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 4. 아델리나 왕국 (2) (145/318)

〈 145화 〉 4. 아델리나 왕국 (2)

* * *

­

리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왜 나와 대결을 하려는 것인가.

“결혼은 안 하고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 그걸로 충분하거든.”

“...”

이상한 남자.

만일 시내에서 만난 도전자 거나, ‘대전장’에서 만난 흔한 도전자라면 콧방귀를 치면서 무시했을 것이다.

허나 눈앞의 이 남자는 달랐다.

자신조차 움찔할 정도의 강함을 가진 용사. 무슨 수를 썼는지 성내에서 단둘이 독대를 하고 있다.

독대를 받아들인 것도 어떤 수를 부린지 흥미가 있었고, 1년 만에 다시 시작된 대결이기에 기대감을 가진 것도 있었다.

기대를 가진만큼 눈앞에 남자는 시내에 평범한 도전자들과 달랐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진짜’.

그런 남자가 결혼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니.

“혹시 왕국을 노리는 건가요?”

“왕위는 필요 없어.”

“아니면 돈?”

“돈은 많고.”

“...그럼 뭣 때문에 나를 이길려는 거죠? 아니, 나 정도면...”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어디 가서 미모가 꿇린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데르 리나의 미모는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하고, 리나가 시내로 나선 날은 그녀를 보기 위해 항상 그 주위가 인산인해로 변한다.

실제로 다른 것들은 필요 없이 오직 리나만을 얻기 위해 도전하는 도전자들이 득실득실하다.

“흠… 지금 말하면 안 들어줄 것 같아.”

“...뭔데요?”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오늘 처음 만났고, 싸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패배한 기분이다.

맘 같아선 이 자리에서 검을 뽑고 휘두르고 싶다.

“한 가지 말해주자면 너와 왕국은 안전할 거야. 당연히 결혼은 안 할─”

카칵─!

“...!”

“벌써 싸우면 나야 좋긴 한데.”

‘막았어?!’

리나는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전력은 아니더라도 제법 힘을 쓴 공격이었는데 너무나도 쉽게 막아버렸다.

백색의 검을 내린 남자가 말했다.

“난 상관없는데 성이 문제이지 않나?”

“...아뇨, 미안합니다. 일주일 뒤에 뵙죠.”

리나가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끄덕이며 그대로 하인의 안내를 받아 나갔다.

“...하아.”

뭘까 이 기분은.

리나는 자리에 풀석 앉아 방금 전의 공방에 대해 떠올렸다.

그는 뒤를 돌고 있었다.

그리고 검을 내리쳤다.

그리고 막았다.

‘...그 짧은 찰나에 검을 소환해 막았어.’

어지간한 육체 능력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

설령 뽑아내 막는다고 해도 준비를 갖추고 내리친 위력과 급하게 소환해 막아낸 위력이 같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공격이 무로 돌아갔다는 것은…

“나와 그 남자의 차이가 제법 난다는 거겠지.”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드디어… 드디어…!

나와 합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그 남자는 과연 얼마나 강할까. 전력을 사용한 나와 얼마만큼의 합을 나눌 수 있을까.

그녀의 왼손에 들린 검이 파르르 떨렸다.

­

“흐음…”

뚜벅뚜벅.

성을 나오면서 김윤은 생각했다.

‘...나쁘진 않았어.’

생각보다 검격이 날카로웠다.

지금껏 여러 고수들과 신, 악마들을 봐온 나로서 평가하자면 상당히 상위권에 있는 수준.

왕국의 공주가 저 정도의 무력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그러고 보니 하나 더 있지?’

왕국을 뛰어넘는 무력을 가진 공주.

─뭐.

“아냐.”

언제 듣고 있었대.

하페루아는 문양 너머로 나를 빤히 노려보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다.

딴 거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내가 부르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면 어지간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도 뭐하나 볼까.’

「▲맹약 」

맹약.

대가를 바탕으로 한 계약으로, 원한다면 서로가 어디서 뭘 하는지 지켜볼 수 있다.

나는 문양 ‘너머’를 바라보았다.

보랏빛의 샹들리에가 환하게 비추는 곳. 판타지와는 제법 거리가 먼 가구들이 배치된 하페루아의 방.

이전에 숨겨둔 방과는 다르게 하페루아가 직접 머무르는 곳이다.

역시 공주님답게 깔끔한 형태의 방이 눈에 띄었다. 하페루아는 쉬는 방이 아닌 욕조에 있다.

욕조 역시 귀족적인 느낌이 물씬 든다.

그리고 그 안에...

─...아기 오리?

“…! 뭐, 뭘 보는거야!!”

파직!

「▲맹약 」

「▲맹약 」

「▲맹약 」

「▲맹약 」

─미친! 적당히 써!

“그, 그러니깐 왜 봐!”

─너도 나 맨날 보잖아.

“...”

아기 오리를 둥둥 띄운 체 욕조에 몸을 담근 하페루아가 보였다.

안 어울리게 오리를…

심지어 장난감도 아니고 진짜 아기 오리다.

하페루아는 몸을 깊게 담가 눈만 드러내, 허공에서 지켜보는 나를 노려봤다.

“...계속 볼 거야?!”

─아, 알았어.

「▲맹약 」

세삼스럽게 느끼지만 참 까딸스러운 공주님이다.

“도전자님이신가요?”

“?”

성을 빠져나가려던 도중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짙은 남색의 짧은 머리카락과 자수정을 닮은 눈. 귀족적인 옷이 어린 남자의 기품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리나와 닮았다.

“리나의 동생인가?”

“네. 저는 아데르 아론입니다.”

중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아론은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위계 순위가 밀린다고 해도 이렇게 고개를 숙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

내 의중을 읽은 듯 아론이 말했다.

“누님이 성내에 들이신 외부인은 처음이시거든요. 당연히 그만한 위치에 있으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리나의 신랑 후보에 가까워서?”

“네!”

그렇게 말한 아론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워낙 작은 체구를 보니 베린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달라진 건 없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래 아론, 혹시 뭐 꿀팁같은 거 없니?”

“꿀팁… 이요?”

“유익한 정보 말이야. 리나가 좋아하는거 라든지.”

“아!”

아론은 턱을 짚고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소곤거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누님은 단 걸 싫어합니다.”

“단 걸 싫어한다고?”

그렇다기에는 초콜릿 과자를 잘만 먹던데.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누님은 단 걸 먹으면 능력이 저하되거든요. 때문에 대결을 앞에 두면 항상 단 걸 멀리하십니다.”

“단 걸 좋아하기는 한다 이거지?”

“네.”

“...너무 위험한 정보를 주는 거 아니야?”

리나를 이기면 리나와 결혼을 한다.

왕국을 필두로 공신력 있게 세운 약속인 만큼 어지간해서 무르는 게 불가능하다.

때문에 단 걸 먹으면 능력이 저하된다는 걸 알게 되면 억지로라도 단 걸 먹이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굳이 입으로 먹이는 게 아니라 공기중에 퍼트린다던가, 마법으로 강제 이동시킨다던가 방법은 많으니깐.

“괜찮아요! 어차피 급격히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누님은 엄청 강하시거든요.”

아론은 상관없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절대 자신의 누나가 질리가 없다는 표정.

“그래. 보면 알겠지.”

나는 사람 좋은 미소로 웃어줬다.

­

아델리나 왕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뛰어난 만큼 관광산업도 꽤나 발달된 구역이다.

북쪽으로 가면 겨울이, 남쪽으로 가면 여름, 그 외의 다른 방향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봄이나 가을처럼 따사하고 선선한 날씨를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아델리나 왕국은 대지의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특수함을 가지고 있다.

“나쁘지 않네.”

평화롭게 도시를 걷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난다.

1년전, 그리고 그보다 전에도 다윤, 베린, 이랑… 같은 일행들과 여정을 떠나던 때.

지금은 각자의 수련과 나의 일 때문에 잠시 떨어졌지만 곧 만날 날이 오겠지.

“...그니깐! 왜! 여기 다 빌린다니깐!”

“...?”

나의 감상을 깨는 악바리가 들렸다.

감각을 집중해보니 여러 명의 인물이 윽박지르듯 쏘아붙였다. 그에 사과하듯 반대편에 있던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미 예약이 되어있는 터라…”

“하~ 답답하네. 우리가 3배로 쳐준다고! 당신 이득이고 우리 편하고, 1석2조 아냐?”

“하지만 이전 손님과의 신뢰가…”

“하… 진짜.”

거구의 남자는 깔끔한 복장을 입은 가게 주인에게 계속해서 윽박질렀으나 주인은 굽힐 생각이 없다는 듯 거절 의사를 밝혔다.

남자는 금방이라도 등에 걸친 무기를 뽑아 들려했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손만 바들바들 떠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야.”

“아! 길드장님. 그게...”

어느새 가게로 들어온 작은 여자아이에게 여러 사람들이 쑥덕쑥덕 얘기를 나눴다.

‘...저거 로즈 아닌가?’

하늘 길드의 수장이자 다윤과 연관되어 있는 인물.

순간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

로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꾸욱 눌렀다.

가뜩이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데 고작 숙소 때문에 이 난리 라니.

“아 시끄러. 숙소가 여기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 그래도 여기가 가장 좋습니다. 길드장님.”

“맞아요~ 제가 알아봤는데 식사도 좋고 특수한 편의 마법이 내장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숙소란 말이에요.”

“그냥 딴 데…”

“아! 그리고 로즈 언니가 좋아하는 전신 안마기도 있다던데.”

“...안마기?”

머리를 누르던 로즈의 손이 멈칫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갈색 머리의 여자 길드원, 멜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특수 골렘에 전자 기기까지 들어가서 엄청 좋데요. 기왕 쉬는거 편하게…”

“...”

요즘 많이 지치긴 했으니깐…

현실에서나 여기서나 특성의 페널티 때문에 근육통이 잦았던 로즈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번만이야.”

“역시 언니!”

“길드장님이라고 부르라고.”

로즈는 네, 길드장님! 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한 멜리사를 뒤로한 채 여전히 완고한 태도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예약이 누가 되어있는 거죠.”

“가게 손님들에 대한 정보는 비밀입니다.”

“그럼 제가 보죠.”

“네?”

그녀의 오른손이 까닥 움직이자 머리에 새를 이고 있던 남자의 눈이 감겼다.

그러자 자연스레 정보가 그녀에게 들어왔다.

‘엔더 왓슨. 유저인가? 뭔 놈의 방을 이렇게 많이 예약했어.’

로즈가 예약된 손님의 정보를 파악하는 사이 누구가 가게에 들어왔다.

“아! 엔더님! 오셨군요.”

“제 방은 잘 있겠죠?”

“아, 그럼요. 물론입니다.”

가게 주인과 대화하는 노란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서양적인 외모의 남자.

처음보는 인물이었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뭐지 뭔가 익숙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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