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8화 〉1. 정신 나갈 것 같아 (5) (128/318)



〈 128화 〉1. 정신 나갈 것 같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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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냐. 학생을 돕는 게 아카데미 교장으로서의 일인데 뭐.”

엘레나의 감사에 리진은 손을 휙휙 저으며 연구실로 들어갔다.
옆에는 멍하니 앉아있는 채림이 보였다.

“으에…”
“채림이는 아직도 왜 이래요?”
“지금 상태로 사용할 수 없는걸 사용했거든. 가만히 냅두면 알아서 정신 차릴 거야.”

리진의 손이 허공을 긋자 채림에 의해 파괴되었던 여러 마도구들이 복구되었다.
그는 연구실에 놓인 플라스크 병을 흔들었다. 그러자 병에 차있는 자색의 액체는 이윽고 우주를 담은 별빛처럼 바뀌었다.

“교수님에 대해 아버지께 들었어요.”
“오! 에빌 말이냐? 잘 지내지?”
“네. 교수님은 세계의 몇 없는 신(神)에 도달한 마법사라고. 동생분인 리엔 교수님도 마찬가지고요.”
“...뭐 그렇지.”

리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아카데미 일을 하시는 거예요? 신이라면 뭔가 더 위대한 일이나 정복을 한다든지… 그럴 거 같은데.”

리진 정도의 능력자라면 지금 당장 한 나라의 왕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마법 능력으로 거대한 영지를 다스릴 수도 있고,  수 없는 땅을 개척하여 왕국을 세울 수도 있다.

그런데 신에 도달한 마법사 두 명은 고작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기에 엘레나는 궁금했다.
여기서 이렇게 소박한 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리진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엘레나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당돌하네. 딱 아버지를 닮았어.”
“......전 어머니를 더 닮았는걸요.”
“사실 이 세계에서 신은 흔해.”

별빛을 담은 액체는 리진의 손을 벗어났다.

“지금 당장 자연 깊은 곳 아무 데나 가도 신이 있고, 새로운 세계의 겹침으로 인해  다른 신들이 많이 등장했지.”
“...”
“내가 지금 당장 강해 보여도 나는  행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못해. 내가 가진 강함은 ‘인간’으로서 국한되어 있는 거지.”
“...네?”

엘레나는 리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법의 별이라 불리는 리진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한다니.
그러면 다른 신이나 악마들은 얼마나 강한 거지?

리진은 그런 엘레나의 의중을 읽은  말에 살을 덧붙였다.

“물론! 내가 웬만한 신들이나 악마들보다 강한 것 맞아. 근데 그게 내가 왕이 되고 정복활동을 해야하는 이유는 아니지.”
“그럼… 요?”
“난 이게 편하거든. 부탁받은 일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별빛은 연구실의 허공을 통통 튀며 작은 구를 만들어냈다. 마나의 알갱이들은  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무질서하게 허공을 채우기도 했다.

“와아…”

어느새 연구실의 하늘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바뀌었다.

“정복보단 이런 연구가 재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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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시간.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나이 때가 고등학생 수준이지만 이미 교육적인 성장은 대부분 이뤄낸 상태다.

“...그리하여 태초의 여신이 지상을 가여히 여겨 마왕에 대적할 용사를 내려주었습니다.”

리론 아카데미는 마법에 있어 기존의 알고 있는 지식보다 더 높은 지식을 얻는 곳.
현실로 치면 대학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때문인지 몰라도 다들 역사나 기본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점수 또한 그리 높지 않기에.

“용사는 대략 12년 전부터 등장하였고 그들은 10년간의 공백 이후 5개월 전부터 다시 등장했습니다.”

 역시 다 아는 내용이기에 책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왜 안될까.

분명 제정신이 아닐 때에 발현을 성공시켰다..
그 과정에서 수치스러운 기억이 동반하긴 했지만 아무튼 성공은 했다.

‘분명 종이를 엄청 많이 늘렸어.’

그 순간 나는   있었다.
깔끔깔끔 종이가 전혀 다른 아이템으로 변하는 것을.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물론 5개월 전이 시작이라고 보지 않는 여러 학자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5개월 전이 맞는 것으로…

그러니깐 종이를 이렇게 잡고 팔을 위로 올려서… 빛을…

“거기  번째   번째 칸 학생?”
“네, 네?”

갑자기?
혹시 내가 소리 내서 말했나?

외눈 안경을 들어 올린 50대 정도의 남자 교수가 나를 향해 말했다.

“질문이 있나요?”
“아? 아…”

치켜 올린 왼손.
누가 봐도 질문이 있어 손을 들어 올린 것처럼 보인다.

깨달음을 찾다가 손을 올린 거라고 할 순 없고…
나는 반쯤 흘려들은 교수님의 말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 비공식적인 얘기는 어떤 건가요?”
“확실한 얘기는 아닙니다만…”
“그, 그래도 궁금하니깐요. 저도 그들과 같은 용사거든요.”
“흐음…”

교수는 잠깐의 침묵을 유지하며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관심 없는 역사 시간이라고 해도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얘기는 다들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어느새 다른 짓들을 하던 학생들의 시선이 나와 교수에게 쏠렸다.

“5개월 전보다 1년 먼저 모습을 드러낸 용사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은 다섯 명의 용사로 먼저 겹쳐진 세계를 돌아다녔다는 얘기죠.”
“그러면 왜 알려지지 않았죠.”

말을 꺼낸건 내가 아니였다.

“그들을 봤다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기에 말하지 않았다.’ 라는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엘레나 학생.”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엘레나는 살짝 올린 왼손을 내리며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확실히 판타지 속 영애라 예쁘긴 하네.

부럽다...

“물론 이런 수많은 얘기들이 많습니다. 용사는 사실 다른 세계가 아닌 같은 세상에서 생겨났다던가, 10년간의 공백에 계속 존재했다던가, 아니면 진짜 용사가 따로 있다던가. 그렇죠.”

오호.

“하지만 5개월 전 수많은 용사들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니 그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입니다. 아마 이곳에 수업을 듣는 용사 학생들 역시 같은 종류겠죠.”

그렇게 말한 교수님의 시선은 앞자리에 앉은 두 명의 시선을 거쳐 나로 향했다.

용사라…
이젠 의미가 있을까?

-

용사는 언젠가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마왕을 처치하고 광명을 되찾아줄 영웅들이다.

때문에 용사는 세계의 주민들과 지배자들에게 찬사와 지원을 받으며 모험을 떠난다.
그들을 돕는 것은 곧 자신들을 돕는 거니깐.

“왜,  안되는데!”
“자네는 하급 용사이지 않은가.”

하지만 용사의 수가 만 명을 넘어서면서 그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하급 용사 정도로는 우리 왕국에 지원을 받을 수 없네.”

그들은 쓸모 있는 용사만을 선택해 챙겨주기 시작했다.
자신들보다 하등 약한 용사를 챙겨줄 이유가 전혀 없기에.

물론 그들을 성장시킨다면 자신보다 강해질지 모르겠다만, 애초에 더 완성되어 있고 더 잠재력이 뛰어난 용사가 차고 넘치는데 굳이 약한 이들을 성장시킬 이유가 없었다.

“나,  용사야! 여신에게 선택받은!”

고원의 설산(雪山) 아래의 작은 왕국.
그곳에서 한 용사가 왕국의 알현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른 길드원들에게 쓸모없다는 이유로 추방당했기에 용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이곳에서 지원을 받아 새로이 시작할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변방 왕국에서 무시를 당하다니.

“더 난동을 피우면 친위대를 부르겠네.”
“해봐!  이래 봬도 제법 강하거든!”

촤앙!

용사가 뽑은 검에서 흐물거리는 검기가 흘러나왔다.
비록 모지리처럼 보이지만 이 용사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용사란 초인이다.
비록 용사 중에서는 약한 편에 속할지라도, 통합 서버에 올 정도라면 어지간한 국가의 기사 정도는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가 이 왕국을 성장할 때까지 수호해 줄게! 뭐가 문제라는 거야!”
“...정말 용사라는 족속은 제멋대로군. 카인.”
“후회하지 마!”

용사는 왕의 눈앞에 나타난 기사에게 검을 휘둘렀다.
원래 이럴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비위를 맞춘 뒤 지원만 받고 튈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이렇게  이상  능력을 입증하자.’

왕이 자신 있게 앞세운 기사인만큼 제법 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NPC.
그것도 작은 변방 왕국의 기사 따위가 나의 검기를 막아낼 순 없─

촤악!

“어…?”

내지른 팔이 날아갔다.
팔은 허공을 떠다니다 그대로 알현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끄아아아악!!!”

뚜벅. 뚜벅.

“아프냐?”

용사의 팔을 자른 남자는 이윽고 다른 팔도 잘라낸 뒤 무릎을 꿇은 용사의 앞에 쪼그려앉았다.

“아프겠지. 이전하고 고통의 무게가 다를 테니까.”
“이… 개…”

욕설을 지껄이려는 용사의 어깨를 붙잡고 속삭였다.

“등신아. 약하면 찌그러져 있어.”
“...너! 유저였…”

뎅겅!

“이래서 뉴비들은 지 주제를 모른다니깐. 이런 놈들이 물을 흐리는 건데.”

쯧.

혀를 찬 남자는 용사의 목을 수거해 왕의 앞에 갖다 바쳤다.

“오오! 역시 카인이야. 이런 어리석은 용사하고는 결이 다르군!”
“당연하지요. 이런 놈들은 고향에서도 하등 쓸모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그래. 원하는  있나? 자네 덕에 요즘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야.”

왕은 껄껄 웃으며 자신의 기사, 카인을 흡족히 바라봤다.
그런 카인은 고개를 숙인 채 씩 웃었다.

“최근 설산 뒤쪽에 있는 아델리나 왕국이 강성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쪽과 문호를 열고 교류를 하면 좋을듯합니다.”
“원하는 걸 말하라 했더니 왕국을 위한 일을 제안하다니. 카인 자네는 대체...”

왕은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왕국을 위한 일이 곧 저를 위한 일입니다.”

왕의 환대를 받은 그는 알현실을 빠져나간 뒤 조용히 수정구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했다.

“나야 로즈 누님.”

설산 깊은 곳, 그들의 계획은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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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나와 엘레나는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기숙사도 어느 정도 튼튼하니 발현 마법을 좀만  연습하면 될 거 같다.

‘가서 하다가 쉬고… 내일은 마법 수업이 있으니깐. 그러고 보니 무슨 마법 개발인가 뭔가를 한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엘레나  개발…”
“안녕.”
“?”

엘레나에게 마법 개발에 대해 물으려던 찰나, 두명의 남학생이 우리 기숙사 방 앞에 서있었다.

“누구야?”
“물어볼게 좀 있어서.”

청색 머리의 남자는 씩 웃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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