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10. 이루어질 수 없는 (5)
* * *
차갑다.
파직.
아니, 뜨겁다.
‘흐으…’
거대한 전류의 파도 속, 채림은 상황을 관조한다.
무의식중에 붙들고 있는 창의 마력은 심장을 흐르는 마력과 혼합되어 주위를 잠식한다.
‘...안돼…’
위험, 하다.
여태껏 항상 정신을 잃고 사고를 쳤지만 이번은 달랐다.
스케일이 다르다.
이대로 가면 이 차원 도시 전체가 파괴될 수 있는 상황.
단순히 길드에서 쫓겨나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주, 죽을 수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력의 잠식을 막아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미 통제를 잃은 육체는 제멋대로 행동했고, 이 정신도 제대로 된 정신이 아니었다.
심상(心?)의 구석에 위치한 아주 작은 정신의 파편.
그것에 기대어 이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했지만, 오히려 더 절망적이었다.
차라리 아예 정신을 놓고 모른체했으면 모를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저벅, 저벅.
‘...!’
왔다.
길드원분들과 정령왕들.
마지막으로 길드장님을 보니 몸의 마력이 조금 흔들렸다.
[...스스 스장님...]
어느새 열린 입.
허나 할 수 있는 거라곤 말이 전부였다.
“괜찮아?”
[그, 그그그 몸이 이이상상해요….]
파직.
“정신 붙잡고 있어. 금방 돌아오게 해줄게.”
[오… 오지마요!!]
제멋대로 나간 번개의 빛이 길드장님과 그 일행을 강타했다.
콰지지지직!!
분홍빛의 불이 빛을 막았지만 빛은 사그라들지 않고 길드장님을 노린다.
「▼정령─ 」
「▼정령─ 」
다행히 상쇄된 능력.
허나 이 몸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심장의 마력이 더욱더 날뛰었다.
[오지마아아… 또, 다, 다치게 하기 시, 싫어......]
덜덜 떨리는 입으로 말을 내뱉는다.
만일 입만이 아닌 얼굴 전체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펑펑 울고 있었으리라.
‘또… 또…’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던 일.
항상 그랬다.
평소에는 별 어려움 없이 잘 다니다 중요한 일이나 보스전에 들어가면 정신이 나간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모든 걸 망쳐놓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워낙 하이텐션에 수치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니 재미있어하는 동료들도 제법 있었으나,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될수록 그들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왜 맨날 쟤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해?’
‘능력은 쓸만한데… 차라리 다른 녀석이 낫지 않나? 쟤 신경 쓰다 날려먹은 보스가 몇개…’
‘...’
그랬기에 자신의 능력을 알고도 영입해 준 김윤 길드장님께 너무나도 감사했다.
과분한 무기도 받고 그동안 상상도 하지 못할 수많은 지원도 받았다.
하나같이 다들 굉장한 능력을 지닌 길드원들.
그래서 더 안심했던 것도 있다.
‘내가 날뛰어도 별 어려움 없이 막아주시겠구나.’
하지만 아니었다.
강한 길드인 만큼 당연히 강한 곳에 일을 나섰고, 더욱더 강해진 자신이 사고를 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죄송해요.’
이일이 어찌어찌 수습된다면 받은 모든 걸 돌려주고 나갈 것이다.
과거의 일들 이후 혼자 다니기로 약속해놓고, 왜 또 좋다고 다시 길드에 들어왔을까.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으면서.’
채림은 멍청한 자신을 탓하며 이 상황이 제발 무사히 끝나기를 기도했다.
“냥.”
즈앙!
‘...!’
그 순간, 시야 전체가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마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
어느새 채림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온 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어?”
투툭.
투욱.
쿵!
따꼼한 감각과 함께 옆을 살펴보니 해롱해롱 거리고 있는 님님이와 령령이, 그리고 용용이가 보였다.
그래, 무의식중에 이들의 능력까지 흡수해서 사용했지…
채림은 이 일이 끝나면 이들 역시 놓아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아.”
“...흠. 이제 좀 괜찮은 것 같네.”
“아아…”
투투둑.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아래로 떨어진다.
지탱할 힘을 잃은 물방울은 어느새 흙으로 된 땅바닥을 촉촉하게 물들였다.
“죄,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
“잘못했…”
“뭐가 죄송한데?”
“어… 그…”
채림은 새빨개진 눈을 손등으로 닦으며 김윤을 보았다.
백색의 칼을 허리에 걸치고 있는 그의 표정은 채림이 예상했던 짜증이나 분노, 혹은 불쾌한 감정들.
그런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김윤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괜찮아 보였다.
“네가 죄송할 건 없어. 다 알고 데려온 거니까.”
김윤의 손이 채림의 이마에 맞닿았다.
손에서 흘러들어간 연푸른 마나가 그녀의 몸의 곳곳을 돌며 정신을 안정화시킨다.
「▼─ 」
“아…”
“이제 괜찮지?”
“...네.”
혹시… 이 사람은 천사인가?
이렇게까지 사고를 쳐도 괜찮다 해주시다니.
채림은 멍한 표정으로 김윤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살짝 웃으며 대고 있던 손을 때었다.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든다.
이런 좋은 사람 곁에서 이제 떠나야 한다는 것이.
허나 일은 벌어졌고, 채림은 뻔뻔하게 사고를 치고 남아있을 정도로 양심이 없지 않았다.
아니, 없어지게 되었다.
과거의 채림과 지금의 채림은 다르다.
그러니.
“저!”
“안돼.”
“네?”
김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흙으로 된 땅을 앞장서 걸었다.
“길드에 나가겠다고? 누구 맘대로.”
그가 돌아본다.
여전히 그는 웃고 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분위기는 진지했다.
“도망칠 생각하지마. 도망친다고 나아질 건 하나도 없어.”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길드에 민폐만 될 거 예요. 제가 받은 건 전부 돌려드리고...”
“민폐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채림은 떠나가는 그를 보고 옷에 묻은 흙을 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세 마리의 소환수를 들고 따라갔다.
푸른 창공이 비치는 땅.
전류로 가득 찼던 ‘바다’는 아니다.
잠시나마 정령왕이 되었던 채림은 이 공간이 어디인지 알았다.
‘...아리아라는 정령의 차원 중 하나야. 기억 속에 있었어.’
채림은 아리아가 물의 정령왕이기도 전의 기억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다만 정령왕이 아니게 된 채림은 평소에는 기억하지는 못하고 이렇게 직접 마주해야 기억의 파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민폐가 아니지.”
“네?”
김윤은 턱을 짚으며 무언가를 떠올리듯 말을 골랐다.
“다윤이도, 베린도, 이랑도. 그리고 콜트도 다 완벽하진 않았어. 다들 처음은 어리숙하고 제힘에 취해 막 나가기도 했지.”
나는 동료들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다윤과 처음으로 마주한 튜토리얼.
다윤이는 과거의 자신의 미숙함과 악의를 가진 인간이 만들어낸 악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항상 밝은 척하다가도 가끔씩 드러나는 과거의 어둠에 꽤나 고통받았었다.
그녀는 어리숙했지만 날이 갈수록 정신적으로 굉장히 성장했고, 그녀는 더 이상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내 돈을 가로채려던 베린은 나에게 잡힌 이후에도 가끔씩 도둑질을 하고 그랬지만, 녀석 역시 처음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달라졌다.
특히 환각 이후로 더 이상 아이 같은 행동은 줄어들고 냉철히 상황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랑은…
그녀는 이미 성숙한 상태다.
허나 그것이 모든 일에 완벽하다. 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이랑은 자식같이 여기던 에덴 공작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꽤나 고통을 받았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해 이랑을 영입했고 이랑의 정신적인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랑은 이미 수백 년을 살았으니까.’
그녀의 사고방식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성립되었다.
더군다나 가뜩이나 강한 만큼 몇천 년이 지나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
그녀 역시 나와 함께 하고 난 이후로 제법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콜트는…
“...흠.”
“?”
뭐, 아직도 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사람은 꽤나 괜찮아졌다.
적어도 누군가를 해치면서까지 이득을 챙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리아는 콜트 쪽인데 일을 채림이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다.
...새삼 투자한 돈이 아까워지고 있다.
‘지원을 삭감해야겠군.’
“지금 완벽해 보이는 동료들의 과거를 알면 깜짝 놀랄걸? 그중에는 엄청나게 사고 친 일도 있었지.”
통합 서버 이후의 1년은 정말 난관이었다.
아무리 환각 이후에 강해졌다고 해도 다들 고위신들과 반(半) 초월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나랑 레빗, 이랑을 제외하고 다들 몇 번이나 죽을뻔했던 기억이 있다.
채림은 각종 사고 모음집을 들으며 멍하니 따라 걷다 멈춰 섰다.
“...길드장님은요?”
“응?”
“길드장님도 똑같았어요?”
채림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그러고 잠깐 과거를 돌아봤다.
새롭게 시작한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를.
“응. 그때는 힘도 없어서 실수가 잦았지만... 그만큼 더 재밌었지.”
나는 웃었다.
아마 모를 것이다.
언더독에도 미치지 못한 개미가 거대한 적을 잡아내는 그 감정을.
어쩌면 지금도 그런 감정 때문에 관리자와 싸우려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안 쫓아낼 거예요?”
“그렇다니깐.”
나와 채림은 차원의 경계 끝에 도달했다.
아리아가 만들어낸 예비 차원들을 레빗의 환묘세계를 통해 구현해 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차원인 만큼,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아리아의 공간 속에 따로 존재한다.
따라서 환묘세계 역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아리아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쯤에 있을거 같은데…”
말하자면 사라진 ‘아리아’는 이 공간들속 어딘가에 있다.
“...저기.”
“응?”
“저거 아니에요?”
소환수를 양손 가득 들은 채림의 시선 끝에는 경계 너머의 물과, 그런 물을 집어삼키려 드는 불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