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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화 〉 15. 세 개의 빛 (1) (216/318)

〈 216화 〉 15. 세 개의 빛 (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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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죽었군요.”

유일하게 남은 본체, 미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서는 다수의 파편을 회수하기가 어려워 스스로를 쪼개고 크렉의 영입을 시도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는 고작 3개.

무엇보다도 계획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판테움’의 씨앗을 빼앗긴 건 정말 큰일이었다.

‘씨앗을 회수했으면 곧장 올 것이지…’

분신으로 나눈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완벽히 통제할 수 없을지언정 목표의 우선순위라도 같았다면 좋았을 텐데.

“...어쩔수 없는 거겠죠.”

애초에 분신은 미누아 본인이 가진 ‘불완전함’을 모아 만든 존재.

하나의 분신에게는 크렉을 비롯한 사람들과의 유대. 인간으로서의 감정, 생각 등등을 담았고,

다른 하나는 항상 고결하며 정의로운 그녀의 숨겨진 내면이나 욕심을 담았다.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기 위해 불필요한 감정을 내려놓고 오로지 목표를 위한 감정만을 본체에 담았다.

문제는 그렇게 되니 하나는 완벽해졌지만 둘은 제 감정에 충실한 불완전한 생명이 되었다.

“쯧.”

혀를 찬 미누아는 고개를 돌렸다.

비록 인간으로서의 감정은 모두 버렸다지만 분신과의 공유를 통해 짜증이 난다는 감정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미누아는 이그드라실의 나무를 보았다.

나무 기둥의 정 중앙에는 두 명의 작은 아이가 고치처럼 줄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라티아의 핏줄들.

이들은 위대한 분의 좋은 연결책이 되어줄 거다.

그때까지 위대한 분께서 시간을...

파직!

그리 생각하던 순간.

“어…?”

성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왔어?”

“...”

미누아는 삽시간에 빠져나가는 성역의 기운을 감지했다.

위치는 당연하게도 홀리에린의 이면.

이그드라실을 중심으로 계획한 ‘초월화’가 중단되고 순조홉게 빨아들이던 히딘, 미카의 육체도 더 이상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의 육신과 영체를 움직일만한 힘이 더 이상 없기에.

“위대한 분이시여. 어째서 뜻을 받으시지 않는 겁니까.”

“...그 위대한이니 뭐니 안 하면 안 되니?”

이래서 누군가를 따르는 광신도들은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모든 목적과 사고방식이 신을 우선시하니까.

신만 잡으면 되니 어찌 보면 가장 편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대상이 내가 당장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달라진다.

하물며 그 대상이 나라면.

“위대한 분은 위대한 분이라 말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잘못되진 않았는데…”

“그럼 받으십시오. 당신이 받는 것만으로 이 행성의 그 어떠한 존재도 범접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진 않을 거 같은데.

물론 그라티아와 제라드. 두 초월자의 힘이 더해진다면 상당히 강해지긴 할 거다.

그 둘의 힘은 행성 내를 기준으로 한다면 최상위권에 속하니까.

하지만 차원 단위로 본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고작 1등위.’

1등위라는 경지가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넘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나는 아직 고유 능력의 각성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보조로서 일부만 사용하는 게 아닌 아예 몸에 강신 시킨다면, 능력의 각성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여신이나 마왕은 어떻게 이기려고.”

그라티아는 빛에 있어 여신보다 뒤떨어진다.

제라드 역시 어둠에 있어 마왕보다 뒤떨어진다.

여신과 마왕은 이미 차원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

만일 관리자의 제약이 없는 온전한 상태의 그들이라면 나조차도 쉽사리 승패를 논하기가 어려웠다.

미누아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해하고 계시군요. 김윤님의 능력은 단순히 힘만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의 조화와 조율, 그리고 완벽한 힘의 균형이 있기에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미누아는 성질이 다른 세 개의 빛. 그리고 빛과 전혀 상반된 마기를 가지고 아무렇지 않은 나의 능력을 내세웠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하페루아를 통해 외부 차원의 초월자의 힘을 조금씩 쓰고 있지만 원래는 이러한 힘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무너트리는 ‘붕괴’와 모든 것을 수복시키는 ‘재건’이라는 초월의 힘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보통의 초월자라면 두 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두 힘을 가질 수 없다.

초월의 힘은 단순히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전자의 육체와 영혼을 변질시킨다.

때문에 두 상반된 힘은 몸에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거부반응을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특이점.’

코드를 타고난 이레귤러들은 그 어떠한 힘이라도 능력만 된다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무명이나 하페루아가 그 예시다.

과거 망령 지대에서 보았던 그는 다수의 외차원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창조세계의 문을 열어 이질적인 공격을 내뿜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공격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보니 그것이 초월자의 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페루아 역시 본인의 능력인 ‘맹약’ 외에도 다른 초월의 힘이 몇 개 가지고 있고.

‘그러고 보니 근 2년간 무명을 본 적이 없네.’

하페루아가 항상 조심하라 하긴 했지만 우리보다 먼저 앞서나간 무명은 영 소식이 없었다.

마왕성, 하페론에 침입했다는 보고도 없었고.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미누아는 내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쐐기를 박듯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강합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새로운 파문을 일으킬 수도 있지요. 고작 여신의 신도로 살아가기에는 당신의 위치와 힘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요?”

“아깝지.”

“그렇다면 저의 유일한 신이 되어…”

“싫어.”

순간 화색이 돌았던 미누아의 표정이 흉흉해졌다.

미누아의 주변으로 흑백색의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준비해라, 그라티아.

그라티아에게 전음으로 신호를 보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날개가 펄럭이고 바람이 거세졌다.

어느새 흑백색의 신전에는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원치 않는다면 직접 입에 넣어드리죠.”

“난 아무거나 안 먹는데.”

“...”

장난스러운 내 말에 화가 난 걸까.

튼튼한 차원이 벽이 다시 한번 깨지고 나무의 뿌리가 촉수처럼 이면을 뚫고 들어왔다.

저 정도면 더 이상 나무라고 부르기도 힘들겠네.

촉수 뿌리는 삽시간에 신전을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라티아는 광풍을 이용해 뿌리를 찢어발기고 흑백색의 깃털을 미누아에게 날렸다.

카득─!

허무하게 막힌 깃털. 그라티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그라티아의 거체를 생각하면 거대한 야구장이 날아가 박히는 수준.

미누아는 몸이 뒤로 밀림과 동시에 온몸이 뿌리에 휘감겼다.

아쉽게도 후속타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라티아는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쾅! 쾅! 쾅! 쾅!

빌딩만 한 날개가 뿌리에 휘감긴 미누아를 계속해서 내리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뿌리는 완전히 찢겨져 헛웃음을 짓고 있는 미누아를 드러내 보였다.

“...품위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군요.”

[흥.]

후두둑 소리와 함께 그라티아는 날개를 거뒀다.

[배신자에게 보여줄 품위 따위는 없다. 하물며 내 아이들을 멋대로 납치한 거라면 더더욱.]

그라티아는 마치 으르렁거리듯 미누아를 노려봤다.

뭐, 어느 정도 미누아의 의견에는 동의했다.

그래도 나름 행성 내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인데 대단한 기술이나 마법 없이 무식하게 몸만 쓴거니까.

다윤과 싸울 때는 기술도 쓰고 어느 정도 품위를 유지했지만 그라티아 입장에서는 저게 가장 효율적이긴 하다.

그녀의 능력은 단순히 육체적 강함과 성역의 보호가 전부니까.

애초부터 신성이라는 고귀한 빛을 내세우며 신위에 신, 창조신이라고 불리는 여신이나,

정령신이었지만 어떻게든 초월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정령왕, 히아트는 평범한 고위신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로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라티아는 초월자가 된 이후로도 자신이 고위신 중 하나라고 여겼고, 최근까지도 고위신의 회의에 참여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고유 능력은 고위신의 것과 비슷했다.

[루소니아는 용사와 함께 왔는데… 베덴디스는 어디 있느냐.]

“아, 그걸 소개 안 했군요.”

파직.

뿌리에서 벗어난 미누아를 중심으로 백청색의 번개가 몰아쳤다.

갑작스러운 번개에 그라티아는 잠시 놀랐으나 이내 신경을 꺼버렸다.

번개는 자신의 능력 중 하나.

아무리 제힘을 강탈하고 변형시켜봤자 뿌리처럼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후웅!

그리고 그 판단은 큰 악재를 불러왔다.

[...!]

콰직!

빌딩처럼 거대한 날개가 날카로운 긴 검날에 의해 끄트머리가 날라갔다.

선명하게 튀어 오르는 선혈.

그라티아는 거칠고 무거운 존재감에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저 멀리, 파직 거리는 인영 하나가 보였다.

백청색의 인영은 대검을 훙훙 휘두르며 살기를 내뿜었다.

[아즈라…?]

“그게 끝이 아닌데요.”

미누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빛처럼 서늘한 화살 하나가 그라티아의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화살이 날라온 방향 끝에는 다음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영웅, 무트라가 보였다.

그런 그녀의 주위로 비슷한 색의 번개를 5명의 인영이 더 나타났다.

미누아는 웃었다.

“시간이 없어서 완전히 완성은 안됐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감히!]

분노한 그라티아는 그대로 미누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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