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6화 〉 6. 선별 (4) (156/318)

〈 156화 〉 6. 선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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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머리가 어지럽다.

몸에 가득 찬 마나가 조금씩 역류하고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시야가 점차 흐려진다.

“언니… 저 괜찮─”

“조용히 있어.”

카린은 피로 점칠된 초미를 보호막으로 감싸며 다른 손으로 지팡이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그 역시 꽤나 다친 듯 신체 일부가 여럿 떨어져 나갔지만, 웃음 하나만큼은 처음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역시…! 괜히 마탑의 수장이 아니군요. 대단하십니다.”

“한 발자국.”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군요.”

사도의 어둠이 주변을 장악한다.

카린은 마성에 도달한 마법사로 어지간한 마법이 아니면 그녀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대는 어둠의 신의 능력을 하사받은 흑마법사.

평범한 마법에 있어 대척점에 있는 흑마법은 극상성이라 불릴 정도로 치명적 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마왕의 성, 하펠론.

비록 열화판이기에 마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곳에 드리운 어둠이 흑마법의 위용과 기세를 더욱 높여주었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와봐. 그 즉시 목이 날아갈 테니깐.”

보랏빛 마력이 담긴 지팡이는 금방이라도 마력을 쏟아낼 듯 거세게 진동했다.

대마법사쯤 되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고유한 시그니처 마법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마성에 도달한 마법사라면 흑마법 정도의 상성의 차이쯤은 가볍게 무효화 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뚜벅.

“흐음~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닐까요?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닐지...”

“...”

“선택을 잘 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마력을 나눠 회복시키고 있는 초미.

그저 팔다리를 자르는 정도로 상대의 목숨에 손속을 둔 게 문제였다.

한방에 끝내지 못해 초미의 상처에 흑마법이 스며들었고, 회복 마법의 속도와 효율을 급격히 하락했다.

비유하자면 밑빠진 독에 물을 잔뜩 퍼다나르는 상황.

이미 죽음에 가까운 초미를 살리고 있는 것도 마성과 뛰어난 마력 특성을 지닌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소모전만 지속될 뿐.

눈앞의 적은 절대 저지할 수 없다.

‘아직도 ‘저지’인가…’

카린은 처량하게 들려있는 지팡이를 꽈악 쥐었다.

또, 또 나를 흔든다.

죽음이라는 것.

단순히 게임이 아닌 다신 부활할 수 없는 현실.

살인이라는 행동의 중압감과 두려움이 그녀의 마법 시전을 망설이고 있었다.

손만 까딱이면 도시 하나도 몰살시킬 수 있음에도,

남들 모두가 경외하는 힘을 가졌음에도,

그 누구보다 손쉽게 이 상황을 만회할 수 있음에도.

그녀는 도저히 누군가를 죽일 수 없었다.

분명 이자를 놓치면 다른 누군가가 죽을 걸 알면서도.

나는.

“하…”

“포기하신 겁니까?”

“...”

“하하! 그렇군요. 역시 빛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카린님이십니다!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 그 누구도 죽이려 들지 않는 성정!”

웃음소리가 반파된 층에 울려퍼지고 어둠으로 가득찬 광인(?人). 아니, 사도가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같은 행성의 출신으로서 당신의 뜻을 존중합니다.”

“......”

“근데, 그거 아십니까?”

뚜벅.

“저는 이대로 도망칠 겁니다.”

뚜벅.

“제가 어찌 당신을 이기겠습니까. 무려 마탑의 길드장이자 마성에 도달한 유일한 용사를. 제가 백날 도전해도 당신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뚜벅.

“하지만 당신을 절 놓아주어야겠죠.”

어느새 그는 손을 뻗으면 지팡이를 만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손이 보랏빛 보석에 닿자 푸시시─ 거리며 타들어 갔다.

타들어간 손은 다시 재생되어 더욱더 강하게 지팡이를 붙들었다.

“그 어리석은 성정이 당신의 발목을 잡을 테니까.”

그어놓은 선이 거칠게 요동친다.

안다.

알고 있다.

이게 위선(?)이라는 것을.

애초에 카린은 이미 수만의 마수를 죽여왔다.

그중에는 충분한 의사를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 역시 생각하고,

그들 역시 행복하길 바라며,

그들 역시 죽기를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그들을 죽였다.

그녀의 마법이 발하면 수백의 마수가 쓸려나갔고, 그녀의 동료들이 마수와 사람들을 죽이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

그런데 인간은 못 죽이겠다고?

“아냐…”

난 남들이 말하는 천사가 아니다.

착한 것도 아니다.

그저…

두려운 거다.

그저 오랫동안 정해놓은 기준을 깨기가 두려워서.

눈과 귀를 가린 체 천사 같고 착한 모습으로 남고 싶어서.

게임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게임이 된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적응하기 위해서.

그래서.

“어…?”

나는, 오랫동안 그어놓은 선을 지워버렸다.

퉁…

퉁퉁퉁…툭.

흑마법의 주체가 끊어지자 초미의 상태가 급속도로 회복된다.

그러나 그와 별게로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 그녀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어, 언니…”

"가자.”

그녀는 색을 잃은 눈으로 꽉 막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은 그녀의 시야를 꽉 막히게 만들었다.

“저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막아야지.”

그래, 어쩌면 이곳은 이미 더 이상 게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의 만행을 두고볼 수 없다.

악은 더 큰 악을 잡기 위해 탑을 올랐다.

­

“카인.”

“아, 누님 여기 있었네.”

88층.

하늘 길드원 4명을 추가로 모은 로즈는 카인을 다시 마주했다.

잔뜩 해진 옷과 포션으로 치료 안되는 상처를 보면 꽤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앨리스는?”

“몰라 싸우다 튀었거든. 급하게 튀느라 좀 다쳤는데… 뭐, 알아서 낫겠지.”

카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용병으로 불러온 이상, 이렇게 다치게 하면 로즈로서 손해였다.

“알아서 나으면 안되지. 둠! 얘 신성력으로 치료좀 해줘.”

머리에 새를 이고 있는 둠은 손에 빛을 내며 카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카인은 두 손을 저으며 치료를 거절했다.

“아, 됐어. 어차피 금방 나아. 마기를 이용한 흑마법도 아니어서 금방 풀릴 거야.”

“그래도 하는 게 낫지.”

“아, 괜찮다니깐!”

“지금은 내가 니 길드장이니까 내 말 따라라.”

로즈는 물러서지 않았다.

상처에 스며든 흑마법은 시간이 지나거나 그에 반하는 신성력을 사용하면 낫지만, 신성력을 사용하면 어마어마한 고통이 따른다.

크게 난 상처에 빨간약을 들이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고통이 따르긴 해도 아픈 만큼 빠르고 효과가 좋기에 자주 사용되는 치료 방식이다.

“다 커가지고 엄살은.”

“...아 좀!”

카인의 진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로즈와 둠은 끈질기게 치료를 하려 들었다.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던 카인은 궁지에 몰려 검은색의 마력을 끌어내려던 찰나.

“어! 로즈님 아니십니까?”

“아, 앤더님.”

문이 열리더니 앤더와 모르는 여자가 쫄래쫄래 따라들어왔다.

대충 20살 정도로 보이는 외모.

“다들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혹시 99층 가는 길 입니까?”

“네, 그쪽이 동료라는?”

“아! 안녕하세요.”

여자는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한국 사람?”

“네! 그렇습니다!”

로즈는 싱글벙글 웃는 그녀를 보고 어쩐지 이질적이라고 느꼈지만 그래도 위협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앤더는 로즈를 비롯한 길드원들과 탑에 있었던 얘기를 잠깐 나눈 뒤 카인을 돌아봤다.

여전히 치료를 거부하는 카인.

“레진 왕자님 아니십니까?”

“...아, 반갑네.”

“왕자님도 이 대전식에 참여하는 겁니까?”

“그렇지. 내가 이긴다면 왕위 계승은 나의 것이니깐.”

잠시 육체의 통제권을 넘겨받은 레진은 앤더와 대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인은 이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중이었다.

“보아하니 상처를 좀 입은 것 같군요.”

“아, 그렇네. 나의 일은 도와주던 녀석이 몸을 멋대로 굴리는 바람에…”

꿀꺽.

앤더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둠과 레진을 돌아보고는 씩 웃었다.

“제가 치료해 드리죠. 보아하니 신성력의 고통을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마침 제가 정령사거든요.”

“정말인가?”

“네. 제 정령은 최상급 정령이라 어지간한 흑마법은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물의 기운이 담긴 손을 내밀자 망설이던 카인 역시 손을 내밀어 붙잡았다.

정령의 기운이 흑마법에 변질되지 않고 흑마법에 침식된 상처를 치료했다.

“...!”

“됐네.”

“됐구나. 어휴, 그러니깐 적당히 치료받지. 왜 또 빚을 져…”

둠과 하늘 길드원은 잘 됐다는 표정으로 카인을 바라봤고 로즈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레진을 통제하에 둔 카인은 식은땀을 흘렸다.

“가죠. 슬슬 두 번째 선별로.”

남자가 사용한 능력.

그것은 분명 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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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언제 얻었어요?”

“열심히 돌아다녔죠.”

“운이 좋으신 분이네요. 저희는 한 개도 못 발견했는데.”

“뭐, 제가 운이 좀 좋아서.”

“...”

로즈와 수상쩍은 앤더가 대화를 하며 탑을 오른다.

그리고 그 뒤를 하늘 길드원과 그의 동료가 같이 오르고.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카인이 그 뒤를 따랐다.

신성력을 사용해 정체가 밝혀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두 번째 플랜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놈이 나타났다.

자신을 정령사라 주장한 녀석.

로즈에게 이미 들은 인물이라 그가 내게 치료를 권했을때 레진처럼 그를 통제하에 놓으려 했다.

타락이 쉬운 정령을 가진 정령사라면 충분히 내 몸에 깃든 ‘오보로스’님의 힘 감지할 수 있을 테니, 차라리 그를 지배해 적당한 장기 말로 쓸 생각이었지만...

‘마기를 가지고 있었어.’

그것도 굉장히 격이 높은 마기.

감히 오보로스님과 대등할만한 짙은 마기를 지닌 것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만한 마기를 몸에 지녔음에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 계약한 물의 정령은 전혀 어둠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완전한 분리.

상반되는 속성이 뒤섞이지 않고 한 몸에 가진 자는 1사도님을 제외하고 본 적이 없었다.

‘...저자는 위험해.’

카인은 앤더를 위험요소로 분리하며 방금 전 흡수한 거대한 기운을 다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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