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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화 〉 2. 익숙한 힘 (2) (130/318)

〈 130화 〉 2. 익숙한 힘 (2)

* * *

­

“저걸 다?”

채림은 기겁했다.

용사가 만든 구슬 아이스크림은 제법 가격이 나갔다.

일반 아이스크림이 아닌 유저의 개인특성과 마법 인첸트가 발린 아이스크림이라 어지간한 아이스크림보다 수십, 수백 배는 비쌌다.

먹으면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버프 아이템처럼 각종 스텟 상승효과까지 있는 디저트였으니까.

게다가 이곳의 디저트는 귀족들만 먹을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뭐야?”

“누가 다 샀는데?’

“저거 블랙카드 아니야?”

길게 늘어진 줄의 사람들은 앞의 남자를 보고 웅성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모든 아이스크림을 아공간 속에 집어넣은 채 자리를 떴다.

“자~ 오늘분은 다 팔렸습니다.”

“아니 우리는!”

“번호표 라도…”

“다음에 오세요!”

드르륵─ 쿵

이미 많은 돈을 번 가게 주인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가게 앞에 사람들은 욕설을 내뱉다 아쉬운 듯 자리를 떴다.

“더 먹고 싶었는데…”

“...”

“엘레나, 다음에 오자. 한번 만드는데 오래 걸리셔서 시간 좀 걸리겠지만 2주정도만 기다리… 에, 엘레나?”

뚜벅뚜벅 걸어간 엘레나는 어느새 허공에 대화하는 남자의 앞에 다가섰다.

“그래서 남은게 어디있는지 알아야… 누구?”

“아이스크림.”

“?”

“두 배 가격으로 조금만 살게요.”

아무리 먹고싶은건 알겠지만 저렇게까지…?

너무나도 당당하고 확고한 엘레나의 태도에 앞의 남자는 잠깐 정지하듯 멈췄다.

채림은 기겁했지만 엘레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마법 개발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지만 아직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

정령과 여러 교수, 가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긴 했으나 좀 더 다채로운 자료들이 있으면 마법의 결과가 더 올라갈 것이다.

그런 의미로 저 마법 아이스크림을 먹고 한다면 좀 더 완성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자부했다.

...아무튼 그렇다.

절대 아득바득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흐음…”

남자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한 엘레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미안. 이걸 먹고 싶어 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셔…”

지잉!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남자에게 화를 내듯 이마의 문양이 강하게 빛이 났다.

한참을 문양과 실랑이를 벌이던 남자는 큼큼 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리따운 미인분이 한 분 계셔서. 양보는 못해주겠네.”

“조… 조금만 이면 안될까요?”

“미안하지만 안되는 건 안돼…”

웃으며 말을 하던 남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엘레나가 뭐라뭐라 말했으나 여전히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그 5배라도… 되니깐─”

“줄게.”

“네?”

어느새 엘레나의 양손에는 구슬 아이스크림 한 박스가 들려있었다.

저거면 건물 하나를 살 수 있는 값인데.

아이스크림을 건네준 남자는 우리의 가슴팍에 놓인 브로치를 확인했다.

“아카데미?”

“아, 네. 저희는 리론 아카데미 학생이에요.”

“흐음… 오케이. 맛있게 먹으렴.”

“자, 잠만요! 돈은?”

금화주머니를 잔뜩 꺼내든 엘레나를 뒤로 한 체 어느새 남자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뭘까 채림?”

“...그러게?”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익숙한 느낌의 한국 사람. 분명 처음 보는데 왜 익숙하게 느껴진 걸까.

그리고 나를 왜 뚫어져라 바라본 걸까.

“후아아아… 맛있겠다.”

의문을 가지기에는 아이스크림의 맛이 너무 기대됐다.

­

“여기서 찾을 줄 몰랐는데.”

─...허튼짓하는 거 아니지?

“뭣하러.”

남자는 웃으며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돌아가는 두 여학생을 내려다봤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 시기쯤 모습을 드러냈다.

“하페루아. 질투는 한 명으로 충분하지 않아? 너 때문에 다윤이가 떨어져 다니는 건데.”

─...죽여버린다.

“그래서 쟤가 맞는 거지?”

─어.

신경질적인 말투가 선명히 느껴진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난 모양이다.

“아이스크림 뺏긴 게 그렇게 분해?”

─아니.

“거짓말은 못하겠고… 그럼 뭐가 그렇게 분하실까, 행성 최고 미인씨?”

─…너 그러다 진짜 죽어, 김윤.

­

“뭐, 뭐야?”

“아이~스크림~.”

학교 조별 연구실로 들어온 우리는 팀원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었다.

원래 같이 일을 진행하던 덴과 용족 하프인 무르 미르.

미르는 뛰어난 마력과 용족 특유의 마법 재능을 보고 영입했다.

기다랗게 올라온 새햐얀 뿔과 머리카락이 그녀의 특징이었다.

그녀는 청안(?)의 눈을 싱긋 웃어 보이며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엘레나, 채림.”

“아냐. 다들 고생하는데 먹고 해야지.”

“후훗. 오! 맛있군요.”

미르는 형형색색의 구슬 아이스크림을 넣고 황홀한 표정이 되었다.

덴 역시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마이땅.”

“후후… 맛있네.”

“맛있어 엘레나?”

“응.”

무려 한 박스짜리라 4명이 먹어도 줄어든 티가나지 않았다.

이걸 동결 마법으로 얼려 두고두고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황홀했다.

그렇다고 너무 황홀하면 곤란하고.

엘레나는 수저를 입에 물며 말했다.

“근데 그 사람은 누굴까.”

“그러게… 이 비싼 걸 그냥 내어주고 말이야.”

“많이 사긴 했는데…”

가게의 전부를 샀으니 한 5통 정도는 산 걸로 보였지만 문제는 그 5통이면 건물이 다섯 채다.

심지어 그냥 건물이 아닌 엔도라시의 중심지에 위치할 정도로 비싼 건물.

그런 걸 돈도 안 받고 그냥 내주다니.

“흐음... 채림 너랑 아는 사이 아니야? 그 남자가 너만 바라보던데.“

“처음 봤는걸…”

“아니면 용사라서?”

“거기에 용사만 수십 명 있었는걸.”

“그러면… 음… 너가 마음에 들었나?”

“켁, 어?”

“그러지 않고서야 이 비싼 걸 줄리가 없지 않나.”

벌써 3개의 종이 그릇을 깐 엘레나가 나를 바라봤다.

나를? 나를 왜?

으음…

“근데 준 건 엘레나 너 아니야? 나보단 네가 더 마음에 들거 같은데.”

“......”

“게다가 너는 이쁘고, 가문의 영애기도 하고, 아카데미의 뛰어난 재학생─”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왜? 사실인데.”

“...”

진짜 왜 준거지?

­

“왜 준거에요?”

천공의 섬.

280레벨 때의 비행 괴수들이 득실득실 거리는 곳.

어지간한 신들도 선뜻 들어갈 수 없는 위험한 곳이지만 그곳에는 괴수들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푸른색의 앵무새를 이고 있는 녹색머리의 여자가 이마를 만지작거리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반쯤 누워 있듯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먹고 싶어 하잖아.”

“...저도 챙겨달라고 말했는데 하나도 안 챙겨 주셨네요..”

그녀의 녹안이 마음이 상한듯 찌푸려졌다.

“다 준 건 아니야. 남아 있다고.”

“저건 다윤 님 거잖아요.”

“...”

부정할 수 없네.

저 얼음 마법으로 동결된 냉장고에는 방금 사 온 구슬 아이스크림이 두 박스가 들어있다.

그리고 저 냉장고는 특수한 반지의 기운을 받아야만 이 열리게 되어있다.

“저도 좀 챙겨주세요. 스승님.”

“...루아야. 살다 보면 순서가 있을때가 있는거야. 하페루아가 먼저 부탁을 했으니… 그러고 보니 이름이 비슷하네. 아무튼, 다윤이는 수련 중이니깐 지금 당장은 만나기 힘드니 보관해 둔 거─”

“전 그분들 만큼 매력이 없나 봐요.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

어지럽네.

이럴 때 베린이나 콜트가 있어야 되는데.

하필 다들 자리를 비워가지고.

“뭔 소리야 갑자기.”

“아니, 그렇잖아요. 앞선 두 분은 연도 있고 이유가 있으니 뭐 그렇다 치는데, 8개월이나 먼저 들어온 제가 처음 만난 꼬맹이한테 밀릴 이유가 뭐가 있죠?”

“오해하는 게 있는데 누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논하는 게 아니야. 필요하니깐 내어준 거라고. 말할 순 없지만 걔한테 있는─”

“저는 안 필요한가 봐요. 전 그냥 사무 셔틀에 불과한가요?”

“......”

루아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머리 위에 놓인 앵무새도 나를 질책하듯 날개를 펄럭였다.

분명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성격이 바뀌었는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거면 됐지?”

나는 모작으로 만들어낸 구슬 아이스크림을 내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특이점을 0.3초쯤 사용하긴 했으나 그렇게 크게 안 건드렸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 난리치는 하페루아의 모습이 훤하지만 어쩔 수 없지.

말은 그렇게 해도 이해는 해줄 거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

“으음~ 아! 스승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황홀하게 아이스크림을 음미하던 루아는 번뜩이듯 나를 쳐다봤다.

“? 뭘.”

“최근 여러 길드들의 정세가 심상치 않아요. 소문으로는 ‘대몰살’이 진짜로 실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흐음.”

대몰살.

용사 정보상에서 암암리에 퍼지는 이야기다.

대형 길드들이 손을 잡고 용사, 즉 유저를 학살하려 한다는 얘기.

이유는 당연히 용사의 희소성 문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용사는 가치와 희소성을 떨어트리니깐.

‘이제는 더 이상 ‘무한 부활’도 아니니깐.’

더 이상 이곳은 게임이 아니게 됐다.

“게임은 맞지만.”

“네?”

“크게 상관 안 해도 돼. 어차피 일이 터지면 그런 것쯤 애들 장난이니깐.”

대몰살이니 뭐니는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당장은 흩어진 것들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

“완성이야?”

“응.”

“제법 오래 걸렸군요. 그래도 두 분 덕분에 좀 더 진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험까지 단 3일 전.

우리는 마법을 완성했다.

회색의 마법진에는 문을 여는듯한 형상의 문양이 박혀있었고, 문의 틀에는 특수한 마나 배열식이 얽히듯 놓여 있었다.

“마법의 이름은 해츨링 스폰(hatchling Spawn)입니다.”

미르가 종이에 놓인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자 허공에 생겨난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열린 문에서 작은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뀨르륵.

“드래곤?”

“정확히는 마나 드래곤입니다. 실제 생명은 아니고요.”

마나의 결정체로 이루어진 드래곤이 우리를 바라봤다. 에메랄드빛의 몸체를 가진 드래곤은 마치 작은 도마뱀 같기도 했다.

“귀여워.”

“귀엽네.”

“무, 무는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술자에게는 안전하니깐요.”

­뀨륵.

드래곤은 어느새 미르의 목에 목도리처럼 휘감겼다.

반쯤 감긴 눈은 금방 잠들 것처럼 피곤해 보였다.

“졸린가봐.”

“아이는 잠을 많이 자니깐요.”

‘그런데…’

한눈에 봐도 마나가 제법 느껴지는데 멀쩡하네?

원래는 마법 개발 도중에 자주정신이 나갔었는데.

「▼─ 」

어째서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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