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12. 홀리에린 (2)
* * *
모든 팔라딘들의 지휘를 맡는 단장, 크렉은 용사들을 이끌며 생각했다.
‘왜 우리를 고른 거지?’
성벽을 지키던 팔라딘들의 말에 따르면 도시의 진입 여부를 두고 집행관님과 실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용사라 밝혔고, 거대할 정도로 밝은 빛을 가진 무기를 보여줬다고…
크렉은 용사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허리춤을 힐끔 보았다.
백색의 검신이 눈에 띄는 검.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제사장과는 사이가 안 좋은가?”
“아, 아닙니다. 맡은 역할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그래?”
용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분명 영역의 갈림길까지 데려온것은 미누아인데 그걸 그냥 두고 오다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쪽에 목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거 봐 용사래.”
“엄청 빛난다. 마치 그라티아님같아.”
“예끼! 누굴 비교하는 거야!”
“아 뭐요~ 그냥 느낌이 비슷…”
집행관의 영역, ‘판테움’의 주민들은 처음 보는 용사에 신기한 듯 집 밖으로 나와 구경했다.
꽤나 뚫어져라 보는 것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으나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이쪽인 것 같죠?”
“저쪽인 거 같은데?”
“아 알았으니까…”
‘뭔 대화를 하는거지?’
크렉은 자신의 상사인 집행관에게 ‘안내’ 해달라는 부탁만 받았고 그 외의 별다른 지시는 없었다.
따라서 판테움의 주요 건물이나 장소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저, 용사님.”
“네?”
“그… 뭘 찾으시는 겁니까?”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 대신 그 옆에 걸어가던 여성 용사에게 물었다.
그녀에게는 신성한 빛은 같은 건 보이지 않았으나,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운 달빛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 여기에 괴물들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맞죠?”
“네, 그렇습니다.”
그라티아의 도시, 홀리에린은 세계로부터 분리된 차원이다.
그리고 그 차원에는 또 다른 차원이 하나 연결되어 있는데, 바로 악(?)한 기운를 가진 마수들이 점령하고 있는 차원이다.
홀리에린의 이면이라고도 불리는 차원은 열밤이 지나가는 날, 마수들이 연결된 차원의 문을 넘고 이곳으로 침략을 감행한다.
때문에 이곳의 팔라딘과 사제들은 열흘째가 되는 날에는 항상 도시를 봉쇄해 지켜왔다.
“마수의 사냥을 목적으로 오신 겁니까?”
용사의 본분은 익히 들어 안다.
가장 중요한 대목적은 마왕을 토벌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그의 하수인인 마수를 잡을 때마다 강해진다.
이곳에 올 정도면 밖에서 사냥할 수 있는 마수들은 모두 잡은 셈일테니.
게다가 이곳의 마수들은 바깥의 내로라하는 마수들보다 강력했다.
“그것도 있고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건물 내부를 둘러보았다.
백석(白?)의 바닥이 어둠을 배제하고 조금의 티도 없는 유리창이 하늘의 빛을 담았다.
그 바닥에 위에는 일곱 개의 석상이 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여기는 칠 영웅전 입니다. 홀리에린의 이면을 처음 발견하고 그들의 침략을 막아낸 위대한 영웅을 모셔놓은 장소죠.”
크렉은 철그럭 거리는 갑옷을 움직이며 그리 설명했다.
그러고는 잠시 자신과 똑같은 차림을 한 석상을 돌아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날이 아니니까.’
“오… 대단하네요.”
“그렇습니다. 이들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신 그라티아님은 이면을 막아내다 죽은 영웅들을 위한 영웅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주민들은 언제든 시험을 받을 수 있죠.”
“음… 시험 말인가요?”
“네. 그라티아님은 과거 칠 영웅에게 권능을 나눠주어 이 석상에 깃들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시험을 받아 그들의 힘을 이어 받을 수 있죠.”
다만 통과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없죠.
크렉은 말을 덧붙이며 그리 말했다.
석상당 단 한 명만이 시험을 통해 힘을 이어받을 수 있고, 지금은 총 2개의 석상이 인정을 내린 상태라고 했다.
“그럼 저 역시 시험을 받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대답을 들은 여성용사는 그대로 한 석상 앞으로 다가갔다.
하늘거리는 백의와 긴 장궁을 든 여인의 석상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상의 위에는 백금색의 커다란 달 형태의 석조물이 올려져 있었는데 마치 진짜 달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죠?”
“응.”
여성 용사는 아공간에서 검을 꺼낸 뒤 묵념하듯 눈을 감았다.
석상은 잠시 눈앞에 존재를 판별하듯 드드드 움직이더니 이내 서늘한 기운이 다윤을 스쳐 지나갔다.
[홀리에린의 칠 영웅 중 하나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달빛의 시험을 받기 위해선 달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쿠궁.
다윤이 눈을 떴을 때 이질적인 땅과 함께 거대한 괴물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괴물은 마치 파충류 눈과도 같은 붉은 눈을 지닌 외눈 박이였는데, 그저 주시하고만 있어도 다윤의 신체 능력이 쭉쭉 깍여나갔다.
[시험 오로지 달빛의 힘만으로 상대를 처치하시오.]
[모든 신체 능력치가 99% 하락합니다.]
[달과 관련된 스킬을 제외한 모든 스킬이 사용 불가 됩니다.]
[전용 무기를 제외한 모든 장비가 해제됩니다.]
다윤은 전용 무기이자 직업 무기인 월광검(月光?)을 들었다.
사실 시험에 대한건 진작에 들은 상태였다.
윤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시험을 통과하면 직업의 능력과 효율이 유의미할 정도로 상승한다고 한다.
‘윤 씨는 안 하고요?’
‘나는 필요 없어. 오히려 부수적인 것을 추가해봤자 균형만 깨질 뿐이야.’
최강자는 그러했으니까.
다윤은 김윤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윤 씨는 윤 씨.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한다.
“후우…”
누군가의 시험같은건 많이 치러봤다.
고수, 신, 고위신, 정령왕… 하나같이 강했던 이들이 낸 시험은 무지 어려워 실패하고 죽을 위기에도 처했었지만.
콰아아앙!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그때의 자신이 아니니까.
다윤은 강렬히 내려찍는 괴물의 손을 피했다.
본 상태였다면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상대였지만 신체 능력이 1%로 줄어들고 모든 장비들이 사라지니 몸을 움직이기가 제법 어려웠다.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이 분한듯 괴물이 거대한 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앙!
“...”
콰아아앙!!!
“흣…!”
꾸웅!!! 콰가가가각!
“후… 이번에는 좀…”
위험했네.
다윤은 말을 삼키며 주변을 돌아봤다.
평지에 가까웠던 돌산은 마치 폭격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변했다.
푸스슥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붉은 눈이 씩씩 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날파리가 손에 잡히지 않는 듯 굉장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윤은 날파리가 아니었다.
슬슬 익숙해지는 몸을 고르며 다윤은 1%로 줄어든 달의 마력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으니 달의 힘을 최대로 받기에도 충분한 환경이었다.
월광식(月光?)
일월(一月) ─ 일검(一?).
파악!
아주 얇게 쏘아진 검기가 괴물의 팔에 생채기를 내었다.
역시 지금의 몸 상태로는 이 정도가 한계구나.
푸시시시식!!
“...화났니?”
감히 자신에게 피를 흘리게 한 것이 몹시 분한듯 안 그래도 붉은 눈이 더 붉어졌다.
이윽고 눈에서 붉은 섬광이 쏟아졌다.
월광식(月光?)
오월(五月) ─ 전이(?二).
츠츳!
?!
섬광을 맞고 그대로 터져 죽었어야 할 다윤이 종적을 감추자, 거인은 거대한 눈을 휙휙 돌리며 사라진 사냥감을 찾았다.
‘위험했다.’
평소의 강함을 믿고 막을 생각을 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
심상 세계라 죽진 않겠지만 고통은 똑같으니까.
‘그리고 이런 걸 한번에 통과 못하면 윤 씨를 볼 명목이 없지.’
다윤은 시험이 끝나고 자신을 대단하게 볼 김윤을 생각하며 월광검을 꽈악 쥐었다.
아직 달이 완전히 차오르지 않았다.
저 거대한 괴물을 죽이려면 확실한 기술과 힘이 필요했다.
아직도 괴물은 자신을 찾지 못했다.
전이(?二)는 공간 이동 후 기척을 감추는 기술이니 적어도 10분 정도는 벌 수…
지잉!
푸확!!
‘벌써?!’
피하거나 기술을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다윤은 달을 그리듯 월광검을 빠르게 회전시켜 얇은 마력 장막을 만들었다.
드득─!
쿠구구구구!!!
“으읏…”
샛노란 장막을 두고 다윤은 아주 조금의 마력을 운용했다.
마력의 양이 1%로 줄어들었기에 아주 세세하게 마력을 분배해야 했다.
다행히 이런식의 내용을 미리 들은 다윤은 수련때부터 적은 양의 마력만을 사용해 전투를 해왔었다.
“후우…”
하지만 여전히 1%는 너무 적다.
붉은 섬광이 힘을 잃자 아슬아슬하게 마력방패가 우수수 부서졌다.
방금 일로 그나마 남아있던 마력이 전부 소진됐다.
마력을 전부 소진한 걸 눈치챈 괴수는 개미를 밟아 죽이듯 다윤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밀었다.
‘얼추 맞췄네.’
쿠궁.
깜깜한 밤하늘에 빛이 생겨난다.
낮의 빛이 아닌 밤의 빛이.
갑작스레 생겨난 달은 눈에 보일 정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회색빛을 내뿜었던 달은 어느새 샛노란 보름달로 변했다.
달의 색이 흘러오듯 월광검의 검신을 더욱더 빛나게 만들었고, 어느새 그녀의 주변으로는 거대한 오오라가 퍼져나갔다.
마침내 다윤은 괴수의 거체를 베어낼 준비를 마치고 검을 내지른다.
월광식(月光?)팔월(?月) ─ 거신절검(巨??).
“와아…”
다윤은 무너지는 괴수를 보고 감탄했다.
고작 1%의 힘을 이 정도까지 끌어내다니.
생각보다 강해진 자신에 제법 놀랐다.
윤 씨, 정령왕, 채림… 등등 훨씬 강한 이들이 많았기에 수련의 성과를 제대로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일격은 기술을 사용할 때 잠깐 보았던 ‘월광검사’의 기술과 거의 유사했다.
‘만일 현실에서 썼으면 훨씬 강했겠지?’
신체능력도, 마력도 전부 1%가 떨어진 상황이다.
만일 ‘온전한’ 상태에서 방금 같은 기술을 쓴다면, 윤 씨의 검술에 닿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해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칠 영웅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달의 영웅, 무트라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어… 감사합니다?”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달빛의 조각이 둥둥 다가오더니 몸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그대의 여정에 달의 축복을...]
「─」
티각.
「▼▼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