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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화 〉1. 정신 나갈 것 같아 (4) (127/318)



〈 127화 〉1. 정신 나갈 것 같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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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평범한 종이처럼 보일 테지만 내 눈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 깔끔깔끔 종이 (유니크)
설명 -
숲속의 님프가 엮어만든 깔끔한 종이입니다.
어떤 것도 써내릴 수 있습니다. ]

요정 종족 중 하나인 님프가 만들어낸 종이.
깔끔하다는 특성 외에는 별다른 효과는 없지만 그 깔끔함이야말로 마법적인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내가 꺼낸 건 책이라기보다는 종이 묶음에 가깝지만.

탁.
리엔은 붉은 표지의 책의 첫 장을 넘겼다.
평범한 책이다.

“마법은 인간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입니다.”

펄럭.

“마나를 이용해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세계의 이치까진 바꾸진 못합니다.”

펄럭.

“어디까지나 유(有)에서 유(有)를 가져오는 것.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불가능하죠. 마법의 별이라고 불리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펄럭.

“물론 예외가 한 분 계시긴 하지만… 그분은 논외니…”

탁.

“이해했나요?”

의미 없이 넘겨지는 책의 마지막 장이 넘어갔다.
그리고 교실은 조용했다.

잠깐의 설명.
그사이 리엔의 손 아래에 놓인 책은 경악할 정도로 좋은 고급 마도서로 바뀌었다.
대충 봐도 레전드리는 그냥 올라갈 것 같다.

그 짧은 사이에 마법을 사용했나?
…아니다. 리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책을 넘기며 우리에게 설명했을 뿐.
마법은커녕 조금의 마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마나 적응 특성이 있는 내가 이상을 감지했을 테니깐.

‘뭘 한거지?’

나는 주변을 살폈다.
멍하니 리엔을 바라보는 사람.
자신도 따라 하듯 중얼거리며 책을 넘기는 사람.
자그마하게 마법을 쓰며 책을 변화시킨 사람.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앞에 일어난 현상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리엔은 싱긋 웃었다.

“이게 여러분이 새로이 배울 마법입니다. 마법의 이름은 현상 발현(發現).”

마도서는 짙은 마력을 내뿜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공기 중으로 흩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책은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작은 씨앗으로 숲을 만들어내는 마법입니다.”

-


“어렵다.”
“뭔 소리지.”
“모, 모르겠네.”

리엔이 폭탄을 떨어트리고간지 일주일째.
 ‘발현’이라는 것은 도무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기존의 공식 말고 사물에 녹아들어있는 마나를 이용해 변환시켜…”

엘레나는 자신이 뭐를 말하는 건지도 모른체 중얼거렸다.

기존의 마법의 사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마법의 주체가 되는 마법식은 그저 외우기만 하면 되고, 외운 마법식은 허공에 써내려 마나만 주입하면 자연스레 마법이 나간다.

그마저도 어려워하는 이들은 지팡이나 영창의 도움을 받지만, 암기력를 비롯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엘레나는 그 두 가지 없이도 마법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리엔이 알려준 발현은 도무지 이해할  없는 마법이었다.

“흐음…”

채림 역시 책상에 놓인 책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채림을 비롯한 용사들은 마법식을 익히지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시스템이고, 시스템은 습득한 마법의 사용법을 유저가 알게 하여 그저 사용하고자 하면 버튼 누르듯 마법이 나간다.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내로라하는 마법을 발휘할 수 있어도 마법 자체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채림은 달랐다.
특성인 마나 적응을 통해 다양한 마나를 습득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지식이 흘러들어왔다.

그랬기에 ‘마법 지식’을 요구로 하는 A반에 입성할  있었다.
현재 A반에 용사는 단 셋뿐이다.
그리고 그들 전부 리엔의 마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마법사 수준으로 올라야 사용할 수 있는건가?’
“내, 내가 다른 반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다른 교수들도 못한데. 우리 교수님이 특이한 거라고…”

책을 이리저리 넘기던 덴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단 말이지…’

리엔이 말하기를 이 ‘발현’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성공시킨다면 학기 내내 모든 점수를 A+로 주겠다고 말했다.

아케데미의 장학금과 여러 가지 마법 장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높은 등급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고로 교내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으로 평가받는 리엔의 점수는 확정 장학금 티켓 과도 같다는 것이다.

“후우… 하기 싫다.”
“응? 어디 가?”
“잠깐 연구실 좀.”

내가 못하면 내가 아니게 되면 되겠지.


-


일주일간 여러 수업을 들으며 학교를 돌아다녔다.
마법적인 지식부터 마법 연구, 신체능력, 역사, 무기술 등등.
마법 학교로 불리는 리론 아카데미지만 여러 종류의 수업을 수강할 수 있었다.

“아아…”

그리고 나는 마법 연구실에 와있다.

겨우 4서클에 달하는 마법사라   있지만 4서클 정도면 한 국가의 기사들과 맞먹는 수준이다.
게다가 서클 수가 높아질수록 그 위력과 효율이 압도적으로 상승하니, 원활한 마법 사용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학교는 튼튼히 지어야 한다.

때문에 학교는 ‘부르트’라는 특수한 물질로 제작되었다.
부르트는 강철보다도 튼튼하고, 티파인 보다도 마력의 흡수를 잘 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틈만 나면 마법이 일어나는 학교에서는  어떤 물질보다도 단단한 효과를 보인다.

“후우… 좋아.”

그중에서 마법 연구실은 특히나 더 튼튼하다.
마법 연구 도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내가 여기서  개 짓거리를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지.’

“간다!”

쭈욱─

나는 종이와 손목을 마력의 실로 단단히 묶은 체 마나를 빨아들였다.
연구실에 벽면을 구성하는 마나가 한곳으로 쏟아진다.

“으에엣…!”

움찔!

“으잇!”

움찔!

“우앙?!”

나는 정신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종이를 놓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내가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게 하기 위해.

“후으으으…”

풀썩.

주저 안자따.


-


“뭘 하려고…”

엘레나는 마법 연구실이 잘 보이는 유리 벽면 너머로 채림을 지켜봤다.
절대 들어오지 말고 위험하면 교수님을 불러와 달라는 말.

그럴 거면 처음부터 교수님을 부르라고 말했지만, 허락을 안 해줄  같다는 채림의 말 때문에 일단은 부르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닐 때 성공시키려고?’

일주일째. 현상 발현 마법은 그 누구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아니, 지금까지 졸업생을 포함 재학생 중에서도 5명도 채 성공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 된 입학생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걸까.
용사라서?
아니면 진짜 제정신이 아닐 때 된다고 믿는 건가?

만에 하나 성공시킨다고 하더라도 제정신 일때 실패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채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던 엘레나는 의문을 가지며 지켜봤다.

“오! 요건 신기해!”
“...?”
“이런 거?”

화륵!

순간 채림의 손에서 불이 타올랐다.
청색의 불.

분명 가문의 고대 마법서적에서  블루 헬파이어다.
또 대마법사만이 사용할  있는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채림은 불을 이러 저리 만지작거리다 볼에 바람을 잔뜩 넣더니 이내 고개를 획 돌렸다.

“아냐, 이게 더 좋은  같은데?”

푸른 불은 화려한 빛으로 바뀌었다. 빛은 채림의 손을 넘어 몸을 뒤덮더니 연구실의 절반을 가득 메웠다.

‘...이러다 교수님을 부르는 게 아니라 직접 오겠네.’

이미 연구실은 과한 마력 사용으로 인해 삐용삐용 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단지 빛이 그것을 가려 멀리까지는 들리거나 보이지 않았다.

“헤헤... 좋다...”
“...”
“아! 이거 할라 그랬지!”

채림은 위풍당당히 종이를 휙 들었다.

아주 잠깐.
종이는 수천 장으로 변해 공간에 퍼졌다.

“어?”

엘레나는 벌떡 일어났다. 저거…  거 아닌가?
자세히는 확인 못하겠지만 분명 마법을 쓴 것 같진 않았다.

치직…!

수천 개의 종이는 이내 응축된 마력으로 변했다. 마력은 금방 터질 듯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교, 교수─”

엘레나는 당장 몸을 돌려 리엔을 부르려 했다.
아무리 튼튼한 연구실이라도 지금 저기에 퍼진 마력은 엘레나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기에.

턱.

그렇게 몸을 돌리려던 찰나, 눈 앞에 흰 가운이 보였다.

“신입생이 활발하네.”
“아… 위험!”

누군진 모르겠지만 지금 저 상태는 아무리 평범한 교수라도 막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리엔이나 교장 같은 대마법사 수준의 마법사가 필요하다.

“저긴 위험해요!”
“동생이 열심히 만든 학교를 부수면 곤란해.”

톡.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새햐얀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듯 떨궜다.

우우웅…

폭발하듯이 퍼져나가던 마력은 가라앉았다.

“에…?”
“어…? 설마…”

엘레나는 멍하니 있는 채림을 대리고 나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대마법사 수준의 마력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동생이 열심히 만든 학교라는 말.

“설마… 아미아 리진님이세요?”
“맞아. 에르다스의 영애.”

아미아 리진.

리론 아카데미의 공동대표이자 교장.
세계의 몇 명 없는 마법의 별.
위대한 마나의 조율자.

그가  앞에 있었다.

-

달빛이 차오르는 산맥.
그곳에 한 여자가 구름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구름은 달빛을 받아 노랗게 빛을 발했고 그런 구름 위의 여자는 검을 꺼내들었다.

파직.

그녀의 주위로 18개의 검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의 검을 의식하듯 산맥의 수많은 괴수들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검을 쥔다. 그리고 베어낸다.

월광식(月光式)
유월(六月)

광활한 산맥이 베였다.

거대한 산은 두 개의 작은 산으로 변했다.

“이쯤이면 제법 쓸만하군.”
“...감사합니다.”
“기술은 이쯤이면  거 같은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셈이지? 좋아한다던 사람이 있지 않았나?”
“......”

달빛을 담은  눈은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제가 원하는 거니깐요.”

여자는 아니, 다윤은 웃었다.

“적어도 윤 씨곁에 나란히 설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해요. 그래야 다시 웃는 얼굴로 볼 수 있겠죠.”

월광은 최강을 동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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