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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화 〉 14. 거짓된 존재 (5) (210/318)

〈 210화 〉 14. 거짓된 존재 (5)

* * *

­

“베데.”

“네, 히딘님.”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히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군데군데 실금이 나있는 하늘.

금은 조금씩 조금씩 벌어져 어두운 하늘에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늘이 이상해.”

“...그렇군요.”

“베데는 안 이상해?”

“저도 이상은 합니다. 다만 히딘님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 웅.”

신의 아이, 히딘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마저 아이스크림을 먹었지만 베덴디스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에레. 이것 역시 너의 뜻인가.’

오래전.

마지막 10번째 이면의 층에서 보스를 마주했다.

지금껏 이면에서 만나온 그 어떠한 마수와 악마보다 강했다.

어두운 거체가 펄럭이자 층 전체가 흔들리고, 방대한 마력의 파도에 주술을 제대로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보스의 정체였다.

그라티아님의 이면.

애초에 이면이라는 것도 그라티아님의 영향 아래에서 탄생한 차원이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하니 충격적이었다.

비록 가짜라 하더라도 자신의 신을 죽이기 위해 칼과 지팡이를 든다는 것이.

루소니아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이 죽은 것과 눈앞에서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아즈라와 크로아를 보며 멘탈이 제법 나갔었다.

그랬기에 마치 기계처럼 묵묵히 이면을 공격했지만 베덴디스는 달랐다.

그와 에레는 단둘뿐인 주술의 영웅.

그랬기에 저 ‘그라티아의 이면’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정체를 진작에 파악할 수 있었다.

더불어 에레가 느끼고 있는 감정까지도.

‘에레.’

­...역시 베덴디스구나. 신도 못 알아차린걸 네가 알아채다니.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거냐.’

베덴디스는 지팡이를 땅에 꽂아 전력으로 주술을 발동했다.

눈앞에 공격을 퍼붓고 있는 에레와 좀 더 대화를 나누기 위해.

거체의 눈은 조금 흔들렸다.

­...우리는 실패작이야.

‘실패작?’

­우리가 완벽했다면. 우리가 다른 신들의 사도들처럼 신만을 숭상하며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 불순한 생각을 가지기도 전에 처단하셨을 테니까.

‘...신께서는 우리를 억압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존중해 주신 거야.’

­베덴디스.

콰아앙!!

거대한 광풍에 튕겨져나간 루소니아를 수습하던 그에게 에레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어설픈 방목은 우리를 더 아래로 끌어내릴 뿐이야. 우리는 절대 스스로 힘을 감당해 낼 수 없어.

‘......’

­어설픈 정신에 강대한 힘은 통제를 잃고 바스러질 뿐이지.

에레는 어느새 공격을 멈추고 베덴디스를 바라보았다.

­너에게 부탁이 있어. 네가 꼭 들어줬으면 해.

‘무엇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아? 내가 이미 전달해 두었을 텐데.

‘...너는 이대로 여기 있을 셈인가? 그것이 ‘옳은’ 일이라?’

­이건 옳은 일이 아니야, 베덴디스.

어느새 베덴디스의 목걸이에 두 개의 작은 생명이 스며들었다.

­이건… 그냥 내 욕심이지. 막상 고생하기로 해놓고 사실 이대로 있기 싫은 거야. 나는.

‘...’

­거기다가 원대한 목표랍시고 덕지덕지 붙인거지. 나도 네게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거체의 몸을 스스로 부셔내는 에레는 옅게 웃었다.

­애 좀 봐달라고.

­

그랬지.

에레는 그렇게 죽고 칠 영웅전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시험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마주했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부탁한다는 말만 전해줄 뿐, 그 외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에레의 부탁대로 씨앗, 이그드라실의 주체가 되는 미누아를 키워냈지만 에레의 뜻대로 키운 건 아니었다.

에레의 부탁은 씨앗을 잘 키워달라는 것이지 자신의 육체를 잘 만들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에레의 말은 그 뜻이 맞았으나 베덴디스는 순순히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와의 인연도 인연지만 원대한 목표랍시고 친우들을 희생시킨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헌데, 이제 보니 그냥 그리해줄걸 그랬구나.”

베덴디스의 말에 히딘이 갸웃했으나 그는 그런 히딘을 향해 싱긋 웃어준 뒤 손을 한번 휘저었다.

“어어…”

푸욱.

잠이 든 히딘의 아이스크림은 바닥을 구르고 그런 소녀의 몸 주위로 백색의 베리어가 씌워졌다.

히딘을 제운 베덴디스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누군가를 보았다.

백의를 두른 이그드라실의 ‘진짜’ 주인.

“제사장님을 뵙습니다.”

“미누아.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게냐.”

“본색이라. 모순이군요.”

미누아는 정말 의문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야말로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어머님을 위해 신님과 루소니아님께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요. 더불어 저라는 개체가 그냥 탄생할 수 있게 도와주고 말입니다.”

“...네가 너를 키운 것은 에레를 위함이 아니었다. 그녀의 계획에 멋대로 희생될 너와 크렉을 위함이었지.”

그랬다.

에레의 위험한 계획을 알고 있음에도 베덴디스는 이 둘을 죽이지 않았다.

에레의 원대한 목표, 아니 그럴듯한 목표를 위해 소모될 운명을 가지고 탄생한 생명.

베덴디스는 그런 생명들이 가여웠다.

그랬기에 도시로 돌아오고 에레가 만들어낸 주술식을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음에도 풀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풀어내면 이들은 영영 도시에 박혀 영원을 살아가야 하니까.

그에 미누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모순. 모순이군요. 정말 나를 위했다면 15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지 말게 했어야죠.”

“...150년은 주술의 핵심이 되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그것을 비틀려면 그라티아님이나 주술의 신이 와야만이 조정이 가능해.”

에레는 주술에 한해서 신에 도달할 정도로 강했다.

심지어 악마의 힘이 더해져 주술의 식이 한층 더 복잡해졌기에 아무리 베덴디스라고 해도 그것을 멋대로 수정하기가 어려웠다.

베덴디스는 미누아를 보았다.

그래도 에레의 시험을 통과하고 주술의 격을 끌어올려 간신히 수정한 것은 하나 있다.

훗날 에레가 미누아의 육체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만큼은 어떡해서든 노력을 들여 간신히 성공한 부분이지만…

‘제 어미에 제 자식인가.’

미누아는 에레보다 더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단순히 인정받으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머리를 감던 백의를 벗어낸 그녀의 머리카락이 드러난다.

백청색이 였던 머리색은 은은한 연푸른 색의 머리카락으로 변해있었다.

“알고 있죠? 내가 뭘 하러 온 지?”

“...하지 마라. 너는 절대 그라티아님을 감당하지 못할 거다.”

“걱정 마세요. 내가 아닌 새로운 나의 신님이 감당하실 테니까.”

후─ 쿠득!

콰드드드득!!!

손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지팡이를 꺼내려던 베덴디스의 손은 어느새 바닥에서 솟아난 백의 뿌리에 붙잡혀 있었다.

뿌리는 지팡이를 가로채고 동시에 베덴디스의 발과 팔, 그리고 얼굴 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휘감았다.

베덴디스는 그 즉시 성역의 힘과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이그드라실 중심부에 있는 그로서는 그녀의 손안에서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누구의 영역인지 잊고 있는 건 아니죠?”

“......”

“난 어머니만큼 나의 아버지인 베덴디스. 당신도 존중해요. 나의 구성 성분에 당신의 것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에레가 날 많이 좋아했나 보군.”

“안 좋아했다면 그게 이상하죠. 당신하고 몇백 년을 같이 지냈는데.”

우웅.

이그드라실의 나무에 빛이 스며든다.

도시의 거주하는 모든 이들의 혼이 조금씩 나무로 빨려 들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바닥에 곤히 자고 있던 히딘의 몸 역시 나무 중앙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마침내 중앙에 안착된 히딘의 몸은 나무 갈래 갈래에 휩싸였다.

“히딘은 건드리지 마라. 미누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선은 보통 힘이 없는 자들이 제단하죠.”

“그라티아님의 분노를 보지 못했나 보군.”

“아버지.”

몸은 꽁꽁 묶였음에도 자신을 걱정하는 베덴디스에게.

미누아는 그저 미소 지어줬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성역 」 「▼초월 」 「 ─ 」

“나의 신 님은 그리 약하지 않거든요.”

이그드라실을 중심으로 새로운 빛이 스며들었다.

더불어 저 멀리 떨어진 판테움에도.

­

“...?”

“왜 그래요 윤 씨?”

육신을 하나로 합친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뭔가 있는데…

[무슨 일이느냐.]

“무슨 일이십니까.”

33번째 그라티아의 이면을 상대하던 네메린느와 히아트가 돌아왔다.

다행히 견장은 구했지만 반지가 안 나온다.

그라티아의 파츠 중에 장검, 갑주를 비롯해 가장 핵심이라고 불리는 파츠.

다른 건 몰라도 반지는 무조건 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하지 않아요? 올라오는 것 같지도 않고.”

다윤이 의문스럽게 말을 꺼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하다.

환각을 겪는다고 하기에는 이상하리 만큼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환각에서 아무리 수십 년, 수백 년을 겪는다 하더라도 바깥은 1초도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환각 속에서 1년을 겪으면 현실에서 100년을 겪을 수도 있고.

물론 후자의 경우에는 환각을 거는 개체가 환각을 당하는 개체보다 훨씬 강해야 가능한 일이다.

반 초월자가 된 로드리아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이미 죽어 그 흐름을 만들 수 없다.

즉, 바깥의 시간의 흐름을 길게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문을 닫쳤는데 말이지…”

이미 열흘째 밤은 지났다.

이면의 문은 진작에 닫힌 상황.

하지만 1층을 확인해본 결과 둘은 없었다.

아직 환각 속에 있다는 의미.

‘아이템만 구하는거라 너무 대충 생각했나? 휴가라는 느낌이기도 했고…’

홀리에린에서 그나마 위협이 될만한 건 초월자, 그라티아 하나.

그녀는 적이 아니고 스스로 초월하긴 했으나 1등위에 간신히 턱걸이를 걸친 반 초월자에 가까운 초월자다.

정령 도시의 세피드 같은 규격 이상의 강자도 아니거니와 이곳에 영향을 준 제라드도 이미 죽인터라 시험 외에는 딱히 하페루아에게 정보를 받지도 않았다.

이곳의 이야기는 이미 과거에 돌아다닌 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더불어 특이점을 이용한 리젠 후 사냥을 반복하다 보니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성역 」

그때.

내 몸속 무언가가 외부의 차원을 뚫고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차원의 벽이 깨지고...

“?”

“?!”

[?]

“뭐…”

[히딘이이이인!!!]

차원의 벽을 뚫고 ‘진짜’ 그라티아가 출몰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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