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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화 〉 14. 거짓된 존재 (1) (206/318)

〈 206화 〉 14. 거짓된 존재 (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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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니라고 본다."

"뭐?"

크로아가 의외라는 눈으로 보자 아즈라는 피식 웃었다.

"영웅이 아닌 녀석이 여기까지 살아남았다는 게 의심스럽긴 하나,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아니라 볼 수 있지."

"어째서?"

"녀석이 살린 건 크리드아 하나다."

그에 크렉이 움찔했지만 아즈라는 그것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굳이 우리까지 살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녀석은 우리 모두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크리드아 하나만을 어떻게든 보고 있다."

"..."

"놈이 크리드아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혈연에 가깝겠지. 아니면 과거에 목숨을 구원받은 적이 있다거나."

크렉은 따로 반박하지 않고 침묵에 잠겼다.

제법 티를 내지 않고 있었는데 역시 영웅을 속일 순 없었다.

"그럼 같은 이유로 크리드아도 제외해야겠군."

치료를 끝낸 베덴디스는 루소니아의 등에서 손을 때며 그리 말했다.

확실히 크렉이 아니라면 크리드아 역시 아닐 테니.

애초에 그 역시 연기조차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만일 그것조차 계획된 것이라면요?"

"...그랬다면 더 의문 속에 빠지는 거지. 기왕 이렇게 됐으니 물어보겠다. 크리드아, 너는 배신자인가?"

"아니다."

"그렇다는군."

바로 나온 확답에 베덴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다른 영웅들에게 한 번씩 진위 여부를 물어보았으나 모두 같은 대답을 취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수백 년간 진위에 대한 판단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당연하게도 그것을 속이는 법 또한 알고 있을 거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악마에게 남을 속이는 능력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즈라는 검을 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무도 아니란 소리지?"

"""..."""

"그럼... 어쩔 수 없지."

검을 훙훙 휘두르던 그는 이내 9층의 문 앞으로 향하다 이내 문을 쿵! 닫았다.

갑작스러운 이상행동에 모두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는 씨익 웃으며 문을 등지고 섰다.

"위대한 분을 제하고 누구한테 휘둘리는 건 딱 질색이라."

아즈라의 검신에 백색과 보라색의 기운이 점점 피러올랐다.

"배신자든 누구든 와라. 절대 위로 못 올라가게 해주지."

­

또 다른 9층.

다윤과 김윤, 그리고 네메린느 일행은 9층의 모든 악마를 잡아냈다.

9층의 보스는 리비엔을 비롯한 하위급 최상위 악마 셋이 등장한다.

하나만 해도 어지간한 국가도 전복시킬 정도의 강한 악마들이었지만...

[끄아아아아악!!!]

"거참 비명이 큰 친구네."

촤아악!

비명이 큰 최상위 악마, 부데비르의 뱃살이 백색의 검강에 의해 반 토막 났다.

하위급 치고는 꽤나 빠른 재생력으로 수복했지만 뒤이어 들어가는 바람 갈기에 의해 순식간에 너덜너덜 찢겨 바닥을 굴렀다.

"후..."

"위쪽은 잘 됐어요?"

"아니."

나는 다윤이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 망할 것의 그라티아는 아이템을 안 뱉는다.

아무리 확률이 낮더라도 20번 넘게 잡으면 반지든 견장이든 뭐 하나라도 떨어져야 하는데 여태껏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으음... 그럼 리젠 시간 말고 확률을 높여 보는 건 어때요? 가능할 것 같은데."

특이점은 유저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코드.

즉, 관리자의 권한을 쓸 수 있는 힘이다.

그런 힘이 담긴 특이점이라면 확률을 넘어서 아예 아이템을 소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눈에 너무 띄어. 코스트도 많이 들고."

아쉽게도 아직은 전면전에 나설 상황이 아니다.

퍼센트로 치자면 99.99% 같은 느낌.

사실 이렇게 리젠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잡을 수 있는 것도 이제 들켜도 어지간하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지간'이라는 부분도 쉽게 보면 안 된다.

특이점이라는 것이 그렇게 좋고 유용하다면 왜 무명이나 미르틱같은 존재들이 능력을 남발해 신처럼 굴지 않았겠는가.

다 이유가 있다.

"계획이 시작 단계에 들어서더라도 특이점은 함부로 사용하면 안 돼. 자칫하다 페널티 먹고 차원 너머로 추방당하면 돌아올 수가 없지."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하페루아처럼 '차원 유랑자'자가 되어 스스로 차원을 넘을 정도가 될 때까지 차원을 떠돌아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위험하다.'

사실 요즘은 정말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줄 위에서 목표를 항해 달려나가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역시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줄에서 미끄러지더라도 스스로 올라올 힘이.

"으음... 어렵네요. 정말 통할까요?"

"통하길 바라야지."

통하지 않으면 정말 죽음을 각오해야 하니까.

"그러니 스스로 초월을 해야 한다는 거야.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살아남을 수는 있도록."

내가 어떻게든 동료들을 초월의 경지로 끌어올리려는 이유가 괜한 게 아니다.

내가 실패하면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초월을 한다면 적어도 죽진 않는다.

하페루아를 신뢰하긴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성공은 쉽사리 점칠 수 없다.

관리자의 진짜 실력은 하페루아도 정확히는 알지 못하니까.

다윤은 내 말을 듣고는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좋아요! 이번 일 끝나면 나랑 수련 가요."

"응? 수련?"

뭐, 하페루아가 항상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정신적 수련은 필수라 귀에 못 박히게 말하긴 했다만...

다윤은 노란색의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 봤다.

"네, 수련이요. 장소는... 티르빙이 좋겠네요. 추억의 장소기도 하고."

"아."

티르빙의 설산.

혹독의 한기가 부는 설산으로 다윤을 환각 속에서 처음 마주한 장소기도 하다.

그리고...

"저랑 윤 씨가 첫 키스한 장소기도 하죠."

"그렇지. 말 나온 김에 한 번 더 할까?"

"네?!"

"농담이야."

일을 할 때는 다소 빡빡하더라도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다소 여유가 있더라도 마음가짐이라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물론 이대로 적당히 설렁 설렁 즐기며 살아도 나쁠 건 없지만...

­특이점을 타고난 생명은 운명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어. 누구든 이용하거나 반드시 죽이기를 간절히 원할 테니까. 네가 쉬게 될 날은 적어도 이곳의 모두가 너를 넘볼 수도, 해칠 수도없는 날이 와야만 가능할 거야.

온전한 특이점을 타고난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누굴 원망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하면 되잖아?'

물론 지금은 한참 부족할 테지만 나는 원래 부족한 능력에서 발버둥 치는 게 익숙하다.

앞으로의 계획의 첫 단추는 스스로의 초월,

그리고 고유 능력의 각성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보니 뭔가 뾰로통한 다윤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래요. 일에 집중해야죠."

"..."

"슬슬 윤 씨 본체가 일어날 테니 빠르게 가서 보스는 합체해서..."

쪽.

"됐지? 가자."

"...네에..."

나와 다윤은 10층의 문을 열었다.

"아주 지랄이 났구나."

네메린느는 한숨을 내쉬며 따라 들어갔다.

­

또 다른 10층.

아래쪽에서 들리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차원의 소음이 들려온다.

하나는 변질된 과거의 영웅.

다른 하나는 용사의 무리.

짙게 물든 인영은 남들보다 빠르게 먼저 거짓된 둥지에 다가섰다.

“...”

그 안에는 날개가 갈라진 채 죽어있는 그라티아의 이면과 둥지 한쪽 구석에 몸을 뉘고 있는 김윤이 보였다.

“...위대한 존재.”

하나의 인영은 고민했다.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가짜는 진짜를 위해 살아가거나 진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숨어 살아야 한다.

같은 존재는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기에.

스륵.

인영의 기다란 손이 김윤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자신이 근처까지 왔음에도 여전히 반응이 없는 그.

아마도 아래층에서 올라오고 있는 ‘진짜’ 그에게 의식이 있을 것이다.

즉, 이건 단순히 껍데기에 불과하다.

‘위대한 존재는 위대하게 남아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그대로 본체에 흡수되겠지.’

용사는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여신의 선택을 받은 다른 차원의 이방자.

아무리 부탁해도 이곳에 남아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그라티아에게 축복을 받고 그대로 떠나려 하겠지.

그럴 순 없다.

파앗…

「▼성역 」

몸을 누윈 가짜에 몸에 작은 씨앗을 심었다.

이대로 쭉쭉 자라 나의 위대한 신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요.’

아쉽게도 벌써 용사 일행은 10층에 문을 열고 있다.

이 가짜는 이제 본체에 흡수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영은 들려오는 10층의 발걸음에 서서히 몸이 흩어졌다.

“진짜를…”

그녀는 비릿하게 웃으며 몸에 깃든 씨앗을 몸속 깊은곳 까지 밀어넣었다.

­

문을 등지고 선 아즈라의 기력이 거대해진다.

다른 영웅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를 막으려 했으나 둥글게 그어놓은 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배신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하나 정도는 확실하겠지. 우리를 위로 보내려 한다는 거.”

“...그래서 못 가게 막는다는 거냐.”

“그래. 그러니 선을 넘어오지 마라.”

아즈라는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그리 말했으나 사실 뚫지 못할 것도 없다.

아즈라는 하나.

그에 반해 상대는 다섯.

숫자도 숫자이지만 무엇보다 남은 이들은 아즈라와 맞먹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차마 나서지 못했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셈인가요?”

“배신자가 죽지 않는다면. 그래. 그렇게 되겠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난 이제 의심이 됩니다.”

보랏빛으로 물든 레이피어를 치켜든 루소니아는 뚜벅뚜벅 선의 끝자락까지 다가왔다.

“그라티아님을 의심하고 싶진 않지만… 이제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이런 상황을 그냥 두셨을까요. 어째서 배신자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셨을까요. 그리고.”

뚜벅.

“정말, 그분이 위대한 신이 맞을까요?”

그어놓은 선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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