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86화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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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린님은 어떻게 그렇게 강하세요?"
"...어?"
베린의 주변에는 괴물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수백갈래로 갈라진 이 괴물들은, 10마리 정도만 있어도 도시 하나를 단시간 안에 박살 낼 수준의 괴물들이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에 의해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암살과 다인전, 모든 면에 있어 최강의 가까운 능력.
베린은 괴물들의 피로 잔뜩 칠해진 단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뒤, 자신의 허리춤에 꽂았다.
"뭐, 직업빨 이지. 난 별로 안쌔."
"에이~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그만큼 잘 다루는 게 대단한 거죠. 저도 좋은 직업이지만 베린님보다 능숙 하게 사용을 못 하는걸요."
김다윤은 시무룩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 태도에 베린은 뭔가 조언해 줄려다, 자주 찾아오는 지끈거림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 또..'
.
.
.
'베린아~ 약한 건 잘못이 아니야.’
누군가와의 모험. 그중에는 베린도 있었다.
처음 시작은 베린과 김다윤 둘 다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약한 건 잘못이야. 힘이 없으면 죽는 세계잖아.'
베린의 신경질적인 말투. 그러자 김다윤은 무슨 소리 하냐며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야! 힘 없이도 충분히 살아 갈수 있어. 저기 저 *씨가 엄청 강하긴 해도, 우리정도면 굉장히 강하다구!"
'.... 우리가 아니라 너네겠지. 난 너만큼 강하지 않아.'
베린이 김다윤보다 약한 이유는 명확하다. 같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성장 한계치가 낮은 것. 그리고 **이 김다윤만을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
한계치가 낮은 베린은 거의 방치하다시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의 대장이 누구였더라.
.
.
.
"... 님."
머리가 복잡하다.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나는 기억들. 하지만 단순히 하나만의 기억이 아닌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뭘 잊은 걸까.
도대체 무엇을...
"...베린님!"
"어, 어어!"
"무슨 생각 하세요? 마왕성이 코앞이에요!"
....벌써 그렇게 됐나?
그래 드디어 마왕성이구나.
지난 10년 전 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그러고는 직업과 특성을 얻고 모험을 떠났다. 나와 함께 5명의 인원이 움직였으나, 마지막 최상위 악마와의 결전에서 김다윤을 제외한 모두가 죽고 말았다.
어쩔 수 없던 일. 하지만 슬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수없이 흘려온 땀과 피를 무시할 순 없으니깐.
이렇게 마지막 결전을 앞에 두고...
"...? 왜, 또...."
"네?"
이질적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분명 왔던 기억.
그러나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가.
"너... 정체가 뭐야."
"무슨 소리세요. 베린님? 빨리 마왕을 처치하고 세계를 구해야 해요!"
"도대체..."
이게 도대체... 몇 번이나 돌아간 거지? 나의 이질적인 태도에 김다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김다윤이 갑자기 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크읍....너...도대체..."
"용사님. 아직 깨어나시면 곤란합니다. 좀 더 주무시길."
"커어..."
지금까지 얻어온 능력들을 전부 사용했지만 하나도 시전 되지 않았다.
마치, 이것은 눈앞에 존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듯이.
의식을 잃으면 안 된다. 여기서 또 죽는다면 나는 돌아갈 것이고. 같은 여정을 반복할 것이다.
내가 이곳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게끔 더 효율적인 형태로 변하면서.
하지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당신의 능력은 유용하니, 최대한 나의 환각에 갇혀서 평생을...."
"이런데 숨어있었구나."
쩌적-
콰아아아아아!!!
"....!"
마왕성을 이루고 있던 붉은 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마어마한 분홍빛의 불꽃이 눈앞에 존재를 강타했다.
"크아아아아악!!!"
"...한심하게 이런 환각에 갇혀서 말이야."
분홍 불꽃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듯, 바닥을 구르는 김다윤.
아니, 감정의 악마 로드리아.
눈앞의 녀석을 보니, 내가 잊고 있던 게 뭔지 알 것 같다.
"이랑...?"
"맞아. 꼬맹이. 이런 곳에서 오래도 버텼네."
"....."
"그래도 이 몸이 왔으니깐... 어, 울.. 울어?"
모르겠다.
이것이 지난 환각 속의 고생 때문인지, 아니면 구세주를 만난 것에 대한 기쁨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 그냥...
베린은 빨개진 눈시울을 닦았다.
"안 울어."
"그래~ 안 울었겠지~"
"......으으...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다른 녀석들은 무사해? 김윤은?"
이랑은 막대기 하나를 든 체, 불타버린 로드리아의 시체를 툭툭 건드렸다.
확실히 죽은모습.
"다들 너처럼 환각에 빠져나오려고 노력 하고 있어. 뭐, 안되는 녀석도 있긴 하지만."
"그게 김윤?"
"김윤은 이미 빠져나왔어. 그녀석은 특별하니깐."
베린은 이랑의 말에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껏 수많은 여정을 떠나면서 김윤의 필요성을 너무 생생히 느꼈으니깐.
그가 없으면 이 파티는 구성되지 않는다.
이랑은 베린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준 뒤 말을 꺼냈다.
"한 가지 말해둘게 있어."
"어..?"
하얀 빛의 이랑의 모습이 점차 분홍빛 불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난 이곳에 정식적으로 들어온게 아니야. 너희들에게 심어둔 여우불을 통해 형상화 한거지."
"...그러면?"
"로드리아는 완전히 죽은게 아니야. 그는 여러개로 육신을 나눠서 활동하고 있거든. 내가 하나를 방금 격퇴하긴 했지만 여전히 로드리아는 남아있어."
"아직 환각에서 못나간다는 얘기야?"
"그래. 만약 너 스스로 격퇴시켰다면 환각이 자연스레 깨지고 현실로 돌아오겠지만. 내가 잡은것이기에 이 환각은 게속 유지될거야."
베린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이 지긋지긋한 환각이 계속 된다는 거니까.
어느새 이랑의 몸의 절반이 불꽃으로 바뀌었다. 이랑의 여우불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걱정하지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가혹한 인생이 게속되진 않을꺼야. 오히려 반대지."
"?"
이랑은 진지한 표정으로 베린을 쳐다봤다.
"지금껏 로드리아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너를 완전히 가두기 위해 정신을 무너트리는 방법을 사용했어. 하지만 녀석이 이 환각에 통제권을 잃었기 때문에 환각의 내용 또한 기존의 방식으로 바뀔 거야."
"행복한 인생이 될 거라는 얘기야?"
"그래.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행복이 너를 환각에 빠뜨릴 거야. 내가 사라지면 나를 포함해 모두에 대한 기억을 잊고, 행복한 삶을 영유하겠지."
"....."
베린의 눈빛에 이채가 들었다. 본인도 알고 있다.
만약 정말 이랑의 말대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도 벗어나기란 정말로 힘들 것이다. 이전까지 정말 힘든 인생을 살아 왔으니까.
편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거의 여우불 형태에 가까워진 이랑이 베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꼬맹이가 오래 환각 속에 있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구나."
"누, 누가 누굴 보고 꼬맹이래! 나보다 키도 작은 게!"
이랑은 베린의 귀여운 태도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나 말고도 너를 구제해 줄 사람이 올 테니깐."
"....."
베린이 손을 뻗자 이랑의 손은 완전히 여우불이 되어 사라졌다.
텅 빈 공간 속 베린 혼자만이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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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는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송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만났다.
이 환각을 깨뜨려줄 사람을.
"혹시 김윤이란 사람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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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환각 좀 엿봤다고 특이점이 벌써 바닥나다니."
베린에 대한 환각을 풀기 위해 지난 일들을 살펴보았다. 환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른 형태의 환각이었다.
베린을 완전히 무너트리기 위한 장치들. 내가 겪었던 환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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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것 말고도 다윤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
'...뭐?'
'아. 우리 꼬꼬마 베린이에게는 너무 이른 얘기인가?'
...내가 저딴 얘기를 지껄였다고?
"로드리아 자식. 만나면 4등분으로 쪼개줘야겠다."
"...그래서 네가 누구라는 건데! 아까부터 혼잣말만 하고 말이야."
흉흉한 태도를 보이는 베린. 기억을 살펴보면 분명 이랑이 녀석을 한번 구제해 줬다.
이 환각을 조종하는 로드리아도 없는 상황. 녀석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환각을 깰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베린의 무의식이 단단히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내가 강제로 깨기에는 힘드니깐...
"베린님. 저랑 내기 하나 하죠."
"뭐?"
"제가 당신의 공격을 30초간 막아내면,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죠. 막아내지 못한다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드리겠습니다."
베린은 황당한 태도로 나를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제안. 지금 녀석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 행성을 모두 뒤져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저 능력이 엄청나니깐.
"미친 거야? 자살이라도 하려고?"
"전 자신 있습니다."
"미친-"
"왜? 쫄리십니까?"
빠직.
베린은 단단히 화가 난 듯 단검을 뽑아 들었다. 웬만한 레전드리 장비보다도 훨씬 좋은 장비. 게다가 녀석의 특성과 직업은 더더욱 괴랄하다.
당연히 이기기는커녕, 몇 초도 버티질 못하는 상황.
"죽어도 책임 안진다."
"네~네~ 들어오세요!"
파삭-
내가 서있는 공간이 그대로 배였다. 95... 아니 97번 베였나?
1초도 안되는 시간에 이만큼의 궤적이 파고들다니, 역시 극상의 고수의 경지에 달아야만 얻을 수 있다는 공간검(空間劍)이다.
"별거 없지만."
"....! 너... 어떻게.."
그러나 나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다. 나는 하얀 빛의 일렁이는 보호막에 휩싸여있다.
액티브 - 신성 보호 : 30초간 신성 공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막아냅니다.
신성의 용. 신룡 그라티아 갑주의 스킬. 신성 보호.
신성 공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막는 이 스킬은, 어떠한 강한 공격도 모두 막아내는 사기 스킬 중 하나다.
탱킹형 전사 계열 히든 직업의 궁극기도 3초 무적 정도, 길어야 5초 무적이 전부인데.
이것은 갑옷만 입어도 30초간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내 공격을!"
"시간이 갑니다. 베린님. 빨리 공격하셔야죠."
"크윽... 각오해!"
촤자자자촥!
콰아아아아아!
쩌적- 쿠구구구 콰가가가가가가!!!
베린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과 능력을 모두 시전했지만, 통하기는커녕. 생채기 하나 안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는 통합 서버가 없다.
'신성'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가 없는 셈.
그러니 당연히 신성이 든 무기나 스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성직자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힐링 스킬이니깐. 애초에 통합 서버가 열리기 전에 성직자를 하는 사람도 적었고.
어느새 멧돼지 출몰지역은 황량한 폐허로 변하였다.
"하아... 하아... 괴물...."
"괴물은 그쪽 같은데."
"......"
30초가 다 지날 때까지 수많은 기술을 퍼부었던 베린은 지쳐 쓰러졌지만, 나는 아주 멀쩡히 서있었다.
물론 이렇게 다시 싸우면 내가 반드시 질 것이다.
지쳤다고 저런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삼격을 쓰면 모르려나?'
"내가 졌어."
베린은 단검을 그림자 속에 던져넣었다. 의외로 쉽게 포기하네.
예전 같은 성격이었다면 우기면서 승부를 다시 보려고 했을 텐데.
"부탁이 뭐야. 돈? 아니면 명예? 웬만한 건 다 들어줄게."
"베린아."
"...어?"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