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93화 괜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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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되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긴 한데…”
다윤의 환각에 온 지 어느덧 50일째.
5대 길드 중 2개를 박살 냈고, 남은 두 길드는 서로 힘을 합친 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무려 거대 길드 2개가 합친 것.
과거의 일개 유저였던 나였다면 기겁했을 테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감흥이 안든다.
‘아무래도 ‘로드리아’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 같습니다.’
“...”
나는 그간 길드 운영을 하면서 로드리아의 행방을 찾았다.
로드리아만 찾는다면 환각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깐.
하지만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여태껏 항상 다윤이 행세를 했는데…”
그간 나와 베린의 환각에서의 로드리아는 다윤으로 빙의해 활동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윤의 환각.
녀석은 다윤이 아닌 다른 형체로 행동할 것이다.
“리비엔. 로드리아의 능력은 어디까지 발휘할 수 있지?”
‘어떤 것을 말입니까?’
“환각의 한계 말이야. 환각 속에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과거에 만난 로드리아는 약했다.
물론 최상위 악마라는 이름값답게 웬만한 유저보다는 강했지만, 나 정도의 레벨 때가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로드리아의 주된 공격은 환각.
즉, 환각만 이겨낸다면 본 실력은 상급 악마 수준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환각을 이겨내는 게 아닌 환각 속에 들어와 있는 상태다.
환각의 주체가 강하거나, 그 속에서 오래 머물수록 로드리아는 점점 강해진다.
손쉽게 처리했던 나의 환각과 달리, 다윤의 환각은 꽤나 어려울 것이다.
‘베린이야 더 강해지기 전에 이랑이 잡아줬지만.’
“아는 것 좀 말해봐. 로드리아와 어느 정도 연이 있었을 거 아니야.”
‘흠… 놈은 별다른 능력은 없습니다. 드레투라나 저와 비교하면 굉장히 약합니다. 제라드님과는 비교할 가치도 없고요.”
“환각 내에서라면?”
“......”
“환각 내에서는 본신의 너를 이길 수 있나?”
리비엔의 본신은 강하다.
그 수준은 지난 시즌에도 수많은 유저들이 힘을 합쳐야 잡아야 할 정도. 더군다나 새로이 시작되며 더더욱 강해졌다.
기원진 없이 싸우는 로루닌때의 이랑과 맞먹을 정도.
‘지금의 이랑은 뭘 하고 왔는지 훨씬 강해졌으니깐.’
아무튼. 나 역시 삼격을 쓰지 않으면 꽤나 전투가 길어질 정도로 녀석이 강하다는 소리다.
펜던트는 잠시 침묵했다.
‘...애초에 놈의 환각에 걸릴 일은 없겠지만 굳이 걸린다면 승패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정도라…”
‘네. 물론 이렇게 들어온다는 가정하에 이야기입니다. 굳이 놈의 주된 공간에서 싸워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전에도 말했지만 이건 무모한 짓이다.
여기서 다윤을 찾아서 설득시켜 나가느니, 현실에 있는 로드리아를 잡아 환각을 풀어버리는 게 더 빠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환각을 이겨보기로 했다.
히든 퀘스트를 위해.
나는 검을 쥐었다.
[ 리비엔 - 스킬 붉은 나락 LV.10을 사용합니다. ]
[ 스킬 - 이격(二擊) LV.5(+2)의 시전을 준비합니다. ]
두개의 스킬.
이정도면 충분하다.
레벨이 올라 더욱 붉어진 기운이 나의 연푸른 에테르를 휘감았다. 휘감긴 에테르는 거대한 검강으로 변해 눈앞의 탑을 마주했다.
마탑 길드의 탑. 아무리 강한 대마법사가 공격하더라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탑이다.
게다가 검사 길드장의 힘이 더해져, 탑의 내구성과 마나 저항력이 급격히 올라갔다.
이미 한차례 레빗을 보냈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탑을 부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시 나가기를 꺼려 하고 있다.
사실 그냥 귀찮아서 안 하는 거 같다.
‘다음 달 용돈은 안 줘야지.’
“돌아가라!”
“...”
“이미 많이 처먹었잖아! 제발 꺼져!”
탑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마도 마탑 길드장과 검사 길드장 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현실에서 만나면 적당히 해줄게.”
나는 검을 휘둘렀다.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스킬 - 이격(二擊) LV.5(+2)을 사용합니다. ]
휘감긴 검강은 두 갈래로 치고 나가 거대한 탑을 부수고 그 일대를 무너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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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마탑의 길드장 카린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걱정했던 수인 여자는 마탑의 벽을 뚫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것에 잠시 안도했지만 더 큰 재앙이 찾아왔다.
그 여자를 수하로 부리는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수많은 마법 함정을 육체 능력만으로 모두 뚫어버렸고, 마법 버프를 받은 검사 길드의 정예들이 달려들었지만 손 하나 쓰지 못하고 전부 갈려나갔다.
‘그 여자보다 저 남자가 더 강하잖아…?’
예상은 했다만 충격적인 결과다.
오성(五星)급이 둘이나 나오다니. 이게 그렇게 흔한 존재들이었나?
아니면 우리가 그냥 너무 약한건가.
쿠구궁…
수년간 견고히 만든 탑이 무너져 내린다. 두 갈래의 검강은 탑을 꿰뚫고 마탑의 점령 구역을 개박살 내 놨다.
마법의 효율과 전투에 이득이 되는 마법진들을 탑에 잔뜩 설치해 놓았는데, 한순간에 전부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어이가 없군요…”
카린은 무너진 탑의 잔해 위에 털썩 앉았다.
검사 길드장은 겨우겨우 불러놨더니만 탑이 무너지자마자 꽁무니를 뺐다.
길드 성이 어쩌니 길드가 중요하니 그 난리를 피우더니 탑 하나 무너졌다고 도망을 간 것이다.
“이래서 칼잡이 놈들을 믿으면 안 되는데…”
“카린님!”
카린의 옆으로 정예 길드원들이 찾아왔다.
그래.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이만한 능력을 대가 없이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분명 어느 정도 페널티를 입고 있을 것이다.
그 틈에 마진(魔鎭) 결계를…
“뭐야 한쪽이 비네.”
“...!”
버, 벌써…?
눈앞의 남자는 백색의 검을 쥐고 우리의 앞으로 다가왔다. 성큼성큼 다가오던 그는 나를 바라보고 발 걸음을 멈추었다.
“카린님! 피하세요!”
“맞아요! 저희가 시간을 벌고 있을때 동안 피하셔야 해요.”
“어서요!”
“......”
자신의 앞을 가로막음 마법을 펼치는 길드원들.
눈앞에 저걸 어떻게 막는다고 그럴까…
길드원들은 마법진을 구사해 스킬을 사용하면서도 차마 날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
진짜로 공격한다면 가만히 보고 있는 저 괴물이 날뛰어 자신들을 죽일까 봐.
시간을 벌려면 공격을 하는 게 맞지만, 차마 그것을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카린은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가 빛을 발하자 주위에 있던 모든 길드원들이 어딘가로 이동된다.
대마법사에 올라야만 사용할 수 있는 다중 순간 이동이다.
“어…?”
“카, 카린님! 무슨!”
“안돼요! 왜 저희같은 것들을 위해서-”
슈슉!
“...”
카린은 모두를 보내고 싸울 준비를 했다.
당연히 길드는 내줄생각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요구를 한다면 최대한 저항할 목적으로.
그런데 저 남자는 아까부터 말 하나 안 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 걸까. 조금의 답답함을 느낀 카린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하늘 길드의 사주인가요? 아니면 김다윤의-”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지?“
카린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 했다. 분명 본인이 먼저 물어보지 않았나?
조금의 화가 났지만 어차피 자신의 상황은 길드를 잃을 위기에 처한 길드장.
최대한 비위나 맞춰주기로 했다.
“7년이요.”
“생각보다 적네.”
“그런가요?”
본인은 얼마나 오래 있으셨는데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대답을 안 해줄거 같아 가만히 있었다.
“지구에 돌아가고 싶진 않아?”
“어...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잖아요?”
“게임이잖아.”
“게임 속에 갇혔으니 별다른 수가 있나요. 게다가 죽으면 그냥 죽는 건데. 게임이라 부르기도 힘들고요.”
“......흠.”
무슨 생각인 걸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
그렇다고 하기에는 굳이 길드들을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데 왜요…?”
카린은 조심스럽게 물으며 뒤로 감춘 지팡이로 마법진을 가동했다.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비록 길드성은 잃겠지만 다른 녀석들을 보내놓은 곳에서 새로이 시작하면 된다.
“...그냥. 궁금했거든.”
“?”
“내가 알고 있던 ‘카린’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네?”
그게 무슨…
카린은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이윽고 바로 마법진을 가동해 이곳을 날려버리고 텔레포트를 쓰려던 순간.
“무형 제어.”
쿵.
카린의 마나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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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는 무너진 길드 성, 멍청히 나를 바라보는 카린을 보았다.
설마 했는데 아는 사람 일 줄이야.
랭킹 5위의 마법사, 카린.
그녀는 일반 직업으로 수많은 사람들 중 랭킹 5위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물론 레전드리 특성에 영향이기도 했지만, 내가 그녀를 유독 기억하는 건 길드전 때문이다.
지금 입고 있는 그라티아 갑주에 붙어있는 스킬, 신성 보호.
모든 것을 막아주는 이 갑옷으로 10위권 길드와 길드전을 벌일때, 그 상대가 바로 카린이었다.
특성으로 마성(魔星)에 위치에 오른 그녀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신성 보호라는 사기템에 막혀 좌절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그래 저 표정 말이다.
“너무 반갑네.”
“날 알아요?”
“조금은.”
당시 카린과 싸운 건 정말 우연이었다. 당시 그라티아 장비라는 존재를 알아낸 나와 친구들은 그것을 길드전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제 막 통합 서버가 열린지 한 달도 체 안된 시점.
길드 순위 1000등 아래의 위치한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보기로 했다.
10위권 길드와 맞붙는 것.
인원수도, 실력도, 특성도, 그 무엇도 앞서지 않았던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신성 보호 단 하나 때문이었다.
“똑같네.”
“무슨 말이에요?”
“...”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얼이 탄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지만 그 강한 정신만큼은 뚜렷이 보였다.
친구들과 만든 소수 정예인 우리 길드와 싸웠을 때였다.
당시 30초간 무적 상태로 학살하던 우리를 직접적으로 막은 것은 카린이었다.
그녀는 길드장이라는 직함에도 다른 길드원들을 희생시켜 잡지 않고 본인이 직접 몸을 대어 싸웠다.
그것 때문에 카린은 세 번 정도 죽었었다.
월드 어드벤처에서의 죽는다는 감각은 상당히 별로다.
고통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죽음’이라는게 조금 선명히 다가올 정도.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곳에서도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실제처럼 부활이라는 게 없다면, 그녀는 과연 다른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날 언제 봤는데요…?”
하지만 카린은 똑같았다.
여전히 희생적이고,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만나면 얘기해 줄게.”
나는 멍하니 앉아있는 카린을 뒤로한 체, 티르빙으로 몸을 옮겼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