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5화 〉 12. 홀리에린 (3) (195/318)

〈 195화 〉 12. 홀리에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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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윤이 시험에 들어간 사이 주위를 둘러봤다.

창,검, 단검, 도끼…

각각의 무기와 다양한 종류의 옷감을 두른 석상들이 줄줄이 서있었다.

‘만일 전 시즌이었다면 다윤이 들어간 시험에 내가 들어갔겠지.’

과거의 나, 그러니까 검이 아닌 활을 쓰던 레인저 시절의 나는 마왕의 탑인 하펠론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분리 도시인 홀리에린은 자주 방문했었다.

그때는 아무도 그라티아의 존재성을 알지 못했고, 정말 우연히 발견한 이곳은 당시 길드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그라티아 장비는 내로라하는 랭커들도 구하기 힘든 장비들중 하나였지만 이미 나는 여러 피스를 손에 넣은 상태였으니까.

‘물론 후반부 되니 쩌리들 중 하나가 돼버렸지만.’

아무튼, 그때 최초로 시험을 치렀던 것이 바로 ‘달의 영웅 무트라’의 시험이었다.

그 당시 나는 활을 쏘고 30초간 모든 공격을 무로 돌리는 그라티아의 갑주도 입은 터라 당당하게 시험에 도전했지만…

한... 27번쯤에 간신히 성공했었나?

그만큼 어려웠던 걸로 기억한다.

“몇 번 만에 통과하려나…”

물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다윤은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은 거의 못쓴다고 봐도 무방하니 믿을만한 건 달과 관련된 능력.

혹은 활.

다윤은 활을 안 쓰니 오로지 달과 관련된 능력만으로 놈을 상대해야 한다.

반대로 나는 달과 관련된 능력이 전혀 없었으므로 오직 활로만 상대했다.

그래서 더 힘든 것도 있었다.

한대 맞으면 죽는 상대를 잡기 위해 아무런 능력이 없는 100발가량의 화살을 맞춰야 했으니까.

정말이지 그때를 생각하면…

‘끔찍하네.’

“아마 힘들 겁니다.”

“그래?”

“영웅의 시험은 고약하니까요. 아마도 몇 달이 걸려도 무리일겁니다.”

확신에 가까운 말투.

과거에도 집행관과 제사장을 비롯해 팔라딘과 사제들을 대부분이 내가 아는 자들이었지만 딱 두 사람.

팔라딘 단장 크렉과 부 제사장 미누아.

기존 직책에 있던 자들 대신 새로운 이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하페루아는 나와 일행들이 먼저 이곳에 도달하고 10년이라는 세계의 겹침 과정에서 발생한 나비효과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그 예시로 원래는 없던 고위신의 전쟁이 심화되고 있었으니까.

따라서 눈앞에 크렉은 내가 알던 팔라딘 단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랑 내기할래?”

“네?”

“다윤이… 아니 방금 들어간 용사가 일주일 안에 시험을 통과하면 그라티아를 만나게 해줘.”

“...그라티아님을 말입니까?”

“응.”

하루에 한 번 도전 가능이니… 대충 7번이면 통과하겠지.

크렉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가뜩이나 수상하리만큼 익숙한 검을 들고 왔는데 이제는 자신의 신까지 만나게 해달라니 의심스럽겠지.

더군다나 내가 일부로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대신.”

“대신?”

“기회를 5일로 줄이죠. 만일 실패하면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겁니다.”

“부탁? 뭔데?”

크렉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곧 열 번째 밤이 찾아옵니다.”

“몬스터들이 온다는 그날 말인가. 우리 보고 막아달라고?”

“아뇨. 막는 것은 저희 팔라딘과 제사장 쪽의 사제들이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부탁은 그 반대입니다.”

“...공격을 해달라?”

홀리에린의 이면은 몬스터로 가득 찬 차원이다.

그 안에는 도시의 주민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살아가며, 그들 중 일부가 열 번째 밤이 되는 날 이곳을 침략한다.

“네. 몬스터들은 항상 그날 밤에 침략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저희 쪽도 그날 그곳을 공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있다면?”

“...밤이 지나면 문이 닫힙니다. 즉, 한번 들어가면 열밤이 지나기 전까지 그곳에서 영영 갇히게 되는 거죠.”

홀리에린은 바깥과의 숨겨진 통로가 있지만 이면은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면은 이곳을 통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

“열흘 동안 그곳에서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잡고 보스를 처치해 주세요. 그러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음… 너무 조건이 안 맞는 거 같은데.”

그라티아와의 조우 한 번과 열흘 동안 생고생이라.

어차피 한번 갈 생각이긴 했으나 호구처럼 이용 당해주는 건 질색이다.

크렉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로 그라티아님께 당신의 검에 대한 축복을 내려주도록 요청하겠습니다.”

“...? 너한테 그런 권한이 있나.”

“물론입니다.”

크렉은 도시의 계급으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다.

그런 그는 오래전부터 도시에 헌신하는 대가로 신께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고 한다.

“비록 한 번이지만 이날을 위해 쓰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팔라딘 단장으로서 도시의 수호가 목적인가?”

평생을 바쳐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그 귀한 권한을 고작 마수 처리에 쓰다니.

나의 의문스러운 물음에 그의 시선이 어디론가 향한다.

자신과 똑같은 백색의 갑주를 입은 석상.

입고 있는 갑주와 무기가 비슷해서 그런가 어쩐지 제법 똑 닮아 보였다.

“아뇨.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음. 좋아. 그리할게.”

다윤의 능력으로는 충분하다.

오히려 과거의 나와 달리 초월을 했으니 방심만 안 한다면 3번 안에 통과를…

파지직…

우리의 시선이 한 석상으로 향했다.

어느새 빛이 사라진 여인의 석상 앞으로 다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아...”

“다윤아?”

“아! 윤 씨! 성공했어요!”

와락!

나는 안기는 다윤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흐흥, 이 정도야 기본이죠~”

시험은 아무리 강한 능력을 지녔어도 꽤나 어려웠다.

아니, 오히려 강하면 강할수록 시험의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강한 만큼 능력의 편차를 극심히 느끼고 그 감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주 죽음을 맞이하니까.

물론 미리 방식을 설명해 주긴 했다만 단번에 통과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윤은 헤헤 웃으며 나를 쭉 올려다봤다.

“어때요? 저 강해졌죠?”

“대단하네. 고생했어.”

나는 다윤의 머리를 쓰담는 대신 말랑말랑한 볼을 만지며 크렉을 바라봤다.

녀석 역시 꽤나 놀란 듯 입을 떡 벌린 체 멍하니 서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년간 영웅의 시험을 통과한 건 제사장과 집행관. 단 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저 크렉이란 녀석도 이미 십수 년간 계속 도전 중이었겠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부탁은 들어줄게.”

“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대신 조건을 더 붙이지.”

­

“...용사들이 판테움으로 갔다?”

“그렇습니다.”

백의 꽃잎이 휘날리는 곳, 백의를 입은 오묘한 여인이 한쪽 무릎을 꿇은 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자신들의 영역인 ‘이그드라실’을 관리하던 남자는 커다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거… 괜히 너를 보낸 셈이 됐구나.”

“제사장님의 명을 따르는 것이 제 일입니다.”

“퍽이나.”

남자의 이름은 베덴디스.

도시의 단둘뿐인 대리자이자 유일하게 집행관과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의 영역 전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영역의 갈림길의 절반은 ‘이그드라실’의 영역이었다.

“또 크렉,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드잡이질을 벌였겠지.”

“......”

“이번에도 졌으니. 내가 루소니아 녀석을 어찌 봐야 할까.”

베덴디스의 짓궂은 말에 미누아는 더더욱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진 것이지 제사장님이 진 게 아닙니다.”

“그래. 네가 진거지.”

“......”

“흐흐… 그래서 용사는 어땠느냐.”

베덴디스는 그 당시 자리에 없었기에 미처 용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그 뒤에 바로 보고를 받아 부 제사장을 보냈지만…

‘우리 쪽이 아닌 오히려 실랑이를 벌인 판테움쪽으로 갔다라…’

이 상황을 볼 때 용사는 필시 판테움쪽에 볼일이 있었으리라.

그 목적은 아마도…

“뭔가… 달랐습니다.”

“달랐다?”

백색의 제사장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아니 그는 제가 알던 바깥 세계의 용사와 달랐습니다. 단순히 빛의 힘만이 아닌 특이한 능력을 몸에 담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음?"

"……."

“무어냐. 속내를 감추지 말고 말해라. 이그드라실의 중심부는 그라티아님도 보지 못하신다.”

정확히는 ‘안’ 보시는 거지만.

미누아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감히 논하건데 그라티아님보다도 더 밝은 신성이었습니다.”

“호오?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뭐냐.”

“세 개의 빛.”

고개를 들어 올린 미누아의 벽안이 존재를 의심하듯 흔들렸다.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세 개의 빛이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신, 엘레노아의 빛.

빛의 정령왕, 히아트의 빛.

초월자, 그라티아의 빛.

빛에 일가견이 없는 이들이 본다면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빛이라고 볼 것이다.

하지만 빛을 잘 다루는 자라면 각기 다른 주체를 가진 빛이 얼마나 다른지 뼈저리게 알고있다.

‘주체가 다른 빛은 오히려 다른 속성보다 더 차이가 심각하다고.’

그들은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빛을 발전시켰고, 그에 따라 빛을 구성하는 마력식이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성녀가 빛의 정령이 되지 못하고, 빛의 정령이 팔라딘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종족적이나 신체적으로 차이가 나서가 아니다.

애초부터 같은 결과를 바라고 시작된 빛이 아니기에 같은 힘의 운용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해낸 인간이 나타났다.

“용사.”

미누아가 말한다.

“그는 그라티아님보다 위대한 존재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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