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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화 〉 11. 계약 (2) (188/318)

〈 188화 〉 11. 계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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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세피드는 눈앞에 선 붉은 머리의 안드로이드를 보았다.

개체 자체는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브리아 등급 정도.

돈 ­ ‘브리아’ ­ 데타 ­ 디티아 ­ 프렉티스 ­ 오코바스 ­ 메가 오코바스.

세피드의 고향 행성에서 개발되던 전투 병기의 등급.

가장 약한 개체는 돈 등급의 평범한 병기다.

수준은 가장 낮지만 그래도 전투 병기.

서른 개체만 있어도 초월자 하나 없는 변방 행성 정도는 점령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이상으로 갈수록 개체의 능력과 효율이 월등히 상승하며, 최고 단계인 메가 오코바스는 우주의 재해(災?)라고도 불린다.

해당 개체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행성이고 초월자고 전부 사라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에르투스. 그 망할 놈들도 단 세 개체밖에 없는 병기지.’

세피드 에르투스는 수도 행성에서 딱 한 번 본 개체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저 여성형 안드로이드는 메가 오코바스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한참 약한 밑에서 두 번째 단계인 ‘브리아’급.

브리아 정도의 개체면 반 초월자보다도 한참 약한 정도.

당연히 등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는 더더욱 아니다.

세피드는 베린을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놈들이 나를 잡기 위해 보낸 건 아닌 것 같다.

나를 잡을 거였다면 적어도 열 개체 이상의 ‘데타’나, 상위 ‘디티아’급은 보냈을 테니까.

‘아마도 이곳의 공학자가 외부의 능력을 지원받아 만든 거 같은데… 로니움 쪽인가? 아니면 디드락의 뒷골목?’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세피드에게 위협이 될 부분은 없었다.

─위험 프로토콜 실행 모드 수정 완료.

[?!]

“...베타?”

방금 전까지 말이다.

─대(?) 초월자용 병기, 베타.

─코트(Code) ─ 네르토리아(Nertoria).

─광자 에너지 저장률 (100 / 97,120%).

─섬멸을 시작합니다.

안드로이드의 기다란 손이 원형의 포로 변형되더니 푸른빛의 섬광이 거처를 폭파시킨다.

갑작스러운 위력에 세피드는 본래의 몸으로 돌아와 베린을 안쪽으로 끌어안으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콰가가가가가!!!

[크읏!]

섬광에서 터져 나온 광자 에너지는 폭발에 그치지 않고 주위를 잠식하듯 퍼져나간다.

파직─ 퍼져나간 에너지 사이로 푸른색의 스파크가 날뛰며 거처의 ‘어둠’을 갉아먹는다.

단 한 번의 공격의 거처의 90%가 날아갔다.

파드드득─

쿠궁, 쿠궁!

[...하.]

간신히 몸을 뺀 세피드는 손을 휘저어 어둠 장막을 내세운다.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지는 에너지에 장막은 순식간에 파괴되며 여파에 뒤로 튕겨져 나간다.

[베린!]

“...으… 베타...”

‘멀쩡하잖아?’

같이 튕겨져 나온 베린은 적어도 죽거나 적어도 반죽음 상태일 거라 생각했다.

모드 수정이 되기 전까지 ‘브리아’등급이었던 여성형 개체는 한순간에 ‘디타아’급의 개체로 치솟았다.

상위급은 아니지만 적어도 평균은 되는 수준.

지금 상태의 세피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베린은 멀쩡하다니.

‘...나를 잡으려고 온 게 아닌가?’

어쩌면 베린이 에르투스쪽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던 찰나.

뚜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곳으로 날아온 병기, 베타의 아리따운 목소리를 들려왔다.

─베린님을 내놓고 뒤로 물러나세요. 세피드.

“베타?”

─베린님을 데려오고 세피드의 동의를 받으라는 마스터의 명이 있었습니다. 가시죠.

뚜벅.

베타의 걸음이 둘에게 가까워지자 어둠의 칼날이 베타의 목을 겨눴다.

─무슨 짓이죠. 세피드.

[누구 마음대로 내 계약자를 가져가냐 마나야?]

─당신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의를 못 받게 되겠죠.

뒷말을 덧붙인 베타의 에너지가 급격히 치솟는다.

그녀의 모습을 본 세피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과거의 전투 병기를 보는 것과 같은 두려움에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이내 다시 앞으로 뻗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외형을 띄고 있지만 그 힘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자 에너지 저장률 (100 / 91,320%).

오히려 수도에서 보았던 평균 이상의 디티아보다도 더 거대해 보인다.

단순히 힘적인 부분에서는 상위급과도 비견될만한 수준.

허나 세피드는 피식 웃었다.

[죽여? 감히 깡통 따위가?]

─…

「▼흑화 」

그녀의 손끝에 어둠의 선이 별자리를 연결하듯 서서히 이어진다.

선과 선이 이어진 자리에 위치한 모든 곳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깃든 어둠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위험요소 발견. 대응책 탐색 중...

─코트(Code) ─ 네르토리아(Nertoria) ▶ 히아트리세(Hyattrice).

─광자 에너지 연동. 연동률 97% 성공!

─광자 에너지 저장률 (100 / 88,580%).

베타의 왼손에 달렸던 광자포가 한 번 더 변형된다.

변형된 손은 빛의 입자로 가득 찬 하나의 광선검으로 바뀌었다.

신성을 담은 빛은 자신을 집어삼키려던 어둠을 베어내고 선과 선 사이를 그대로 양단했다.

「▼흑화 」

그러나 세피드는 예상했다는 듯 다시금 어둠을 불러일으킨다.

어둠은 쏟아지는 파도처럼 거처 전체를 짓눌렀다.

격이 다른 어둠에 베타의 한쪽 눈이 해답을 찾듯 여러 개의 창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파캉! 검은 잘게 분해되어 수없이 많은 빛의 입자로 변한다. 파편들은 빛의 고리로 변해 어둠 단위를 묶는다.

─광자 에너지 저장률 (100 / 71,310%).

고리들은 중첩에 중첩을 더해 무게를 늘리던 어둠의 무게를 감당한다.

그에 따라 전체의 무게가 줄어들고 행동의 제약이 서서히 사라진다.

‘...’

「▼흑화 」

「▼흑화 」

「▼흑화 」

그그그그─극!

차원의 틈 사이로 마공학이 섞인 어둠의 창이 리벤디아를 꿰뚫고 거처로 낙하했다.

마치 유성처럼 떨어지는 창에 베타는 고리의 변형을 이용해 준비하던 공격 반사를 멈추고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

[하, 쓰면 놈들이 알아채는데...]

뭐, 네가 왔으니 상관없나.

세피드는 중얼거리며 어둠의 창을 붙잡았다.

텁.

「▲흑화 」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둠이 세피드의 몸에 깃든다.

이젠 상위급의 디티아 개체가 와도 세피드를 막을 수 없다.

마치 사형을 선고하듯 그녀가 흑색의 창을 쭈욱 뻗어 베타를 가리켰다.

[죽어, 깡통아.]

화살처럼 쏘아진 어둠의 창이 베타를 꿰뚫었다.

­

“수고했어.”

“그래.”

아리아의 궁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도중 네메린느와 목이 붙잡인 이그네아가 돌아왔다.

환묘세계는 일이 다 마무리되었으니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유지하는데도 힘이 소모되고 말이야.’

어디까지나 이런 차원을 두 동강 내고 부수는 행위는 방금 같은 ‘가짜’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실제의 차원은 마나와 수많은 이름의 격들이 한데 모인 곳이라 아무리 높은 등위의 초월자가 있다고 해도 부수기는 어렵다.

나 역시 최강자의 힘을 써도 잠깐 틈을 여는 것뿐, 실제로 차원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없다.

물론 가짜라고 해도 구색은 갖춘 건 사실이라 어느 정도의 견고함은 있지만.

“다들 어디 갔지?”

“휴식 중이야.”

일도 거의 마무리됐고 이제 하나 남았으니까.

좀만 쉬다 베린쪽으로 가면 될 거다.

하페루아가 조사한 세피드의 특성상 베린과의 계약을 어렵지 않게 해줄 거고, 잘 기회 삼으면 별 무리 없이 동의를 받을 수 있다.

아리아 쪽 일을 실패한 콜트와 베타는 베린이라도 도와주겠다며 떠났는데..

“이 놈을 보면 세피드가 원흉인데. 바로 안 가도 되는 건가?”

네메린느는 추욱 늘어진 이그네아의 목을 꽈악 붙잡으며 말했다.

“세피드 자체는 문제없어. 애초에 적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

세피드는 도망자다.

꽤나 이름 날렸던 초월자였던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향 행성에서 도망치고 이 게임으로 숨어들었다.

당연히 이곳의 주인인 관리자는 알고 있지만 따로 외부에 말하지 않았다.

‘이용해 먹는다는 이유였지.’

뛰어난 수준의 초월자는 게임의 질과 다양성을 상승시킨다.

그녀 덕분에 ‘어둠의 정령’이라는 새로운 종족도 나왔고, 그녀에 의해 정령왕들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게임의 이야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관리자로서는 이득이다.

‘그와 별게로 정말 관심 없어서 라는 말도 있었지만.’

하페루아의 개인적인 감정 탓인지 몰라도 관리자는 굉장히 게임에 관심이 없는 한량처럼 보인다.

마치 이런 게임 따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듯이.

덕분에 손쉽게 계획에 다가서고 있지만.

“과충전 상태의 베타가 갔으니 별 무리없…”

「▲흑화 」

“...? 뭐야 저거..?”

네메린느가 경악하며 저 너머를 바라본다.

어찌나 놀랐는지 잡고 있던 이그네아도 놓쳤다.

리벤디아의 하늘을 꿰뚫고 무언가가 어둠이 짙게 늘어진 영역으로 떨어진다.

자세히 보니 창이다.

어둠의 기운이 물씬 담긴 창.

적어도 이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격보다 압도적인 무언가가 이곳에 나타났다.

‘하페루아.’

─확인 중이야.

하페루아는 빠르게 수많은 창을 열어 정보를 찾는다.

그녀 역시 제법 놀랐는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통신을 받았다.

─확인했어. 세피드 에르투스. 지금 상태는 적어도 3등위야.

‘...생각보다 위험한데. 다들 상황은 어때.’

─베린은 무사해. 애초에 둘 다 공격 범위 외를 상정하고 있으니 다칠 일은 없을 거야. 문제는 베타를 비롯한 콜트지.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데이터 베이스를 저장해 뒀으니 다시 만들면 돼. 콜트는 애초에 멀리 떨어져 있으니 지금 퇴각 명령을 내리면…

“내가 가서 잡는 건.”

─안돼 김윤.

「▲맹약 」

하페루아와 연결된 이마의 문양이 강하게 빛났다.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 아직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일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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