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99화 같은 처지 (99/318)



〈 99화 〉99화 같은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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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시간인가.”


깜깜한 별하늘. 5개의 별이 기다란 원반형 탁자에 앉아있었다.
세계를 관조하는 이계(二界)의 신들.
탁자 너머로는 푸른빛의 행성이 유려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사람들 보인다.


“번개 놈은 어디갔어?”


물의 형상을 띈 신(神)은 심드렁 대며 탁자에 몸을 기댔다.
그것에 불만을 가지듯 정중앙에 앉은 바람은 그녀를 노려봤다.

“바루나. 탁자는 몸을 기대는 곳이 아니다.”
“깐깐하긴. 그래서 번개 놈은 어디갔는데.”


그녀의 물음에 바람은 잠시 침묵을 가졌다. 그의 능력인 바람을 이용해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다.


“...인드라는 동쪽, 자신의 거처에 있군.”
“왜?! 회의는 날로 먹었데?”
“내가 알 길이 있나. 그는 늘 그래왔으니깐.”

바람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번개의 신인 인드라가 빠졌으니 이번 회의의 주체는 바람이었다.

“지 분신이나 보낼 것이지. 화신체도 많은 게 회의는 꼭 이럴때 만 참여를 안 해요.”
“후훗. 인드라님이야 늘 그렇죠.”

바루나에 반응에 빛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를 보고 바루나는 오만상을 지었다.


“그렇게 말해도 인드라 놈은 너 안 좋아할걸.”
“그분이 뭘 하시든 전 그분을 따르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에휴.”
“질문이 있다.”

한참을 침묵을 유지하던 불은 손을 들었다.
이내 바람은 그를 바라봤다.

“그래, 아그니. 질문이 뭐지.”
“이 회의는 뭘 위한 회의인가. 아까부터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아줌마 신들의 얘기만 계속 이어갈 거면 내 거처로 돌아가겠다.”
“아, 아줌마?!”

물의  바루나는 탁자를 쾅!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것을 보고 어둠 속에 조용히 있던 죽음이 기겁하며 같이 벌떡 일어났다.

“미친년아! 그거 함부로 치면 생명체 들이  죽는다고!”
“뭐 어때. 어차피 죽이려고 회의 모은 거 아니야?”
“막 죽이면 저승이 마비돼서 일거리가 많아진다고!”
“내 알 바 아닌데?”
“이, 이 미친!”
“그만.”

허공을 떠돌던 바람이 일순 그들을 전부 의자에 강제 착석시켰다.
물과 죽음은 툴툴거렸지만 딱히 일어나려 들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회의를 시작하겠다.”

바람을 고고하게 탁자 속의 푸른 행성을 내려다봤다.


“오늘의 회의 주제는 행성 ‘지구’의 멸망이다.”


우주 너머의 신들은 피조물의 생사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



“뭐야?”


부산의 게이트 공략을 위해 부산에 잠시 내려왔다. 그런데 하늘이 이상하다.
마치 하늘이 출렁거리는 것처럼.

“신들이 벌써…?”


일이 터지려면 적어도 반년은 더 지나야 할 텐데. 다윤 역시 이상 현상을 느낀 듯 내 곁으로 다가왔다.


“설마 시작인가요?”
“...아직 아닌 것 같긴 한데.”


내 기억상으로는  시기쯤은 지구의 생사를 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시점이다.
아마 짧으면 3달. 길면 5달 정도 잡아먹을 거고 준비를 거쳐 지구를 침공할 것이다.


정확히는 마수의 침공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그저 체스 말일뿐이다.
마수에 관한 것도, 우리가 지급받은 헌터의 힘 같은 것도 전부 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니까.


“우선 당장 이것부터 생각하자.”

나는 게이트를 올려다봤다.
불그스름한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게이트. 이미 게이트가 열린지 4주가 넘었다.
지금 당장 거인들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거인은커녕 그 수하조차 나오지 않는 이유는 콜트의 소환수가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나오네.”

이제 그것도 옛날 말이 되겠지만.


-헌터님을 뵙습니다.
-반갑다 인간.


두 마리의 소환수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놈은 거의 까딱 거리는 수준이었지만.

“...”

나는 그들을 살펴봤다.
온몸이 보랏빛 얼음으로 뒤덮인 중세 기사와 물로 된 창을 들고있는 보라색의 고블린.

‘바뀐건 없네.’


 원작에서 나온 소환수다.
기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고블린이냐고 할 수있지만, 이 소설속 주인공은 고작 F급 마수인 고블린을 SS급 소환수로 올린 미친놈이었다.


물론 그냥 고블린은 아니고 성장할수록 그 성장치가 극대화되는 특수한 고블린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고블린이어서 그런가 독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렸는데, 콜트는 호쪽이었나 보네.


“거인들은?”
-놈들은 게이트 입구 밖까지 밀어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지 않는 이상 3일 정도는 별 무리 없이 막을 수 있을겁니다.


기사는 그렇게 말했다.
3일 안에 게이트 공략에 성공하라는 뜻이겠지.

-킥킥. 두려우면 말해라. 그러면 이 몸이 막아주겠다.
“안 두려우니깐 니 주인이나 찾아가라.”
-...건방진 인간이군.

고블린은 혀를 차며 등을  돌렸다.
역시 소설에서 본것처럼 마수의 본능적인 ‘인간 적대’는 어느정도 남아있는 모양이다.
기사 역시 자리를 떠나자 주변이 휑해졌다.

게이트의 위험성 때문에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1KM는 출입 금지 지역이 되었다.


스륵-


“제주도 쪽도 자리를 비웠어.”
“이랑.”


잠깐 제주도 쪽의 게이트도 인수인계를 받았던 이랑이 돌아왔다.
레빗은 공식적으로는 D급 헌터이기에 전면에서 나설 수는 없다.

제주도 쪽은 이랑의 스킬인 분신으로 게이트를 막고 있는 사이, 먼저 부산 쪽을 공략한  제주도를 마무리한다.


...라는 계획이다.
한 가지 다른게 있다면 제주도 쪽은 분신이 아니라 둔갑을 쓴 레빗이지만.

레빗이 말 한마디 하면 들통날 상황이지만, 분신은 말을 못 한다는 설정이니 괜찮을 것이다.

“슬슬 가볼까?”
“좋아.”
“그전에.”

나는 헌터의 장비로 겹겹이 무장한 다윤에게 다가갔다. 꽁꽁 싸맨 것이 꼭 펭귄을 보는 것 같다.


“잘 보고 있어.”
“아, 네.”
“가끔씩 잡몹 여러 마리가 나올 텐데 잡는  어렵지 않을거야.”
“네. 맡겨두세요.”
“그리고…”


나는 다윤에게 몸을 붙여 귓가에 속삭였다.

“...돌아오면 전처럼 이거 한번 해줄 거지?”

나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툭툭쳤다.
3초정도 버퍼링이 걸린듯한 다윤의 얼굴이 보인다. 홍당무처럼 화악 붉어진 얼굴.

귀엽네.

“안 해줄 거야?”
“읏…”
“약속 안 하면 나 안 갈…”


쪽.

“가, 가세요…”
“...가불은 생각도 못 했는데.

볼뽀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지금의 다윤에게는 고작 볼뽀뽀라 할지라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극혐.”

저 멀리에서 굉장한 분노가 느껴졌지만 내  바는 아니었다.




-




쿠궁…!

불을 두른 거인들이 우리에게 앞발을 내민다. 강하게 내려찍는 위압감. 나와 이랑은 그것을 피해 순식간에 거인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


화륵!

다윤의 주위로 분홍빛의 불들이 떠오른다. 그 불들은 타오르는 거인들을 집어삼키고 거인의 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별거 없네.”

이랑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마력을 갈무리했다.
그녀의 불은 본래의 자신이 가진 여우불이 아니다. 헌터의 능력 중 하나인 마나를 이용해 최대한 자신이 원래 사용하던 것과 비슷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만든 불은 무려 SS급에 준하는 불의 거인을 집어삼킬만큼 강했다.

“혼자서도 깨겠는데?”
“어차피 너는 구색용으로 온 거잖아.”
“...팩트폭력 자제 좀.”

특이점이 넘쳐나지 않는 한 지금의 나는 약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이곳에서 활약을 할 수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법칙’을 바꿀 수 있으니까.
대충 예시를 들자면 불의 거인들의 주된 능력은 불이다. 그 말은 불만 꺼지면 별볼 일 없는 마수가 된다는 소리.


마수의 능력치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불이라는 속성을 물로 바꾸거나, 성질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다윤과 싸울 때도 티르빙의 혹한을 막기위해 내 주위의 기온을 높여 전투를 진행했다.

이랑은 뭔가를 찾듯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이쯤일 텐데… 찾았다!”
“뭘?”


이랑은 허공을 둥실둥실 떠다니다 무언가를 발견하곤 위로 쓩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간 이랑은 무언가를 손에든 체 뽈뽈뽈 내려왔다.


“그게 뭔데?”
“이 세계의 ‘창조석(創造石).”
“창조석?”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소설의 설정이나 월드 어드벤처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비슷한 게 있다면 창조 세계정ㄷ…

“너 설마…”
“비록 환각이긴 해도 하나의 세계라 존재하긴 했네.”
“이랑.”
“이곳의 초월자가 없어서 그런가? 생각했던것보다 빨리 찾-”
“이랑.”

나는 이랑의 어깨를 붙잡았다.
눈이 동그래진 이랑의 얼굴이 나를 올려다 봤다.  아래로는 유려하게 빛나는 푸른 보석이 보인다.

“너. 도대체 뭘 하다  거야.”
“흐흥~ 너무 일찍 물어보는 거 아니야?”
“시간이 있어야지.”


당장 통합 서버로 넘어가는 게 우선시됬기에 자세히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겠지.

“알려줘.”
“김윤.”

이랑은 내가 잡은 손을 떨쳐낸 뒤 푸른 보석을 조심스레 양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걱정마. 나는 너의 편이니깐.”

쩌적-!


공간이 뒤틀리더니 이내 무너진다.
환각이 무너지는  아니다. 마치 덧씌워지듯이 그렇게 생겨난다.

어느새 분홍빛의 벚꽃나무가 잔뜩 뿌리내린 땅위에 나는 서있었다.

“예쁘지?”
“...예쁘네.”

세계는 생기가 가득했다. 마치 월드 어드벤처처럼.
이랑은 조그마한 탁자를 소환해 의자에 풀썩 앉았다.  역시 그 앞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각종 다과와 음료가 생겨났다.


“궁금한 게 많겠지. 이해해. 나도 처음 이걸 알았을때 신기해했으니깐.”
“...”
“아니, 신기한 정도가 아닌가? 나는 기절할 뻔했다니까. 나라는 존재가 수천 수만개가 있다는 것도, 내가 평생을 살아온 세계가 단순히 ‘놀음’에 주체가 된다는 것도.”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걸.”

나는 다르다.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플레이어고 눈앞의 이랑은 서버의 수십만 단위로 있는 NPC에 불과하니깐.


하지만 아니었다.


나나 이랑이나 똑같았다.
그것을 깨달은  무명과 미르틱 그리고 삼격을 썼을 때 살짝 보였던 두 명의 아이.
그들을 보고 알았다.

어쩌면 나 역시 이랑을 포함한 NPC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그래서 여긴 어딘데?”
“내가 게임을 클리어하고 보상받은 곳.”


이랑은 조그마한 여우를 하나 소환해 어깨에 둘렀다. 여우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이랑의 얼굴의 자신의 몸을 부볐다.


“내가 받은 ‘창조세계’야.”

그녀는 옅게 웃었다.

“지금은 그냥 방 정도의 크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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