사님. 살아 계셨군요."
"당연하죠. 이런 악마들 따위 상대도 안 됩니다."
"큭..큭... 그렇네요."
최강자의 몸은 잔뜩 피로 물들어있었다. 본인 피 같지는 않고 악마나 다른 사람들의 피 같다.
저거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괜찮을려나.
최강자는 악마에게 꽂혀있는 검을 뽑아들어 피를 털어낸 뒤, 검집에 집어 넣었다.
내가 마왕하고 싸운 건 못 본 건가?
"당신이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지금 보니 더 그 생각이 굳혀지는 것 같네요."
"네?"
"당신은 미래에서 왔죠?"
...?!
"그리고 저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 온 걸 테고요."
"...어떻게?"
최강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나를 슥 올려봤다.
"저는 무공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운 게 주변을 감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기초로 시작했기에 어디서 누가 뭘 하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있어요."
"....."
그런 게 책에 있긴 했는데. 설마 들을 줄은 몰랐는데...
설마 그녀가 일부로 흘린 건가?
"김윤 용사님. 미래에는 제가 엄청난 사람이 되나 보네요."
"...예."
"실감이 안가네요. 차원을 넘나드는 '최강자'라..."
본인의 미래를 알아버린 최강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중에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만, 어차피 내가 떠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니깐.
“저는 아마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거나, 아니면 이미 고향이…”
최강자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가 차원을 돌아다니는 이유와 목적. 그것에는 자신의 원래 목표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없을 것이다.
만일 돌아갈 수 있었다면, 굳이 차원들을 넘어 다닐 이유가 없을 테니깐.
"...당신이 착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기대가 되네요. 미래의 제 모습이 어떤지."
최강자는 검술 강기가 담긴 책을 내게 건네주었다.
"당신이 원하던 책에 가족 그림을 몇 개 넣어놨어요. 생각나는 데로 몇 년 전에 그린 건데, 왠지 미래에는 안 가지고 다닐 것 같거든요."
"감사합니다."
"책은 뭐... 본인이 쓰시고, 그림만 좀 만나면 전해주세요."
"....."
이걸 전해준다는 건 곧 자기가 사라진다는 것도 안다는 거겠지.
나는 최강자의 모습을 뒤로한 채 레빗과 함께 영상 밖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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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이 종료됩니다. ]
[ 특이점의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
[ 오류가 정상적으로 수정되었습니다. ]
[ 부활의 편린이 발동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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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어딘가를 걸어갔다.
그곳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세계.
이곳이 어디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황홀경의 풍경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나의 인생이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우우!"
"아아!!"
그곳에서의 나는 하늘 높이 떠있다.
아래쪽 풍경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생명체가 보인다. 몬스터도 영물도 아니다.
처음 보는 녀석들. 녀석들의 행동 가지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마치 덜 발달한 생물체처럼.
"아름답네..."
푸른빛과 노란빛의 달빛이 이곳을 화려하게 비춘다. 두 가지의 빛이 융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하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지상의 생명체들은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평화로운 세계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 정보 조정을 진행 중입니다... ]
수시 때때로 뜨는 이 문자들로 인해 나의 존재를 계속 상기하게 된다.
그래.
'나는 이랑. 여우신 이린의 딸로, 김윤이라는 이름의 용사를 돕다가 이곳으로 왔다.'
그래.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곳이 너무 아름답다.
계속 이곳에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치치직-!
[ 누군가 해당 게임이 접속합니다! ]
[ 게임 □□ □□□□에 유저들이 접속합니다. ]
갑작스러운 문자들과 함께 이 공간 안에 누군가 칩입 했다. 그 수가 제법 되어, 20명쯤 되어 보였다.
'...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하잖아?'
이 정도면 그 김윤과도 맞먹을 정도. 아니, 그보다 더한 녀석들이 수두룩하다,
둘셋 정도는 범접할 수 조차 없는 녀석들도 있었다.
띠링~
[ 당신은 □□ □□□□에 '유저' 신분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
[ 게임에 참여 시 외부의 시간이 흐르지 않으며, 게임을 마무리할 시 조정이 즉시 종료됩니다. ]
[ 참여하시겠습니까? ]
"어?"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참여하라는 것 같다.
마치 용사의 신분으로 나의 세계를 돌아다녔던 김윤처럼.
"....."
해볼까...?
이것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잘만 하면 이 세계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참여할게."
외침과 동시에 반투명해져있던 이랑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으윽...."
처음 세상을 보는 생명처럼 모든 게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원래 이 세상이 이런 느낌이었던가?
무언가 달라졌다.
그걸 무어라 형용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무언가 달라졌다.
"대체 이건..."
"뭐야 신입이 또 있잖아?"
"유저가 더 있었나?"
"어?"
어느샌가 그들 옆에 도착한 이랑은 그들 앞에 서있었다.
푸른 배낭을 메고 있던 하늘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여우 인간이라... 특이한 유저네. 고향이 어디야? 판타지? 아니면 창조세계?"
".....그게 뭐야?"
"흠? 몰라? 특이한 녀석이네. 참고로 나는 창조세계 '루브리엄'에서 온 티안이다. 그쪽은?"
"난 이랑. 고향은 어드벤처에서 왔어."
"어드벤처? 이름이 되게 특이한 행성이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나의 물음에 티안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이 답했다.
"엥? 그걸 몰라? 너 처음 해보는 거야? 그런 것치고 제법 능력치도 괜찮은데?"
"응."
"거참... 여기는 □□ □□□□야. 이번에 리메이크된 게임인데. 종족 성장형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이지. 해보면 재미있을걸?"
[아아! 다들 들리십니까?]
남자와 대화하고 있던 사이, 우리보다 높은 하늘에서 검은색 정장과 중절모를 쓴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우리와는 다른 방식의 말. 단지 말투의 차이가 아니다. 그냥 말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 □□ □□□□ 시즌 2에 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