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8. 귀환 (1)
* * *
천공의 섬.
280레벨 때의 비행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이자 ‘다윤 길드’의 거처이기도 한 이곳은 천혜의 요새로도 불린다.
수많은 수문장과 결계 마법이 걸린 이곳은 아무리 뛰어난 강자나 대마법사도 쉽사리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을 가진 곳.
...이지만 그렇게 있었냐는 듯 한 여자가 무지막지하게 관문들을 돌파했다.
“...?”
쿠직!
콰드드득!!
콰지직… 쿵!
콰아아아아앙!!!!
“어머나.”
“루아씨!”
길드의 회계 업무 및 잡다한 일을 도맡는 네츠리 루아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는 한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가 내뿜는 기세는 현재 이곳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지만 기세는 살기를 담지 않았다.
기세는 오직 단 하나의 목표만을 노리듯 반짝였다.
“목재인형! 지금 수련장에 있나요?”
“어… 부길드장님 좀만 진정을…”
“있어요 없어요!”
“이, 있죠?”
스승님의 말대로 고쳐놓긴 했는데에… 라고 말하기 전에 다윤 길드의 부길드장, 김다윤은 서둘러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루아는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표정이 확 굳었다.
“아… 부수지 마시라니까.”
그 누구보다 이곳을 쉽게 들어올 수 있는 분이 자꾸 수문장이든 결계든 부수며 들어오는지.
루아는 한숨을 내쉰 뒤 그녀가 산산조각 낸 것들을 보며 생각, 아니 감탄했다.
‘...확실히 달라지셨어.’
그날 이후로 검의 궤적 자체가 다르다.
100% 확실할 순 없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부술 수 있으리라.
레전드리 장비를 여러 개 두른 루아는 복구를 끝마치며 그녀가 향한 수련장을 바라봤다.
“...근데 이제 부셔도 못 얻는데.”
괜히 난리 칠 거 같은 다윤의 모습을 상상한 루아는 양 팔뚝을 붙잡으며 수련장으로 향했다.
“아…”
“루아씨?”
상상은 독이 된다더니.
수련장에 도착한 그녀는 이미 갈래 갈래로 쪼개진 목재인형이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봤어요? 드디어 부셨어요!”
“추, 축하드려요. 부길드장님.”
“에이~ 아직도 딱딱하게. 편하게 해요.”
“하하…”
루아는 마치 기계처럼 웃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다윤은 거의 1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수련을 하고 돌아왔다.
사실상 말이 1년이지 다윤 정도 되는 강자는 남들보다 훨씬 느리게 시간을 체감한다.
그녀가 수련 중에 느끼는 1초는 저~ 아래에 평범한 용사A보다 100배 정도는 느리게 흐르니까.
수련을 떠나기 전에도 이미 최정상에 올랐던 그녀가 수련에만 매진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연적 중 하나인 하페루아님과의 충돌.
이건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언뜻 보면 객관적이기도 하다.
처음 자신의 거처에 찾아온 스승님을 마주하고 길드에 들어왔을 때 한 악마를 보았다.
그녀는 지금껏 수많은 이들의 정보를 자신의 파랑새인 블라밍을 통해 수집해왔다.
때문에 악마나 신과 같은 특수한 종족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외형은 죄다 꿰뚫고 있는 루아였지만.
‘와아…’
하페루아. 그녀는 이제껏 본 그 어떠한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검 보랏빛의 머리카락과 남들 눈에 가려둔 작은 크기의 붉은 뿔.
보석을 담은 듯한 적안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빠져들어갈 것 같았고, 그녀의 외모는 지금 당장 거리에 내려가 남자건 여자건 아무에게나 청혼하자 하면 100명 중 99명이 받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때문인지 처음 하페루아를 봤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홀릴 뻔했지만 스승님이 매혹을 풀어준 뒤로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매혹이 사라져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부길드장님이 견제할만해.’
처음 보고 여자인 자신조차 한순간에 홀려버렸는데 남자인 스승님은 어쩌겠는가.
물론 스승님은 하페루아님보다 다윤 님을 더 우선시하셨지만 그렇다고 하페루아님을 냉대하시진 않으셨다.
때문에 스승님의 연인인 다윤님이 어쩌면 질투가 조금씩 조금씩 생겼으리라.
…물론 그 두 자리가 너무 공고해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게 한탄스러웠으나 최근 몇 달간은 두 분 모두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그런 시절은 다 갔네.’
에효.
아무튼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저 목재 인형 때문이다.
저것이 다윤 님을 1년간 수련에 매진하게 만든 원흉.
분명 저 목재인형을 부순 건 이전까지는 스승님과 그의 소환수인 레빗밖에 없었다.
하지만 길드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루아는 하페루아님이 진작에 저것을 부순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애초에 목재 인형을 하페루아님과 스승님이 같이 만드신 거니까.
때문에 삼지창도 받고, 하페루아님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에 그만큼 수련하셨겠지.
다윤 님에게 삼지창이란 그간의 수련의 목표이자 성과품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후우~ 윤 씨를 빨리 보고 싶네요. 그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 삼지창 창고에 있죠? 우선 가져가고…”
“저…”
“지금 윤 씨 어딨는지 알아요? 그러고 보니 다들 자리를 비웠네요.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레빗은 항상 길드에 있을 텐데…”
“...”
이건 못 말한다.
저 믿음을 깨버리면 어떻게 폭주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루아는 길드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길드원.
자신의 부길드장을 거짓으로 속일 순 없다.
‘속인다고 속을 사람도 아니고.’
루아는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네르토르의 삼지창은 며칠 전에 들어온 길드원이 목재인형을 부수고 가져가…”
“네?”
순간 웃음꽃이 가득 폈던 다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루아는 마치 달이 눈앞에 있는듯한 기세에 송골송골 배어 나온 땀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뭐가, 가져가요?”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채림이라는 용사 출신의 길드원이 있는데 스승님이 직접 데리고 오신...”
“......”
이젠 굳다 못해 매우 심각해진 다윤.
저대로 검을 휘두르지 않을까 루아는 걱정했지만 사실 그녀도 알고 있다.
다윤이 제 기분대로 폭력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만 그 분위기라는 것은 실제 했으니 긴장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다윤은 묶은 머리를 확 풀어버리며 말했다.
“그 두 사람은 어딨어요.”
“후으아아아…”
“고생한 것입니닷…!”
“흐으에에에 니니니님이도 고생했어…”
“전 니니니님이가 아닌 님님이 입니닷…!”
채림은 헤롱헤롱한 상태로 그나마 상태가 나은 왕실의 방에 드리누웠다.
그녀의 특성인 마력 적응은 정신 이상을 제외한 그 어떠한 몸의 무리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패널티가 패널티인 만큼 강한 힘을 흡수할수록 정신 이상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런 채림의 주위로는 성인 팔뚝 만한 님프, 님님이와 비슷한 크기의 레드 드래곤, 용용이가 올라와 있었다.
[...난 저 자가 두렵다.]
“스장님?”
[보기만 해도 오싹하군.]
그의 찢어진 용안에는 리나를 마주하고 있는 김윤이 보였다.
“...해서 시신도 없이 사라진 주민들은 총 17289명. 건물 붕괴 및 마법에 의해 죽은 주민은 2274명. 용사를 비롯한 도전자는 986명이 죽었습니다.”
“흠…”
“잘 막았다... 라고 하기에는 희생이 크네요.”
리나의 어깨가 급격히 쳐졌다.
잘 막은 것은 맞다.
십수만의 국민들이 살고 있는 아델리나 왕국이 몰살 당할 것을 김윤의 개입으로 희생자를 10%로 줄인 거니까.
무려 90%의 주민들을 살린 것.
이것은 인정받아 마땅하고 당장 김윤에게 그 어떠한 보상이라도 성심성의껏 내드려야 하지만.
리나는 어쩐지 이상함과 불편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유라 하면.
“...조금 더 빨리 대처할 순 없었나요?”
김윤의 대처.
그는 너무나도 늦게 손을 썼다.
본인이 힘을 쓸 수 없고 적임자를 맡겨 놓았다 한들, 처음부터 채림양이나 그 카린이라는 용사가 진작에 움직였다면.
그랬다면 희생자가 더욱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 아닙니다.”
리나는 서둘러 말을 철회했다.
어찌 됐건 나라를 구해준 영웅이다.
이건 지금 기껏 물에서 구해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 하는 셈이 아닌가.
이런 건 옳지 않다.
“...흐음.”
그녀는 싸움을 좋아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가끔 있었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김윤은 고개를 까딱였다.
“많이 죽었다고? 그럴 리가.”
“...당신의 기준에서는 모르겠지만 많이 죽은 것이 맞습니다.”
조금 차가워진 말투.
전부터 그랬지만 이 남자는 묘하게 심기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명을 너무나도 쉽게 바라보는 경향에 조금 분노가 새어 나왔다.
그는 계속해서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별로 안 죽었어. 리나. 잘 봐봐.”
“.....더이상 허튼소리 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왕국의 주민들을 그저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아니, 진짜라니깐.”
“당신 진짜…!?”
스륵.
화가 머리끝까지 난 리나가 의자 옆에 놔둔 용찰검을 집으려던 순간.
하늘의 색이 변했다.
...저건 신이 만들어낸 막이 아닌가?
막의 색은 전과 같은 어둠이 아닌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소환수, 레빗 전용 스킬 환묘세계(??世?) LV.5가 적용 중입니다.]
[적용 대상 / 아델리나를 덮은 오보로스의 장막 내부.]
[현상 구현율 97%]
따악!
김윤의 손이 교차하자 반파된 성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
불타오른 건물도 돌아온다.
죽어 사라진 사람들도 돌아온다.
거리마다 축제를 위해 준비한 수많은 음식과 가게들도 돌아온다.
어느새 아델리나는 축제의 시작 전으로 돌아왔다.
“어, 어떻게…”
“내가 말했잖아.”
그가 씩 웃는다.
“별로 안 죽었다고.”
와하하하하~
리나님이 오늘 대결하신다며?
저기 재밌는 거 있다던데? 얼른 가보자!
창문 밖으로 몸을 내뺀 리나가 멀쩡하게 돌아온 아델리나를 멍하니 보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내 머리 위로는 주황빛의 고양이가 한 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처음부터 가짜… 였던 겁니까?”
“침략이 있었던 건 맞아. 다만 ‘가짜’의 세계에서 일이 일어난 것뿐이지.”
이곳을 멸망시킨다는데 당연히 죽게 놔둘 이유도, 그럴 수도 없다.
내 목적은 이곳의 안정화와 관리자의 눈을 가리는 것이니까.
뭐,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난 베드 앤딩보다 해피엔딩이 좋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