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외전] 88화 이랑 (88/318)



〈 88화 〉[외전] 88화 이랑

-

모든 세상이 풍요롭고 맑은 하늘이 세상을 덮은 날.
세상의 모든 나무가 분홍빛으로 물든 날.
내가 태어났다.

"우리 아가. 깨어났구나."
"꾸우...?
"아이고 예쁜 것."

거대한 여우가 나를 감싸 안으니 온몸이 포근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감싸는 듯한 느낌.
거대한 여우는 나를 향해 말했다.

"아가. 너의 이름은 이랑이다."
"꾸우!"


여우신 이린의 자식. 이랑.
그게 내 이름이다.

...마음에 든다.


-



"엄마!"
"어서 오렴 이랑."


이랑은 어느덧 20살이 되었다. 사람의 나이라면 벌써 성인의 나이지만 영물인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다.
이랑은 거대한 여우의 품으로 폴짝 뛰어 안겼다. 그런 이랑을 이린은 꼬리를 이용해 쓰담쓰담 움직여 주었다.

"헤헤..."
"친구들과는 별일 없니?"
"응! 다들 너무 재밌어!"

이랑은 영물들이 다니는 학원에 다닌다. 어린 영물들을 교육해서 사회성을 기르고 그것을
넘어 신(神)의 영역에 갈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로루닌이 재물을 통해 신이 된다면, 이 학원은 단순한 신이 되기 위한 공부와 연(蓮)을 쌓는 곳이다.


"다행이구나."
"헤헤.... 친구들도 너무 착하고, 나한테도 잘해줘!"


변신을 한 상태의 이랑의 귀는 쫑긋 서있었고, 꼬리는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이린은 밝은 미소로 이랑을 보았다.

"잘 됐구나. 친구들과의 나이 차이가 나서 고생할 줄 알았는데."
"...? 친구들 나이 많아?"
"그래도 별로 차이는 안 난단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지."
"응!"

영물이 다니는 학원은 말 그대로 영물이 되어야지만 다닐 수 있다.
보통의 동물들이 영물이 되려면 적어도 500년쯤은 지나야 영물이 될  있지만, 간혹 그 시간을 채우지 않더라도 영물의 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 예로 용(龍)  대표적. 용은 태어날 때부터 영물의 격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랑은 용이 아닌데도 영물의 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세계에서  안 되는 최상위 신(神) 이었기에.

그녀의 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태어나니, 그것이 바로 신이 아닌데도 신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여우신의 딸 이랑이다.


"아! 맞다 그리고 학원에서 누가 이상한짓 했어."
"누구? 아니, 우리 예쁜 딸한테."
"막 이상한 뿔을 가진 녀석인데...   했더라...."

이랑은 자그마한 손으로 턱을 잡은 체 하늘을 올려다봤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이린은 너무 귀여워서 그녀를 꽉 껴안았다.

"...나 숨 막혀."
"아... 아! 미안해. 괜찮아?"
"응. 그러니깐..."
.
.
.

"너네 엄마가 행성의 3할은 차지했던 신이었다며?"
"...그랬어?"

학원이 끝나고 돌아가던 와중 거대한 뿔이 머리에 박혀있는 녀석이 말을 걸었다.
뿔은 마치 산양의 뿔처럼 갈고리 형태로 양쪽에 박혀 있었고,  아래로는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녀석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모르면 어떡하냐..."
"응, 몰라."
"거참...."


녀석은 주머니를 뒤적 거리더니 아까 학원에서 받은 간식거리를 내밀었다.
작은 땅콩 같은 간식거리지만, 영물들이 좋아할 만한 재료로 만들어서 이걸 먹기 위해서 학원을 다니는 녀석들도 잇는 걸로 유명하다.


"자, 나 안 먹는 건데  줄게."
"응? 넌 왜 안 먹어?"
"난  먹어도 돼. 이거 안 먹어도 집에 먹을게 많거든."
"그래! 고마워!"


이랑은 천 주머니 같은 걸 까더니.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입에 털어 넣는  보자 녀석이 피식피식 웃었다.

"켁! 뭐야! 간식이 아니잖아!"
"ㅋ... 크하하하! 멍청하게 그걸 먹냐! 그거 그냥 찰흙으로 만든 건데! 캬하하하... 하?"


한참을 웃던 산양의 뿔을 가진 녀석은 공중에 붕 떴다. 이랑은 화가 난 듯 기력이 올라와 그를 공중으로 계속 띄웠다.

"아니.. 20살짜리가 무슨..?"
"머..."
"그, 미안해! 살려줘!"
"먹을...."
"어? 뭐라.."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마! 나쁜 자식아!"

뻐엉~!

이랑의 주먹질에 녀석은 그대로 튕겨져나가 멀리멀리 날아갔다. 이랑은 저 멀리 날아간걸 확인한 뒤 씩씩거리면서 돌아왔다.
.
.
.

"그, 그랬구나..."
"응! 그래서 내가 혼내줬어!"


이린은 이랑을 내려다봤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강한 그녀의 힘.
이대로라면 큰일이 한번 날 거 같은데...


"그 친구 말고 다른 친구들은 문제없니?"
"응! 없었어. 다들 나랑 사이좋게 지내는데  녀석만 그래!"


그야 당연히 무려 최상위 신중 하나인, 여우신 이린의 자식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예외 라면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부모가 이린과 맞먹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그런 걸 모를 정도로 어리거나.

"설마...."
"우웅...  졸려."
"그래 자렴. 내가  친구는  알아보마."
"응..."


이랑은 학원에서 즐겁게 노는 꿈을 꾸며 잠에 빠져들었다.



-





"그, 미안해..."
"흥! 미안하면 간식이라도 내놓던가."

다음날 녀석은 사과하러 왔다. 놀랍게도 그는 이랑과 30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최상위 신이 아님에도 일찍이 영물의 격을 획득한 특이한 녀석이라고 한다.


'산양신의 자식 기루란다. 나이는 53살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러 온다 했으니 내키면 받아주렴.'

엄마의 말에 따라 기루라는 녀석은 사과하러 왔다.


"그... 간식은 지금 주머니 2개밖에 없는데, 더 얻으면 3개 더 줄게."
"좋아!"
"...어? 그걸로 된 거야?"


어느새 간식 주머니 한 개를 먹고, 다른 한 개를 까던 이랑은 기루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간식 많이 주면 됐어."
"......"

이랑은 다 먹은 주머니를 아쉬운 듯 탈탈 거리다가 이내 멍청하게 서있는 기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제 친하게 지내자. 내 이름은 이랑이야."
"...난 기루야. 전에 했던 일은 미안해."
"흐응... 미안하면 간식  줘."
"너 정말 간식을 좋아하는구나. 최대한 많이 구해볼게...."

그렇게 기루와 이랑은 이날,
서로의 인연은 시작됐다. 서로가 좋든 싫든 간에.




-

"학원도 끝인데 뭐 하지..."
"그러게."

학원을 다닌 지 100년째, 우리는 졸업했다.
중간중간 끊어도 상관없고 계속 다녀도 상관없지만, 다닌 연수가 100년이 채워질 시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


이랑과 기루는 그날 이후 계속해서 꾸준히 학원을 다녔다. 둘이 거의 동시에 학원을 다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기루는 학원에서 나온 신개발 간식을 입에 잔뜩 넣었다. 땅콩 같던 간식은 어느새 푸딩처럼 변했다.

"하... 이걸 더 이상 못 먹다니..."
"더 먹고 싶은데..."

이랑과 기루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다 나이가 제법 있는 영물들뿐이었다.
같은 나이 때에 비슷한 정신 상태를 가진 건 기루와 이랑 둘뿐. 그렇기에 100년 동안 떨어지지 않고 같이 다닐  있었다.


기루는 다 먹은 푸딩 그릇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말했다.


"나, 너네 집에서 자고 가도 돼?"
"아, 안돼!"
"왜, 옛날에 자주 갔잖아 너도 왔었고."

"...아무튼 안돼! 오면 엄마가  난리 친단 말이야."

분명 예전에는 별 탈 없이 자주 왕래했었다. 엄마의 주접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고.
그런데 어쩐지 요즘에는 이상하다.


아, 그냥... 뭔가 이상해.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이랑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무튼 안돼!!"
"치... 알았어. 그보다 이제 뭐 할 생각이야?
나는 인간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여행할 생각인데."
".....나는."

원래는 100년을  번에  채우지 않고 보통 300~500년 정도 텀을 가지며 다녀야 했다.
하지만 기루와 다니는 학원 생활이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다녔다.

학원 이후의 삶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00년은 살아온 기간보다 5배는 더 길었으니깐.
하지만 끝이 났다.


그러면 무얼 해야 하는가.


"그러면 나는 가볼게 아버지한테 가서 여행 준비에 대해서 듣고, 준비해야-"
"나도가."
"어..?"
"나도 같이 가. 나도 여행 갈래."


뭔지 모를 때는 같이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 없으면 허전할 거 같아."
".... 어?"

기루는 입을 쩍 벌리며 굴리던 푸딩 그릇을 떨궜다. 이랑은 잠깐 멍하니 있다.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내뱉은 거지?


"아, 아아아 아니! 그... 오래! 오래같이 있었잖아! 갑자기 헤어지면 좀 그렇잖아! 그리고 나도 여행! 하고 싶었는데..."
"......"

이랑은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횡설수설했다.

실수했다.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지..? 원래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기루는 뭔가 결심한 듯 이랑의 갈 곳 잃은 손을 붙잡았다.


"가자. 그럼. 나도 너랑 떨어지기 싫어."
"...그, 너무 붙지 말아 줄래."
"어, 어?"
"부끄러우니... 깐..."

화끈거린다.
부끄럽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걸 무슨 감정이라고 느껴야 하는 걸까. 이런 건 배운 적이... 있었나?


우리는 어리니깐 그저 '너희는 알 필요 없어!' 하고 다들 넘겼는데, 막상 마주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학원에서 누가 이런 거 하던데."
"이, 이랑?!"

이랑은 까치발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았다.
그다음에는...



-

"어머. 둘이 아주 사이가 좋아졌네. 그렇게 말해도 아닌척하더니."
"....."

이랑은 기루와 손을 잡은 체 이린의 앞으로 왔다. 거대한 여우 형상의 이린은 귀여운 것을 내려다보듯 그들을 바라봤다.


"상견례라도 하러 온 거니?"
"뭐, 뭔! 쓸데없는 소리야!"
"어머, 얘는. 그러려고 온 거 아니야?"

이랑은 씩씩 거리며 얼굴이 붉어졌지만,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옆에 있던 기루가 한 발짝 나서더니 말을 꺼냈다.


"저희 여행 갈려고요. 허락받으러 왔습니다."
"신혼여행?"
"아, 아니요!  세상을 배우는 여행을 갈 겁니다. 시, 신혼여행은 아니고요... 아직은..."
"아직은?"


"아! 아으으...."

이린은 부끄러워하는 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린은 작은 반지 2개를 허공에 만들어 내려주었다.
분홍빛의 보석이 박힌 반지 2개. 반지를 받은 이랑은 반지를 낀 체 말했다.


"이게 뭐야?"
"서로를 지켜주는 반지란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반지를 끼면 위급한 순간에 상대의 있는 장소로 바로 이동할 수 있지."
"...엄마."

이린은 장난스럽게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한테  어울리는  아니니?"
"으으..."
"잘 쓰겠습니다!"
"기루는 마음에 들어 하는데? 딸은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ㄷ."
"응?"
"아! 몰라! 아무튼 가볼게!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래, 언제든지 쉬고 싶으면 찾아오렴."


이랑은 기루의 손을 푼 채 엄마의 품에 달려가  안겼다.

"...보고 싶을 거야."
"남자친구가 더 보고 싶을걸?"
"으으.. 감동적인 순간이었잖아!"
"후후, 재밌어."

이랑은 그것을 끝으로 기루의 손을 잡고 기루와 함께 떠났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300년이 지난 후였다.

"


300년.
오래된 영물의 관점에서는 별거 아닌 시간.
신(神)의 관점에서는 찰나와도 같은 시간.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300년은 인생을 3번을  시간이었다.


"나쁜 놈."

헤어졌다.
사실 헤어지고 다시 만난 게  번인지 샐 수도 없다.인간들의 틈에 살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우리의 심상이 인간 같아졌나 보다.


300년이 지난 후, 이랑은 이린의 영역에 가서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백년이 더 흐르고 이랑은 다시 인간들의 도시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이랑은 테라딘이라는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번이 몇 번째 헤어짐 이였더라...."


나이도 먹지 않는 우리지만, 정신은 변하나 보다.
그래서 여러 영물과 신들에게 도움을 받아 정신 상태를 고정해봤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의미가 없었다.


"...이건 언제 버리지?"


내 왼손 약지에는 아직도 그 반지가 껴있었다. 처음에는그냥 빼버렸는데, 차마 엄마가 준거라 버리지도 못하겠다.

게다가 반지의 능력으로 확인해보니 녀석도 안 버리기도 하고....

"망할 놈, 자기는  안 버린데?"

자기가 차 놓고... 나쁜 놈 되기 싫다 이거야?

"에라이 그냥 빼버려야....!"

쿠당탕!!
그 순간 거리 외각 쪽에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안은  온몸에 상처가  여자와, 검을 든
여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아아.... 제발... 아이만은..."
"감히 더러운 핏줄과 엮인 아이를 살려둘 것 같으냐? 죽음으로 사죄하거라!"
"안돼!"


카-앙!

아이를 향해 쇄도하는 검이 힘없이 부러져, 칼날이 저 멀리 튕겨져나갔다.


"뭐 하는 짓들이야?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아...."


작은 몸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사람들을 한방에 쓰러트린 존재.

"흥, 죽이진 않았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니깐. 그건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이랑은 품 안에 아이를 쳐다봤다.
회색 머리의 남자아이.
훗날 공작이 될 아이, 에덴과의 첫 만남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