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외전] 리엔
-
불의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탄생에 수많은 불의 정령들이 축복을 전했고, 불의 정령왕인 이그네아 역시 그녀의 탄생을 축복하며 자신의 권능을 내려주었다.
“우아!”
“어이구 귀여워라! 나를 닮아서 엄청 예쁘네~”
“아냐, 나를 닮았지.”
“...장난치는 거지?”
투닥거리는 부모.
아이는 세상을 태울듯한 붉은 적안(赤眼)을 반짝이며 그들을 바라봤다.
아이의 이름은 아미아 리엔.
훗날 세계의 위대한 별이 될 마법사다.
-
화륵!
“엄마!”
“세상에.”
아이는 5살이 되었다.
아이의 몸에는 불의 속성이 깃들었고, 마나의 총량은 3서클을 웃돌 정도로 마나 친화력이 상당했다.
수준만 따지자면 마력만큼은 벌써 중급 마법사보다도 뛰어났다.
그런 아이의 폭발적인 성장 속도에 리엔의 어머니였던 레아는 걱정했다.
자칫 저 과할 정도의 재능이 사고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그로 인해 저 아이의 재능을 탐내는 자가 생기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아이의 성장을 멈출 수 없었다.
마법사로서의 재능은 아이를 막는 족쇄가 아닌, 찬란하게 빛날 길이 되어야 하니깐.
“오늘은 뭐 배웠어?”
“오늘! 이거 불 화르륵! 배웠어.”
두 팔을 펼치며 짜잔~하듯 자신의 마법을 보여주는 딸을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크윽… 너무 귀여워…’
아무리 내 딸이라지만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
딸이 들어갈 주머니만 있다면 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너무 귀여웠다.
물론 그런 주머니는 충분히 만들고 남았다.
레아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뛰어난 마법사였으니깐.
대마법사 까지는 아니지만 6서클, 상급 마법사의 수준의 레아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 한 명 들어갈 정도의 공간 마법 정도야 충분히 제작 가능했지만...
‘그럴 순 없지.’
지금 아이에게 중요한 건 품에 안고 다니는 게 아닌, 뛰어난 마법 재능의 성장이다.
어릴수록 마나의 감흥과 재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에.
“오빠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단다. 조만간 집에 올테니 한번 보자.”
“응!”
헤헤 거리며 웃는 리엔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리엔에 대한 걱정은 리진에게서 비롯됐다.
리엔만큼은 아니지만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충분했던 리진.
그런 리진의 탄생은 뛰어난 마법사였던 부모의 기대를 높이게 만들었다.
처음이라 서툴렀고, 과한 기대는 아이의 성장의 제동을 걸었다.
어쩌면 더 성장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조금씩, 더 조금씩 나아가면 됐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결국 리진은 대마법사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능력은 상급 마법사보다 떨어지는 수준이 되었다.
이게 다, 나와 남편의 잘못이다.
결국 리진은 과한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17살에 집을 나갔으니깐.
연은 끊은 게 아니라 1년에 한 번씩은 찾아 오지만, 여전히 관계가 냉랭한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번은 절대 안 돼!’
레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웅?”
그런 엄마의 모습에 리엔은 고개를 갸웃했다.
-
“화르륵!”
화르륵!
리엔의 말과 함께 붉은 마법진이 허공에 드러난다.
마법진은 밀도 있는 마력을 담고 회전하다 3개의 불의 창을 뿜어냈다.
중급 마법, 파이어 스피어.
불의 창을 소환하는 마법으로 중급 마법이지만 불의 속성을 지니지 않는 이상, 중급 마법사 수준으로 발현하기 어려운 마법이다.
“대단하네. 우리 리엔이.”
“아빠도 대단해!”
리엔은 마법 선생인 아빠에게서 마법을 배웠다.
디틴베리 근처에 위치한 소도시 브랑의 마법 학교.
소도시지만 디틴베리의 위성도시답게 마법에 대한 수준이 꽤나 높았다.
물론 교육이나 좀 더 제대로 된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디틴베리로 가는 게 좋긴 하나 그들은 이제 안다.
너무 과한 교육과 기대는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꼴이라고.
“우웅… 이번엔…”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리엔은 한 번 더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리엔의 아버지는 감탄했다.
허공에 연결된 3개의 마법진.
마법진은 서로를 맞물리듯 회전시키며 총 9개의 창을 만들어냈다.
도대체 이걸 누가 7살 밖에 안된 어린아이라고 볼까.
이미 리엔의 마법 수준은 중급 마법사, 그 이상이었다.
“3개 만들었어! 잘했지!”
“잘했어. 리ㅈ…”
“오빠?”
리엔은 갸웃거렸다. 그러자 리엔의 아버지는 큼큼 거리며 말을 돌렸다.
리진보다도 뛰어난 재능… 이라고 말하려던 것을 간신히 삼켰다.
염치가 없다.
누구 때문에 리진이 그렇게 된 건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자.”
“응? 나 더하고 싶은데. 그 얼음창도 하고 싶어.”
“너무 많이 시전하면 마나 역류가 생겨. 오늘은 쉬고 내일 하자.”
“치… 아직 무리 없는데...”
안다. 리엔의 마나는 상상이상으로 많다는걸.
하지만 역시 과한 건 안된다.
‘...너무 과보호인가.’
완벽한 육아라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
“후! 갔다 올게.”
리엔이 8살이 되던 해, 리엔은 집을 나섰다.
곧 마법 연구를 그만두고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이 잘 풀렸다고 리엔을 초대한 것이다.
“가서 오빠 좀 잘 챙겨주렴.”
“응!”
레아는 자신과 남편을 부르지 않은 것에 한편으로 씁쓸했으나 대견했다.
결국 본인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했으니.
“가자!”
우웅─
리엔은 리진이 보내준 공간 이동 스크롤를 찢었다.
어느새 리엔은 보랏빛의 마석으로 가득 찬 탑의 앞으로 이동됐다.
“우와~ 엄청 크다.”
“그치?”
“오빠!”
폴짝.
리엔은 폴짝 뛰어 리진의 품에 안겼다.
제법 나이차가 나는 리엔에게 리진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부모님에게 리진의 과거의 대단함과 재능에 대해 자주 들었으니깐.
물론 그 말을 하면서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받았으나 어린 리엔이 이해하기는 힘든 감정이었다.
“탑 엄청 커! 이거 오빠가 다 쌓은 거야?”
“음… 내가 쌓았지. 도움을 좀 받아서.”
“누구?”
오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면 필히 좋은 사람이 분명하다!
리진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용사.”
“...!”
“날 도와주신 분은 용사님이야.”
-
“안녕하세요.”
“윤 씨 설마…”
“맞는 거 같은데.”
리엔은 오빠에게 받은 마법사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눈앞의 사람들을 봤다.
다른 세상에서 온 용사님들.
비록 아직 8살 밖에 되지 않았으나 중급 마법사 수준인 그녀는 용사들의 수준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엄청 강하잖아?’
그들은 마법사가 아니기에 마법의 수준은 리엔이 높을지 몰라도, 그 외의 모든 부분에서 앞섰다.
과연, 이 정도로 강하니깐 용사라 불리겠지.
그렇게 생각한 리엔은 용사들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그런 그녀는 다른 용사들이 이보다 강하지 않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지만.
-
“후아…”
똑… 똑…
마나 팩이 떨어진다.
리엔은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용사님들을 도우러 간 오빠가 반죽음 상태로 돌아왔고, 그런 오빠를 열심히 치료하다 마나 역류를 겪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환자가 되어 있었다.
‘...아빠가 늘 주의하라 하던 건데…’
맨날 마법을 쓸덴 주의해라,
반드시 텀을 두고 사용해라,
스크롤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장난스럽게 넘어가던 이야기였는데 실제로 당하니 몸이 울렁울렁거린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만일 누가 도우러 오지 않았다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나 역시 쓰러졌다면.
“...우리 둘 다 죽었겠지.”
언제 봐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강해져야겠어.’
이미 속성은 타고났고 그런 재능은 학교나 부모님에게서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재능을 적극 활용한 적은 없다.
리엔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앞으로 마법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핑~
“아.”
주먹을 쥐자 팔에 꽂혀있던 주삿바늘이 튕겨져 나갔다.
피가 솟구친다.
“흐에엑…”
“리, 리엔아!”
-
용사님들은 디틴베리의 보석을 파괴한 뒤 이곳을 떠났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곳의 왕님은 아주 나쁜 사람이었고 그것을 막고자 목숨 바쳐 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오빠가 다쳤을 때만 해도 용사님들이 조금 원망스러웠으나, 얘기를 듣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용사님들이라고.
“나도 용사님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그럼. 충분히 가능하지.”
“흐음! 좋아 그럼 마법 공부하자! 오빠가 알려줘!”
“응? 그, 그래.”
리엔은 그 뒤로 마법학교가 아닌 리진의 탑에서 공부를 했다.
시간이 지나며 리엔의 마법 실력은 나날이 성장했다.
새로운 용사들도 만났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처음 만났던 김윤과 그 일행에 비하면 그다지 강하지 않아 실망했지만.
그 이후 김윤 일행의 행보는 꾸준히 들어왔다.
신들과 마주하고,
망령 지대의 빛을 찾아오고,
악마를 토벌하고.
그렇게 10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리엔은 상급 마법사에 도달했다.
그리고 세계는 통합되기 전, 누군가 찾아왔다.
-
“오랜만이네.”
“용사 오빠?”
“안녕하십니까 용사님.”
김윤은 다시금 리엔과 리진을 찾아왔다.
10년이 지나기 전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
“잘 지내셨습니까?”
“고생했지. 너희도 고생하는 거 같던데.”
“하하… 아닙니다. 저희는 편안히 마법 연구를 하고 있으니…”
“맞아요! 근데… 왜 오셨어요?”
리엔은 고개를 까딱했다.
김윤은 그 모습에 웃음을 보이더니 기다란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종이를 건네받은 리진은 마법적 지식을 동원해 보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의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마법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이것을 ‘발현’시키려 노력해봐.”
“...어렵네요. 그래도 용사님 부탁이니, 네. 해보겠습니다.”
“나는요? 나는 뭐해요?”
리엔은 김윤의 옷소매를 잡았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 비록 아직 상급 마법사지만 10년만 있으면 엄청 엄청 뛰어난 마법사가 될 것이다.
김윤은 다른 종이를 꺼내 건네주었다.
“넌 이거 해. 어때 할 수 있겠어?”
“...학교?”
김윤이 건넨 종이에는 붉은 마법진과 함께 신비한 물질로 제작된 건물이 보였다.
그 아래로는 아카데미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