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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화 〉87화 세계의 진실 (87/318)



〈 87화 〉87화 세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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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린아."
"... 어?"
"돌아가자."

베린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반말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얼어붙은 모습.
하지만 이게 중요하다.

녀석은 스스로의 의지로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정당히 내 부탁을 말했다.

"무슨 소리야? 돌아가자니?"
"모른  안 해도 돼. 충분히 누릴 만큼 누렸잖아. 여기서 고생한 걸 알지만, 여긴 현실이 아니야. 밖에 기다리는 녀석들이 있어."
".....무, 무슨 소리야. 여기가 현실.."
"여기 있으면 있을수록 현실과 감각이 무뎌질 거야. 그리고 완전히 빠지게 되면 이곳의 환각도 변질되겠지."
"......"
"마치, 네가 처음 이곳에 겪었던 일처럼."


이것이 녀석을 망치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환각 속 부탁은 중요한 장치로 이용되니깐.


그 장치는 기존의 기억을 끌어 오는데 주로 이용된다.


"...하... 하지만... 이곳을 떠나면... 나는 다시.."
"걱정 마. 이 환각 속 나처럼 배신하지 않을 거니깐."


쩌적...!
환각이 무너지고, 정경이 돌아온다.
다음은 다윤이다.

-

정경이 사라지고 눈을 떠보니 다시 한번 그곳으로 돌아왔다. 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문.
이제는 두 개의 보석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늦지 않게 데려왔구나."

이랑은 한참을 기다린  기지개를  폈다. 사실 이랑이 제일 걱정이었다. 이랑의 환각은 매우 어려울 것 이였으니깐.
그런데 스스로 환각을 깨는 것을 넘어 베린에게 도움까지 주었다.

"쉽게 깼네. 나름 고전할  알았는데."


이랑 같은 일정 경지를 넘어선 자들은 능력은 출중하기에, 정신 계열 공격에 쉽게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는 환각에 있어서는 절대적 일인자인 로드리아.


로드리아의 무서운 점은 환각에 걸린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환각은 기존보다 더 훨씬 강해진다.


약하면 약한 대로 저항하기 힘드니...
난공불락의 중간 보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랑은 피식 웃었다.

"예전에 나였다면 고전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 정도는 가뿐하지."
"그래?"


자신만만한 이랑의 태도. 게다가 고결한 정신 상태까지 눈에 띄었다. 도대체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다윤이한테는 그 여우불 보내봤어?"
"인식하지 못하고 사라졌어. 아무래도 단단히 환각에 빠진 모양이야. 아마 깨우기는 어려울  같은데..."
"베린보다도?"
"응. 베린은 스스로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다윤이는 틈도 안 보일 정도야."

그 정도 수준이라....
특이점이 조금씩 돌아오는 대로 계속해서 사용하다 보니, 특이점이 한없이 부족하다.


이 상태로 가면 다윤이에게 다가가기 조차 힘들겠지.

"...다시 약해졌네."


시무룩하게 자리에 주저앉은 베린.
뭐, 환각 속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랭킹 1등이었으니깐. 아쉬울만 하다.

"다시 환각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
"그래. 그리고 어쌔씬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280정도만 넘어가도 웬만한 최상위 악마는 혼자 잡을 정도야.."
"진짜?"
"어."

물론 레전드리 장비를 둘렀다는 전제하의 얘기지만. 굳이 사족을 붙혀서 기분을 다운시킬 필요는 없겠지.

내가 문에 손잡이를 잡자 베린이 벌떡 일어났다.


"혼자가? 같이 가서 구하는 게 좋지 않아? 구하기 어렵다며."
"어렵지. 근데 데려가는 게 더 어려워."
"?"
"내가 멋대로 환각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건  능력 때문이야. 다른 사람이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같이 환각에 동조될 수 있어."


나 또한 특이점이 없다면, 이 위험천만한 환각 속을 함부로 돌아다닐  없다.
이랑 역시 여우불을 통해서만 환각에 개입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오래 있을 수 없어 사라졌지만.


"걱정 마. 오래  걸릴 테니깐. 금방 데려오지 뭐."
"여우불  빌려줄까?"

이랑의 손에 분홍빛의 여우불이 맴돌았다. 저 정도라면 웬만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효율적이겠지만...


"미안하지만. 이건  혼자 해결할게."

왠지이건 나 혼자 다녀와야  거 같다.
이랑은 흐음... 하며 여우불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내 손을 내렸다.


"그래. 갔다 와."
"어. 금방 데려올게."
"그리고 조심해."
"응?"
"네 생각보다 환각이 훨씬 더 진행 됐으니깐. 너의 능력을 믿긴 하지만 로드리아가 생각보다  강해. 자칫하면 그대로 환각에 먹힐지도 몰라."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강해서."

검은 공간 속 두 개의 포탈.
나는 다윤의 사진이 걸린 포탈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누구를 까먹은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


-익숙한 천장이다....

“나도 알아 임마.”


나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독백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걱거리는 나무 가구들과 찌르르 울리는 새소리. 따스한 햇빛은 나의 시야를 비춘다.

여긴 어딜까.


-나 돌아온 건가. 처음 시작 장소로.


“회귀 환각이네.”

나와 독백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회귀. 흔한 일이다.

환각에 걸리는 대부분은 회귀 환각을 꿈꾼다.
이유야 뻔하다. 과거에 문제점, 혹은 후회되는 일을 돌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간이 돌아간다면... 따위의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돌아만 간다면 다시는 똥 쓰레기 같은 레인저를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만큼 회귀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장 이전의 베린만 해도 회귀가 환각에 포함돼 있었으니깐.

“다윤이가 되돌리고 싶은  뭘까....”


나는 잠시 삐걱거리는 침대에 앉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밖에 없다.

“과거의 악연을 돌리는 것.”


혹은 복수겠지.
하늘 길드와 관련된.


“후우... 머리 아파 죽겠네.”

이번에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나에게는 두 갈래 길이 보인다. 하나는 튜토리얼 존인 사과농장으로 향하는 길.

다른 하나는 막다른 길이다.


물론 완전 막다른 길은 아니고 히든 직업이 숨겨진 곳이긴 했으나, 그다지 좋은 직업까지는 아니어서 찾아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새 시즌이 되자마자 그쪽으로  사람이 있겠거니 싶어서 안 간 것도 있다.


“한번 가볼까.”

어차피 지금 급하게 나선다고 곧장 다윤이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왕 회귀한 김에 궁금증이나 좀 풀어보자.

나는 막다른 길로 몸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바위로 막힌 길이 나왔다.

뒤쪽에 길이 있는 거 같지만 이 단단한 바위를 뚫고 갈 수는 없다. 날아가거나 순간 이동도 할  없다. 억지로 가봤자  빈 길만 나올 뿐이다.


숨겨진 장소로 들어가는 방법은 하나.


“후... 이거 하면 아픈데....”

나는 자세를 잡고 바위에 달려갔다. 그리고 부딪힌다


쿵!


'....'


아파...
나는 주륵 흐르는 피를 닦으며 뒤로 물러났다. 다시 한번.


쿵!

“으아…”


이번에는 이마에서 피가 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멋대로 치료하거나 몸을 보호하는 스킬을 사용하면 절대 들어갈  없다.

‘의식’을 하면 출입이 불가하니깐.


쿵!

다시.

쿵!

다...시.


쿵!

“...후. 해보자 이거지.”

그렇게  번이고 자연 그림에 부딪히는 새 마냥 부딪혔다.
얼마나 부딪혔을까.


쿠-쿠당탕!!


내 앞을 가로막던 바위가 한순간 사라지며, 내 몸이 앞으로 솟구쳤다.


“성공....”

피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면 이걸 성공이라고 봐야 할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성공이다.

특이점을 써서 출입할 수도 있었지만, 다윤이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함부로 사용량을 소진할 수는 없었다.


나는 회복 스킬을 사용해 몸을 전부 회복시켰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동굴.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인다.

-저곳에 뭔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알아.”


독백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




나는 동굴 안을 걸었다.
이곳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안다. 저곳에는 자연 동물들을 부리는 드루이드 같은 직업이 있으며,  수준은 에픽 히든정도.

그 정도도 꽤나 높은 수준의 직업이지만, 이 미친 행위를 반복하면서까지 얻을 정도로 귀하진 않았다.
애초에 이걸 찾은 것도 신기하다.


어떤 미친놈이 바위에 몇 번이고 부딪혀 가며 이곳의 존재를 알았던 걸까.


“세상엔 미친놈이 참 많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빛을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쏟아지는 빛이 점차 커지고, 시야에는 풀숲의 평야가 들어선다.

깔끔한 정원 같기도 한 이곳에는 여러 가지 동물들이 보인다.
토끼, 참새, 고양이, 앵무새…

그 외에도 별 생물들이 다 보인다.


나는  그 끝에 있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오두막에 들어갔다.

끼익-

“...손님이 오셨군.”

백발에 긴 턱수염을 가진 남자. 그의 어깨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고, 녹색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기존의 NPC들과는 다른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쪽이 주인?”
“그렇다네.”
“여긴 어딥니까?”


나는 오두막의 내부를 둘러봤다. 마치 공방처럼 되어 있는 내부. 곳곳에는 여러 가지 마법 도구들도 제법 눈에 보였다.


동물 애호가의 오두막이라기보다는 마법 연구실 같은 느낌.
남자는 턱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바라봤다.

“여긴 자연의 공간이라네. 나는 이곳의 주인이지.”
“자연… 공간?”


그게  소리지.


“이곳은 월드 어드벤처의 작은 창조세계라는 것이다.”
“...! 당신 이레귤러야?”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는 남자의 폭탄 발언을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미르틱 로니움은 이레귤러는 창조세계를 만들 정도의 초월자라고 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이레귤러가 아니라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샘이다.

내 의중을 읽은 듯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에 있는 나무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최강자를 계승한 자여. 나는 니츠리야의 행성의 주인 아트리 니츠리야다. 내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진실?”

아트리는 지팡이가 움직인다. 그러자 집안에서는 결코 일어날  없는 바람이 내 머리를 뒤로 넘겼다.

“월드 어드벤처의  다른 세계로 넘어가 네메린느를 찾아라. 그녀가 세계의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
“...그냥 그쪽이 알려주면 안 돼?”
“이쪽은 세계의 창조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트리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창조주… 운영자?”
“정확히는 그의 힘을 똑같이 복사해 사용하고 있는 누군가지. 구면이니 누구인지는 알 것이다.”


구면…?


설마 하페루아를 말하는 건가?

내가 반문하려던 찰나. 남자는 사라지고 평범한 NPC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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