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106화 빈집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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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네.”
“냥!”
돌아왔다.
여전히 평화로운 도시. 4일 뒤에 이곳이 불바다가 될걸 생각하면…
“일단 사무소로 돌아가자.”
“알았다냐.”
4일 안에 해야 할게 많다.
나는 레빗과 길드 사무소로 돌아갔다. 뚱한 얼굴로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다윤은 나를 반겼다. 베린은 수련을 한다고 두 달째 어딘가에 가있다고 한다.
3일 뒤에 돌아온다고 했으니 오겠지.
그리고 이랑은…
“너… 뭔가 달라졌네.”
“그렇지?”
지금의 나는 좀 달라지긴 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데… 대충 이랑의 변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확실한 건 저 하늘 위에 별들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환각을 깨고 돌아가도 어느 정도 이 감각을 유지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 다른 수를 쓰지 않고 스스로 깨우친거니깐.
4일 동안은 바쁘게 일을 진행했다.
나를 제외한 다윤, 이랑, 레빗은 한국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게이트들을 정리했다.
대재앙이 시작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마수들이 몰려온다.
그때 기존의 게이트들이 남아있다면 대처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다른 세계 각국의 헌터들에게도 살고 싶다면 자국의 게이트들을 하루빨리 지울것을 말했지만, 그들은 돈이 아까운지 마정석 하나하나를 회수해가며 상당히 느린 속도로 게이트를 지워나갔다.
아마 믿기가 어려운 모양인데 뭐 믿지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원작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5개에 국가 외에 나머지 지역이 다 개박살이 난다.
최대한 줄여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건 없다.
“윤씨.”
“다했어?”
“네. B급 이상은 전부다 지웠고, 남은건 새롭게 생겨나는 게이트들과 C급 이하 게이트 뿐이에요.”
“수고했어.”
한국은 이미 모든 헌터들이 게이트 공략에 힘을 쓰고 있다.
사실 가장 큰 전력을 가지고 있는 콜트가 어떻게 설득시킬까 고민했다. 녀석의 성격 탓이면 오히려 우리 때처럼 죽게 내버려 둘까봐.
하지만 녀석은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서 게이트를 지워나갔다.
지난 70일간 한국에 있던 5개의 S급 게이트를 혼자 모두 지운 것이다.
‘원작보다 훨씬 강해. 아마 야마랑 계약을 했겠지.’
콜트가 그렇게 나온 이상, 녀석도 이곳의 멸망을 원치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도착!”
“왔냐.”
“스승님이 수련이 너무 길어져서. 하루 늦었네.”
“......”
뭘 하고 왔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나는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베린을 내려다봤다. 절대 가벼운 ‘시간’을 쓰진 않았다.
적어도 우리만큼,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할애한 것이 눈에 보인다.
“수고했다.”
“.......”
“실력 좀 늘어났으려나.”
나의 말에 베린의 눈빛이 처음 만난 그날처럼 바뀌었다.
“다 죽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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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장님.”
“음.”
콜트는 마지막 게이트를 끝으로 자신의 마지막 소환수를 갈무리했다.
홍염으로 물든 하늘.
원작과 똑같은 하늘을 본 콜트는 감회가 남달랐다.
『 세상은 적화(赤火) 색으로 물들었고, 천지는 강대한 존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칠게 준동했다. 마침내 재앙과도 같은 존재들이 몰려오니, 그것은 곧 대재앙의 서막이었다. 』
소설의 문장을 통해 상상해왔던 하늘.
눈앞의 펼쳐진 장관은 자신의 상상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드높았다.
“시작입니까?”
“그래. 멸망이 다가온다.”
“...막아야겠군요.”
“그래야지.”
콜트는 비서를 안전한 곳으로 돌려보낸 뒤,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소환수를 둘 소환했다.
하나는 최초로 S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손에 넣은 불사(不死)의 용, 브리트라.
과거에 악명을 떨치던 이 용은 로카팔라와 합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존재였다.
강대한 존재였지만 야마의 신임을 얻은 콜트는 브리트라를 자신의 소환수로 부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명대로 그 녀석에서 말을 전달했습니다.
“그래. 놈도 알아듣겠지.”
-분부만 내려주신다면 그 존재가 위대한 별이라도 목을 따오겠습니다.
F급 마수였던 고블린, 게릭.
고작 고블린 따위라 할 수 있지만 절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원작의 주인공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흥미롭다’ 정도로 녀석을 키웠지만, 원작을 알고있는 콜트는 녀석을 적극 기용했다.
이 고블린의 몸속에는 위대한 8개의 별 보다 높은 힘이 잠들어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화륵!
세상이 화염에 요동치고 전 지구가 불타오를 것처럼 붉어진다. 마침내 하늘의 균열이 생기고 불의 마수들이 쏟아진다.
“브리트라.”
-주군.
“아그니가 온다. 한 번에 쓸어버려라.”
펄럭-
흑색의 비늘이 창공을 뒤덮었다. 붉게 물든 하늘은 갑작스런 용의 등장에 반발하듯 더욱더 붉어진다.
하지만 소용없다.
콰아아아아!!!
브리트라의 속성은 물.
대재앙을 몰고 온 아그니와 극상성이다.
거대한 용의 브레스가 쏟아지는 마수를 뒤덮고 하늘을 강타했다.
이윽고 방금 전까지 비 한 방울조차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붉은 하늘에 폭우가 쏟아졌다.
콜트는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중얼거렸다.
“...남은 건 그놈이 다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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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식.”
나는 거대한 불의 마수를 베어내며 중얼거렸다.
-우리 위대한 주군께서 서울 일대에 그 부근을 막을 것이니 너희는 남은 곳을 목숨 바쳐 막아라. 그러면 우리의 영웅 서사에 글 한 줄 정도는 남기게 해주지.
“......”
한대 쥐어박으려다 말았다.
지금으로선 그 고블린 새끼도 큰 전력이니까.
“그냥 죽일 걸 그랬나.”
어차피 불멸인데 왜 참았나 모르겠다.
물론 성흔을 이용해 공격하면 죽겠지만.
파삭-!
“하핫!”
“...아주 신나게 노네.”
나는 저 하늘 너머를 바라봤다. 수천 갈래의 단검의 궤적이 마수들을 양단했다.
자신의 환각 같은 힘을 얻은 베린은 신나게 마수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의외로 막을만하네요?”
“아직 아그니밖에 안 왔거든.”
다른 신들은 아그니의 분노를 인정해 주고 대기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그게 막힌다면 다른 신들의 개입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쿠베라가 어느 정도 막아서 당분간은 이 상태가 유지 될거야. 그 사이 최대한 마수들을 잡으며 기회를 노리면 돼.”
“흐음…”
다윤은 쓰러진 마수들을 힐끔 보더니 뭔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듯 고개를 돌렸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응?”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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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브리트라네.]
물의 용이자, 우주를 떠도는 악룡.
과거의 악명을 떨친 괴수를 사로잡아 게이트의 마수로 이용했다.
토벌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째서 인간의 소환수로 있는 걸까.
‘...야마놈이 수를 부렸네.’
아그니는 자신의 몸을 휘감은 불의 사슬을 만지작거리며 불타오르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분명 야마는 지구의 초기화에 찬성을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라…
[죽일까.]
죽음을 죽인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못할 건 없다.
다른 로카팔라들과 힘을 합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깐.
[아줌마 신들이랑 협력하기 싫은데...]
바유나 인드라, 쿠베라는 당연히 안 도와줄테고.
소마는 중립.
그나마 남은건 두 여신들 밖에 없다.
바루나와 수르야.
바루나는 상성 차이랑 성격 때문에 가까이 가기도 싫다.
수르야는 상성은 오히려 좋지만 고지식하고 인드라만 따라다니는 성격 때문에 바루나 못지않게 싫다.
그래도 둘 중에 고르면 그나마 수르야가 낫다.
빛의 신인 수르야는 죽음의 신 야마와 극상성이니깐.
한 지옥의 1000년쯤 유폐시키면 알아서 정신 차리겠지.
[그럼 수르야에게 연락을-]
“냐앗! 쾌속창 이다냥!”
야마의 주위로 생겨난 8개의 대지의 창이 일제히 아그니를 꿰뚫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냐?”
기습에 실패한 레빗은 고개를 휙휙 돌며 주위를 살폈다. 분명 방금까지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찮은 피조물 따위가.]
화륵.
다시 나타난 아그니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불의 업화는 다가오는 창을 녹이고 레빗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더 빠르게!”
[...!]
콰앙!!!
쿠베라의 성흔과 레빗의 신(神)의 능력의 조화는 상상이상의 상승효과를 불러왔다.
고작 8개의 창은 수천 개의 창이 쇄도하듯 거세게 아그니를 몰아붙였다.
육체가 창에 찔리고 창에 깃든 성흔이 아그니의 영혼을 갈아먹었다.
그사이 아그니는 생각했다.
분명 저건 쿠베라의 성흔이다.
쿠베라가 본격적으로 우리를 적대하려는 것인가?
단순한 방해가 아닌 직접 죽이려 든다고?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선을 지키지 않아도 되겠지.]
“...냐앗!?”
한참을 쇄도하던 레빗이 움직임을 멈췄다. 어두워진 하늘.
레빗은 멍청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불의 고리가 휘날리는 거대한 운석이 하늘을 뒤덮었다. 운석은 그대로 지구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지구 전체를 날려주마.]
“무, 무슨 짓이다냐!”
[멸망이다. 넌 최후의 사도로 살아남아도 너의 고향은 사라지겠지.]
드득-!
레빗은 최대한 아그니를 막아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까보다 급격히 강해진 아그니는 무슨 수를 써도 창에 찔리는 일이 없었다.
[너 역시 반신(反神)... 아니 거의 신이나 다름 없으니 공격해 봤자 의미가 없겠지.]
“그만… 두라냐!”
대지를 닮은 갈색의 창에 푸른색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아그니의 화염 방벽에 커다란 균열을 내었지만 여전히 공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네. 쿠베라는 대체 뭘 주워다 키운 거지?]
“멈-”
쿠궁.
[늦었다.]
이미 운석은 땅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운석의 파편이 지상을 불바다로 만들고 불의 고리가 살아있는 모든것들을 집어 삼켰다.
앞으로 20초면 운석이 지상과 맞닿는다.
레빗은 심각한 표정으로 아그니를 바라보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입을 열였다.
“...이 정도면 된 거 같지 않냥?”
[이제 와서 후회되나? 애초에 위대한 별과 맡먹으려면 안됐-]
“알았다냐. 물러나겠다냐.”
[...너.]
순식간에 도망친 레빗. 여전히 운석은 떨어진다.
자신의 승리가 확정된 상황. 그런데… 왜 불안한 걸까.
무언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
[거처… 거처로 가야 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아그니는 곧장 이곳을 빠져나가려 들었다.
하지만 늦었다.
「▲차원 」
차원 너머의 두 갈래의 연푸른 검강이 아그니의 육신을 양단하고 거처를 박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