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4화 〉 4. 아델리나 왕국 (1) (144/318)

〈 144화 〉 4. 아델리나 왕국 (1)

* * *

­

“...흠.”

나는 거리를 걸었다.

신생 왕국이지만 역사 자체는 그리 짧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다른 왕국에 비해, 그리고 ‘알려진’ 소문에 비하면 짧다는 뜻이고 발전에 가속이 붙은 만큼 대도시 수준의 가까웠다.

“왜 이제 왔어!”

“아, 하늘 쪽 놈들이 기세를 부려서 말입니다.”

“아씨 마탑도 난리인데 아주 그냥…”

이미 진작에 한계치를 찍은 청각 강화를 통해 여러 얘기들을 듣는다.

“근데 왕자는 어딨는 거야?”

“자세히는 모릅니다. 소문에 의하면 다른 왕국으로 갔다는…”

“빨리 찾아야 돼. 그래야 왕국을 먹을 수…”

역시 여러 길드들이 이곳을 집어삼키려 들고 있다.

아델리나 왕국은 물질적으로나 전력적으로나 이득만 가득한 곳이다.

뒤쪽의 설산으로는 여러 왕국과 좋은 외교를 띄고 있고 앞쪽의 바다로는 해상 무역을, 동쪽과 서쪽으로는 적당한 수준의 괴수와 질 좋은 자원들이 잠들어있다.

그야말로 지리적으로 최상위권에 속하는 땅.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리나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다른 이들에게 함락당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리나가 없는 왕국은 허울뿐인 왕국이란 소리다.

때문에 리나를 이기기보다는 리나 자체의 마음을 사는 것을 노리는 이들이 많다.

‘...라고 했었지.’

하페루아에게 미리 전달받은 내용.

그닥 흥미로운 얘기들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 리나는 그저 회수해야 할 특이점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이쯤일 텐데...”

평화적으로 내어주면 좋겠다만 당연히 그럴 리는 없고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무작정 쳐들어가서 특이점을 회수하면 리나는 평범한 수준의 강자가 될 것이고, 최종 병기를 잃은 왕국은 삽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물론 왕국이 무너지든 말든 별로 상관은 없지만 괜히 사건을 크게 만들어 관리자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

‘...지금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

나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

이겼다.

승리한 것이다.

“...흐흠.”

“뽀기해라.”

“그만.”

“뽀기… 끄끅…”

“그만그만! 멈춰!”

기숙사로 돌아온 미르는 정신 나갔던 채림을 따라 하며 배꼽 잡고 웃었고, 엘레나는 차라리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쿡쿡 웃었다.

“나쁜 기집애들…”

“끄끅… 아, 최고였어요. 채림.”

“맞아, 최고였어.”

“...”

굉장히 쪽팔린 사건을 또다시 만들어냈지만 어찌 됐건 승리한 채림은 잠시 휴식상태에 들어가 있다.

원래대로라면 1~2시간 후에 바로 결승전이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경기장의 안전 문제로 하루 정도의 여유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몸 상태야 기기와 추가적인 치료를 받으니 언제 해도 상관은 없다.

정신적인 건…

“크흠.”

쪽팔린 거만 빼면 문제없다.

“마지막…”

마지막 상대는 로브를 두른 남학생.

워낙 정보가 없다 보니 누군지, 또 무슨 마법을 구사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아는 정보라곤 검을 사용한다는 것?

“...A팀도 아닌거 같은데… B팀에서 올라올 수가 있었나?”

“마지막 상대요?”

“응. 혹시 아는 정보라도 있어?”

만일 술래잡기 때 A팀과 B팀. 모두 술래를 잡지 못했다면 가장 높은 대미지를 입힌 팀이 8명, 그렇지 못한 팀이 2명이 올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A팀은 술래를 아예 잡아버렸으니 A팀 10명이 올라왔어야 한다.

그렇지만 결승에 올라온 남자는 A팀에서 본 적이 없다.

미르는 머리를 긁적히며 긴가민가하게 말했다.

“교수님들끼리 경기장에서 정비하면서 얼핏 들은 것 같긴 한데, 음… 확실하진 않습니다.”

“뭔데?”

“원래는 A팀 10명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1명이 불참하게 되면서 B팀에서 1명 뽑았다고 하더군요.”

“잉?”

“들은 바로는 무기술 교수에게 유효타를 5대 가까이 입힌 것이 뽑힌 이유라고 합니다. 그 정도 강자를 떨어트리기 아까웠는지...”

그 무기술 교수를?

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의 실력자란 말이지…

“좋아. 기대되네.”

얼마나 강하든 나 역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

“...무슨 일이냐.”

“일은 잘 돼가시나 해서 찾아왔습니다.”

짙은 어둠이 드리내리운 방.

결승전 참여자의 방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어두운 방 속 남자는 혼자 앉아있었다.

아니, ‘그들’은 함께 있었다.

남자의 이면이 말했다.

“반드시 우승하셔야 합니다. 레진 ‘왕자’님.”

“...흥. 네놈이 힘을 잘 써야 우승을 할 거 아니냐.”

“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하. 이면은 가식적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을 듣는 레진은 불쾌함을 느꼈다.

원래라면 상종도 안 할 것들이다만...

‘왕국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리나, 그 건방진 년에게 왕위을 넘겨줄 순 없다.

“일이 마무리되는 데로 왕국으로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쪽도 준비를 해놓죠.”

“그래.”

후욱.

이면은 자취를 감췄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레진은 자신의 무구를 펭그르 돌렸다.

“건방진 놈.”

­

설산을 등진 아델리아의 항구.

뒤가 설산이지만 항구 쪽은 따뜻할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바다가 펼쳐진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질 정도의 탁 트인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배들이 줄지어 항구로들어왔다.

“후하… 뱃멀미…”

“포션 먹던가.”

“시끄러워.”

“그래서 리나를 죽이면 된다고?”

“...”

각자 서로의 말을 내뱉으며 거대한 배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4대 길드 중 하나인 ‘하늘’.

수많은 랭커로 이루어진 용사 길드는 어지간한 왕국들이 여러개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나… 둘… 열넷...”

그중 배에서 끝까지 내리지 않은 여자아이가 숫자를 세며 사람들을 내려보냈다.

장밋빛의 머리카락은 바닷바람에 흩날렸고, 작디작은 손가락이 종이와 사람들을 가리켰다.

“스물셋… 나까지 스물넷.”

폴짝.

숫자를 다센 여자아이는 마치 효과음이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폴짝 뛰어 배에서 내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네~ 로즈 언니~”

“일할 때는 길드장님이라고 불러.”

“치... 언니는 이럴 때만 냉정해.”

“냉정해야 별 탈 없이 끝나지.”

시무룩해진 갈색 머리의 여자 길드원을 흘겨본 로즈는 종이를 집어넣었다.

하나하나가 하늘 길드의 정예들.

이번 ‘왕국 강탈전’을 위해 전력의 20%를 투자했다.

“어떻게, 바로 그 공주라는 년을 족치면 됩니까?”

물은 것은 등 뒤에 거대한 쌍도끼를 걸친 남자. 우락부락한 근육과 그에 걸맞은 힘이 남자의 특징이었다.

로즈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깔끔하게 처리해야 돼. 카인이 판 짜놨다니깐 그거에 맞춰서 한다.”

“아~ 그냥 족치고 싶은데.”

“그럼 끝나고 도전하든 말든 하던가.”

“진짜죠? 리나 족치고 가져도 되는 겁니까?”

“그래~”

로즈는 으웩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길드의 확장을 위해 쓸만한 놈들을 여럿 받다 보니 성격이 이상한 놈들이 한둘 있다.

다소 거슬리긴 했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만하고 적어도 길드에 ‘민폐’는 안 끼치니깐.

‘길드에 민폐라…’

민폐 하니깐 생각나네.

그 많던 레이드를 죄다 망치고 사과 한 번하고 도망간 년.

통합 서버를 들어온 이후로 본 적은 없지만 분명 들어오긴 했을거다. 그 능력에 그 수준이면 통합 서버 정도야 못 뚫을 리가 없으니깐.

물론 발견하더라도 김민수가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걔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김민수를 이길 정도는 아니다.

갈색 머리의 여자 길드원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아! 길드장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뭐가?”

“리론 아카데미 마법 대전이 한참 진행 중이래요.”

“그게 왜.”

“왜냐뇨! 길드장님도 아카데미 잠깐 입학한 적이 있잖아요.”

길드원들을 이끌던 로즈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그리고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아주 잠깐의 수업. 그리고 마탑 그 버러─

‘...시발.’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닥쳐.”

“네?”

후…

제발 이번에는 카린 그 기집애을 만나지 않기를.

로즈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올해는 손님이 많네요.”

아델리나 왕국이 한눈에 가장 잘 보이는 왕성의 알현실.

왕국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왕국의 힘이라고 불리는 아데르 리나는 창가를 내려다 보았다.

작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입국했다.

그중에는 리나조차 움찔할 정도의 강자들도 제법 들어왔다.

강자가 우위에 서는 세계인 만큼, 수많은 강자들의 유입은 왕국을 위태위태하게 만들 수 있다.

허나 수많은 대신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후훗. 이번에는 제발 2 합을 넘어서는 대결 상대가 있으면 좋겠네요.”

그들을 막아내는 리나는 가히 무신(??)이라 불리는 존재기에.

여태까지 그들을 잘 막아왔고, 앞으로도 절대 뚫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돌아본 그녀의 눈에는 검은 머리의 용사가 시야를 메우고 있었다.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이자 흔하디흔한 인물.

허나 느껴지는 능력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이거 맛있네. 여기 특산물인가?”

“...아뇨. 그건 특산물이 아닙니다. 바다 건너의 땅에서 무역해 온 카카오를 2차 가공한 거죠.”

“흐음…”

남자는 초콜릿 과자를 맛있다는 듯이 먹었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이렇게 외부인을, 그것도 남자를 성내에 들여 단독으로 마주하는 일은 여태껏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남자는 무슨 수를 부렸는지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나와의 독대를 요청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뭐예요?”

“아데르 리나.”

“네.”

“너를 이기면 너와 결혼을 한다고 들었어.”

“그렇죠.”

역시 이 남자도 마찬가지 인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곳에 오는 강자들은 모두 자신과 겨루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니깐.

그리고 겨루는 이유는 무조건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제국적인 이유가 됐든, 물질적인 이유가 됐든, 내가 됐든 뭐든간에.

“대결은 언제 할 수 있지?”

“일주일 뒤요. 당신같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말이죠.”

리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치 너같이 나와 결혼하기 위해 발악하는 녀석들이 발에 치인다~ 라는 듯이.

그러나 남자의 다음 말은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뭔 소리야. 결혼 안 할 건데.”

“...뭐라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