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11. 계약 (4)
* * *
“흐음…”
나는 정말 오랜만에 본 퀘스트 보상들을 받았다.
이미 1~2년 전에 메인 퀘스트를 진작 끝냈기에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문구들이었다.
히든이나 월드이니 하는 것들은 보상이 쓸만하긴 했으나 그것도 2년 전의 이야기.
퀘스트에서 주는 것들은 경험치나 돈, 그리고 쓸만한 장비들인데… 이미 그런건 충분히 차고 넘친다.
레벨은 만렙.
돈은 이미 충분히 많고, 장비들 역시 5~6성급의 장비들이 아니라면 별로 의미 없다.
내가 굳이 두 개의 무기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눈여겨볼게 있다면 두 가지 정도.
[ 칭호 / 여섯 번째 존재(레전드리******)
여섯 번째 정령왕을 탄생시킨 단 한 명만이 얻는 칭호입니다.
6번째 타격 시 66%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6번째 피격 시 모든 대미지를 66% 감소시킵니다.
추가적으로 정령 친화력이 66% 상승하고, 빛의 정령과의 친화력은 666% 상승합니다.]
굉장히 6을 선호하는 칭호.
레전드리 6성이라는 이름값 넘치는 칭호와 달리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미 두 명의 정령왕과 계약한 순간부터 정령 친화력을 맥스 찍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저 6번째 타격, 피격 역시…
‘음… 별로.’
사실 중첩에 중첩은 옛날이나 유용하게 썼던 거지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어중간한 증폭기 수십 개 합쳐봤자 초월자의 힘 하나만도 못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굳이 두 가지 무기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두 개가 내가 익숙하고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저 정도 칭호면 나름 쓸만하다.
강력한 한두 방을 쓰는 내가 아닌 수십 번 타격하는 베린이나 콜트한테 들어갔다면 더 쓸만했겠지만…
아쉽게도 칭호는 장비처럼 넘겨줄 수 없다.
“오…”
대신 이번 일에 핵심이라 불릴만한 보수가 있다.
[ 찬란한 빛 (레전드리******)
설명
과거 최상위 신들 중 하나였던 빛의 정령신, 히아트는 마침내 정령이라는 틀을 깨고 정령왕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빛의 정령왕이 된 그는 자신을 도와준 용사에게 힘의 절반을 담아 무기를 하사했습니다.
악(?) 성향의 모든 존재에게 매우 치명적인 검입니다.
능력치
요구 레벨 : 349
공격력 : 3114
빛 : 200
요구 스텟 : 빛의 정령왕과의 계약.
특수 효과 : 타격 시 '악' 성향 몬스터에게 500% 추가 피해.
패시브 : 빛 속성 피해 200% 상승, 모든 스텟 100증가, 빛 스텟 생성.
액티브 창대하여라 : 대상에게 2000%의 대미지를 주고 30초간 거대한 빛기둥을 생성합니다.
빛기둥에 닿는 적은 1초마다 330% 피해를 입힙니다. (쿨타임 300분).
액티브 정령강신(????) : 무기에 정령왕의 영혼을 깃들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쿨타임:1초).
*빛 스텟에 비례하여 대미지가 증폭합니다.
*빛 스텟에 비례하여 쿨타임이 감소합니다.]
무려 6성급으로 치솟은 찬란한 빛.
괴랄할 정도로 강화된 스펙이 강화된 이유는 검에 히아트의 반신(半?)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반신이 담겨 있다.
‘정령왕의 영혼과 육신이 절반 깃든 무기.’
이 말도 안 되는 제안도 허락했기에 모든 길드원을 동원해서 히아트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좋아 좋아~”
게다가 원할 때 언제든 정령왕을 불러 완전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쿨타임이 1초 인건 순전히 내 의사에 모든 걸 맞기겠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거의 노예 계약인데… 진짜 정령왕이 되고 싶긴 했나 보네.’
몸의 절반이 무기가 되고 언제든 전투에 불려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히아트는 정령왕이 되길 바랐다.
그 이유가 뭘까?
이전에 듣긴 했지만 정령왕이 되었으니 다시 한번 들어보자.
“나와라. 히아트.”
찬란한빛에 ‘정령강신’을 시전하자 백금의 고리를 가진 손바닥 크기의 정령이 나왔다.
백의를 두르고 기다란 봉을 든 것이 정령이라기보다는 천사에 가까웠다.
히아트는 부서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촉촉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
“...드.”
“히아트?”
“...드디어! 성공한 건가! 용사!”
와하하하하하!!!
히아트는 웃으며 내 머리를 뱅글뱅글 돌았다. 어찌나 기쁜지 백의가 펄럭거려 몸 상태가 말이 아님에도 그는 계속해서 웃었다.
어지간히 기쁜가 보네.
“그리 좋냐?”
“당연하다! 너는 모를 거다! 넘을 수 없는 벽을 계속 바라보는 느낌을!”
꽤나 오랜 시간을 살아온 그로서 정령왕이라는 벽을 결코 넘을 수 없었을거다.
정령왕은 단순히 초월을 한다고 얻는 경지가 아니니까.
게다가 초월은 쉬운 것도 아니다.
어드벤처 행성에는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만년이 넘도록 살아왔지만, 초월을 한 이는 두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으니까.
히아트는 몇천 년을 살아옴에도 초월에 ㅊ자도 돌입하지 못한 신이었다.
「▲정령왕 」
그런 그가 한순간에 초월의 경지에 오른 정령왕이 되었으니 좋을 만도 하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 말해라! 정령왕 자리를 내놓는 것만 빼면 뭐든 들어주지!”
“그럼 좀 들어가 있어.”
“뭐, 뭣?! 방금 막 나왔…”
히아트는 찬란한 빛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엘린시아에 있는 본체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히아트는 찬란한 빛 안에 영원히 잠들어 있을 거다.
실제로 자고 있진 않을 테지만.
─...진짜로 그렇게 둘 거야?
“본인이 뭐든 한다는데 뭐.”
나는 만족스럽게 칼을 다시 허리춤에 찼다.
물론 어느 정도의 휴가를 보장해 줄 생각이지만 적어도 다음 지역까지는 이대로 있을 거다.
베린과 세피드를 데리고 아리아의 궁전으로 돌아왔다.
위험천만했던 세피드의 기행은 추격자들에게 신호가 닿기 전에 하페루아가 차단했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히 외부로부터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딱히 숨겨진 게임은 아니지만 외부로부터 시선이 끌리면 하페루아의 계획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마음에 안 들어.”
레드 드래곤처럼 힘을 빼앗기고 1등위 미만으로 떨어진 세피드는 힘이 복구될 때까지 베린의 곁에 머물기로 했다.
‘정작 그녀는 과도한 힘의 부작용으로 힘을 잃은 줄 알지만.’
정신을 되찾은 베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세피드를 노려보았지만…
“...뭐. 네가 하자며.”
세피드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베린의 어깨에 들러붙었다.
베린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떨구진 않았다.
뭐, 저것도 나름대로 볼만하네.
“...해서 내 정령인 미야를 빌려달라?”
“부탁드립니다.”
내 계약 정령인 미야는 과도하게 힘을 잃어버린 아리아를 돕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위령을 멋대로 강탈한 미야에 분노했지만 이내 본인의 처지를 깨닫고 체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만일 아리아의 위령을 가진 미야의 힘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복구가 빠르리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미야의 존재는 사라진다.
“...왜 제 몸을 제가 허락받고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요…”
“싫으면 말고.”
“싫, 다는 게! 아니고요! 그… 다 방법이 있어요!”
아리아는 이러쿵저러쿵 설명했다.
과거에 안타깝게 생을 잃고 잠들어 버린 고위 정령이 있는데 그 정령의 육신을 내어주고 아리아의 위령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신 완전히 회복되면 당신과 계약하겠습니다.”
“좋아.”
“...진짜요?”
“응.”
아리아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거처에 멋대로 침입해 모든 정령왕을 이기고 동의를 받은 인간.
자신들이 만든 차원인 리벤디아까지 반파시킨 사람이라면 필시 거부하거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여기가 멀쩡히 돌아가려면 아리아의 힘이 필요해.’
김윤의 목적은 관리자의 눈에 띄지 않는 것.
만일 리벤디아가 반파됐다는 사실이 관리자의 눈과 귀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때문에 오기 전부터 하페루아와 회의 결과, 미야를 내어주기로 결정했다.
저를 버리실 건가요…
“안버려. 여기서 잠시 도와주면 너도 아리아도 다 계약해줄 테니까.”
...네, 네네…
미야는 덜덜 떨며 아리아의 곁에 머물렀다.
한낮 도시에도 입성하지 못한 주민 A가 왕의 육체를 몰래 강탈했는데, 진짜 왕의 곁에 머무르라고 하니 두려울 만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아리아가 보복할 것 같진 않지만.
정령왕의 이름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이니 자신들의 이름을 건 맹세를 어기진 않을 거다.
“안 그러면 다 뒤집어야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나저나 이그네아는 어떡할 거지? 저 생각은 절대 안 변할 텐데.”
나의 시선에는 정신을 잃은 불같은 남자를 두고 대화하는 대지와 바람이 보였다.
한참을 투닥거리던 둘은 머리를 헝클었다.
아무래도 이 사건의 원흉은 이그네아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세피드가 불을 붙이긴 했지만.’
아리아는 얼굴을 잠시 굳히다 얕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이미 힘은 다 회수하기도 했고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그는 이제 저보다 약하니까요.”
‘그는…’
일만 년을 넘게 본 가족을 ‘그’라고 표현하는 걸 보니 진짜 정이 떨어지긴 했나 보다.
하긴, 애초에 가족에서 벗어나려 했던 게 이그네아니까.
“그러다 세피드처럼 힘을 주는 녀석이 생긴다면?”
“그건 제약을 걸어뒀습니다.”
“제약?”
「▲정령왕 」
내 물음에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피드의 힘이 정령왕에서 사라지면서 다시 제약의 강도가 거세졌습니다. 저희는 이그네아가 잠든 틈을 타 또 다른 제약을 걸어놨어요.”
“그게 가능해?”
“네.”
─불가능하진 않아. 그녀 말대로 더 이상 정령왕은 약하지 않으니까.
정령왕은 오랜 시간 이름에 묶여온 생명체들.
결국 하나의 이름의 힘, 그 자체가 된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부여된 법칙을 거스를 순 없지만 그 법칙위에 또 다른 법칙을 추가하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라고 하페루아는 그리 설명했다.
‘역시 하페루몽. 성능 확실하군.’
이 정도면 만능 답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
“그래서 무슨 제약을 걸었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