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107화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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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를 잡자고?”
“ 네.”
다윤의 생각은 이러했다.
로카팔라의 신들은 자신의 영혼을 거처에 둔 상황.
아니, 두었다기보다는 거처와 영혼이 하나인 셈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아그니의 거처가 파괴된다면 정면승부 없이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울 텐데. 애초에 쉽게 부서지지도 않을 테고.”
아무리 우주의 주신들이라 한들, 자신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거처를 왜 그냥 두고 다닐까.
그건 다 이유가 있다.
신계(神戒)라고 불리는 로카팔라의 거처는 우주의 성운을 토대로 만든 곳이다.
그리고 그 성운은 태초의 우주를 만든 삼신(三神)중 하나인 ’브라흐마’가 창조한 곳이기도 하다.
창조, 생명, 파괴.
우주를 균형을 유지하는 3개의 속성의 신이다.
설정상 로카팔라와는 격이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파워 밸런스 때문인지 원작에서는 그들의 힘의 극히 일부분만 나오고 언급은 되지 않았다.
아무튼 로카팔라의 거처는 엄청 단단해서 부수기 힘들다는 소리다.
“알아요. 저도 설정같은거 좋아해서 자주 찾아봤거든요.”
내 설명은 들은 다윤은 흥미에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지금 삼신들이 다 자리를 비운거?”
“응. 그래서 로카팔라들이 왕 노릇을 하고 있는거잖아.”
“맞아요.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는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고 해요. 그리고 자취를 감춘만큼 그녀가 만든 성운도 많이 약해졌을 거에요.”
“흐음…”
나는 나만 무한 소환수의 설정과 내가 직접 마주한 쿠베라의 신계를 떠올렸다.
아그니와 비슷한 힘을 가진 쿠베라. 그가 가진 능력과 직접 공격해본 신계.
“......여전히 무리야. 가장 큰 문제는 아그니의 개입이고 설령 개입이 없다고 해도 부수긴 힘들 거야.”
“그런가요?”
“응. 직접 거처의 힘을 끌어다 쓰지─”
……끌어다 쓴다고?
만약.
만약에 아그니의 영혼을 강제로 사용하게 만들어 신계의 힘을 일시적으로 분산시킨다면,
그렇게 약화된 거처를 전력을 다해 공격한다면.
“가능할지도…?”
“네?”
“좋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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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의 거처, 적화의 등원.
불의 고리들이 유려하게 허공을 떠다니고 하늘은 수많은 적색의 별들이 이곳을 환하게 비춘다.
다른 신들과 달리 아그니의 거처에는 수많은 하수인들이 살고 있다. 그중 말단에 위치한 두 마리의 마수는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아그니님이 지구를 공격하신다지?
-공격이라니! 벌을 내리시는 거지! 큰일 날 소리를.
-그, 그런가?
-아그니님이 들었다면 목이 떨어졌을 걸세!
-...하지만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 중 한 명 빼고 다 죽는 것 아닌가.
-....그건…
마수 둘은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을 유지하다 다른 상급 마수에 등장에 후다닥 몸을 빼었다.
“흠…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르네요.”
“만화로도 보지 않았어?”
“그거보다 더 아름다워서요. 부수기 아까울정도로.”
그리고 나와 다윤은 거처에 와있다.
다른 애들도 오고 싶어 했으나 이랑과 베린까지 오면 지상을 막아줄 인원이 사라진다. 콜트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좋겠지만 그 망할 고블린이 말한 대로 서울 일대를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일절 손을 안 대고 있다.
‘끝나면 정신교육을 좀 해야겠네.’
요즘 너무 풀어준 것 같다.
“레빗이 잘 해낼까요?”
“문제없을 거야.”
지난 수련 동안의 레빗은 꽤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레빗에게 특수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있다면 적어도 영혼을 안 쓰는 아그니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원래의 다윤은 성흔이나 다른 차원을 볼 수 없기에 신계에 들어올 수 없지만, 특이점을 이용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신기하네요. 코드를 쓴다니… 완전 치트 쓰는 것 같은데요?”
“그래봤자 우물 속 개구리 인건 변함없긴 하지.”
특이점이니 뭐니를 백날 사용해봤자 다른 초월자들과 비비지도 못한다.
게다가 사용량의 한계도 있어서 마구잡이로 쓸 수도 없고.
“다들 어디론가 이동하네요.”
“시작인가 보네.”
아그니와 레빗의 전투가 시작되었는지 거처의 여러 하수인들이 다급히 어디론가 이동했다.
자취를 숨겨 몰래 따라가보니 커다란 차원 문을 통해 전투를 관람하는 하수인들이 보인다.
차원문 너머로는 8개의 창에 찔리는 아그니의 모습이 보였다.
가장 완벽하다고 여기는 신이 손 하나 쓰지 못하고 당하는 모습을 본 하수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굳이 생중계를 했는지 모르겠다.
본인이 맞을 걸 생각 못했나.
쿠궁─!
““...!””
커다란 불의 차원문이 흐려지더니 거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아그니가 거처의 영혼을 사용하는 것이다.
-아그니님이 거처를 쓰신다!
-다들 충격에 대비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마수들.
그 사이 나는 버프와 스킬들을 점검했다.
“...또 쓰고 쓰러지는거 아니죠?”
“걱정 마. 이격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깐.”
“믿어요.”
나는 걱정스러워하는 다윤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었다.
머리가 헝클어지는 게 싫은 듯 내 손을 잡아 때었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시작할게요.”
다윤은 블랙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검을 쥐었다.
성흔이 없는 다윤은 쉽게 아그니의 힘에 노출되지만, 그것을 막기위해 불의 정령왕의 팔찌를 복원해 줬으니 문제는 없다.
“현신(現身).”
쿠웅─
다윤의 주위로 검은 안개가 몰아친다. 이윽고 그것은 하나의 용으로 변해 등원의 하늘을 매웠다.
다윤이 사용하는 검은 블랙 드래곤의 비늘을 토대로 만든 검이다.
그리고 그 용은 콜트가 부리는 소환수중 하나인 ‘브리트라’다.
용은 등원의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딱히 누군가를 목표를 정해두지 않은 브레스.
브레스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거처를 부수기 위함도 아니다.
쏴아아아아─
아그니의 거처에 폭우가 쏟아진다. 폭우가 거처를 뒤덮자 꺼질리 없는 등원의 불들이 사그라들고, 견고했던 거처가 급격히 약화된다.
아그니가 온다면 금방 복구될 불 들이지만…
‘올 일은 없지.’
레빗을 상대하느라 이쪽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것이다.
“레빗.”
─...이 정도면 된 거 같지 않냥?
“이제 물러나도 돼.”
─알았다냐. 물러나겠다냐.
레빗이 아그니의 앞에서 벗어났다. 이제 뭔 짓을 하든 일행들이 휘말릴 일은 없다.
[ 캐스팅 해둔 물약 97개를 사용합니다. ]
[ 캐스팅 해둔 스킬 51개를 사용합니다. ]
월드 어드벤처의 능력과 이곳의 성흔이 뒤섞인다.
내가 가진 성흔은 아그니의 성흔이다. 이것만으로 베어 내려 한다면 효율이 안 나오겠지.
나는 엘린시아에서 얻은 물의 정령의 힘을 이용했다.
쿠구궁…!
더욱더 거처가 흔들린다. 아그니가 이변을 느낀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사용했고 그 만큼 본신의 능력이 분산됐다.
지금의 아그니에게 우리를 제제할 정도의 힘은 남아있지 않다.
「▲차원 」
두 갈래의 검강이 거처를 갈라내고 그 너머에 있는 육신과 영혼을 양단했다.
한순간에 쪼개지는 성운.
균형을 잃고 우주로 떨어지는 틈 사이로 나는 다윤을 끌어안았다.
놓칠뻔했네.
“......내가 헛것을 본건 아니죠?”
“헛것 맞아.”
이곳은 환각이다. 그러니 헛것이 맞다.
“......”
“별거 아니야. 이 정도는 나중에 주인공도 다 한다고.”
“...그건 극 후반부에 신들의 힘을 계승하니깐 그 정도죠. 누가 처음부터 거처를 박살 내요.”
“이걸 생각하고 하자고 한거 아니었어?”
다윤은 나와 함께 떨어지며 어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말한 건 거처를 최대한 부셔서 약화시킨 후에 싸우는 거였는데…”
“...”
“아예 그냥 소멸을 시켰네요.”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처. 나 역시 이 정도로 아작이 날줄 몰랐다.
다윤의 말대로 적당히 어느 정도 거처, 즉 영혼에 상처를 입혀 전투를 이어갈 셈이었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아그니의 거처가 너무 약해져버린 탓에 아예 박살이 나버렸다.
이러면 전투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
이미 다 부셔놨는데 뭘 더 이어나간단 말인가.
“아그니는 죽은 건가요?”
“죽지 않았을까? 설정상 영혼이 파괴되면 죽으니까.”
“...근데 우리 어디까지 떨어지는 거예요?”
나는 다윤은 품에 안은 체 계속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현상.
하지만 여기는 판타지 소설인 ‘나만 무한 소환수’의 세계관이다.
“로카팔라의 거처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아?”
“......또 다른 신의 거처?”
“반은 맞았네.”
나는 아래를 힐끔 보았다. 여전히 우주공간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희미한 초록빛이 보인다.
그 빛은 우리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비슈누.”
“...!”
우주의 3개의 근원 중 하나.
비슈누의 편린이 저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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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린은 몰려오는 수많은 마수를 베어내고 단검을 회수했다. 부산 때보다도 더욱 강하고 많은 숫자.
하지만 지금의 베린에게는 평범한 마수보다 훨씬 더 쉬웠다.
[이젠 안 울고 잘하네]
“...스승님.”
[처음 만났을 때는 질질 짜고 그랬는데...]
“.......그만하세요.”
[어때? 지금 상태에 만족해?]
“만족합니다.”
베린의 말에 차원 너머의 신(神)은 미소 지었다.
녀석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다른 마음에 안 드는 신들을 피해 지구에 신분을 숨겨 돌아다녔다. 굳이 인간들처럼 S급 헌터 행세를 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힘의 대부분을 거처에 두고 인간 행세를 한다면 눈치채지 못할 테니깐.
그렇게 인간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이상한 소년을 만났다.
“뭘 해야 강해질 수 있을까…”
“난 안돼…”
“많이 노력한 것 같은데…”
자기 비하가 온몸을 잡아먹은 소년.
과거의 신이 아니었던 자신과 비슷했다.
신은 소년에게 흥미를 가졌다. 그 소년의 행보를 관찰했다.
두른 장비도 좋고 나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충분히 성장할만한 재능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음료 따위가 신이 된다고?’
‘저 아이가 가진 재능은 알지만… 위대한 7개의 별을 늘릴 필요가 있을까요?’
‘브라흐마님이 살아계셨다면 꿈에도 못 꿀…’
“...”
신은 베린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