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6. 선별 (6)
* * *
카인은 숲을 걸었다.
두 번째 선별은 사냥을 통한 선별 시험.
탑에서 만났던 마수보다 조금 더 강한 마수들이 포진해 있는 숲.
그곳에서 마수를 잡아 가장 많은 점수를 올린 상위 20명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점수는 비스킷이 선별 시작 장소인 초원에서 일일이 체크하고 싸움은 이번에도 가능하다.
애초에 일정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대전 자체를 참여할 수 없다.
때문에 이미 초원의 대부분의 마수는 처리된 상황.
모든 마수가 잡히면 선별이 종료되기에 만일 많은 마수를 잡지 못했다면, 일부로 마수를 가둔 뒤 자신보다 높은 점수의 적을 죽이거나 탈락시킬 수도 있다.
이미 길드, 하늘은 대부분이 순위권 내에 올랐고 카인 역시 오른 상황.
그는 자그마한 슬라임를 아공간에 넣은 뒤 숲을 계속해서 걸었다.
“...”
유독 짙은 어둠이 드리운 숲의 일부.
그곳에 카인이 발을 디뎠다.
어둠이 가린 일부가 드러나자 마수와 함께 싸늘한 죽음으로 발견된 시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순백한 백의를 두른 여자가 미소 짓고 있었다.
“여전히 취향이 독특하시군요. 4사도님.”
어둠의 신을 모시는 사도가 백의(白?)라니.
이 무슨 모순인가.
백의를 두른 사도는 카인을 바라봤다.
“위대한 오보로스님은 모든 신도들의 뜻을 존중하십니다.”
“...”
“제가 백의를 입는다고 그분의 어둠을 거스르거나 가리는 일은 없겠지요.”
카인은 이자가 불편했다.
여신의 신성(??)을 지녔음에도 오보로스님의 어둠을 받아들인 외부인.
그녀의 신성은 용사에게 하사받은 신성과 달랐다.
아무런 믿음 없이 그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력을 받은 용사들과 달리,
그녀는 여신에게 헌신과 믿음을 바친 성녀였다.
지금은 전혀 다른 신을 모시지만.
“...위험 요소가 있기에 알리러 왔습니다.”
“위험요소라, 설마 7사도를 죽인 여자를 말하는 거라면... 문제없습니다. 7사도는 죽지 않았으니까요.”
이 계획에 무려 3명의 사도가 투입되었다.
비록 순위가 낮은 사도들이지만 숫자가 반드시 강함을 나타내진 않았다.
“아뇨. 카린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카인은 첫 번째 선별 때 만났던 남자에 대해 설명했다.
마기와 정령의 마력이 섞이지 않고 완전한 균형을 이루던 남자.
자신을 비롯한 암운의 용사들조차 여신에게 받은 신성이 많이 흐려진 상황인데 그자는 신성마저 매우 뚜렷했다.
설명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군요.”
“마치 1사도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계획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신성이라…”
히죽.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과거 성녀였던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신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세계가 격동하고 다른 세계의 용사가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위대한 존재의 뜻을 알게 되어 여신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모시게 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신성을 몸에 담고 있었다.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아찔할 정도로 광휘를 내뿜는 모습에 카인은 눈쌀을 찌푸렸다.
‘...미친년.’
“클로킹 마법은 불법인데…”
“왜? 내가 리엔한테 그런 거 시킨적 없었는데.”
두 번째 선별.
허공에 투명 마법을 쓴 체 둥둥 떠다니는 채림과 나는 초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미 점수는 10위권대 이상.
마수의 90% 이미 죽었기에 순위가 밀려날 일은 없다.
초원 아래에는 봉인구나 마법을 통해 마수를 가둔 뒤, 다른 참여자를 공격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카테미 다닐 때 어떤 유저새… 유저가 투명 마법을 쓰고 목욕탕에 들어온 적 있거든요.”
리론 아카데미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존재한다.
현대의 편의성과 이점이 가득한 시설들.
때문에 아무리 귀족 출신들의 아카데미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신문물을 자주 이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근데 그걸 악용한 놈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요. 감지 마법에 걸려서 뒤지게 처맞고 퇴학당했죠.”
채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바로 걸리진 않고 한 10분 정도는 들키진 않았는데 흥분한 탓에 마력이 흘러나와서 걸렸다는 모양이다.
그 뒤로 아카데미 내에서의 투명이나 그림자 같은 ‘은신형’ 계열의 마법은 시험이나 위급상황을 제외하면 사용이 불가됐다고...
참 웃기는 일이다.
“그것 때문에 용사를 보는 시선이 더 안 좋아서 고생했어요. 아오! 그걸 왜!”
“재밌네.”
“전 안 재밌었다구요…”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채림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지금에서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해도 꽤나 고생했으리라.
“그나저나 리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응?”
“아데르 리나. 이곳의 공주요. 아무리 게임… 음… 이라고 해도 자신을 이긴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게 좀 이상해서.”
“이상하긴 하지.”
확실히 이상한 여자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만 하다.
리나를 평가하자면… 글쎄.
“나쁘지 않은 실력과 이상한 정신 상태?”
“그게 뭐예요.”
“괜찮다는 뜻이지.”
비정상 중에 정상이라고 해야 할까.
워낙 비정상인 사람이 많으니 그나마 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여기 있었군요.”
파직.
“?”
“카린?”
보랏빛 전류를 두른 여자가 은신을 꿰뚫고 우리를 바라봤다.
허공에 뜬 그녀의 표정은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으나, 상태가 안좋은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나저나 은신에, 변신까지 한 나를 꿰뚫어 보다니.
어지간히 나를 찾고 싶었나 보다.
“얘기 좀 하죠.”
“또 모습이 바뀌었네요.”
시야 차단과 소리 차단이 걸린 막.
정확히는 마성의 힘으로 만든 공간으로, 어드벤처로부터 ‘분리된 세계’다.
열화판 창조세계라고 해야할까?
아공간적인 이점 외에 그다지 뛰어난 성능이 있는 공간은 아니다.
길다랗게 놓인 탁자.
나는 카린을 마주 보고 앉았다.
“모습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지금의 나는 짙은 흑색으로 가득 찬 머리카락과 흑안(??)을 가진 남자로 변해있었다.
카린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무언가를 꺼냈다.
“...나한테 이걸 보낸 이유가 뭐예요.”
“편지?”
“당신이 나한테 편지를 보낸 이유. 그건 아마도 나를 이용해 암운과 하늘을 막으려 했을 거예요.”
“...”
“처음에는 당신이 암운 쪽에 스파이가 아닐까 생각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어요.”
“...”
“당신이 스파이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했을 테니까.”
나는 묵묵히 카린의 말을 들었다.
카린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암운 소속 정예를 하나 죽였어요.”
“...뭐?”
“불가피한 일이었어요.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었죠. 애초에 막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각오했어야 했으니까.”
살인.
과거에는 다소 망설임이 있더라도 그래도 별 무리 없이 행했던 일이었다.
그때는 죽인 사람도 다시 부활했고,
고통도 느끼지 않았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죽인 사람은 다시 부활하지 않았고,
고통은 현실과 같이 다가왔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더욱 커졌다.
그래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웬만하면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 그녀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서야 죽이게 되네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애초에 이런 세상인데 어쩌겠는가.
게임이라는 허상의 튜토리얼을 깨니 현실이 다가왔을 뿐이다.
아직도 여기가 게임이라는 건 변함없지만.
“당신은요.”
우웅.
“당신은 분명 나를 알고 있어요. 현재의 내가 아니라 전 시즌에 나 역시.”
카린이 받은 편지.
거기에는 과거 마탑 시절의 문양이 적혀있다.
마탑의 길드원. 그것도 정예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지금은 사용하지 않기에 과거에 특별한 연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고작 편지 하나에 동쪽 전선을 두고 여기로 온 것이다.
“말해요.”
파직.
카린의 주위로 보랏빛 번개가 치솟는다. 번개는 주위의 모든 지형을 태울 듯이 퍼져나갔고, 주위의 퍼진 마력 흐름은 불안정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던 탁자도 거세게 흔들린다.
“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흠…”
그녀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막 너머를 살핀다.
적막이 도는 초원.
“동료를 더 잃었나.”
“...네.”
“허...”
나는 혀를 차며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기력에 그녀가 흠칫 놀랐으나 이내 마력을 가다듬는다.
‘끝나면 하페루아한테 지랄 좀 해야지.’
제발 놀지 말고 일처리를 시켰으면 제대로 도와주라고.
처음에는 의욕 있어 하더니 이제는 그냥 오리랑 목욕하면서 룰루랄라 거리면서 신경도 안쓰…
─그런 거 아니야 멍청아.
“또 이럴 땐 잘 듣네.”
“뭐요?”
“아냐. 그보다 정체 공개라…”
미간이 찌푸려진 카린.
나는 그녀 앞에 빛바랜 갈색의 기다란 장궁(??)을 꺼냈다.
잠시 멈칫하던 그녀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로에가스… 홀리 레인져?!”
“...아직도 왜 그딴 이름을.”
정체를 눈치챈 카린의 마력이 잠시 주춤했다.
대지의 신, 로에가스의 힘이 깃든 활.
과거의 내가 주 무기로 썻던 활이다.
등급에 비해 그다지 좋은 성능을 지니진 않았으나 액티브 스킬인 화살 포화 하나만 믿고 사용했었다.
‘사실 다른 장비 구하기가 더럽게 힘들었던 것도 있지.’
무려 레전드리 탬을 상점에서, 그것도 고작 7천만 골드로 살수 있는 건 이 로에가스의 활 밖에 없었다.
당시에 나는 랭커는커녕 저 밑에 심해에서 놀았기에 남들에게 ‘이명’으로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마탑으로 한정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카린의 동공이 떨렸다.
“...하, 하하, 당신이 왜?”
마탑에게 있어서 나는 다른 어떤 랭커보다 더더욱 위협적이었었다.
그때의 길드 전쟁은 그야말로 학살이었으니까.
“왜냐니. 무의미한 학살극을 막는 거지.“
이미 나는 목표를 완료했다.
아데르 리나에게서 특이점과 초월자의 힘을 회수했고, 아델리나를 안정화 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눈치 안 보고 그냥 결혼해서 건수를 없게 만들면 되니까.
다만 아직 전면전을 펼칠 만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을 위해 여태껏 숨겨왔는데 뒤처리하기 귀찮다고 망칠 순 없지.
무엇보다도 다윤이가 있는데 결혼을 할 수도 없다.
하는 순간…
“어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날은 내가 명계의 문을 두드리는 날이 되지 않을까?
“학살… 당신이?”
“...날 너무 안 좋게 보는 거 아니야? 정당한 싸움이었는데.”
“그 무적 갑옷으로 수백, 수천번을 죽인 것이 ‘정당’ 하진 않죠.”
“무적까진 아니긴 한데… 무적이 맞긴 하네.”
그때 당시는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무적이 맞았다.
그리고 지금도 거의 그러겠지.
나는 다시금 자리에 앉아 두 장의 카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카린.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뭘 선택하든 카린에게 가혹한 일이 되겠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