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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화 〉 10. 이루어 질 수 없는 (7) (186/318)

〈 186화 〉 10. 이루어 질 수 없는 (7)

* * *

­

[네메린느?! 네가 어떻게 여길...]

[닥치고 처맞아!]

콰아앙!

녹색의 바람은 탄환처럼 쏘아지듯 이그네아의 왼쪽 팔을 꿰뚫었다.

팔을 그대로 허공을 날았으며 불의 손에 잡혀 있던 아리아는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불안정한 차원 경계 너머로.

[아, 안돼!]

[미친놈.]

이그네아는 바람의 공격을 전부 맞아가며 떨어지는 아리아를 어떻게든 쫓아갔다.

그 과정에서 이그네아의 육신은 너덜너덜 해졌지만 그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안 쓰는듯했다.

[놔라! 네메린느! 아리아를 죽일 셈이냐!!]

[네가 안 구해도 구할 녀석이 있어. 그러니 넌 좀 맞자 그냥.]

콰득!

[...!]

[안 놓으면...]

화륵.

갑작스런 염화(?火)가 이그네아 주위로 용암처럼 쏟아진다.

네 정령왕 중 가장 강한 네메린느는 아무리 약해져도 이그네아한테 지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없었다.

'위험...'

그럼에도 네메린느는 순간 위기를 감지하고 몸을 빼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계약자와 연결된 기감이 몸을 반응하게 만들었다.

콰르르르륵­

네메린느가 있던 자리는 칠흑 같은 어둠만을 남긴 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어둠 주위로는 끔찍할 정도로 붉은 화염만이 흉흉한 살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너, 나를 죽일 셈이냐?]

[비키지 않는다면.]

염화(?火), 아니 흑염(??)을 두른 이그네아는 전성기 이상의 기세를 보이며 거대한 대검을 소환했다.

대검이 한차례 차원을 긋자 불안정한 예비 차원은 그대로 두 동강 났다.

두 동강난 차원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나며 차원 경계 너머로 바스러진다.

[...뭐야 저거?]

"세피드랑 손을 잡았나 보네."

가족으로서 자기가 꼭 저 정신머리를 고치겠다고 튀어나간 네메린느가 돌아왔다.

얼마나 급하게 돌아왔는지 바람의 옷은 전부 늘어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 흑염 」이라..."

아무리 초월자의 예비 차원이라지만 한방에 박살 내다니.

지금 상태의 이그네아는 적어도 등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는 된다는 소리다.

당연히 제힘은 아니고 받아쓰는 힘이겠지만.

[...언제부터 저렇게 된 거지?]

네메린느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훨씬 약했는데...]

"제힘도 아닌데 뭘."

[...넌 아무렇지도 않은가?]

그녀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아공간을 뒤적거렸다.

"저놈보다 대단한 놈들을 많이 봐서. 이젠 익숙해."

초월자의 힘을 받아쓰는 초월자.

확실히 강하긴 하지만 그것이 내가 두려워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철컥.

"중요한 건 스스로의 '고유 능력'을 깨우치는 거지. 어쭙잖은 힘을 빌려 써봤자 딱 그 정도일 뿐이야."

"지금 저 비꼬는 거예요?"

채림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봤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줬다.

"글쎄, 어떨까?"

"...다윤 언니의 말이 이해가 되네요."

"응?"

"아니에요."

여전히 세 마리의 소환수를 안고 있는 채림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래도 나름 괜찮아진 모양이다.

[...그래 다 좋은데, 이건 왜 또 건 것이냐.]

절그럭.

네메린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수인화 목걸이를 들었다.

불편함은 별로 없지만 기분은 이상한 목걸이.

쫑긋 선 귀와 잔뜩 흔드는 꼬리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지만.

[또 개처럼 행동해 주길 원하느냐?]

"내가 말했잖아. 받아쓰는 힘은 딱 그 정도라고."

[...설마.]

우웅.

"가서 한방 먹여주고 와."

­

차원이 박살 나고 다른 차원으로 떨어진다.

아리아의 '허상 공간'은 과거 정령왕들이 한데 모여 정령도시를 만들기 이전에 아리아가 직접 만들어낸 공간이다.

한때 이 허상 공간 자체를 정령 도시로 만들려 했으나, 워낙 광범위하고 차원의 불안정함이 많아 결국 보류했던 곳.

현재의 허상 공간은 만들다 실패한 차원들을 전부 쑤셔 넣은 공간이기도 했다.

"...약해졌네."

차원과 차원 사이의 공간을 지나며 아리아는 중얼거렸다.

한번 힘을 뺏긴 탓인지, 아니면 정령왕의 이름이 흐려진 탓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더 이상 정령왕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약해졌다.

「▼정── 」

화륵!

"...! 네메린느가..."

저 불이 자신 쪽으로 향한단 소리는 네메린느가 뚫렸다는 소리다.

아리아는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아리아! 내가 곧 구해줄게!]

"...지가 위험에 빠뜨리고 지가 구해준다라..."

대체 저놈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는 걸까.

지난 일만년간의 일이 그저 한밤중의 꿈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갈색의 나무 넝쿨이 아리아의 육신을 붙잡고 무질서하게 놓인 다른 차원으로 급히 들어갔다.

쿠웅!

"...스틸?"

[위험했다. 좀만 늦었다면 공간채로 불탔을 거다.]

너는 안 탔겠지만.

스틸은 그리 중얼거리며 옷을 탈탈 털었다.

흰색의 도복을 입은 그는 바닥에 손을 대고 차원을 강화했다.

[소식은 들었다. 이그네아가 너에게 연심을 품는다고.]

"아..."

[혹시 받아줄 마음이 있나?]

"아니."

아리아는 단호히 말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스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그의 마음도 존중은 한다만…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자, 잠깐! 존중을 한다고?"

아리아는 귀에 벌레라도 들어간 듯 반응했지만 바닥에서 손을 땐 스틸은 무덤덤했다.

[그에게 있어서 정령왕이라는 제약은 그 어떤 구속보다 감내하기 어려웠을거다. 나는, 아니 우리는 몰랐지만 그는 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았을 테니.]

"..."

[하지만 그와 별게로 나는 이그네아의 생각을 존중한다. 불가능한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든 일을 벌였고, 실제로 성공하지 않았는가.]

스틸은 조금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리아는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저게 스틸이지.

스틸은 초월 이후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끊임없이 수련했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아그네아는 '위'의 존재를 이겨낸 투사로 보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까지 죽일 생각을 가진건 좋게 볼 순 없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그가 목표를 달성한 것에 대해 존중한다. 물론 아리아 너의 뜻도 존중한다.]

"그 개새... 아니 이그네아는 네 기준에 부합했다고 해도 나는 왜?"

[가족이니까.]

스틸은 당연하는듯이 말했다.

[가족의 뜻은 당연히 존중한다. 아리아, 너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 이게 맞지."

아까부터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이 자꾸 흐려지는 기분이다.

「▼정── 」

[이그네아는 스스로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려 하니 당연히 그에게 맞춰줄 이유는 없다. 그러니 내 뜻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아니, 이해해."

[그렇다면 다행이고.]

"...물론 이그네아놈은 이해 안 해."

아리아의 질색 거리는 반응에 스틸을 허허 웃었다.

...스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잠시 안정된 공간에서 힘을 고르던 아리아는 물었다.

"...그런데 나도 존중하고, 그놈도 존중하면 왜 나를 도와주는거야? 네 말대로라면 둘 다 도와주거나 차라리 아예 안 도와주는 게 맞지 않아?"

"...그건."

날카로운 질문에 스틸은 처음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마치 거대한 적을 상기시키듯 오싹함을 느끼던 스틸의 손발이 벌벌 떨렸다.

[명ㄹ... 아니,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탁?"

[계약자와...]

콰­득!

[아리아!]

"...미친놈."

몇 겹으로된 결계를 한 번에 박살 내다니.

이 차원을 부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했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야! 그러니 나를 믿고 내 옆에 있어줘!]

"...아직도 존중하니?"

[...살짝 흐려지기 시작하는군.]

아리아와 스틸은 그리 중얼거렸다.

미친 사람처럼 아리아만 찾던 그의 시선에 갈색 머리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스틸!]

[오랜만이야. 이그네아. 고작 하루 지났다고 꽤나 강해졌군.]

[내 아리아를 가져가고 무사할 것 같았나?!]

"내가 왜 네 꺼야 미친놈아!"

아리아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그네아의 왼손은 흑염으로 물든다.

강대한 기력으로 물든 그의 손이 하늘로 뻗어진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나와라! 흑염룡(???)!!!]

이윽고 까무잡잡한 거체를 가진 용이 차원 중단부를 관통하며 튀어나왔다.

차원의 면과 맞닿은 면적은 흑염에 불타 존재 이유를 잃고 소멸했다.

그 격이 다른 어마 무시한 광경을 지켜보던 둘이 말을 내뱉었다.

"...아직도?"

[흠... 심각하긴 하군. 대체 힘을 대가로 뭘 내줬길래...]

전) 가족이었던 네메린느와 스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힘 자체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저 흑염에 스치기만 해도 어중간한 반 초월자는 그대로 죽을 정도의 위력.

브레스는 당연히 소멸행 확정이다.

"...넌 도망가. 어차피 저놈 목적은 나니까. 굳이 네가 목숨 걸 이유는 없어."

[그럴 수 없다.]

"아이씨! 다 죽는다니까? 저 미친놈 눈깔을 봐도 그 말이 나와?"

[흠...]

스틸은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이그네아를 보았다.

확실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상이 아니긴 하다만...

[가족을 버리고 도망갈 수 없다.]

"...저놈이 네 반만큼. 아니 반의반만큼만 생각했으면 좋겠네."

[그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퍽이나.”

피식.

둘의 화목한 대화를 듣던 이그네아의 표정이 울그락붉으락 변했다.

[당장 떨어져라!!!]

“아오 저 미친 새끼.”

차원을 꿰뚫은 용이 브레스를 준비한다.

저 흑염의 브레스를 쏟아내면 이 차원은 당연히 날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둘 다 죽음을 면치 못할 거다.

[넌 산다 아리아. 이그네아의 목적은 너이지 않은가.]

“그러니 도망가라고.”

[안된다.]

스틸은 팔을 거대한 갈색의 방패로 만들어 주위를 태우는 흑염을 막아냈다.

치이익─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선명히 타들어가는 방패.

잠시 표정이 찡그려진 그는 하늘을 보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그리고 계약자의 부탁을 받은 건 나 혼자가 아니다.]

「▼저장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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