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83화 되고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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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다. 고작 푼돈을 내주며 너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위대한 마왕님과 대적하면서 그들의 충실한 사냥개가 될 이유가 있나?"
로드리아의 형체는 마치 웃는 듯 들썩거렸다. 내가 녀석의 말을 듣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쓸데없는 소리군."
"...!"
"리비엔?"
여태껏 잠들어있던 리비엔이 깨어났다.
오랜만에 일어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본인의 본신이 있는 곳 근처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펜던트의 기운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로드리아. 이분은 강하다. 너 같은 그저 환각만 아니면 별 볼일 없는 놈과 차원이 다르지."
"킥... 마왕님의 측근이라는 놈이 고작 장신구 따위에 갇히다니. 추하구나!"
"네가 아무리 지껄여 봤자. 이분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이분은 무려 하페루아님을 쓰러트린 전적이-"
"무, 무무무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로드리아의 형체가 붉으락푸르락 변하더니 억센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로드리아는 환각을 제외하면 별다른 능력이 없는걸로 유명하지만.
단 하나, 쓸모 있는 능력이 있다.
즈앙-
로드리아의 몸체에 6개의 검이 떠올랐다.
화려한 노란빛을 내뿜는 검.
"그분을 이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내가 용사를 굴복시킴으로서 증명하겠다!"
녀석은 환각 속에 빠뜨린 자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거참...."
나는 찬란한 빛을 꺼내들었다.
환각 속의 나는 평범한 학생이기에 특별한 능력 및 장비는 없다. 이것은 내가 특이점을 사용해 임시로 불러온 것.
원래는 다른 것도 불러오려고 했는데...
[ 해당 코드의 사용이 일시적으로 제한됩니다. ]
[ 과도한 사용은 페널티를 입을 수 있습니다. ]
[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일전에 너무 과도하게 복구한 게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내가 지금 불러온 것은 찬란한 빛과 스텟의 일부뿐. 전체적인 능력과 밸런스는 베린보다 더 낮을 것이다.
게다가 이 찬란한 빛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기 스킬은 이미 사용한 상태. 아무리 봐도 내가 훨씬 불리하다.
그걸 걱정하듯 리비엔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녀석을 이기기는 무리입니다. 최대한 방어적으로 나가다가 주인님의 그 알 수 없는 힘이 돌아올 때쯤에 싸우는 것을...'
"그러면 재미없지."
나를 향해 6개의 검이 사방으로 쏟아진다. 다윤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유저들은 그대로 죽을 정도의 공격.
"크읏?!"
"일격."
촤아아아악-!
[ 스킬 - 일격(一擊) LV.8(+2)을 사용합니다.]
나는 그대로 찬란한 빛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그에 걸 맞혀 나가는 거대한 파동.
나에게 쇄도하는 검들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스러졌다.
현재의 나는 능력치만 낮을 뿐, 최강자의 능력만 사용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소리다.
[ 강함 스텟 617 ]
".... 잘 피하네. 이걸로 죽을 줄 알았는데."
일격이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색의 그림자만이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베린의 능력...'
이거... 생각보다 더 힘들 수 있겠는데?
그림자 버그는 악마들에게 통하지 않는 능력인데 악마가 사용할 줄이야.
...같이 들어온 게 실수였나.
"죽어라! 용사여!"
로드리아는 두 개의 단검을 손에 쥔 체, 수백 갈래의 단검이 나를 배어냈다.
촤자자자자좍!!
최대한 피해내고 있지만, 역시 사각 없이 들어오는 공격까지 막아내는 건 무리가 있다.
어느새 내 주변은 피로 가득 물들었다.
"후우... 천천히 하자고 좀."
"킥킥... 용사여. 같은 동료의 기술로 맞는 소감이 어떤가?"
"글쎄.... 너무 시시해서 문제인데."
"뭣이!"
베린같은 암살자는 검사가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내가 정상적인 상대라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지금은 베린보다도 약한 상태.
녀석을 한방에 제압하는 기술인 이격은 그림자까지 공격할지 미지수이고, 삼격은 지금 상태로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나는 뒤쪽으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에 맞춰 로드리아의 단검이 나의 목을 노린다.
더이상 막을수 없겠지.
"리비엔."
[ 장비 스킬 - 붉은 나락 LV.10을 사용합니다. ]
[ 스킬 레벨이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 추가 스킬을 습득 가능합니다. ]
[ 스킬을 선택하세요.
1. 생기 흡수.
2. 혈신 무장.
3. 분체 소환. ]
"3번. 분체 소환을 고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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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이런 식으로 싸워선 안 된다.
정신력이나 스킬 통해 환각을 이겨낸뒤, 환각을 탈출해 밖에서 싸우는 게 기본적인 방법.
하지만 나는 환각을 깨지 않고, 그 환각 내에서 싸우는 중이다.
비유하자면 상대의 능력치를 자유자재로 조절 할 수 있는 운영자와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비엔.... 네 녀석이...!"
상대도 할 수 없는 싸움이지만 나는 특이점을 이용해 싸움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마저도 완벽하지 않지만 이정도면 충분하다.
"도대체 얼마 만의 육체인지 모르겠군."
붉은 가닥가닥이 펜던트에서 기어 나오더니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붉은빛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기체 형태의 작은 악마.
크기는 성인 남성의 팔뚝만 한 거 같다. 반원 형태의 검은 눈까지 뜨자, 마치 만화 속에서나 보던 유령하고 비슷한 것 같다.
[ 장비 스킬 - 분체 소환 LV.1을 사용했습니다. ]
[ 주위에 알 수 없는 힘이 소환수와 동조합니다. ]
[ 생기의 악마, 리비엔의 능력치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
리비엔의 특수 능력 중 하나인, 분체 소환.
간단한 소환수 형식의 능력이라 그다지 효율은 없다.
하지만 여기는 마왕의 성.
로드리아의 거처 옆에는 주인을 잃은 리비엔의 본신도 있다. 분체는 본신 근처에 있을 시, 그 힘에 동조되어 더욱더 강력해진다.
"까, 까불지 마라, 리비엔! 아무리 네가 마왕님의 측근이어도 한낱 장신구에-"
퍼엉-!!
땅 위에 무슨 수를 써도 멀쩡했던 로드리아. 로드리아의 그림자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피가 흩뿌려졌다.
"... 뭘 쓴 거야?"
"녀석의 생기를 강제로 사출시켰습니다. 다행히 이쪽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힘을 분산 시키던 모양이군요. 덕분에 쉽게 제압했습니다."
그동안 되게 머저리같이 보였는데... 생각보다 쌔잖아?
물론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지금 본신의 절반 정도의 수준을 유지 중이니깐.
애초에 나 또한 그림자만 없었다면 진작에 로드리아를 잡았을 것이다.
[ 히든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
- 히든 퀘스트 / 로드리아의 환각
당신은 뛰어난 실력으로 감정의 악마, 로드리아를 환각 내에서 격퇴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아니 그들은 아직 존재합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나눠 당신과 함께 온 용사들을 영원한 감정의 감옥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들을 모두 격퇴시켜 로드리아를 완전히 제거하세요.
- 감정의 악마 로드리아 격퇴 (1/5)
히든 퀘스트... 좋긴 한데.
설마 녀석들의 환각 속에 다 들어가서 하나하나 잡아야 하는 건가.
리비엔은 내 걱정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무슨 문제십니까. 저와 주인님의 능력이라면 녀석을 못 상대할게 없습니다만."
"우리가 가도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문제지."
"?"
여기서 우리가 힘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환각 내부에서 반 정도 환각을 스스로 깬 것, 그리고 특이점을 이용해 강제로 원래의 힘을 되찾아 싸운 것이다.
그러나 다른 녀석들의 환각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
환각이 깨기 전에 로드리아가 상대해 줄지도 의문이고.
"적어도 로드리아를 잡으려면 애들 스스로 환각을 깨어내야 해. 내가 직접 개입하기에는 특이점의 사용량이 너무 부족하니깐."
전에도 말했지만 이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다. 무작정 들어가서 깨울 수 없는 일.
방법은 환각에서 녀석을 만나 어떻게든 여기가 환각이라는 것을 알게끔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치지직---
로드리아가 사라진 환각은 그대로 공간 자체가 무너져내리듯 사라진다.
“......”
눈을 뜨자, 처음 문을 열었던 곳에 돌아왔다. 5개의 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문이었지만 이제는 4개의 보석만이 문에 박혀있었다.
다시 한번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검은 공간 속 붉은빛의 4개의 포탈이 보였다. 각자의 얼굴 사진이 걸려있는 포탈.
"어디부터 가실 예정입니까? 참고로 환각은 걸린 자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환각은 더
견고해집니다. 적어도 여우 영물은 최대한 마지막에 가는 걸 추천드립니다."
"당연하지. 이랑을 미쳤다고 첫 번째로 가겠냐."
손쉽게 환각을 깨려면 환각에 걸린 자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이랑의 능력을 쓰는 로드리아라… 상상도 하기 싫다.
아까 로드리아가 베린과 다윤은 능력만 쓴 것은 두 가지 중 하나겠지.
베린의 능력이 특수성과 나의 상성 차이 때문에 그것만 썻다거나, 아니면 아직까지 다른이들이 환각에 완전히 빠지지 않았거나.
반대로 말하자면 앞선 2명은 완전히 환각에 빠졌다는 소리다. 나는 이랑을 제외한 3명의 사진이 걸린 포탈을 유심히 바라보다 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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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월드 어드벤처?"
푸른빛의 하늘이 눈에 띄고, 새하얀 성이 눈에 보였다. 여긴 아르티아다. 북부 최대의 도시이자 나라.
"환각이 월드 어드벤처라니."
보통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상황을 환각으로 만든다. 때문에 환각은 대부분 현실에서 잘나가는 인생이나, 아니면 원하는 사람과의 만남 혹은 후회되는 상황을 되돌려 보여준다.
그게 대부분이긴 한데...
"저기다 저기! 랭킹 1등 님이 성에 오셨어!"
"구경 가자! 그분을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아!"
도시를 구경하던 도중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광장으로 향했다.
랭킹 1등..?
"무명? 아니, 아니겠네."
여기가 그 녀석의 환각이면 당연한 결과겠지. 나는 군중들을 따라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키가... 큰 누군가.
주변에는 마치 기자들이 몰린 듯 수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있었다. 리비엔 또한 눈치챈 듯 얕게 펜던트가 울렸다.
'맞는 것 같군요.'
"베린이 자식 설마 이런 건 꿈꾸고 있을 줄이야."
베린은 환각 속 월드 어드벤처의 랭킹 1등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