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9화 〉 13. 영웅 (1) (199/318)

〈 199화 〉 13. 영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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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있었다.

그들은 매우 특별했다.

아무리 크고 강대한 마수도 손쉽게 처리했고, 아무리 악한 자 수십이 덤벼도 홀로 이길 정도로 강했다.

이제 막 만들어진 땅은 마수와 악인이 들끓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은 영웅의 진면모를 보이기에 충분했다.

어느새 빛의 땅, 홀리에린에는 아홉의 영웅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그들은 위대한 아홉의 영웅으로 불리며 땅의 주인, 그라티아의 인정을 통해 가호를 받았다.

위대한 빛, 그라티아의 가호 아래 그들은 더욱 강해졌다.

강해진 그들은 본격적으로 도시를 수호하기 시작했다.

허나, 영웅이 나설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마수는 전부 처리된 지 오래.

질이 나쁜 악인은 전부 잡아넣거나 처형됐고, 그 외의 악인은 가호까지 받은 영웅을 상대할 수준이 안됐다.

그렇게 영웅은 지나치게 안전한 도시를 수호했다.

‘도시가 너무나도 안전해 영웅을 잊을 만큼.’

물론 가끔씩 튀어나오는 마수나 강한 악인이 종종 나타났지만 영웅이 아홉이나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혹은 둘로 충분한 수준.

아홉의 영웅 중 하나는 의미 없는 성벽을 돌아다니다 문득 생각했다.

'어째서 이 도시를 지켜야 하는가.'

더 이상 영웅은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자신들을 지켜줄 수호자도, 신뢰하고 믿어야 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그런 존재는 저 높이에 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망령에 불과한가?

이곳의 주민 중 영웅의 일화는 아는 자는 이제 드물다.

더 이상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이들도 찾아볼 수 없다.

어째서 그리된 걸까.

영웅은 성벽을 계속해서 걸어 다니다 문득.

저 멀리, 아주 가끔씩만 튀어나오는 마수의 출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면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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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이라.'

이그드라실에서 돌아온 루소니아는 옷을 갈아입으며 방금 전의 대화를 곱씹었다.

영웅은 불멸한다.

타인에 의한 죽음은 몰라도 적어도 스스로는 원치 않는 한 절대 죽지 않는다.

그래, 그랬기에 나와 그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둘 다 죽음을 원치 않았기에.'

누구보다 평화로운 삶에 혐오하던 둘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택하지 않고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왔다.

한 명은 바뀌는 모양이지만.

"...설마 제멋대로 죽으려 드는 건 아니겠지."

베덴디스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놈은 죽으면 안 된다.

그놈이 죽으면 오직 자신만 남는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자신과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한 분이 계시긴 하지만...

'그분은 우리보다 더한 분이시니.'

일만에 가까운 시간이라.

고작 천년을 산 루소니아로서 쉽사리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과연 그분은 무슨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실까.

또 우리를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과거에는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과거'라는 것도 무려 백 년 전이다.

천년을 산 자신의 삶에 무려 10%를 차지하는 시간.

물론 가벼운 인사는 여전히 나누고 있지만 진지한 대화를 가져본 적은 꽤나 오래되었다.

"...아마도 안 바뀌셨겠지."

그분은 그런 분이시니.

인간이 아닌 신으로 태어난 존재.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시니 정신적으로 무뎌질 일이 없을 것이다.

타악.

끼익...

어느새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집무실을 나온 그녀는 마을 쪽으로 향했다.

신 님을 만나기 전에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용사 하나가 크로아의 시험을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괴물 같은 용사의 동료도 괴물 같을까?’

잠시 크로아의 모습을 떠올리던 루소니아는 칠 영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7층.

마수들이 한 단계 더 강해지는 층이자 칠 영웅이 잠든 대지.

더불어 무려 상급 악마가 잡몹으로 나오는 층이다.

푸확!

백색의 검신이 분쇄하듯 상급 악마의 육체를 유린한다.

'진짜' 악마보다 짙은 마기를 내뿜는 상급 악마는 자신의 붉은 날개를 촤악! 펼치자 저주받은 칼이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다가왔다.

"..."

스각.

옅은 빛을 내뿜는 검신에 힘이 서서히 돌아오더니 그대로 악마의 두 날개를 베고 심장까지 베어냈다.

"...파하."

나는 삐거덕 거리는 어깨를 붕붕 돌리며 몸 상태를 살폈다.

부작용이 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상태다.

'역시 무리가 좀 있네.'

힘을 분산시키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붉은 피를 털어낸 나는 잠시 눈을 붙이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본체'를 올려다봤다.

적어도 다음 부활 시간까지 3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전에 7층 대부분을 정리해야 한다.

"네메린느."

­뭐냐. 한창 회복 중인데.

잠시 본체에 가있던 팔뚝만 한 크기의 정령왕이 다가왔다.

그녀는 바람에 의해 몸이 펄럭펄럭 날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듯했다.

"왜 불렀..."

철컥.

"...김윤?"

"네 힘이 좀 필요해서."

어느새 쑥쑥 커진 개 수인 네메린느는 질색하듯 나를 노려봤다.

"...본체는 어쩌라고."

"조치는 취해뒀으니 싸울 정도만큼은 수복될 거야. 히아트도 회복은 할 수 있고. 그때 동안 악마좀 잡아."

"그럼 굳이 이 목걸이는 찰 필요 없지 않으냐."

맞다.

저 목걸이는 수인화를 도와주는 목걸이고 지금 상태의 나는 '저장'을 담아줄 수 없으니까.

"그게 있으면 더 힘내서 싸울 수 있어."

"내가? 아니면 네가?"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저 미소만 지어줬다.

“이게 진짜…”

“자~ 출발!”

네메린느는 나의 활기찬 말에 한숨을 내쉬더니 바람처럼 악마 사이를 휘젓기 시작했다.

거의 하위급 최상위 악마 수준으로 올라온 악마들은 바람 칼날에 의해 순살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말은 그리해도 저 신나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니 내심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열심히 싸우는 네메린느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내 뒤로 오싹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윤 씨.”

“으, 응? 다윤아. 그쪽은 마무리됐어?”

“네.”

말투는 티르빙의 설산을 떠올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그 외의 특별한 감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드러나지 않게끔 노력했다.

“...굳이 저 목걸이를 채울 필요가 있었나요.”

“필요하니까 채운 거야. 저건 아티팩트거든.”

단순히 수인화를 도와주는 도구기에 평범한 장비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사실은 매우 특별한 물건이다.

‘초월자의 힘’을 담을 수 있는 아티팩트.

어드벤처 내에서 나온 장비가 아닌 저 차원 너머의 창조세계에서 하페루아가 직접 공수해온 아이템으로, 착용만 한다면 모든 능력치가 급격히 상승한다.

단.

“자신만의 고유한 힘을 지닌 초월자만 쓸 수 있어. 나도 못쓰는 거지.”

나는 하페루아의 도움을 받아 ‘저장’에 담긴 여러 종류의 초월자의 힘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유’한 힘은 없다.

난 스스로 초월한 것이 아닌 쿠베라의 수련과 내 몸에 담긴 특이점, 하페루아의 안배… 같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초월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령왕 네메린느는 처음부터 고유한 힘을 타고났다.

비록 자신이 깨달아서 초월을 한것은 아니지만 일만의 시간을 살면서 서서히 그 자격을 얻어나갔고, 마침내 그 힘의 주인으로 거듭났다.

“물론 그냥 끼는 정도야 가능하지만 저 능력치 상승은 어드벤처의 힘은 아니야. 오직 초월자의 힘만 끌어올리니까. 자격이 없는 사람이 끼면 그냥 수인화 목걸이지.”

“...그냥 보고 싶어서 껴준 거 아니고요?”

“설마.”

초월자인 네메린느는 강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녀는 위령(?)이다.

나와 마찬가지인 분신 상태란 소리.

게다가 본체 쪽에 제법 힘을 쓰고 있기에 지금 상태로는 악마들을 학살할 수 없다.

“필요에 의해 쓴 거야.”

“...그래요.”

“진짜야.”

“믿어요. 진짜.”

꽈아악.

다윤은 내 팔짱을 끌어안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뒤를 확 끌어당김과 동시에 월광검을 치켜들었다.

콰작!

붉은 기운과 달빛이 충돌하고 그 주위로 폭발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오우.”

“...로드리아.”

7층의 보스.

최상위 악마, 로드리아.

이미 죽어 사라진 로드리아보다 강해져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아진 ‘가짜’ 로드리아.

마치 연기처럼 주위를 맴도는 악마는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듯 큭큭 웃었다.

─흐흐… 당신들이 누군지 알 것 같군.

“...?!”

설마 기억이 연동된다고?

나는 살짝 의문을 가졌지만 과거 로드리아의 환각 속의 제라드를 떠올렸다.

그는 분명 그보다 훨씬 전의 과거의 나를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것은 초월에 의한 기억이겠지만 초월을 한 적이 없는 로드리아가 기억 할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다.

초월자 그라티아의 이면에 의해 탄생한 로드리아.

완전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탄생에 초월의 영향을 받았으니 사라진 ‘진짜’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또 죽으려고 나왔니?”

월광의 검을 꽈악 쥔 다윤이 로드리아를 향해 검을 세웠다.

다윤이는 로드리아에게 당한 적이 제법 있으니까.

물론 복수는 했다지만 저렇게 죽지 않고 다시 나타났다.

로드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다 웃으며 말했다.

─아! 당신이 있었구나. 너무 존재감이 없어서 몰랐는데.

“뭐?”

─어디보자… 환각 하나에 쩔쩔매던 하찮은 용사. 외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버러지.

로드리아는 큭큭 거리며 연기를 내뿜었다.

─이런데 내가 왜 너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네 옆의 남자라면 모를까.

“...”

─하물며 무려 그 간단한 환각을 깨지 못해 5년을 넘도록 그 안을 맴…

푸확!

순간 로드리아가 수천 갈래로 갈라졌다.

연기의 형태를 유지하던 로드리아는 그대로 소멸하듯 사라진다.

하아… 하아…

한참을 숨을 고르던 다윤이 검을 고쳐 잡으며 내 쪽을 돌아봤다.

“윤 씨. 저 괜찮...”

“이리와.”

“...! 네? 무슨...”

나는 다윤을 내쪽으로 끌어당기고 히아트 빛을 끌어왔다.

다윤이 있던 자리는 붉은빛의 창이 그대로 내려와 꽂혔다.

‘초월자에 의해 탄생됐다고 초월의 힘을 쓰다니.’

어느새 창을 회수한 로드리아는 거대한 마기를 뿜어내며 클클 웃었다.

[흐. 역시 당신만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내가 지금 좀 부족해서, 쉽게는 못 끝내 주겠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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