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2. 익숙한 힘 (1)
* * *
“물어볼거?”
‘용사에 관련된 얘기인가?’
채림은 스스로 답을 내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용사에 관련된 질문을 자주 들어왔으니깐. 아무래도 A반에 입성한 용사는 다른 반의 용사들과 다르다.
A반은 마법 능력만이 아닌, 마법 지식이 있어야 반에 배정될 수 있다.
때문에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다른 반의 용사들은 꺼려 하고 싫어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A반의 용사만큼은 관심을 가진다.
“무슨 일인데?”
“이번에 마법 개발 시험이 있거든. 근데 이게 5명 팀이라서 말이지.”
청색 머리의 남학생은 웃으며 옆에 서있던 초록 머리의 학생을 소개시켰다.
“...안녕하세요. 루인 로니움님의 하인, 오드 비쉘 입니다.”
“...여자?”
“네.”
루인이라는 사람 뒤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여자였네. 워낙 중성적이게 생겨서 몰랐다.
옷도 판타지스럽지 않다.
마치 공상과학에 마법적인 부분이 섞인 것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유저 같지는 않은데…
“난 용사의 후예거든. 반도 너랑 같은 A반. 여기 비쉘도 마찬가지고.”
루인은 손을 내밀었다.
“실력은 보장할 수 있어. 너랑 그 옆에 영애분도 제법 뛰어난 거 같은데 우리랑 하면 높은 점수를─”
“거절하죠. 저희는 이미 팀원을 다 모아서.”
엘레나는 단호히 그의 말을 끊었다.
“어?”
“비켜주시겠습니까?”
“자, 잠깐.”
쿵!
“왜 거절한 거야? 쓸만해 보이던데.”
당황한 두 명을 문 앞에 둔 체 방안으로 들어온 엘레나에게 물었다.
엘레나는 의자에 조심스레 앉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연()이 없는 접근은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말했어.”
“...흐음?”
“그리고 뭔가 느낌도 안 좋았고. 인상도 별로.”
호록.
엘레나는 탁자에 놓인 차를 음미했다.
차를 마시는 것조차 귀족 같네.
“그럼 팀원은?”
“5명 팀원 제한이지만 꼭 5명이어야 하는 건 아니야. 너희 세계 말로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라고 하던데.”
...그런 건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보다 이 세계는 현대 문물에 많이 동화된 거 같다.
“그래서 마법 개발은 뭐 하는 건데?”
“말 그대로 독자적인 마법 개발을 한데. 전에 없는 마법.”
“...그런 게 가능해?”
기존의 존재하는 마법이 아닌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미 어지간한 마법들은 전부 누군가에 의해 개발된 상황이고 앞으로 만드는 것은 기존의 것의 레플리카. 즉 모작 정도의 마법일 것이다.
“어차피 아카데미니깐. 대마법사 수준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채림 너는 발현 마법을 성공시켰잖아.”
“...그거.”
안되는데.
“안되는데.”
“...안돼?”
“응.”
고고한 엘레나의 표정이 조금 무너졌다.
“흐음…”
굳게 닫힌 문.
루인은 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흥미가 있긴 했으나 어차피 확인만 하면 되는 거니깐.
“이대로 돌아가시나요.”
“지금만이 기회가 아니잖아? 어차피 하다 보면 또 볼 테고.”
루인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길쭉한 귀를 쫑긋 세웠다.
...안 들리네.
이 아카데미는 얼마나 견고히 지었는지 아무리 청각 강화 마법을 최대로 발휘해도 소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근데 쟤가 확실하지?”
“데이터 분석상 82.7% 확률로 확실합니다. 추출한 힘의 파장도 유사하고요.”
비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찾으라는 이상한 능력의 소유자.
한 10년 전쯤인가… 정령계에서 수련하고 있던 나를 부르더니 뜬금없이 이상한 능력을 쓰는 사람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1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고, 늦은 나이에 아카데미에까지 입학했다.
“근데 남자라 하지 않았어?”
“다른 인물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같은 능력을 지녔기에 저자를 조사하면 목표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아빠는?”
“늘 같은 곳에 계십니다.”
“하여간 쫄보야. 어떻게 엄마랑 결혼했는지 참.”
루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떴다.
다음날, 리엔의 수업.
“자 이번 시험은 마법 개발입니다. 다들 공고 보셨죠?”
리엔의 말에 학생들이 네~ 거리며 대답한다. 리엔은 웃으며 칠판에 마법의 선을 써 내려갔다.
“마법 개발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스윽.
붉은 선이 대각선을 그리듯 칠판을 가로질렀다.
“마법이라는 것은 결국 최소의 사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법칙만 기억한다면 마법에 대한 본질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가로지른 선은 구를 나타내듯 한바퀴를 뺑 돌았다.
선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중요한건 세 가지입니다. 소모되는 ‘자원’, 발현되는 ‘공식’, 도출되는 ‘결과’.”
선은 어느새 그럴듯한 붉은 마법진으로 변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파앗!
“와…”
“미친.”
“예쁘다…”
어느새 우리 눈앞에는 타오르는 붉은 꽃잎들이 우리의 사이사이를 지나갔다.
살짝 만져보니 비눗방울 터지듯 곧바로 불타 사라졌다.
“결과죠.”
“오…”
처음 보는 마법.
유해한 마법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유해하게 할 수 있는 마법이다.
게다가 평범한 마법 배열 같지도 않다.
뭔가 독자적인 마법식 같은…
“너무 과한 마법이 아니어도 됩니다. 어떤 종류의 마법이든 상관이 없고 자문이 필요하다면 이 정령에게 문의를 넣어주세요. 친절하게 답을 내줄 겁니다.”
그렇게 말한 리엔의 손 위로 불의 기체가 두둥실 떠다녔다.
거꾸로 된 검은색 반원의 눈이 부릅뜬 것이 엄청 귀여웠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리엔은 고개를 뒤로 뺐다.
“아! 참고로 발현을 성공시킨다면 언제든 말을 해주세요. 그럼 다음 수업에서 뵙죠.”
탁.
문을 닫치자마자 학생들의 시선이 교탁 위 정령에게 향했다.
어느새 교탁 앞은 인산인해로 변했다.
“신기하다 정령은 처음 봐.”
“숲에서 많이 보지 않았어?”
“그건 타락한 정령이지 진짜 정령은 처음이잖아.”
“말할 수 있어?”
여러 학생의 손길에 둘러싸인 정령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봤다.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를 멋대로 만지지 말도록.
“목소리 좋다.”
“그러게 난 톤 높고 아이 같은 목소리일 줄 알았는데.”
“동굴 같아.”
...
정령은 그 뒤로도 만짐 당하다 1시간이 지나서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드디어 대화 시간이 났다.
먼저 돌아간다는 엘레나를 먼저 보내니 어느새 교실에는 나와 정령밖에 남지 않았다.
“거기 정령아?”
무슨 일이지.
‘얘는 안 지치네.’
정령이라 그런가 1시간 동안 대화하고 만짐 당해도 처음 상태를 유지했다.
더 만질 거라면 그만두지.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아, 아니 물어볼 게 있어서.”
...
정령을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나한테 뭐 묻었나?
너 용사군.
“맞아.”
...
“왜?”
불편하군. 나중에 다시 말해라.
“어?”
어느새 정령은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정령이 사라진 교실에는 적막만이 돌았다.
‘피곤했나?’
아니면 그냥 용사라서 싫은건가.
용사 신분의 유저가 여러 가지 사고를 치긴 했으니깐…
“근데 내가 한 건 아닌데.”
채림은 살짝 억울한 감정에 머리를 긁적이며 교실을 벗어났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두달 째.
난 생각보다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맛있네.”
맨날 정신 나갈 걱정을 하며 괴수들을 잡아내는 것보다 마법을 배우며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게 훨씬 더 좋았다.
물론 마법 학교인 만큼 마력이 넘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해졌고, 설상 정신을 잃더라도 나를 제압해 줄 사람이 있으니 맘 편히 다닐 수 있었다.
마법 개발도 어느 정도 진행 중.
앞으로 한 주 정도면 완성이 될 거 같다.
“채림~”
“엘레나 왔어?”
풀썩.
아카데미의 꽃이라 불리는 광장.
봄 날씨의 화창한 빛이 내려오는 광장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뭐야? 그 구슬 같은 건?”
“먹어볼래?”
엘레나에게 내가 먹고있던 구슬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마법으로 작은 수저를 만든 그녀는 조금의 구슬을 담아 입안에 넣었다.
입안에 구슬을 오물오물거리던 엘레나는 띠용~ 거리는 효과음이 보인다 해도 믿을 정도로 눈이 커졌다.
“맜있어… 이런 건 처음 먹어보는데.”
“그치? 이건 우리 행성에서 먹던 거야. 같은 행성 출신 사람이 운영하는 걸 내가 사 왔지~”
“행성 출신… 용사?”
“응.”
냠.
엘레나는 뭔가를 생각하듯 고개를 끄덕이다 한 수저를 더 떠먹었다.
...두 개 사올 걸 그랬나.
“용사가 아이스크림 장수라…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솔직히 용사라는 건 잘 모르겠네.”
“응?”
“용사는 여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잖아. 보통 동화나 영웅서사를 보면 그들은 강하고 많아 봤자 열 명을 넘어가지 않던데.”
“그렇지.”
채림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채림 역시 이 말도 안 되는 용사 수에 기겁을 하고 있으니깐.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만 명이던 용사 수는 어느새 이만 명으로 불었다.
한 나라의 기사급이 이만 명.
“기사가 이만 명…?”
“응?”
“아, 아니야.”
순간 머리가 이상해질뻔했다.
아무튼 도대체 게임 운영자는 우리에게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용사라는 신분은 왜 계속 유지시키는 건지.
엘레나는 텅텅 빈 구슬 아이스크림 그릇을 보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 모습을 스스로 자각했는지 부끄러운 듯 큼큼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 그렇잖아. 용사가 너무 많으니 그들을 용사 취급해 줘야 하는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 마왕은 왜 또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고.”
“흐음~ 많으니깐 그중 할 사람만 해라. 뭐 그런 뜻 아닐까?”
“그거야말로 이상한 거 아니야? 여신님의 권능을 하지도 않을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내려준다는 소리잖아.”
“...모르겠다~ 나도 어쩌다 오게 된 거라.”
“물론 채림이는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지만! 자신감을 가져도 돼.”
엘레나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저 눈은 분명 뭔가를 원하는 눈이다.
“...아이스크림 더 먹고 싶어?”
“.......응.”
엘레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줄이 기네…”
엘레나와 함께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에 왔다.
그런데 워낙 유명한 가게라 줄이 엄청 길었다. 엄청 비싼 거라 몇개 사지도 못하는데…
‘엘레나가 있으니 많이 살 수 있겠지.’
가문의 영애인 엘레나가 있다면야, 옆을 보니 기대에 가득 찬 엘레나의 표정이 보였다.
...진짜 먹고 싶구나.
“아, 알겠어! 하여간 오래 살았으면 기다릴 줄 좀 알아야…”
‘뭐지?’
가게의 줄 맨 앞에는 수상하지만 익숙한 느낌의 남자가 허공에 대화하고 있다.
남자는 검은색 카드를 내밀었다.
“있는 거 다 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