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1화 〉 11. 계약 (5) (191/318)

〈 191화 〉 11. 계약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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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해칠 수 없는 제약이요.”

“...엥?”

사랑에 대한 제약이나 이그네아의 행동을 막는 제약을 걸 줄 알았는데.

이들은 너무나도 다른, 또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제약을 걸었다.

아리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도 저희가 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약은 단순하고 또 합리적이어야 잘 적용되니까요.”

“그렇긴 하겠네.”

말도 안 되는 제약을 본인과 같은 수준의 이들에게 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 일 것이다.

“물론 그와 별게로… 저희는 가족이니까요. 저도, 스틸도, 아리아도, 그리고…”

스윽.

“...이그네아도요.”

“대단하네.”

“아뇨. 이건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그냥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온거에요.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네. 그렇게 된 거죠.”

“뭐 사이좋게 지내겠다면야.”

별 탈 없이 지내주면 나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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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왕들을 뒤로하고 천공의 섬으로 돌아온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확히는 내가.

초월자가 된 ‘진짜’ 최강자의 기술은 과거보다 더한 육체의 부하를 가져왔다.

다행인 건 그때와 달리 대처할 수단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십 개의 회복 스킬과 아이템,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간만에 휴식이군.”

“크게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그래, 다친 ‘사람’은 없지.

나는 다윤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일에 사고가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일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비스듬히 세워진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했다.

‘이번 일은 생각보다 위험했어. 까닥하면 되돌릴 수 없었을 거야.’

최대한 준비하고 준비한 수준에서 시작한 첫 번째 일이었다.

기대치를 높아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성장치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대가 너무 강했다.

채림의 폭주… 이그네아의 규격 외의 힘… 그런 것들은 충분히 예상범위 내에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온전한 힘을 쓰는 세피드는 아니다.

그녀의 힘은 나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으니까.

만일 조금만 늦었어도 사태는 걷잡을 수없이 커졌으리라.

“무슨 생각 해요?”

다윤이 침대 끝에 살며시 앉아 물었다.

기다랗게 내려앉은 묶은 머리와 갈색의 눈이 참으로 예뻤다.

그야…

“네 생각 하지.”

“제가 옆에 있는데 제 생각을 한다고요?”

“원래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생각나는 법이야.”

“흐음…?”

다윤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녀 역시 내가 생각하는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기에 틀린 말이 아니다.

풀석.

“?”

“나도 잠 좀 자려고요.”

다윤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 옆에 바짝 붙어 누웠다.

내 회복은 좀 더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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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스며드는 장소.

새햐얀 거체를 지닌 백조가 하늘에 내려오고 그것을 따르듯 수많은 새들이 그 뒤를 따른다.

하늘을 담은 듯한 푸른 눈이 백색의 땅에 서서히 내려다보자, 흰색의 로브를 쓴 하인들이 그녀를 반겼다.

“위대한 ‘그라티아’ 님을 뵙습니다.”

[도시가 조용하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

“그럴 리가요. 위대한 분의 빛이 비치는 곳에는 그릇된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미카는 어디 있느냐.]

“둥지에서 숙제 중이십니다.”

[그렇구나.]

펄럭.

백조의 날개를 펄럭이는 그라티아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항상 너희들이 수고가 많구나.]

“당연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수고가 많다.]

“...네.”

펄럭.

날개는 한 번 더 펄럭이더니 이내 도시의 가장 높은 곳, 둥지로 날아갔다.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색의 하인들은 고개를 돌렸다.

“......가자.”

가장 특별한 백의를 입은 남자가 발걸음을 움직이자 그 주위의 하인들 역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

“이랑?”

5일간의 휴식의 시간을 가진 뒤 나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길드의 보고를 받았다.

가장 먼저 이랑의 부재다.

─고위신들의 정세가 더 심각해졌어. 같이 가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겠네. 미안.

짧은 글이지만 남긴 편지에 따르면 고위신들의 문제 때문에 길드 일을 도울 수 없다는 말이다.

‘...뭐 상관은 없겠지.’

이랑은 꽤나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그 힘을 써야 할 곳이 있다.

그녀는 우리와 달리 행성에서 나고 자란 생명이니까.

이곳에서의 이랑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아쉬운 대로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후 다음 보고를 읽었다.

이번엔 콜트와 베타의 부재.

“드리트리아로 돌아갔네.”

“네. 베타의 수리와 기기들의 문제 때문에 한동안 못 나온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집무실 의자에 앉은 내 옆에는 푸른색의 앵무새를이고 있는 네츠리 루아가 보였다.

그녀는 전투원은 아니지만 이곳의 행정, 보조, 길드 관리… 등등을 맡고 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다.

“베타는 고쳤데?”

“다행히 데이터 베이스가 크게 망가지지 않아서 별문제없이 고칠 수 있을 것 같답니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번에는 절대 안 부서지게 만든다고…”

“흠.”

세피드가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거지 베타도 나름 튼튼했는데.

굳이 내가 가지 않고 베타를 보낸 이유도 그 어마어마한 힘을 몸에 담고도 아무런 부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세피드가 제힘을 꺼내기 전까지 베타가 압살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세피드는 정말 미치긴 했었다.

도망자 신분이라는 걸 잊고 제힘을 사용하다니.

루아는 여러 개의 자료들을 정리하다 이내 하나로 합친 뒤 책상에 두었다.

“...그리고 이건 방금 들어온 일인데 채림과 레빗이 수련에 들어갔습니다.”

“수련?”

“아무래도 제가 보고받은 내용을 볼 때 이번 일은 채림에게 큰 자극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

과도할 정도의 힘.

그리고 그걸 버텨내는 기이할 정도로 튼튼한 육체와 영혼.

확실히 채림은 일반적인 사람이나 용사가 절대 아니다.

아마도 채림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일한 단점이 정신적인 부분인데… 그 점을 고치기 위해 레빗에게 직접 부탁했답니다.”

“...환묘세계를 이용할 셈인가.”

“네.”

채림의 유일한 단점.

바로 부서질 정도로 연약한 정신이다.

초월자에 필적하는 육체와 영혼을 지녔지만 그에 반해 정신은 일반 사람보다 못하니까.

채림은 그 부분을 환묘세계에서 극복하기로 했다.

“얼마나 걸리지?”

“시간적인 부분은 레빗이 충분히 조절할 수 있어서... 적어도 스승님의 다다음 일정까지는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얼추… 되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만 있는 회의 겸 보고를 종료했다.

내 신호를 들은 루아는 풀어지듯 푹신한 의자에 풀썩 앉았다.

“...이번에도 많은 걸 벌이고 오셨네요.”

루아는 회의할 때의 공적인 말투를 접고 평상시의 말투로 돌아왔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또 장비들 가득 보내지 말아 주세요.”

“왜? 유니크 이상만 보낸 건데. 정리하기로 한거 아니었어?”

“원래는 이번 일 끝나면 베타가 정리하기로 했는데…”

“아.”

창고에 차고 넘치는 장비들을 베타가 제련에 필요한 재료로 쓰기로 했다.

이미 분류는 해뒀고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지금 베타가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이다.

“분류해뒀으면 드리트리아로 보내.”

“그리하려 했는데 지금 드리트리아가 봉쇄 중이에요.”

“봉쇄?”

“듣기로는 도시 전체를 가동해서 뭔가 한다는데, 섣불리 진입할 수 없어요.”

아무래도 이번에 베타가 두 동강 난 걸 보고 반드시 제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연인을 만들다니…’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지만 동료로서 이해하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돼서 스승님 다음 일정은 세 분만 가실 거에요. 물론 그 계약한 정령왕들은 있겠지만요.”

“간만이네.”

나, 다윤, 베린.

마치 처음 마주한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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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린은 눈을 떴다.

일어난 곳은 길드의 호텔.

머리를 짚은 베린은 침대에 손을 짚고 상체를 세웠다.

‘뭔가 기억이 드문드문 한데… 그러고 보니 난 세피드랑…’

베린은 손에 물컹거리는 감각을 무시한 체 쓰러지기 전 일을 떠올렸다.

분명 어둠의 정령왕인 세피드와 계약하고 자신을 끌어안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 뒤 베타가 와서 싸우고… 갑자기 엄청 강해진 탓에 베타가 부서지고 창에 맞아 기절─

물컹.

“?”

“흐응…”

“...???”

베린은 자신의 손에 느껴진 감각에 흠칫 놀라며 침대 바깥 부분으로 빠르게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 했다.

“흐흐… 어디 가. 나랑 찐하게~ 아니 친하게 지내자며…”

“으읏! 놔!”

“에이~ 좋으면서어어~”

이, 이게 무슨상황이지?

베린은 자신을 끌어안은 성인 상태의 세피드를 보고 정신이 어질했다.

그래, 분명 세피드는 아리아의 거처에서 자신과 계속 계약하기로 했다.

그리고 길드로 돌아와서 세피드랑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왜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냔 말이다!

“흐음?”

옷이 잔뜩 흐트러진 세피드는 쿡쿡 웃으며 자신보다 한참 작은 베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흐흐흐… 어쩜 이리 귀여울까.”

“...놔라.”

“싫은데? 안 놓을 건데?”

“안 놓으면…”

“강해지고 싶지 않아?”

베린은 고개를 휙 들어 세피드를 올려다보았다.

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세피드의 얼굴은 웃으면서도 뭔가 기대하는 눈빛 이었다.

“내가... 도와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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