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89화 이명 (89/318)



〈 89화 〉89화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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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윤!”
“...네.”
“뭐 하고 있어?”

붉은 장미를 연상시키는 긴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아이가 김다윤을 불렀다.
김다윤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들 대신, 저 멀리의 허공을 바라봤다.


-그가 왔어.


“아니에요. 가요.”
“? 다음은 어디를 공략해볼까? 너가 부길마니깐 골라봐!”
“음….”

김다윤은 하늘 길드의 마스터, 로즈에게 지도를 건네받았다.
노란색의 종이로 되어 있는 지도.

김다윤의 선택을 기다리듯 수많은 길드원들이 다윤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다윤의 시선은 지도를 향해 있었다.

지도의 도시 곳곳은 x자로 칠해져 있다. 그간 하늘 길드가 점령한 각 도시의 점령지이다.
기존의 서버와 달리 통합 서버는 대륙이 꽤나 넓고, 길드가 점령할 수 있는 지역이 많았다.


수많은 길드들이 지역을 점령하려고 했고, 김다윤이 속해있는 하늘 길드 역시 그러했다.


“티르빙으로 가죠.”
“티르빙? 그 설산을?”


로즈는 김다윤의 선택의 의문을 가졌다.
설산을 점령해봤자 얻을 수 있는 재화나 NPC들의 수도 적다. 굳이 점령할 만한 이유도, 그러기도 힘든 땅.
그런데 왜 김다윤은 그곳을 가자고 하는 걸까.

-그곳에 그가 올 거야.

“왠지 좋은 느낌이 들어서요.”
“좋은 느낌?”
“감… 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다윤은 자신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과거의 그녀는 지팡이를 다루는 마법사였으나, 지금은 달의 형상을 쓰는 검사가 되었다.
그런 김다윤의 능력은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김다윤의 감이라…


어쩌면 귀중한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럼 길드성으로 돌아가 정비하고 출발하자.”
“네.”


다른 길드원 역시 의문을 가졌지만 반론은 제기하지 않았다. 하늘 길드의 원정은 실패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가면 실패할 거야.

“......”

-하지만 그를 만날 수 있겠지. 내가 바라던 사람.


“......다행이네.”
“응? 뭐가?”
“아니에요.”


김다윤은  하늘을 바라보다 자리를 떴다.



-




“아! 손님이 오셨군요!”

나는 눈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녹색의 머리카락을  여자. 동그란 안경에 머리색과 같은 녹안을 띄고 있었다.
그 머리 위에는 푸른색의 앵무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신비한 기운은 안 느껴지네.’

자신을 아트리라 밝힌 사람은 오리무중한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누굴까.

“저, 저기요…?”


아트리가 말한 네메린느는 바람의 정령왕이다.
아마도 정령의 도시에 거주 중이겠지. 어차피 그곳으로 가볼 생각이었으니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그런데 왜 굳이 나에게 진실을 알려준다고 한걸까? 단순히 최강자의 힘을 계승해서? 아니면 나를 이용하려는 건가.
또 의문이 드는  하페루아다. 그녀가 정말로 운영자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나에게 왜 접근 한 걸까. 또 그녀에게 느껴지는 친밀감은 어째-

“저기요!”

생각에 잠시 잠겨있는 사이, 어느새 눈앞의 여자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 미안.”
“...지금 사람을 앞에 두고 뭔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급한 생각을 하느라. 이제 말해도 돼.”
“으… 완전 이상한 사람이야.”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 의자에 풀썩 앉았다.

“이곳엔 왜 오신 거죠?”
“그쪽 이름이 뭐지?”
“전 루아에요. 네츠리 루아. 정원의 주인이죠. 그쪽은요?”


루아.
보통 저런 외국식 이름은 이름이 앞에오고 성이 뒤로가지만, 월드 어드벤쳐는 특이하게 성이 앞에 온다.
처음에는 오류인가 싶었지만 모든 이름이 그런걸 보고 납득했다.

‘근데 다른 세계의 초월자들은 정상적이란 말이지…’


엘린시아의 머저리나 미르틱 로니움, 그리고 방금 만난 아트리 니츠리야 까지.
모두 정상적인 이름이었다.

만일  게임의 운영자가 일부로 그렇게 설정했다면.


“근데 그럴 이유가 있나?”
“네?”
“아, 아냐.  이름 말하라 그랬지?  김윤이야. 보다시피… 용사지.”
“네에? 요, 용사요???”

루아는 놀란 듯 덜컹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까지 놀랄 건 없을 거 같은데.

“차고 넘치는  용사인데  그리 놀라.”
“그야 여신님의 선택을 받은 용사님인데요! 당연히 놀랄만하죠!”
“아니… 너가 특이한거 같은데.”

지금까지의 용사들을 대우해 주고 반기긴 했으나, 저렇게 화들짝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용사의 신분을 가진 유저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으니깐.

예외가 있다면 용사의 위치가 필요했던 로루닌의 신들 정도.

...그러고 보니 신의 의식은 잘 돼가나 모르겠네. 내가 벌인 짓 때문에 많은 게 바뀌었을 텐데.
물론 뒤처리는  해주고 떠났지만.


“저는 거의 일 평생을 이곳에만 있었거든요. 그래서 용사를 본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 다른 데는 안 나가?”
“네!”


당당히 집에만 박혀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루아.
사실 대부분의 은둔 고수형 전직관들이 이렇다.

히든 루트를 타는 전직은 전직관 없이 전직 퀘스트를 받을  있지만, 대부분의 전직은 이렇게 스승 형식의 전직관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은둔 고수는 오래전 세상에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떠난 외인, 혹은 영웅이 대부분이기에 그들은 게임 특성상 한 곳에만 처박혀 있다.

“사람도 보는 것도 오랜만이겠네.”
“네에… 맞아요… 사실 지금도 너무 반가워서 껴안고 싶은 심경입니다!”
“......”


단순히 게임일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지금 보니 운영자 놈들이 아주 나쁜 새끼들이다.

이렇게 박아두면 언제까지 있으라고?


“그래서 말인데… 껴안아도 돼요?”

...갑자기?

“갑자기?”
“오,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냥 확실히 확인하고 싶은 거니까!”
“확인할게 있나?”


내가 용사라는거? 아니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괴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으으… 싫으면-”
“하고 싶으면 하-”

덥석.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아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키는 다윤이랑 비슷하네.

‘...별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리비엔도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감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지만, 로드리아나 다른 특수한 무언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채취를 남기듯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위에 있는 앵무새가 이상한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으나, 그 주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루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떼었다.

“푸하~”
“이제 믿겠니?”
“네!”


루아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용사님?”
“혹시 아트리라는 사람을 알아?’
“아...트리요? 글쎄요… 그런 이름은 못 들어 본것 같은데…”
“그래…?”
“네.”


아무래도 그 남자는 나를 만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빌렸을 뿐, 루아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나는 그 외에도 다른 초월자들의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역시 아는  없었다.


“그러면 김다윤은 알아?”
“네?”
“김다윤 말이야. 나랑 같은 용사인데 찾고 있거든.”
“아~ 김다윤 용사님 말이죠?”
“알아?”

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위에 앵무새 역시 음음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게 이상하죠. 그분은 용사들 중에서도 오성(五星)에 드는 분이시깐요.”
“...오성(五星)? 그게 뭐야?”
“5개의 별! 용사들 위에 용사! 천외천 같은 느낌이에요.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다섯 명의 강자를 뜻하는 거죠.”

…참 별걸 다 만들어놨네.
오성이라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중에서도 김다윤 용사님은 달의 여제라고도 불려요. 그분이 한번 검을 휘두르면 마치  베는 듯-”
“.......”
“왜 웃으세요?”
“아, 아냐.”


달의 여제라… 다윤이가 저런 별명을 좋아서 달고 다닐리가 없고, 아마 그녀를 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환각이라지만 그렇게 현실성 없는 내용은 아니다.
통합 서버가 생기고  이후, 수많은 랭커들은 각자 여러 가지의 이명으로 불렸으니깐.

참고로  유명한 무명은 ‘이름 없는 구원자’였다.

“저는 이곳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의 굵직한 정보들은 저의 친구들을 통해 들을  있어요. 그중 하나가 제 머리 위에 있는 블라밍인데... “
“어디 있는데?”
“김다윤 용사님이요? 그분은 하늘 길드에 계셔요! 어드벤처 행성 최고의 길드죠!”
“최고…”

원래의 하늘 길드는 최고의 길드까지는 아니었다. 수많은 길드 중 열 손가락 안에 들던 길드 중 하나.


당시 1위 길드가 있긴 했지만 ‘압도적 1등’ 이라는 수준의 길드는 없었다.
애초에 길드끼리의 수준은 비등비등했고, 무명이 등장하면서 다 의미가 없어졌으니깐.


그런데 하늘 길드가 최고라…

‘다윤이 베린처럼 그런 걸 원하진 않았을 거 같은데…’


길드의 안 좋은 감정과 기억이 있는 다윤이다. 그런 다윤이가 굳이 길드를 1위 자리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1등은 부수품일뿐,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겠지.


“하늘 길드의 행보는 어때?”
“백전무패! 단 한 번도 패퇴한 적이 없는 길드에요! 작은 용사님을 필두로 달의 여제와 함께 수많은 땅들을 점령중 이에요. 이대로 간다면 그분들이 나라를 하나 세울 정도로 영토가 거대해 질 거예요.”
“여제…”


진짜 적응이 안 되네.
나는 피식 거리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김다윤 용사님을 찾으시는 거면 하늘 길드의 성으로 가보세요. 자격이 안되면 받아주진 않겠지만 그래도 짐꾼부터 시작하시면 마주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짐꾼?”

아무리 모든 능력치가 감소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루아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다른 용사님들보다는 훨씬 약해보이셔서요.”
“나 밖에 본적 없다며.”
“들은 건 많으니까요.”
“......”


그냥 넘어갈려 했는데 안되겠군.
나는 아주 조금 회복된 특이점의 일부를 끌어왔다.


츠츳-!


“!”
“이 정도면 어때?”


내가 끌어 온것은 레빗. 물론 이것도 워낙 사용량이 적어서 완벽하지는 않다. 레빗은 기존 능력치의 훨씬 못 미치는 수준만을 발휘할 것이다.
그래도 고위신이라는 이름값이 있으니 강하겠지.

레빗은 소환되자마자  어깨위에 올라갔다.

“냥?”
“......”
“변신해봐.”


레빗은 고개를 한번 까닥이더니 빛을 발했다.
어느새 메이드 복장을 한 수인 여자로 변신했다. 주황색의 고양이 귀와 꼬리를 가진 모습.

...메이드?


탁.


“주인님! 기다렸다냐!”
“메이드복은 왜 입었어?”
“마음에 들  같아서 입었다냐! 어떠냥?”
“흐음…”

나는 레빗을 보았다. 주황색의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주황색의 눈.
하얀색과 검은색의 메이드 복장은 꽤나 어울렸다.


“괜찮네.”
“그렇냥?”
“.......”
“그보다 이 여자는 누구다냥?”

레빗은 내 옆에 찰싹 붙어 루아를 바라보았다. 루아는 뭔가를 중얼거리듯 고개를 떨궜다.


“...어떻게…”
“응?”
“어, 어어어떻게 이런 소환수를 부리는 건가요오오!!”


루아는 레빗의 얼굴과 귀를 덥썩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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