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3화 〉 9. 6번째 정령왕 (1) (173/318)

〈 173화 〉 9. 6번째 정령왕 (1)

* * *

­

그 뒤로 추가적인 설명이 이루어졌다.

천공의 섬 내에 위치한 여러 시설들의 관리 현황이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보스 레이드 관리.

행성 내에 영향력은 그다지 없었지만 다윤 길드의 관할에 있는 영역들.

그것들 하나하나 보니 채림은 앞서 나온 자본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있었다.

“다 한 건가?”

“그렇다냐.”

레빗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관리 문제로 회의에 불참한 루아랑 다른 곳에 있는 하페루아를 빼면 다 모인 자리.

‘오랜만이네.’

다시 모여서 여정을 떠난다는 게.

“지난 1년 동안 다들 많이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에게로 여러 시선들이 꽂힌다.

여러 가지의 감정과 생각이 담긴 시선들.

“굳이 같이 다니지 않고 따로 수련을 하라고 한 이유는...”

하지만 그 시선은 다른 곳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만을 목표한다.

“이런 날을 위해서야.”

내 손에서 뻗어 나온 마력이 둥글게 회전하자 하나의 푸른 문을 그렸다.

문안에는 여러 속성이 가득 찬 세계가 보였다.

“...분리 도시?”

“응. 정확히는 과거 정령들과 정령왕이 이주한 '정령 도시'지.”

정령의 도시, 리벤디아.

물, 불, 대지, 바람, 어둠.

다섯 정령왕이 살고 있는 차원으로부터 분리된 도시다.

분리된 도시는 분할되지 않고 오직 하나만 존재하기에, 다른 곳에 살아가는 생명체보다도 훨씬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정령 하나하나가 분할된 세계의 어지간한 신과 맞먹을 정도.

하지만 그런 강함을 지니고 있기에 당연하게도 제약이 존재한다.

한번 정령의 도시로 들어온 정령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곳에서 태어난 정령 또한 마찬가지.

그것은 정령이라는 한계를 넘어 성장한 '정령신'또한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정령신들은 자신들의 조상인 정령왕들을 존경하지만, 리벤디아로 들어가는 것은 꺼려 한다.

그곳을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다섯 정령왕뿐이다.

“그래서 리벤디아로 간다는 거야?”

“응.”

“가서 뭘 할 건데?”

나의 설명을 쭉 듣고 있던 이랑이 물었다.

리벤디아로 가는 이유.

여러 가지가 있긴 하다.

바람의 정령왕인 '네메린느'도 만나서 얘기도 들어야 하고, 이날을 위해 과거 엘린시아에서 정령과 계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꼭 가야 하는 이유라면...

“정령 도시에는 초월자가 있다.”

“...!”

“정령왕인가요?”

“맞긴 하지만 그들만 있는 게 아니야.”

베린은 놀란 듯 눈이 커졌고 다윤은 나에게 의문을 물었다.

그리고 채림은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 못 한 체 멀뚱히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리벤디아로 가서 초월자를 만나고 그 힘을 회수한다.”

─그게 끝입니까?

“아니.”

그 정도만 할 거면 전처럼 나 혼자나 레빗 한 명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가 다 같이 가는 이유는 다른 목적이 있다.

“의뢰가 하나 들어왔어.”

“의뢰.”

한 두달전 쯤인가...?

나는 레빗과 미야를 데리고 엘린시아를 다시 찾아갔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채림의 주위로 이피아 로니움의 아들이 나를 찾는다는 목적 아래 움직인다는 걸 들었다.

물론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라는 듯 나에게 위협은커녕, 채림에게조차 전혀 위협이 안됐다.

오히려 채림의 곁에서 조의 일원으로 열심히 활약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제법 쓸만했지.'

힘도 제대로 못쓰는 머저리 보다는 그 아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데 더 뛰어났었다.

아무튼 그래서 엘린시아를 구경 차원에서 찾아갔다.

그곳에서 아들의 안부를 전하자 식겁하며 몸서리치는 이파아와, 그런 이피아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엘린시아를 한번 만나고 대접을 받았다.

천공의 섬의 내로라하는 요리사들보다는 실력이 좋진 않았으나 이 정도만 돼도 꽤나 훌륭했다.

무엇보다 남의 돈이라 더 맛있었던 것도 있다.

그렇게 대접을 신나게 받고 가려고 했는데...

­왜 또 온 거냐 인간.

이곳의 주인이자 빛의 정령신, 히아트를 만났다.

우연한 만남 같지만 엘린시아는 차원으로부터 분리된 도시기에 이곳을 들르려면 반드시 히아트와 마주해야 한다.

들어올 때는 별말 안 하고 통과시켜 주더니, 떠날 때가 되니까 갑자기 말을 걸었다.

“오면 안 되나? 애초에 문을 열어준 건 너잖아?”

­..그건 네가 암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를 아는 자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다고 하기에는 오히려 반기듯 열어주던데?”

실제로 히아트는 엘린시아에 접근해 암호를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문을 열었다.

뭐, [히아트가 못마땅하게 문을 열어줍니다.]

이런 멘트 없이.

­...

정곡을 찔린 듯 히아트의 말이 없어졌다.

한참을 묵묵부답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용케도 나의 검을 손에 넣었군.

“아, 이거?”

그동안 수많은 무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두 가지의 무기만 사용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히아트의 검인 '찬란한 빛'.

신성력이 가득한 것이 참 용사에 걸맞은 무기다.

­본 주인을 죽이고 무기를 빼앗았나?

“뭘 그리 말을 심하게 한 대. 난 죽인 적 없어. 양도받은 거지.”

베리가 검의 주인이었던 로미를 죽이고 빼앗긴 했지만.

물론 그와 별게로 로미는 어차피 죽은 사람이었고, 베리는 그 일을 행할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양도받은 것이 맞다.

내 당당한 표정에 무형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히아트는 한숨을 내쉬듯 하늘을 일렁거렸다.

“그래서 날 부른 목적이 뭐야. 내가 마음에 안 드니 검을 빼앗으려고?”

­...아니.

“그럼?”

과거에 자신을 찬양하고 모시던 열렬한 신도 앞에서 쪽을 당하게 만든 장본인.

그런 장본인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른 걸까.

나는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가지고 들었지만 내가 들은 것은 전혀 예상지도 못한 말이었다.

­......날 도와줬으면 한다.

“??? 뭐?”

­날 도와서.

무형의 존재감은 어느새 하나의 빛의 정령으로 현신해 눈앞에 나타났다.

빛은 너무나도 밝아, 마치 여신의 빛처럼 반짝였다.

“나를 '6번째 정령왕'으로 만들어다오. 그러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

­

"그랬지."

"...그게 가능한가요?"

다윤이 물었다.

정령왕은 특수한 존재다.

각자의 속성 중에 단 한 명만 존재하는 정령들의 왕이며, 격이 높아져 새로운 속성을 터득한 '정령신' 조차도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야말로 정령들의 '왕'.

그렇기에 정령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정령왕이 될 수 없지만...

그 예외, 절대 바뀌지 않았던 법칙이 불과 몇백년 전에 변화했다.

"녀석의 말대로라면 불가능하진 않아. 이미 진위 여부와 가능성은 파악은 해뒀고."

하페루아와의 정보 공유를 통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은 입증받은 상태.

나 혼자서는 온전히 다 할 순 없겠지만 동료들이 있다면 가능하다.

나의 손끝에 세계를 비추는 포탈 대신, 어둠으로 가득 찬 조그마한 정령이 보였다.

정령은 너무나도 작지만, 반대로 너무나도 거대했다.

“어둠의 정령왕, 세피드. 태초에 불 속성에서 시작한 이 정령은 자신의 격을 올려 어둠의 정령신이 되었고, 그것에 끝나지 않아 ‘정령왕’에 자리에 올랐어.’

불가능한 진화.

하지만 세피드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 정령왕이라는 자리에 올랐다.

“그런 배경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신을 따른 ‘어둠의 정령’이 많았기 때문이야. 새로운 속성의 특수성이 자신과 같은 속성을 지닌 수많은 정령을 만들어낸 셈이지.”

빛의 정령신 히아트나, 번개의 정령신 유페르도같은 고위신에 위치한 정령신들 역시, 자신의 속성과 비슷한 추종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세피드의 어둠의 정령은 달랐다.

어둠의 정령은 다른 4대 속성과 맞먹을 정도로 많은 수의 정령들이 생겨났다.

어째서 그리 생겨난 건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되었고,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세피드의 세력에 다른 정령왕들은 그를 ‘정령왕’으로 인정해 주었다.

“...마기.”

월광의 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던 다윤이 중얼거렸다.

“어둠의 정령이 악마의 그것과 같은 판정이 된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니야.”

“?”

“하페루아에게 확인한 결과 마기에 의해 타락한 정령은 ‘어둠의 정령’과 동일한 개체로 취급받지 않아. 아마 정령왕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마기(??)와 어둠(??)은 힘의 방향성만 비슷할 뿐, 그들의 근본과 영향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자리까지 오르게 된 걸까.

답은 이곳에 있다.

내 손에 펼쳐 친 문은 다시 포탈이 되어 세계를 비추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분리 도시, 리벤디아로 가서 각각의 정령왕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받아온다.”

“능력을 받아와?”

베린이 그리 묻자 나는 손을 뻗어 각자의 앞에 포탈을 띄웠다.

베린의 앞에는 아까 보여준 짙은 어둠을 두른 세피드가 보였다.

“직접 정령왕을 마주하고 그들의 시험을 받으면 돼. 그러면 자신의 정령의 능력이 더욱 올라갈 거야.”

“음… 오케이.”

“다윤과 이랑은 불의 정령왕, 이그네아를 만나러 가. 둘 다 불과 관련된 능력이니 별 의심 없이 받아줄 거야.”

“알았어.””알았어요.”

다윤과 이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콜트랑 베타는 물의 정령왕, 아리아. 정령은 이미 계약해뒀지?”

“물론입니다.”

─정령코드는 이미 구현해두었습니다.

콜트와 베타 역시 자신의 기계화된 부분을 만지며 대답했다.

물과 기계가 상극이긴 하지만 저 정도의 수준이면 그 상극조차 무시할 수준은 된다.

“땅의 정령왕, 스틸은… 레빗이 가고.”

“냥!”

“바람은 나랑 채림, 그리고 혹시 올지도 모를 하페루아랑 같이 만나러 갈 거야. ”

“어… 네?!”

채림이 알 수 없는 얘기들에 멍하니 있다 번뜩! 상체를 세웠다.

“저, 저저저저요?”

“응. 넌 정령 계약이야 금방 하면 되고, 님프랑 드래곤이 있어서 바람이 맞아.”

“어, 어어어…”

안절부절하듯 고개를 파르르 떠는 채림은 시선을 힐끔 돌려 다윤을 바라보았다.

옅게 웃는 다윤 언니의 모습에 어째서인지 인자하면서도 두려웠다.

“네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