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94화 서로의 마음 (94/318)



〈 94화 〉94화 서로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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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이야.
-드디어 오늘이다.

두 개의 독백이 마주했다.


-윤 씨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윤이가 과연  말을 들을까.

“...”
“...”


-아마 거절하겠지.
-당연히 거절하겠지만.


독백은 각자의 말을 자신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정작 그 대상들은 그것을 무시한  누군가를 기다렸다.

눈보라 치는 설산.
다윤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김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요. 윤 씨.”
“날 기억하네.”
“그럼요.”

그런 김윤은 다윤을 바라보았다. 잠시 서로의 시선이 교차되고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얘기를 꺼낸 건 김윤이었다.


“...용케도 티르빙을 점령했네.”
“후후…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죠.”
“열심히 한다고 얻을  있는 곳이 아니긴 한데…”

다윤은 김윤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 독백은 자신이 이곳에 온다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성공했다.
수십 일을 쉬지 않고 예티를 잡아 이곳을 점령한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 기후를 조절해서 관광명소로 꾸밀 예정이에요. 어때요?”
“...기후 조절하려면 조절 장치를 만들어야 할걸.”
“이미 청린에게 부탁해서 만들어 달라고 했죠. 저도 알고 있는   많은걸요.”

다윤은 히죽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수십일, 아니 수년을 이곳에 보냈음에도 결코 닳지 않은 미소였다.
그런 그녀의 이질적인 미소를 보고 나는 미안함을 느꼈다.


‘너무 늦게 왔어.’


어쩌면 베린보다도 먼저 이곳에 왔어야 할지도 모른다. 베린 역시 위험한 상태였지만 이랑의 도움이 있었으니까.


나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은 듯 다윤이 화제를 돌렸다.

“이런 얘기보다는 좀 더 감동적인 재회의 얘기를 하죠. 그동안 저 보고 싶지 않았어요?”
“...보고 싶었지.”
“후훗. 저도 마찬가지예요.”
“......”
“지난 9년간 굉장히 힘들… 아니 즐거웠어요. 비록 안 좋게 끝이 났더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왔으니깐. 길드도 열심히 발전시키고 모험도 열심히 떠나고.”

다윤은 정말 즐거운 듯, 정말 벅찬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상처로 끝난 게임 속 세상이지만 즐거웠어요. 지난 9년이 짧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왜 저것이 거짓의 감정처럼 느껴질까.


“행복했고…”

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좋았-”
“미안해.”
“...네?”
“너무 늦게 와서.”

다윤의 표정이 한순간 변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로드리아의 환각이 다윤의 감정 변화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무슨 말이에요? 저는 윤 씨가 보고 싶은 적은 있어도 슬픈 적-”

나는 처량하게 서있는 다윤을 끌어안았다. 다윤은 당황하듯  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유, 윤씨?”
“고생했어.”
“......”

다윤의 팔은 허공을 맴돌다 감싸고 있던 나를 휘감았다.


“...보고 싶었어요. 지난 9년간. 계속.”

다윤에게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무엇을 걱정하는 걸까.


“돌아가자.”
“......”
“이곳에 있어봤자 좋을 게 없어. 로드리아에게 계속 먹힐 뿐이야.”
“.......”
“원래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다윤아?”

스륵.

어느새 다윤은  팔을 풀고 나에게서 떨어졌다.


“역시 안되겠어요.”


다윤은 검을 꺼내들었다. 다윤의 검에서는 이전에는  수 없던 거대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악마의 기운 따위가 아니다.


월광검사(月光劍士)의 기운이다. 순도 높은 격(格)과 함께.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이게 맞는 것 같아요.”
“이곳에 머무는 것?”
“네.”


그녀는 지난 9년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환각 속 암신(暗神)이 되었던 베린과 비견될 정도의 능력.

심지어 이건 무작정 받은  아닌, 수련을 통해 얻은 힘 일 것이다.

“지난 9년간 이곳을 돌아다니며 느꼈지만 여기는 원래의 월드 어드벤처와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똑같으면 똑같죠.”
“...환각은 끝이 있어. 아무리 이곳에 오래 머문다 하더라도 그 끝이 찾아올 거야.”
“그게 현실의 그곳과 다른게 뭐죠.”
“......”

다윤의 말에 나는 입이 닫혔다.

현실의 월드 어드벤처도 게임 속에 갇힌 건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점은 많이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거나, 현실로 잠깐 갈 수 있는 것. 그것 외에는 이곳과 현실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현실로 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다윤은 환각에 잡아 먹혀있는상태.

다윤은 정말로 이곳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곳은 더 발전적이고 그동안 해낸 게 많아요. 윤 씨는 하늘 길드를 제외한 5대 길드를 전부 점령했죠. 이제  이상 우리를 막을 건 없어요.”
“내가 없잖아.”
“네?”
“난 지금도 환각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내가 없는 환각 속에서 살아도 괜찮은 거야?”
“......”

나는 특이점을 이용해 언제든 바깥에 나갈 수 있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건 다윤. 오직 다윤을 환각 속에서 꺼내기 위해서다.

다윤의 표정이 변했다.

“그러네요… 전 윤 씨가 있는 이곳에 있고 싶고,  씨는 제가 있는 현실에 있고 싶으니…”


다윤의 주위로 12개의 검이 떠올랐다. 노란 광채에 휘감긴 검은 보기만 해도 섬짓 했다.

“이 방법밖에 없겠네요.”

즈즛-


“...!”

12개의 검의 나에게 쏟아졌다. 검은 빠르게 내 몸을 향해 다가왔다.
목적은… 죽이는 건 아닌 것 같다.


급소를 노리지 않고 팔이나 다리를 노린다.


‘날 잡아두겠다는 심산이겠지.’

“일격(一擊).”

[ 스킬 - 검술 강기-진 (劍術剛氣-辰) LV.1(+2)을 사용합니다. ]
[ 스킬 - 일격(一擊) LV.10(+2)을 사용합니다. ]


[ 스킬 한계 레벨을 뛰어넘었습니다. ]


[ 일격의 데미지가 급상승합니다. ]

손에 쥔 그라티아의 검을 원형으로 휘두른다. 휘둘러진 원형은 거대한 검강을 뿜어내고, 그 검강은 쏟아진 검들을 모두 폭파 시켰다.


후두둑…

다윤의 무형검들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흐흣…”
“왜?”
“아뇨. 역시  씨는 윤 씨다 싶어서요.”
“포기?”
“설마요.”

다윤은 구름을 탄 체 허공에  뜬다. 그에 걸 맞춰 다시 한번 무형검이 생성된다.
...저게 무형검이 맞나?


“윤 씨는 이 정도는 당연히 버틸  있겠죠?”
“어… 그건 좀…”
“믿어요.”

미소 짓는 다윤의 주위에는 거대한 검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대충 50M는 돼 보이는 검.

저런 게 10개나 있다.

“윤씨니깐 믿는 거예요.”
“...기대에 부응을 못할  같은데.”

쿠궁-

10개의 거대한 검이 나를 내려찍는다. 나는 모든 버프와 스킬을 활성화해 빠르게 다윤에게 접근했다.
이런 소환류 기술의 대처법은 시전자를 공격하면 된다.


카앙-

“...”
“...이런.”

현재 낼  있는 풀 버프 상태였는데 너무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다윤과의 공방이 이어진다.
칼과 칼은 기교 없이 맞부딪힌다. 치열한 공방이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급소를 노리진 않는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그때도 이렇게 싸웠지.”


테라딘의 메인 퀘스트를 깨던 그날 다윤은 로드리아에게 지배당해 싸웠었다.
고블린의 피를 보고 다윤은 이성을 잃었었지만 지금은 또렷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다윤은 더 예리했고,  날카로웠다.


“윤 씨는 그때 저를 압도했죠.”
“큭!”

피싯-!


베인다.
검대 검의 싸움이지만 아무런 능력없이 싸우는 건 아니다.
지금도 최강자와 월광검사의 기운이 서로 맞부딪히고 있다.


팔이 베이고, 다리가 베이고, 어깨가 베이고…
수차례의 상처가 난다. 하지만 상관없이 계속 이어나간다.

“...미안해요.”
“!”


다윤은 계속되는 싸움에 각오라도 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노란빛의 달이 떠오른다. 떠오른 달을 중심으로 노란 광채가 다윤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이제는 아예 낮밤을 바꾸네.’


대체 9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보고 싶지만 나에게는 더이상 남은 특이점이 없다.

나는 더 이상의 공방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죽더라도 다시 회귀할 거예요. 이곳은 그런 세계니깐.”
“...날 죽일 거야?”
“필요하다면요.”


그러는 다윤의 얼굴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자신도 원치 않는 일.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결연했다.

구웅-

달빛이 모여든다. 달은 초승달에서 서서히 보름달로 바뀐다. 그렇게 모여든 달빛은 다윤의 검에 스며들어 월광의 검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다윤은 최상위 악마도 간단히 베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수준으로 맞춰줘야겠지.


나는 미리 소환해둔 찬란한 빛을 쥐어든다.  개의 검이 호응 하듯 거대한 에테르를 뿜어낸다.
수많은 스킬과 버프를 하나씩 점검한다. 길드 스킬도 활성화한다.

내가 지금껏 길드를 박살 내고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진짜 목적은 길드 버프를 받기 위해서다.


드득-!

강렬한 두 기운에 설산이 뒤틀리고 이 일대가 거대한 기운에 휩쓸린다.

마지막으로 나는 무형 제어를 자신에게 걸어 페널티를 억제했다.

‘삼격...은 못 쓰고 이격을 써야겠네.’


삼격은 뒤가 없는 기술이다. 애초에 쓸 수도 없고, 쓰면 반드시 죽는다.
나는 다윤을 바라봤다. 거대한 기운을 모은 체 묵묵히 나를 기다린다.

“준비는 됐어.”
“......왜 저를 이렇게 만드시는지...”

다윤은 중얼거리며 능력을 발현했다.
거대한 월광의 검강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에 맞춰  역시 이격을 시전했다.


콰-가가가가강!!!


설산이 뒤집히고 눈을 가릴 정도의 에테르가 산을 뒤덮는다. 나는 시각 강화를 통해 시야 너머의 다윤을 바라봤다.

월광의 검이 이격을 막지 못하고 뚫리는 모습. 피를 흩뿌리는 다윤의 모습이 보인다.

-끝났어.


두 개의 독백은 하나의 답을 내었다.
나는 그것을 듣지 않고 순간 이동을 사용해 다윤을 낚아챘다. 곧바로 한 번 더 순간 이동을 사용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곳은  개의 검강에 의해 초토화가 되어 산의 절반이 날라갔다.

“...후후. 9년간 노력했는데… 의미가 없었네요.”
“말하지 마.”
“윤 씨는 참… 너무 하네요… 맨날…”
“말하지 말라니까.”

다윤의 상처는 심각했다. 다윤의 검을 막기 위해서는 손속을 둘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둔다면 다윤은 죽어 다시 환각을 회귀할 것이다.

나는 특이점을 사용해 리니의 회복약을 소환했다.


페널티가 거슬리긴 했다만… 다윤보다 페널티가 우선 일리는 없다.

“먹어.”
“...먹여주세요.”

나는 손으로 다윤에 입에 알약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다윤은 입을 앙 다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술을 건드렸다.

“여기로...요.”
“...어?”


다윤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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