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7. 선택의 결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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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화(火)가 작렬하고 카인이었던 것이 아래로 추락한다.
그 위로는 어지간한 건물보다도 거대한 눈 역시 재로 산화하며 추락했다.
“...결국 헛된 일이었군요.”
저 멀리서 사태를 바라보다 접근한 성녀, 아스텔이 다 부서져 가는 호텔 위에 몸을 띄웠다.
허공에는 뇌화 조차 태우지 못한 두 개의 물건이 보인다.
하나는 암실을 열 수 있는 무형의 열쇠.
다른 하나는 파멸 술사, 아미아 리엔에게서 얻어낸 마력이 담긴 반지다.
두 가지의 물품을 회수한 아스텔은 감정 없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떨어지는 불신자를 받아내는 불신자.
하나의 적을 처리했으니 이제 다른 적을 처리할 차례다.
“...서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으니.”
스윽.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요.”
“크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문이 열리고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에볼이 떠올랐다.
“무, 무슨…?! 4, 4사도! 뭔 짓을 하는 겁니까!”
“불신자들의 만행으로 위대한 분을 위한 제물이 부족합니다. 당신의 힘이 절실합니다.”
허공에 떠오른 에볼을 중심으로 짙은 어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아스텔의 말에 에볼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미, 미친년이! 나, 나는 제물이 아닙니다!”
“위대한 분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그딴 건 하찮은 불신자들이나 하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아스텔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그분에 대한 헌신은 믿음으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손에는 리엔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헌신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강림을 저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저 역시 기꺼이 위대한 분을 위해 몸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럼 니가 들어가아아아아악!!!”
에볼의 육신과 영혼이 산산조각 나고 그 힘을 매개체로 멈추었던 암실의 열쇠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콰르륵─!
밝은 하늘이 다시금 어둠으로 가득 찬다.
“위대한 오브로스 님이시여…”
아스텔은 깨달았다.
고작 ‘시초’ 정도의 힘으로는 이 불신자들을 정화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아스텔…
시초 정도가 안된다면 ‘진짜’를 부르면 된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무려 오보로스의 분신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시초가 죽은 상황.
그것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기에 오보로스의 재림은 예고된 일이었다.
“암운의 제4사도, 에드노스 피아 아스텔. 주인님의 종이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방금 전 떠오른 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정도의 크기과 격을 가진 수백개의 눈을 향해 아스텔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랜만이구나.
어둠의 신, 오보로스.
비호, 이린과 마찬가지로 그의 나이는 이미 일 만년이 넘었으며, 어드벤처 행성 내에서도한 손에 꼽을 정도로 오랜 기간을 살아온 신(?)이다.
꽤나 많은 자연을 어둠으로 물들이며 명성을 떨쳤던 과거와 달리 힘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 행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물론 ‘어드벤처’에 한해서 말이다.
어리석은 카인이 일을 벌였군.
“...네. 그 불신자는 시초님을 이용해 자신의 힘을 채우려 들었습니다. 다행히 같은 불신자에 의해 저지됐지만 그 때문에 위대한 분의 계획이 조금 틀어졌습니다.”
그 녀석의 영혼은 나에게 있으니 놈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몸이 될 거다.
“아아… 참으로 가여운 형벌입니다.”
아스텔은 전율했다.
여신이라는 신을 처음으로 마주했고, 그녀의 신성을 보고 숭배하기 시작했다.
신성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했다.
그저 손을 가볍게 쓸어내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낫고 아무리 살아도 늙거나 죽지 않는다.
몸에 두른 휘광은 항상 몸을 깨끗하게 만들었으며,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신실함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안녕?’
그리고 신을 만났다.
여신, 엘레노아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의 신전에서 조각상을 보고 여신이라는 실체를 알았고,
그녀의 모시는 성당에서 위대한 여신의 신성을 깨달았으며,
그녀를 따르고 모시기를 수백 년.
신성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때마다 신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긴 했으나 그녀는 자애로운 미소만 지어줄 뿐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생각했다.
‘여신님은 자애롭고, 정의로우며, 품위 있는 분이실 것이라.’
그렇게 믿고 살아온 아스텔이 마침내 정식으로 성녀로 인정받자 그녀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반가워. 내가 엘레노아야.’
푸른색의 긴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자태의 여신.
항상 휘광을 두르고 있었기에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하지만 아스텔에게 중요한 건 외형이 아니었다.
‘악마 관련된 건 다 죽어! 마음에 안 드는 것들! 쟤들 때문에 내 팔라딘을 몰살 당했잖아!’
그녀는 자애롭지도 않았고.
‘아! 실수했다. 이러면 관리자가 엄청 뭐라 하는데…’
품위 있지도 않았으며.
‘...내 신전의 조각성의 낙서를? 당장 화형 시켜!’
정의롭지도 않았다.
‘......’
타들어가는 무고한 이, 아니 무고하진 않은 무고한 이를 아스텔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의 몸으로 수십,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여신을 믿었다.
그 수백 년의 기간을 오로지 여신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
그녀의 신전에서 매일 수 시간을 기도했으며 여신의 뜻으로 불쌍하고 무고한 이들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인고의 시간 동안 아스텔을 가득 채운 것은 그녀가 상상했던 자애롭고, 정의로우며, 품위마저 있는 여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고작 여신의 곁을 모신지 단 한 달, 그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여신의 모습이 산산조각 났다.
그녀가 믿는 여신은 저런 막무가내의 여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런 인간은 오랜만이군.
답은 금방 나왔다.
속은 텅 비워져 있는데 그 크기는 어지간한 신조차 뛰어넘을 정도야.
새로운 신앙과 믿음으로 다시금 비워진 속을 채우는 일.
엘레노아 여신은 어둠을 멀리하고 빛으로 자신을 채우라 말했지만 이미 그녀는 여신을 믿지 않았다.
그날, 아스텔의 속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에드노스 피아 아스텔.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하아…”
아스텔은 어둠이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았다.
위대한 분은 여전히 처음 목도한 그날과 동일한 모습으로 이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스텔은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그 어리석고, 무지하며, 자기 능력과 위치에 비해 한참 떨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신.
이제 더는 그런 신 따위 믿지 않는다.
더 이상 성녀가 아닌 아스텔이 신성을 자유자재로 쓰는 이유도 엘레노아가 그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이 배신한 것조차 모르지 않을까?
아스텔은 한 발자국 몸을 앞으로 나아가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허망하고 겁에 질린 모습으로 이곳을 올려다보는 두 불신자.
저 표정과 몸짓은 마치 여신의 실체를 깨달은 과거의 본인과도 같았다.
‘그래 허탈하고 허망하겠지.’
그 어리석은 신 따위에게 받은 능력으로 위대한 분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아스텔은 미칠듯한 전율에 온몸을 떨며 자신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자… 위대한 분이시여. 불신자들에게 종말으을…..?”
갸웃.
아스텔은 눈앞에 일어난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오보로스님의 어둠으로 가득 차야 할 하늘에 거대한 수운(?雲)이 맴돌기 시작한다.
그것에 호응하듯 기다란 삼지창이 하늘에 쏘아진다.
무, 무슨!!
파직…
“...어?”
시작은 작은 창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번개였다.
콰릉─!
번개는 주변의 물을 흡수하며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 하늘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덮는다.
마침내 번개는.
“신이시여… 어째서.”
하늘 전체를 뒤덮는다.
“...채림 양이 저렇게 강했나요?”
리나는 기가 찬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한 뒤 상당히 신나하는 채림을 바라보았다.
네르토르는 물과 번개의 신으로, 내가 한창 메인 퀘스트의 막바지에 들어설 당시에 마주한 고위신이다.
오보로스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제법 강한 고위신들 중 하나였는데, 네르토르는 시험을 내려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자신의 힘이 담긴 삼지창을 내어준다.
시험은 그 당시 참여한 다윤, 베린, 이랑… 등등의 길드원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했다.
콜트의 환각을 통해서나 다른 게임을 통해 반쪽짜리 초월자가 된 이들조차 통과하지 못했던 이유는 네르토르 자체가 초월자이기 때문이다.
‘마왕 제르노스나, 여신 엘레노아같은 스스로 초월한 자.’
그 이린조차 스스로 초월하지 못했지만 네르토르는 자신의 특수함과 인고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초월의 영역에 들어섰다.
‘물론 스스로 차원을 넘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하지.’
때문에 네르토르가 사용하는 「 무상성(無??) 」 은 반쪽짜리 초월자가 상대하기에는 상당히 버거웠다.
모든 속성의 상성을 무로 돌리고 자신의 상성은 배로 늘리는 능력.
베린의 그림자도, 다윤의 월광도, 이랑의 불꽃도 그저 거센 마력 정도에 불과했다.
‘뭐 그래도.... ‘최강’은 못 막았지만.’
최강자의 능력을 무로 돌리지 못한 네르토르는 결국 나를 인정하며 자신의 삼지창을 내어주었다.
처음에는 창을 선호하지도 않고 딱히 쓸 일도 없어 다른 이들에게 주려 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은 네르토르의 무구를 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창고에서 영영 썩어가나 싶었지만...
“스자아아아앙니이이이임!! 이거 개쩔어요오오!”
“...”
“...원래 저랬나요?”
“원래는 안저런데 가끔씩 저래.”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녀석이 나와버렸다.
“장관이군.”
하늘을 뒤덮은 물과 번개는 어둠을 몰아내고 다시금 광명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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