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6화 〉116화 다른 길 (116/318)



〈 116화 〉116화 다른 길




공방은 계속 이어진다.
검푸른 안개는 우주보다 더 아득할 정도의 짙은 어둠을 가지고 주위를 장악했고, 나 역시 그 범위를 벗어나거나 장악한 범위를 역으로 뺏어버리는 등 치열하게 전투를 이어갔다.

콰득─!

검푸른 안갯속에서 피어난 생명.
생명은  자라나 닿기만 해도 베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칼날로 변했다.
예리(銳利) 한 생명은 나의 육체를 넘어 영혼 까지 상처를 입혔다.

아무리 월드 어드벤처의 능력을 전부 가져왔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환각 속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싸움은 굉장히 불리하다.


나는 한낱 아그니의 성흔을 쓰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상대는 우주의 근원이자 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이니깐.


‘이격(二擊).’


 개의 백색의 검을 통해 검강을 발현 시킨다.
제라드는 주위에 퍼트렸던 안개를 다시 육신에 집중시켜 충격을 완화했다.
몸을 휘감은 검푸른 안개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역시… 여전하네.’

제라드의 안개는 소모성이다.
그의 강대한 능력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안개를 본다면 한계가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느껴지겠다만, 결국 저 안개도 끝이 있기 마련이다.

“자네는 여전하군.”
“...? 능력이 전혀 달라졌는데 뭐가 여전해.”

고작 레인저 정도의 부족한 능력을 매꾸려 노력했던 과거와 달리, 나는 시작부터 좋은 특성과 직업을 얻었다.
어째서 내가 그런 특성을 얻었는지 아직까지도 모른다.


단순히 무명과 바뀌었기에 이렇게 된 것일까.
만약 특성이 바뀌지 않았다면 최강자의 능력은 얻지 못했을까.
하지만 하페루아는  특성이 오류가 아니라 하였는데.


‘...’


여전히 배일에 가려져있는 게 많았다.


“자네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자네가 가진 특수함이지.”
“...특수함?”

특이점을 말하는 건가?
그러나 제라드의 말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해답을 찾는 눈.”

제라드는  웃었다.

“자네는 궁지에 몰린 상황이나 전투에서 좋은 수를 찾아내는 눈이 있어. 게다가 전체를 보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하지.”
“...그만”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지. 허나 자네는  가지 전부를 보아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네. 자네가 적이 아니었으면 참─”
“그만, 그만!”


뜬금없이 칭찬 세례를 받으니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오그라들게 뭐 하는 거야.

공격이라면 아주 효과적인 성과였겠다만.


“왜 그러지? 자네의 능력은 수백 년을 산 악마들보다도─”
“죽여버린다.”
“부끄럼이 많은 용사군.”

제라드는 껄껄 웃었다.
그런 제라드를 보고 생각했다.


반드시 죽여버려야겠다고.

-



공방은 어느새 끝을 향해가고 있다.
녀석의 안개도 한계. 나의 영혼도 간당간당한 상황이다.
앞으로 몇 번의 공방 안에 싸움이 끝날까.

2번? 3번?


확실한 건 이제 조금의 공격만 허용해도 금방 무너진다는 것이다.
나는 안개의 칼날을 피해 뒤로 물러나 허공을 뒤적거렸다.

‘...다 떨어졌네?’

그렇게 많이 사놓은 포션과 영약들이 전부 떨어졌다.
환각 속에서는 상점을 이용할 수 없으니 쓰고 싶다면 특이점을 이용해 사용해야겠지만…

「▲맹약 」

‘약속’이라는 제약이 나를 강하게 억제하고 있다.
뭔지 모르겠다만 어기면 전처럼 그대로 고통과 함께 쓰러질 수도 있다.
아니, 반드시 쓰러지겠지.


턱.

등 쪽에 딱딱한 감각이 느껴진다.
안개의 벽. 공격 의사를 가진 것 같지는 않다.
이건 단순히 퇴로를 막는 용도다.


‘걸렸네.’


너무 많은 경로를 생각하다 실수했다. 신발의 스킬인 하늘걸음은 진작에 사용한 상태.
다른 순간 이동 기술 역시 쿨타임 중이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안개가 공간이동을 억제하고 있다.
그동안은 억지로라도 사용했지만,  이상 그 억지를 부릴 정도의 육체와 영혼이 남아있지 않았다.

제라드는 직접 주위의 안개를 끌어들여 흑청(黑靑)의 검을 내질렀다.

“잘 가게.”
“...”

푸확!

그리고.

“레빗.”
“...!”
“냐!”

창을 든 손은 허무하게 우주 저 편으로 떨어졌다.
레빗은 하늘색의 대지의 창을 훙훙 휘두르며 나를 끌어안아 안개의 영역 밖으로 공간이동했다.


“...다 도망친 게 아니었군.”
“모든 생명은 너의 시야 안에 있다며?”
“......”

레빗은 나와 같이 특이점을 통해 들어온  아니다.
레빗이 가진 특수한 무언가가 나와 연결되어 따라 들어오게 된 것.

그렇기에 특이점을 전부 회수해도 레빗은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군.”


우주의 모든 생명을 관할하는 비슈누를 속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환각 속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레빗이 가진 특수성과 대지의 신의 능력을 이용한 것.
레빗은 암행과 은신과 특화되어 있었고, 그를 뒷받침 해줄 대지의 신 계승 역시 이루어진 상태였다.

‘만일 쿠베라의 계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겠지.’

쿠베라의 죽음은 정말 의외였지만 덕분에 일이 좀  쉬워졌다.

“자신의 신을 죽인 자들이라…  용사가 악마보다 더   같군.”
“? 뭔 소리야.”

들이라니?
제라드의 말에 레빗을 돌아봤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다냐!’ 라는 표정이었다.

“됐다. 어차피 그녀가 있는 한  자리를 더 이상 의미 없겠지.”


쿠궁!

우주의 기운이 하나로 모인다. 안개, 생명, 성흔…
이곳의 내로라하는 모든 기운이 하나로 모이고 또 모여 거대한 암흑의 검으로 변했다.

우주의 별을 닮은 검.


“와라. 용사.”
“갈 거였어.”


정면승부라.
이미 내 쪽의 승리가 결정된 상황에서 굳이 받아줄 이유가 없는 싸움.
하지만 상관없다.

나 역시 이것을 바랬으니까.


나는 아껴두었던 신성 보호를 사용했다. 백색의 검신에 은은한 휘광이 감싸고 주위로 대지의 기운이 스며든다. 이전의 융합 기술보다도 더욱더 강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마지막은…


“내가 늦었나?”
“아니.”

브리트라를  콜트가 도착했다. 콜트는 레빗에 의해 잠시 은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라드는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콜트를 압살해 환각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를 안다.

‘제라드는 이기기 위해 발악하는 악마가 아니다.’

후욱─


짙은 어둠이 빛의 그림자를 대신하여 가라앉는다.
준비는 완벽하다.

“내 마지막이 자네라서 억울하진 않겠군.”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있는데.”
“뭔가.”

기운과 기운이 파편들이 맞부딪힌다. 강대한 기운에 콜트가 고통스러운 듯 몸이 덜덜 떨었고, 우주 공간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진동했다.

“하페루아의 ‘진짜’ 정체는 뭐지. 정말 마왕의 딸이 맞는 거냐?”
“......그녀는 우리처럼 태초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뭐?”
“남은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게.”


그극─

제라드의 검이 움직인다. 우주는 그의 검을 따라가듯 공간 자체가 이곳으로 쏟아졌다.
다가오는 검을 보고  역시 기술을 발현했다.


“삼격(三擊).”


-




세계는 생겨난 세 갈래의 선을 중심으로 균열된다.

 사이로 보이는 조그마한 방안. 두 명의 아이가 서로의 몸을 기대어 앉아있다.
남자아이는 작은 티비를 바라보았다.
여자아이 역시 티비를 보았지만 작은 두손에는 게임 컨트롤러가 쥐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게임 컨트롤러의 선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

이상함을 느낀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티비속의 화면을 보려던 순간.

“어서 와 김윤.”

깨어났다.


-

“어서 와 김윤.”
“...”
“김윤?”
“아, 하페루아.”


당황스럽네.
분명 삼격을 쓸 때만 해도 한 번  그곳을 볼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여운이 거셌다.


그저 보기만 한 것뿐인데.

[ 로드리아의 환각 -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제라드의 시련 -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끝, 그리고 시작 - 월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레벨이 215로 올랐습니다. ]
[ 로드리아의...
.
.
.

[ 칭호 -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자를 획득했습니다. ]


[ 칭호 /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자(레전드리******)
- 모든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단 한명 만이 얻는 칭호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150% 증가합니다.
또한 새로운 이야기를 클리어 할시 추가 보상을 지급받습니다 ]

보상이 한 번에 들어왔네.
로드리아와 제라드.
원래는 각각 토벌을 했어야 하지만 갑자기 제라드의 난입으로 인해 둘을 동시에 상대하게 되었다.

난이도는 그만큼 올라갔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보상은 전부 얻을  있었다.

“야!”
“아, 어.”


하페루아는 소리를 빽! 지르며 내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왜 이래 갑자기.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고생을 하는데. 아주 사람을 무시하고 배가 찼구나 김윤?”
“넌 사람이 아니잖아.”
“...말장난하지 마.”
“흠.”


차라리 매혹적인 컨셉을 계속 유지하지 갑자기  이러는 걸까.
컨셉의 변화라도 주고 싶었던 걸까.


‘외모는 변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차원의 능력을 얻고 난 뒤로부터는 아무리 하페루아가 다가와도 멀쩡했다.

“너가 통합 서버 문지기야?”
“응.”
“열어줘.”
“...나랑 할 얘기 없어?”
“아, 그러네.”


아까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잠깐 잊었다. 하페루아는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돌리더니 왕좌에 다시 앉아 매혹적인 표정을 유지했다.

“처음부터 다시 와줄까?”
“됐어!”
“왜 저래.”
“후…”

하페루아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대로 가면 아무리 나라도 찢어발길 것 같은 모습.
...이거 이러다 평생  넘어 가는 거 아니야?


“이제 진짜 들을게 말해줘. 부탁할게.”
“...우선, 기술을 쓰고도 멀쩡한  내가  부담을 대신했기 때문이야.”
“진짜?”


이건 몰랐는데.
무리하게 융합 기술에 삼격까지 쓴 이유는 최강자의 감각과 기운을 느끼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곳을 다시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두 명의 아이.


그들은 대체 누굴까.


“그리고 네가 멋대로 쓰는 특이점!”


콰앙!
하페루아는 손잡이를 쾅! 치며 나를 노려봤다.

“...그게 왜.”
“그게 왜?”
“...”
“그게 왜에에에?”
“미안.”

뭔지 모르겠지만 사과해야 할  같다.
하페루아는 한참을 난리 치다 간신히 진정한 듯 자리에 앉았다.


“김윤.”
“어.”
“넌… 이곳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하페루아의 표정은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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