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92화 솔직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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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일까.
리제르다의 길드장 리제르다는 혼란에 사로잡혔다.
이곳의 성은 특수한 물질로 제작되어 있다.
그 수준은 디틴베리의 광석인 티파인 보다도 뛰어난 강도와 성능을 자랑한다.
오성(五星)에 위치한 자신조차 제법 힘을 써야 부술 수 있는 수준인데…
“반갑다냥!”
저건 뭘까.
저런 녀석이 이태껏 숨겨져왔던 건가?
리제르다는 주변을 살폈다. 성이 무너져 내렸지만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다.
“미친 것이!”
“잠깐!”
거구의 남자는 창을 들고 빠르게 여자 쪽으로 몸을 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다시 이쪽으로 날라왔다.
꽈아아아앙!!
“쿨럭… 미친.”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
“...”
“......”
다들 말이 없어지고 그 시선은 한곳으로 향했다.
“...다들 대비해라.”
길드장의 말에 모든 정예 길드원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다른 누구도 아닌 무려 5대 길드의 정예들이다. 쉽게 물러서지.
저벅.
“호옹~ 꽤나 많다냥!”
무너진 성 사이로 수인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압.
눈앞에 존재는 단순한 강함으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모든 행동이 멈추고 식은땀이 흘렀다. 무기를 든 손은 벌벌 떨렸고, 준비해둔 마법은 시전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격(格)이 다르다.
마치 최상위 악마나 마왕, 혹은 고위신들처럼.
신(神)...?
“설마…”
“그쪽이 대장이다냐?”
어느새 여자는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이동한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있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넌...누구냐.”
“난 레빗! 우리 주인님의 펫이 다냐!”
주인...? 펫…?
설마 눈앞에 이 여자보다도 강한 사람이 또 있단 말인가.
리제르다는 과거에 보았던 최상위 악마, 제라드가 떠올랐다.
범접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닌 악마 제라드.
제라드를 토벌하기 위해 모든 길드원이 나섰지만 길드원의 절반이 죽고 간신히 도망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악마라는 틀을 초월한 그 악마는 신성을 포함한 모든 상성 위에 있는 존재였다.
“...”
이보다 강한 존재가 하나 더 있다라…
승산이 있을까.
“순순히 길드성을 내놓는다면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냥!”
“......”
있다.
파직.
“냐?”
레빗의 위로 적색의 낙뢰가 떨어졌다.
대미지는 없는 기술. 레빗은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붉은색의 표식이 생겼다.
“쳐라!”
“죽어라!”
“이게 감히!”
수많은 정예 길드원들이 각자의 스킬과 능력을 발동했다.
그중에는 광역기 같은 같은 동료가 맞을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레빗에게 걸린 표식에 의해 모든 공격이 전부 레빗에게만 들어갔다.
“갈라져라!”
리제르다는 기다란 검을 소환해 속박된 레빗을 내리그었다.
쿵!
검은 허공을 갈랐다.
“...?!’
“...어디 갔지?”
“사라졌습니다. 제 감지에도 잡히지 않아요.”
길드원 중에는 속박 계열의 레전드리 특성이 있다. 상대의 모든 능력과 행동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능력.
3성급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유저는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아무리 적이 강하다 한들 적어도 1분 정도는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긴장을 늦추지말고 다시 나타날 수 있으니 대비해라.”
길드장의 말의 모든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레빗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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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돌아왔어?”
나는 리제르다가 한눈에 보이는 산꼭대기 위에서 전투를 감상하고 있었다.
레빗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능력치를 어느정도 복원해 줬다.
결과는 보다시피 압도적인 차이.
그런데 레빗이 갑자기 돌아왔다.
“내가 활약하는 것보단 주인님이 하는 게 더 낫지 않냥?”
“상관없는데.”
오성(五星)의 별을 하나 더 늘릴 생각은 있다만, 그것이 반드시 내가 돼야 하는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하늘 길드를 제외한 모든 길드의 몰락이니깐.
“그래도 주인님이 하는 게 더 좋을거라냥.”
“...너 하기 귀찮지.”
“무, 무슨 소리다냐!”
레빗은 손사래를 치며 아공간 속의 당근 꼬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처음으로 주인이 됐을 당시에는 꽤나 충성심이 높았는데 요즘 따라 귀차니즘이 늘어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레빗은 토끼에서 고양이로 변한 존재.
하필 그 둘은 놀기 좋아하고 귀찮음이 많은 녀석들이니…
참 환장할만한 조합이다.
“왜 안 하려는 건데.”
“안 하는게 아니라 주인님이 하면-”
“너 이거 안 하면 앞으로 간식값 안 줄 거야.”
“...!”
레빗의 손이 덜덜 떨렸다. 세상이 멸망한 사람도 저런 표정은 안 지을 거 같다.
“그, 그러면 안된다냥! 잘못했다냥!”
레빗은 내 바지단을 잡고 간절히 빌었다.
나는 고민하는 척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3분 줄게. 처리하고 와.”
“알았다냐!”
힘차게 나선 레빗은 1분도 체 안돼 리제르다 길드를 전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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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르다에 이어 명월이라니…”
검사 길드의 길드장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성 내에 틀어박혔다.
다윤 길드라는 해괴한 이름을 가진 신생 길드는 창설된지는 40일, 원정에 나선지는 고작 10일 만에 5대 길드 두 개를 박살 냈다.
지나칠 정도로 빠르고, 압도적일 정도로 강하다.
“설마 하늘 길드랑 같은 편인가? 그게 아니고서야….”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는 건 이상한 수인 여자.
듣도 보도 못한 능력으로 길드를 과자 부수듯 부수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인 두 길드장은 손 하나 써보지 못하고 당했다고 한다.
“이, 이대로 올라가면 다음은 나겠지… 마탑은 북부에 있으니깐…”
그 무지막지한 괴수는 아래서부터 도장 깨기라도 하듯 차례차례 올라가며 점령하고 있다.
아니, 도장 깨기가 맞나.
대체 그런 괴수가 어디서…!
탁자 위에 놓인 보라색의 수정구에서 빛이 났다. 길드장은 후다닥 수정구에 가까이 얼굴을 대었다.
-나에요. 검사 길드장.
“마탑 꼬맹이?”
-...꼬맹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미친놈들이 길드를 박살 내고 있다고!”
-알아요. 아니깐 연락을 한거잖아요?”
수정구 너머로 신경질적인 말투가 느껴졌다. 검사 길드장은 흠칫했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었다.
“후...그래. 뭔가 방법이 있어서 연락한 거겠지?”
-연합을 하죠.
“연합?”
-검사 길드성을 버리세요.
“뭐?”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성을 잃기 싫어서 지금 아득바득 어떻게든 구안을 모색하고 있는 건데 성을 버리라니.
“뭔 개소리야.”
-아… 제가 너무 짧게 말했네요. 죽기 싫으면 버리고 오라고요. 어처피 거기서 버텨봤자 의미가 없으니깐.”
“......이게-”
-당신도 알고 있죠? 지금 하늘 길드가 티르빙 원정에 간거.”
길드장의 말이 멎었다.
-지금 하늘 길드의 본부는 텅텅 빈 상태에요. 5대 길드를 박살 내며 올라오고 있는 다윤 길드가 다 차려진 밥상인 하늘 길드를 안 건든다…
“......”
-뭔가 냄새가 나지 않아요?
“둘이 한패라는 건가?”
-일단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죠.
일리 있는 말이다. 본인도 방금까지 예상했던 일이고.
다윤 길드.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길드. 정보는 알려진 게 없으며, 유일한 정보는 수많은 용병을 대리고 점령한 지역을 관리한다는 것. 그리고 괴물 같은 수인 여자 뿐이다.
또한 다윤은 오성(五星)중 하나인 김다윤의 이름이기도 하다.
-수많은 용병을 대리고 다닐만한 거대 길드의 자본력, 그리고 오랫동안 숨겨둔 비밀 병기. 어때요? 아직도 그 성에 계속 살고 싶어요?
그래.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이 사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지나칠 정도로 하늘 길드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원정을 나서고 있었으니까.
“너네 쪽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저희 마탑이 적을 맞이하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니깐 같이 싸우자는 거죠.
“...확실한 거겠지.”
-물론. 당신과 저, 둘의 능력이면 가능합니다.
“...만약 하늘 길드까지 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지?”
수정구 너머는 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옅은 웃음이 들려왔다.
-그럼 내어줘야죠.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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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윤.”
“...”
“다윤아.”
“.......”
“김다윤!”
“아, 네.”
거센 눈바람이 몰아치는 곳.
김다윤은 로즈의 여러 번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뭘 그리 생각하고 있어?”
“그냥… 별거 아니에요.”
김다윤은 자신의 발밑에 놓인 킹 화이트 예티를 내려다봤다. 티르빙의 포식자이자 설산의 지배자. 설산에는 이런 보스급 몬스터가 널려있다.
“으으…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의문은 가지고 있어. 이걸 언제까지 할 셈이야?”
“...점령은 해야죠.”
“그게 문제야~ 점령을 하려면 예티 수를 줄여야 하는데 예티 수를 줄이려면 사냥을 해야 해. 사냥을 하려면 이 설산에 돌아다녀야 하고. 이 설산은-”
“제가 절반을 잡죠. 어처피 보스급 몬스터는 저하고 로즈 언니 그리고 정예 3명밖에 못 잡잖아요?”
킹 화이트 예티는 높은 레벨 때의 몬스터지만 잡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 설산이 문제다.
평범한 능력으로는 10분도 체 버티기 힘든 땅.
무기 한번 휘두르는 것도 벅찬 이곳에서 보스급 몬스터를 잡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화이트 예티는 설산에 있을 시 능력치가 상승하니…
난공불락의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너 반나절 내내 사냥하지 않았어?”
“기력 포션 먹으면 돼요.”
“......굳이 그렇게 까지 할 가치가 이곳에 있어?”
로즈는 의문을 가졌다.
아무것도 없고 얻기는 힘든 척박한 땅.
이곳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네.”
-있어. 오직 나를 위한 가치.
“있어요.”
-길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가치야. 그렇지만 김윤을-
‘아니, 있어.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하늘 길드에게 이득이니깐.’
김다윤은 상반된 독백을 걷어냈다.
“그래… 그보다 그 다...윤 길드는 정말 신경 안써도 되는거지?”
“그럼요. 그분은 절, 아니 하늘 길드를 공격하지 않을 거예요.”
최근 기세가 급상승하며 새로운 별로 떠오르는 다윤 길드.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름이 눈앞에 있는 김다윤과 같은 이름이다.
벌써 5대 길드 중 2개가 산산조각 났고, 검사와 마탑은 연합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목표가 우리일 거 같은데… 이거 본부가 털리는거 아닌가 몰라...”
“...”
“정말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야?”
믿음.
그 말에 다윤은 살짝 멈칫했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네.”
-윤씨라면 이곳에 나와 함께 있어줄 것이다.
“아직 택시를 다 못 태워 드렸거든요.”
“택시?”
“그런게 있어요.”
다윤은 구름을 소환해 남은 예티를 사냥하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