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7화 〉 6. 선별 (5) (157/318)

〈 157화 〉 6. 선별 (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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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사람이 잘 안 보이네.”

“다들 탈락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안 보이는데?”

92층.

여러 명의 길드원들이 웅성거린다.

길드 비랑은 4대 길드는 아니지만 나름 대형 길드에 준하는 길드다.

점령한 곳도 다른 중소형 길드보다 제법 많았고, 길드원들의 수준도 어지간한 왕국의 기사보다는 훨씬 강했다.

그렇기에 이번 대전식에 전력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여 역전을 노려볼 셈이었다.

대형 길드 수준에서 벗어나 4대 길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물론 견제가 심하게 들어오겠지만 아델리나와 아데르 리나만 어떻게 손에 넣는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었다.

“이상하긴 하군.”

비랑의 길드장은 자신의 소환수들을 소환하며 주위를 살폈다.

분명 대전식의 참여한 사람이 못해도 1000명은 넘을 텐데 여태껏 본 사람은 30명 남짓.

아무리 99층에 달하는 탑이라고 해도 비정상적이었다.

게다가 함정이나 마수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

오히려 너무 어설픈 수준이라 그것들로 인해 탈락될 일은 거의 없었다.

“길드장님.”

“응?”

“저기서 무슨 소리가…”

또각.

한 길드원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리키며 모두의 주목을 끈다.

소환수를 비롯한 10명 남짓의 비랑 길드원들이 저 멀리서 또각거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가 한번 울릴 때마다 이곳의 어둠이 더욱더 짙어지고 숨을 쉬기가 버거워진다.

길드장은 무거워진 공기를 뿌리치며 모두에게 말했다.

또각.

“다들 전투를 준비해라.”

또각.

“준비해라.”

또각.

“준비를…”

또각.

“...”

“흐흥~♪”

또각.

어느새 그 자리에는 또각거리는 소리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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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탑을 오르며 여태껏 모은 세 개의 깃털들을 엮었다.

[ 삼조(三?)의 끈 (레전드리)

설명 ­

뛰어난 지력과 인성, 무력을 지닌 세 마리의 남매새의 깃털을 이용해 만든 끈입니다.

온전히 이어진 그들의 보호 아래, 이어진 인연이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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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

요구 레벨 : 230

방여력: 600

체력 : 5400

요구 스텟 : 시전할 대상과의 일정 수준 이상의 인연도.

특수 효과 : ‘결집’된 대상과 스텟 5% 공유. (단 고유한 특성과 직업 스텟은 공유되지 않습니다.)

패시브 : 세 번째 타격마다 대미지 70% 절감, 세 번째 피격마다 공격 횟수 1회 추가.

액티브 ­ 결집 : 인연도가 쌓인 대상과 결집합니다. 결집한 대상의 위치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쿨타임 30초.)

액티브 ­ 귀환 : 결집된 상대에게 이동합니다 (쿨타임 3시간.)

*인연도가 하락 시 결집이 해제됩니다.

*인연도는 반드시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숨겨진 보상의 층을 통해 세 가지의 깃털을 찾아 합쳤더니 이런 아이템이 나왔다.

‘삼조의 끈이라…’

대상과의 인연을 통해 능력과 위치를 일부 공유 할 수 있는 장비.

나와 레빗과 연결된 능력의 하위 호환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나야 80% 가까이 공유중이지만.

‘다윤이 줘야겠다.’

“그게 보상인가요?”

“네.”

로즈가 관심을 보였다. 이 인연도라는 게 얼마나 되는지, 또 얼마만큼의 효율이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레전드리 장비니깐.

어딜가나 레전드리 아이템은 귀하기 마련이다.

“삼조의 끈…”

장비의 스펙과 설명을 읽은 로즈가 침을 꿀꺽 삼켰다.

결집 같은 부가적인 능력을 제외하더라도 기본 스펙과 패시브가 굉장히 유효하다.

특히 저 세 번째 피격, 타격시 발동하는 추가 효과.

쿨타임도 없는 저 패시브라면 별이 2개 더 붙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치다.

“혹시 꼭 필요하신가요?”

“그런 건 아닌데… 왜 로즈님은 같이 쓸 분이 계십니까?”

“어…”

로즈는 머리를 굴렸다.

인연도.

언뜻 보기에는 연인에 대한 인연도로 보이지만 다른 인연의 방식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정이나 동경, 소속감 같은 인연들도 가능하겠지.

그런데… 그런 애가 있던가.

‘...끄응.’

다들 두루두루 친하긴 하지만 딱 얘다! 하는 애는 없었다.

물론 그 정도로 될 것 같긴 하지만 제대로된 인연을 생각하면 과거 전 길드장이나 다윤......

“...”

“뭐 필요하시다면 10억 골드에…”

“됐어요. 그냥 두 분이서 쓰세요.”

갑자기 쓰기 싫어졌다.

저쪽도 팔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둘이요?”

“네. 둘만 따로 온 거 보니 뭐, 사귀는 사이 아니에요?”

“아닙니다.”

나는 단호히 부정했다.

옆을 보니 채림도 딱히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로즈는 우리 둘을 빤히 보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좋을 때네요.”

“아니라니깐요.”

“네에~”

“......”

웃으면서 나아가는 작은 여자아이를 보며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로즈도 많이 살긴 했지.’

몸은 저래도 살아온 나이는 이미 50~60은 훨씬 넘겼으리라.

로즈는 월드 어드벤처 초창기 유저로 현실과 10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시간차로 인해 몇십 년을 이곳에 있었으니까.

물론 정신연령은 20살 중후반 때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인가?

­

─선별을 통과하신 걸 축하합니다. 로즈님 외 8분.

─다음 선별은 모든 합격자가 나오면 진행됩니다. 그전까지는 대기실에서 휴식해 주십시오.

99층에 도착하니 비스킷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에 들어가 보니 여러 개의 커다란 방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방음 마법이랑 마법 차단에 스킬 차단에…

아주 철저히 준비해 놓긴 했네.

“저흰 잠시 회의 좀.”

“아, 네. 들어가시죠.”

나는 미련 없이 로즈와 그 일행을 보내주었다. 뒤에 서있던 카인은 나를 흘겨보더니 이내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쿵.

“흠.”

“후하~”

“수고했어.”

“좀 무서웠어요…”

나는 마력의 파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채림을 안정시켜주었다.

아카데미와 달리. 아니, 지금까지 채림이 겪은 모든 상황과 달리, 방금 전 상황이 가장 많고 다양한 마력을 느꼈을 것이다.

신의 마력을 가져다 쓰는 자,

흑마법을 다루는 자,

마성에 도달한 자… 등등.

드세고 압도적인 마력이 다수 존재해, 내가 조절을 해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정신이 나갔겠지.

채림은 레빗이 챙겨준 당근과 오렌지가 섞인 음료를 꺼내 마셨다.

저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근데 아까 그 남자 엄청 위험해 보이던데 괜찮은 거예요?”

“응.”

카인을 말하는 거겠지.

마력을 ‘감지’하는 데 있어서 채림만 한 능력자는 없으니까.

“넌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대전에 올라가서 리나만 이겨주면 돼. 다른 건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으음… 네에.”

“그리고 그다지 위협적인 것도 아니야.”

저걸 위협이라 부르기에는 지금껏 상대해온 적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고위신, 오보로스가 직접 나타나지 않는 이상 ‘지금’의 나에게 위협이 될만한 건 전혀 없다.

나올 리가 없지.

쪼오오옥.

잘도 먹네.

어느새 채림은 주스를 하나 더 까 빨대를 콕. 꽂았다.

“근데 다윤 길드라는 이름이 부길드장님 이름에서 따온 거라던데, 맞아요?”

“어, 맞아.”

다윤이의 환각, 그리고 콜트의 환각에서도 그 이름으로 길드를 만들었었다.

이유는 별거 없다.

그냥 그게 재밌을 것 같으니까.

‘다윤이는 하지 말라고 난리 난리를 쳤지만.’

이유를 들은 채림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길드장님은 어디 있어요?”

“수련. 아마 이번 일 끝나면 돌아오겠지.”

다윤이는 이미 내가 말한 한계에 돌파했지만 뭔가 미련이 남아있는지 계속해서 수련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 수련이 끝나면 삼지창을 못써도 반드시 부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네?”

“아냐. 다 된 거 같아서.”

─모든 선별 인원이 정해졌습니다. 두 번째 선별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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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조용히 있어봐.”

카린은 대기실의 방안에 4명의 길드원과 나란히 앉아있었다.

“앨리스랑 민아가 합격하지 못했어요. 아마 습격을 당한게 아닐까요?”

“그 앨리스님이…”

“앨리스님이 당한 건 좀 충격적인데…”

마탑의 정예들은 이 사태에 크게 놀란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린은 땅에 지탱한 지팡이를 든 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분명 99층을 올라오는 동안 본 사람은 20명 남짓.

참여자 숫자에 비해 너무 적은 인원이다.

‘아마도 이미 당했겠지.’

무엇을 위한 죽임인가.

카린은 고심했다.

편지의 내용을 듣긴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적혀있지 않았다.

그저 암운을 비롯한 길드가 참여자 대부분을 학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언가 만들어낸다고 들었다.

단순한 흑마법적인 재물이 필요하다면 강한 능력을 지닌 참여자보단 민간인이나 그 외의 약한 유저들을 잡아 바치는 식으로 진행할 것이다.

허나 이들은 굳이 참여자를 재물로 바치기 위해 일을 벌였다.

‘암운의 세력은 그리 크지 않아. 정예 하나하나가 강하긴 하지만 1000명이나 되는 강자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야.’

아마도 이곳의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적지 않은 전력을 이곳에 투자했으리라.

그렇다면 ‘반드시’ 참여자를 재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소리다.

뭘까.

도대체 뭘 놓치지고 있는 거지.

“앨리스가 있었다면…”

“언니?”

흑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앨리스가 있었다면 좀 더 확신할 수 있을 텐데.

카린은 말꼬리를 흐리며 자신의 심안(心?)을 거두었다.

“없어.”

“네?”

“없다고. 적어도 탑에는 둘이 보이지 않아.”

아마 탈락했거나 죽임을 당했겠지.

탈락은… 솔직히 가능성이 없다.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연락을 취했을 테니까.

하기 싫더라도 상황을 최악의 최악까지도 예상해야 한다.

50명 외에 다른 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가정.

“그 남자를 만나야겠어.”

나에게 편지를 건넨 수상한 남자.

그 자를 다시 만나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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