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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화 〉117화 작은 악마 (117/318)



〈 117화 〉117화 작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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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곳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말을 꺼낸 하페루아는 김윤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 여하에 따라 김윤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기에.


김윤이라는 카드는 하페루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다. 그녀의 계획안에는 김윤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로 했으니깐.


하지만 만일 그가 이곳을 그저 단순한 ‘놀이’ 정도만 여긴다면.
이곳의 일을 가벼이 여긴다면.

‘행동에 제약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묶어둬야겠지.’


“흠…”
“...”
“글쎄.”
“...뭐?”
“나도 모르겠네.”

이곳이 뭔지 모르는 건 김윤으로선 당연했다. 그가 아는것 이라곤 특이점과 코드, 그리고 차원 너머의 창조세계와 초월자.
굵직한 진실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이전까지 만난 모든 초월자가 그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하페루아는 등 뒤로 감춘 손을 움직였다.
이렇게  이상 억지로라도…

“근데.”


김윤은 피식 웃었다.

“난 이곳이 좋아.”
“...어?”
“여기 오면 옛날 생각이 나. 치열하게 싸웠던 악마전, 여러 NPC들과 함께 퀘스트를 나아가고 다른 대형 길드과도 싸웠지.”
“...”
“물론 과거의 추억보다 현재가 더 좋지만.”

김윤에게 있어 과거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능력은 부족할지라도 그는 약자로서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수차례의 실패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 자체도 재밌었다.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판타지.
실제와 같은 감각.
김윤에게는  새다로웠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이것도 실제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나에겐 그래. 나는 월드 어드벤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
“이제 내가 물어봐도 돼?”
“...좋아.”
“그럼 너는 대체 뭐─”


하페루아의 정체를 물어보려던 나는 이마에 생겨난 보랏빛 문양을 느꼈다.

「▲맹약 」


파삭─!


「▼맹약 」

문양은 강렬한 빛을 내더니 나를 억제하던 힘이 줄어들었다.
나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다 하페루아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가 건거였냐?”
“필요에 의한 안전장치였어. 이제는 필요 없지만.”
“뭐로부터의 안전?”
“네가 지금까지 멋대로 사용하는 특이점으로부터.”

따악─!


하페루아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그녀의 중심으로 보랏빛의 파장이 퍼져나갔다.
언뜻 감지해보니 이 어전의 방을 딱 채울 정도의 결계로 보인다.

“결계?”
“앞으로 하는 얘기는 관리자에게 들키면  되거든.”
“...호오.”

이제부터 진짜 진실이 나오는 건가?
하페루아는 고개를 까딱 거리다 나를 앞으로 끌어왔다.
어느새  앞에는 탁자와 함께 진수성찬이 놓여 있었다.

“들어. 긴 얘기가 될 거 같으니까.”
“음.”

푸욱.

나는 내 앞에 먹기 좋게 놓인 스테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다.
예전에 큰돈 주고 가족끼리 외식하러 간 몇십만원짜리 스테이크보다 훨씬 맛있었다.


“맛있네.”
“당연하지. ‘리덴’의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건데.”
“리덴?”
“그런 곳이 있어. 나중에 한번 데리고 가줄게.”


하페루아는 와인잔은 살짝 돌리다 입에 가져다 대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
“...”
“그래. 그게 좋겠네. 김윤 혹시 관리자를 보았어?”
“예전에 가끔. 이번 시즌에는 처음 빼고 본적 없어.”

과거에는 GM을 심심치 않게  수 있었다.
그는 심심하다는 명목으로 시작 도시를 돌아다니며 유저와 대화하기도 했고, 가끔씩 이벤트성으로 아이템이나 버프를 뿌리기도 했다.

“그래. 그렇겠지. 그녀는 재시작이라는 명목으로 관리에 손을 놓고 있으니깐. 가끔 기행은 부리는  같지만.”
“관리자가 뭔데?”
“게임을 관리하는 초월자라 보면 돼. 수많은 차원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게임들이 있어. 그리고 그것을 일일이 관리하고 통제하는 이들이 있지.”
“흐음…”
“너와 같은 용사들은 유저야. 차원 세계의 수많은 행성들 사이에서 특수한 인원을 뽑아 게임에 투입시켜.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왜 하필?”

 하필 게임일까.
단순히 게임판이라면 그것을 즐기는 더 상위 차원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왜 하필 게임이지? 누구를 위한 게임인데?”
“관찰자.”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나도 알 수있는건 없어. 그나마 알고있는 거라곤 그들은 게임을 관찰해, 그게 다야.”
“뭐야 그게.”
“나도 모른다고 했잖아. 애초에 만나본 적도 없고, 한가지 확실한  그들이 관리자 같은건 아니라는거야. 만일 그랬다면 차원의 수많은 관리자들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겠지. 하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어.”
“흠…”
“애초에 하나인지 여럿인지도 모르고.”


설마. 그 꼬마들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러겠어.

“그럼 너의 정체는 뭔데?”
“나는 어드벤처의 마왕의 딸. 하페루아야.”
“그건 알고. ‘진짜’ 정체요.”
“진짜가 맞아.”
“아니─”

그녀는 와인잔을 탁. 내려놓았다.


“...이였지만 한때 추방당했던 비련의 악마지.”
“...뭐?”
“꽤 오래전 일이야. 나도 얼마나 오래된지는 가늠이 안가.”

탁자에 놓인 와인잔은 처량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거 알아 김윤? 대부분의 게임은 기존의 행성에서 비롯돼. 행성에서 비롯되지 않는 게임은 모두 창조세계뿐이야.”
“...”
“난 이곳 어드벤처 행성의 주민이었어. 마왕의 딸로서 살아가고 있었지.”


그녀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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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보랏빛의 작은 악마 소녀가 성을 돌아다닌다.
그녀를 반기듯 수많은 악마들이 자그마한 소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공주님.”
“공주님 오늘도 아름다우세요.”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그들의 말에 소녀는 활짝 웃는다.

“응!”
“아이구 귀여우셔라.”
“마왕님도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최근 들어 용사들의 진전이 도태되고 있잖아요?”
“맞아요. 이대로 가면 악마 제국이 더욱더 강성할 겁니다.”
“악마, 강성해?”


소녀는 하인들에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직 공주님은 모르셔도 됩니다!”
“호호, 입이 주책이야.”

하인들은 웃으며 소녀를 놀이방으로 안내했다. 소녀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즐겁게 놀았다.
마왕성의  하나뿐인 마왕의 딸, 하페루아.
그런 그녀의 내면에는 청색의 기운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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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냥을 나가라고요?”
[그래.]


소녀는 20살이 되었다.
악마는 불사(不四)에 가까운 생물이기에 성장 속도가 느리지만 소녀는 달랐다.
무려 한 행성의 위세를 떨치는 마왕의 딸.


그런 그녀에게는 성장 속도 따위는 문제없었다.
현재 그녀는 인간으로 따지면 15살정도의 체구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체 나이를 높일 수 있었다.

이미 7살 때부터 신체 나이를 높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이유는 어리고 싶은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아직 사냥에 나서기에는 이르다는 악마 대신들의 말이 있긴 했으나 마왕은 이미 재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알았어요. 이대로 가도 되죠?”
[용사들이 너를 노릴 수 있으니 대비하는 게 좋다. 굳이 지금의 형태로 가는 것보다는─]
“에이. 오히려 이런 모습이면 주춤할걸요? 인간들은 어리고 귀여운 생물에게 사족을 못쓰잖아요?”
[...알았다. 하페루아.]

하페루아. 그녀는 처음으로 ‘인간 사냥’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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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푸확!


하페루아는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찰팍! 그녀의 발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그녀가 아래를 살펴보자 피의 웅덩이와 함께 사람이었던 것이 가득했다.

“흐음… 리비엔이 말했던 것보다 별로 충격적 이진 않네…”

백색 기사단.

천사들의 가호를 받아 악마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무자비한 기사단이었다.
이제는 그냥 시체들이지만.

“죽음은 죽음으로 갚는 것.”

마왕인 아빠에게 배운 말이었다.
이들에게 조금의 미안함이나 죄책감같은  없다.

이들 역시 각자의 편에서 목숨걸고 싸운 것뿐. 악인과 선인은 존재하지 않는 싸움.
적에게 자비는 사치였다.

어릴 때의 앙증맞은 외모와 작은 체구로 많은 악마들이 그녀가 악마 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악마다웠다.


애초에 그녀는 악마다운게 뭔지 몰랐다.

“아, 한발 늦었군.”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황금빛 머리를 가진 튼실한 체구를 가진 용사.
용사인지도 몰랐는데 화려한 갑옷과 손에 들린 빛나는 성검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는 피의 웅덩이를 잠시 내려보더니 조의를 표하듯 눈을 감았다, 하페루아를 보고 놀란 듯 주춤했다.

“소녀! 생존자인가! 괜찮… 이 아니라 악마 군.”
“맞아.”
“악마… 정말 지독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사악하군! 그날의 맹세를 더욱 확고하게 하는구나!”
“...? 왜?”

이게 뭐가 사악하단 말인가.
소녀는 눈앞의 용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인간들이 두려움에 떤다는 이유로 수천, 수만의 악마들을 먼저 학살한 것은 인간 쪽이 아니던가.
그런데 사악하다니.


“그런 모습이라 내가 망설일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보아라 사악한 악마여! 나의 이 천사의 수호를 받은 성검으로 너를 응ㅈ─”


푸확─!

“...시시해.”


하페루아는 용사의 목을 베어난 칼날을 슥슥 닦은 뒤 허리춤에 찼다.
고작 이런 것들 때문에 그리 난리가 난 건가?

용사가 뭐라고.


“흐음… 용사들을  죽여버리면 악마들이 죽을 일이 없겠지.”


우연히 인간들의 동화책을 본 나는 전투 수업을 가르치던 리비엔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인간을 죽인 악마, 그리고 악마를 죽인 인간.  중 누가  잘못한걸까.’

동화책 속의 악마는 무조건적인 악(惡). 인간은 선이었다.
그들은 항상 정의로웠고 악마는 항상 악독했다.
그러자 붉은 가닥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칼을 받아내던 리비엔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인간입니다. 그들은 위선(僞善)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포장해 정의인것마냥 떠든답니다. 허나 우리는 다르죠. 우리는…’


하페루아는 칼을 꺼내들었다.


“우리는 정의 같은  추구하지 않으니깐.”

그래. 애초에 이건 전쟁이다. 선도 악도 없는 전쟁.
이미 꼬리에 꼬리가 물린 싸움.

‘자비를 베푸는 것도 사치겠지.’

하페루아는 자신의 검을 쥐어들고 용사들이 모인다는 도시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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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그녀를 저 멀리 차원 너머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가 괜찮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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