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8. 귀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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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묘세계(??世?).
레빗과의 유대와 레벨이 오름에 따라 자연스레 습득한 스킬 중 하나로, 환각과도 같은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정한 구역을 지정한 뒤 그 안에 위치한 모든 것을 가상의 세계 속에 가둘 수 있는 능력.
언뜻 보면 로드리아와도 비슷한 능력이라 할 수 있지만 아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로드리아의 환각은 가상의 세계 속에서 구현되지만,
레빗의 환각은 현실에 실제 한다.
즉, 환묘세계가 펼쳐진 아델리나는 어드벤처 행성에 실제로 ‘존재’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안 들켰지.’
십수만의 주민들과 수많은 강자들.
심지어 같은 고위신인 오보로스 까지.
그 누구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레빗은 시스템을 자연으로 두는 고위신이기에 격에서 밀릴 일은 당연히 없었고, 애초에 초월의 ㅊ자도 돌입하지 못한 오보로스이기에 반(半)초월자인 레빗과 차이가 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만큼 무려 왕국 단위를 전부 환각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원래 계획은 채림이 리나를 이기고 적당히 마무리한 뒤, 주요 인물들만 모아 소규모의 환각을 일으킬 생각이었지만…
카인의 배신으로 오보로스가 걸어둔 암막에 환묘세계의 능력을 흘려 넣을 수 있었다.
오보로스가 설치한 그릇을 역이용해서 환묘세계를 덮어 씌우는 것.
“...허.”
결과적으로 레빗은 그 어떠한 마력의 무리 없이 환묘세계를 왕국 단위로 펼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부족하긴 했지만 워낙 가진 게 많아서.”
지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이 모은 상위급 장비들이 많다.
그중에는 이런 환각류의 안정성과 구현율을 도와줄 1~2성급 보조 장비들을 이용하면 무리 없이 구현할 수 있다.
대충 각색한 설명을 들은 리나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치 신 같네요.”
“신?”
“진짜 여신과도 같은 신이요.”
제법 놀란 듯 아직도 멍하니 의자 앉지도 못하고 서있지만 그녀의 표현이 어느 정도 맞기는 하다.
‘이 정도면 특이점을 과할 정도로 써야 구현 가능한 수준이니까.’
초월의 힘을 가진 시스템을 자연으로 둔 레빗.
고위신 오보로스의 힘을 역이용.
그것을 도와줄 수많은 장비들까지.
통합 서버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나는 틈만 나면 특이점을 사용했다.
어느 상황에서나 유효한 능력이고, 페널티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용이 불가능하다시피 바뀐 이상, 강한 적들을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방법은 정공법이었다.
더 좋은 장비와 지식.
그리고 반 초월자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
레전드리급 장비나 수많은 스킬, 특성은 결국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것들을 사용하는 게 곧 특이점을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잘만 활용하면 뭔들 못하겠어. 세상에 널린 게 신들이라 그리 높은 존재도 아니고.”
“대단한 건 대단한 거죠.”
그녀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라면 아직 시작하진 않았으니… 다시 진행할 필요는 없겠네요. 제가 진걸로 하죠.“
“그렇게 해도 되겠어?”
“이미 한번 졌는걸요. 그리고...”
다시 밖을 바라본다.
비명소리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이전과 달리 웃음소리와 고소한 내음이 퍼진다.
뒤바뀐 풍경을 잠시 바라보던 시선이 침대로 향했다.
“...만일 붙었어도 못 이길 거 같거든요.”
“헤헤헤… 스장니이이이임…”
“음.”
확실히 삼지창과 특성을 적극 활용하는 채림이라면 아무리 리나라고 해도 이길 수 없다.
힘을 뺏기기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전에… 요?”
리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전에 뭘 말했더라?
“뭐든 들어준다는 거.”
“아… 그랬죠.”
오보로스의 공포에 휩싸여 횡설수설 말한 기억.
물론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만일 방금 전 상황이 가짜가 아닌 진짜였어도 들어주긴 했을 것이다.
다만 불편한 마음은 가지고 있었겠지.
하지만 왕국이 되돌리고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지 않게 만들어준 이상, 리나는 뭐가 됐든 기쁜 마음으로 뭐든지 각오가 되어 있었다.
리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결혼을 원하신… 아니, 결혼이 싫다면 첩으로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어요.”
“뭔 소리야, 갑자기. 그런 거 말고─.”
“...! 혹시 첩자리도 다 찬 건가요? 채림 양이 말한 게 사실...”
“......”
어지럽네.
그 이후로 채림이 깨어나며 ‘스장님은 벌써어 넷이나 있어요오오오’ 하는 걸 간신히 틀어막고 한참 오해를 푸는데 시간을 투자했다...
올해부터 리나님과의 대전식은 진행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 해부터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사회자의 말과 함께 왕국에 음파가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변동 공지에 많은 이들이 당황했으나 어차피 리나의 대전식은 뻔한 경기들 중 하나였고, 축제는 대전식 말고도 즐길 거리가 많기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아니, 애초에 왕국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그리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 정도가 한계야.
“더 이상은 힘들고?”
─응.
그리고 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리나를 트라비아 호텔의 옥상 위에서 올려다 보았다.
환묘세계를 돌리기 전까지 근심이 가득했던 그녀는 너무나도 밝은 모습으로 왕국의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 ‘전부’는 못 살리네.”
─애초에 잡기로 한 이상 희생은 불가피한 거지.
일전에 리나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다면.
‘전부’가 가짜인 건 아니다.
환묘세계는 현실에 실제 하는 만큼 현실성이 극도로 높다.
지금 날을 보면 환묘세계가 펼져진 이후 단 1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제법 지난 상태다.
하루가 지났지만 환각의 영향 탓에 전투가 있었던 일부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오보로스의 장막을 통해서 발동된 거라 암실에서의 소모가 현실에 영향을 미쳤어.
“희생자는?”
─유저는 67명. 행성의 주민들은 145명. 전부 암실에 있던 사람들이고 유저의 영혼은 명계로 갔기 때문에 죽더라도 시간만 들이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어.
하페루아는 허공에 뜬 무수히 많은 정보를 분리하며 그리 말했다.
─그리고 주민들은…
“이미 ‘소모’가 돼서 못 살리겠네.”
─그렇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오보로스가 초월하지 못한 신이라고 해도 나름 행성 내에서 이름을 떨치는 고위신.
그런 신의 힘으로 구성된 공간까지는 아무리 레빗이라도 완전히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분할된 세계의 영혼은 너무나도 약했으니까.
─어차피 관리자년 자리만 뺏으면 다 살릴 방법이 있으니까, 너무 풀 죽어 있지마.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난 멀쩡한데?”
내 표정이 뭐가 어쨌다는 건가.
난 평소랑 똑같다.
─멀쩡한 표정이 그 모양이야?
“......”
난 멀쩡하다.
조금 쳐진 게 있다면 다윤이가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안 와서 보고 싶다는 정도.
그거 아니면 문제없다.
나의 반응에 잠깐 생각에 잠긴 하페루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한번 갈게.
“응? 너 신경 쓰인다고 모습 안 들어낸다며.”
─대충 숨기면 괜찮아. 어차피 모습 들켜도 별 이상행동만 안 하면 돼.
뭐, 그렇다면야...
...그런데 슬슬 다윤이도 올 텐데 하페루아 까지 오면.
“음… 감당 가능하겠어?”
─김다윤이 뭘 하든 나랑 뭔 상관이야?
“아니, 너 다윤이랑 있으면 엄청 치고 박…
“윤 씨!”
콰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거의 폭격기가 떨어지는 것 마냥 무언가 옥상으로 추락… 아니, 착지했다.
비산하는 뭉게구름과 제법 큰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사태를 일으킨 주범의 기운에 의해 막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주범은 당연히…
덥석.
“헤헤…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
나를 꽈악 끌어안은 다윤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었다.
다윤이는 웃음꽃이 가득 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일하셨나 보네요.”
“다 끝났어. 정리만 하면 돼.”
아데르 리나의 결혼 이벤트는 폐지 시켰고 적당한 조치도 취해뒀으니 남은 건 벌여놓은 인과관계만 정리하면 끝이다.
한참을 끌어안던 다윤이 계속 놓지 않고 나를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놓지 않음에 이상함을 느꼈다.
“다, 다윤아?”
“...후우. 흐흐흐흐…”
“무슨 일 있었어?”
“일이요? 일이 있긴 했죠.”
스윽.
싸늘해진 다윤이 나를 더욱더 끌어안으며 올려다보았다.
“방금 목재인형을 부수고 왔으니까요.”
“아 그래? 축하해. 부셨으면 삼지창을…”
부셨으면 삼지창을 줘야 하는데…
나가버렸네?
꿀꺽.
“...근데 삼지창이 없더라고요.”
“......그, 그렇지.”
꽈아아악…!
이제는 거의 부러트릴 정도로 나를 억세게 끌어안는다.
물론 당연히 부러질 수 없는 육체지만 분위기에 금방이라도 바스라 질것 같았다.
“다, 다윤아?”
“...”
“챌린지였으니까 나갈 수 있지.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였잖아.”
“그렇죠.”
“그치? 그거 말고도 다른 좋은 것도 많으니─”
“그럼.”
다윤의 눈빛은 마치 티르빙의 설산처럼 냉기가 맴돌았다.
“한채림이 누구예요.”
어…
─멍청이.
하페루아의 조소가 들려오긴 했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특이점을 위해서 영입한 거라고요?”
“그래. 필요한 녀석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절대 아니고.”
“...”
다윤이와 무려 6시간 동안 긴밀한 대화를 나눈 끝에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아니, 풀었다기보다는 단순히 말로만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에 그 시간 동안 자연스레 풀린 영향도 있다.
“어차피 삼지창은 상관없었어요.”
‘다른 게 문제였지.’ 다윤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흐트러진 옷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클린 마법으로 싹 정리하니 깔끔한 형태의 달빛을 닮은 복장으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모일 때가 됐죠?”
“그렇지. 다들 어느 정도 성장한 거 같으니.”
그간 떨어져 지냈던 이유는 대부분의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한 것도 있지만, 각자의 실력이 모든 이들을 월등히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고위신 정도는 때려잡을 수 있어야지.’
고위신을 길 가던 병사A 정도는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사A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때가 왔다.
“다들 길드에 모이라고 연락해.”
다윤 길드의 소집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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