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7화 〉 15. 세 개의 빛 (2) (217/318)

〈 217화 〉 15. 세 개의 빛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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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의 영웅.

과거 이면속 전투로 인해 루소니아와 베덴디스를 제외한 모두가 죽음을 맞이했다.

영웅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그라티아는 그들의 영혼을 명계로 보내지 않고 칠 영웅전에 안치했다.

일곱의 영웅은 그렇게 각각 자신의 생전의 모습을 본딴 석상에 깃들었다.

인간의 육체로 수백 년을 살아오며 ‘격’을 쌓아올린 영혼들.

그러한 영혼들은 다시금 태어났다.

­

[감히!]

그라티아가 분노해 달려든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와 힘.

그리고 그것을 본 영웅, 아즈라는 선혈이 흐르는 대검과 그녀를 교차하며 돌아봤다.

‘적… 이면…’

위대한 존재, 그라티아.

그녀의 숨겨진 이면.

악(?).

‘죽여야 한다.’

죽여서 위대한 존재를 위해 바쳐야 한다.

파악!

허공을 가볍체 치고 날아오른 아즈라는 대검을 높이 들어 그대로 허공에 내질렀다.

콰아아아!!

번개의 검격이 선명한 색을 띠며 그라티아를 노렸다.

전과 달리 흑백색의 보호막으로 공격을 막아냈지만 아즈라는 예상했다는 듯이 한 번 더 검을 쥐어 공격을 내뿜었다.

보호막이 점점 깨지지만 미누아와의 거리를 좁히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라티아의 날개가 미누아를 노리려는 순간.

카─앙!

갑작스레 나타난 백청색의 방패에 의해 날개가 전진을 멈추었다.

커다란 방패 뒤로는 큰 체격의 남자가 파직 거리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크리드아.]

퉁!

크리드아의 주요 기술 중 하나인 충격 반사가 시전 된다.

허나 힘의 크기가 제법 나는지 공격이 유효하게는 들어가지 않았다.

‘...’

하지만 그녀의 심상은 멀쩡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죽은 자들이다.

악마라는 강대한 적에 시선을 빼앗겨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고, 외부의 신과의 교류로 인해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랬기에 이들을 그냥 떠나보낼 수 없었다.

순리를 거스르더라도 억지로 영웅전이라는 곳에 잡아두었다.

처음부터 이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었다면 달라졌겠지만…

­아래 것들을 신경 쓸 이유가 있나?

­원래 그런 거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녀석들에게 너무 감정을 갖지 마.

­정 신경 쓰이면 다시 만들어서…

자신과 친히 지냈던 고위신들은 대부분 그리 말했다.

과거의 본인도 이리 생각했었다.

신도들은 모두 자신의 힘 아래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막상 이리 죽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만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 나는...]

“적.”

달빛 화살과 번개의 검격을 피하거나 튕겨내던 그라티아의 뒤로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는 대신 성역의 시야를 이용해 살펴보니 새파랗게 날이 선 단검이 이미 목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단검의 영웅, 크로아의 단검이 그라티아의 목에 닿았다.

“제거한다.”

생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와 절삭력.

목의 2할 정도까지 파고든 크로아의 단검이 튕겨져 나가더니 허공을 날았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이면이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그분의 말을 듣지 못했나요?]

[...]

[정말이지... ]

흡! 이면의 흑백색 마력이 빛을 발하자 뒤쪽에서 대기하던 두 명의 영웅의 공격을 유도했다.

도끼와 기다란 봉을 들고있는 영웅, 아크와 주드.

바위처럼 거대해진 도끼를 날개로 막아내고 수십, 수백 개로 분열된 봉의 쇄도를 멈춘 이면은 숨을 고르며 말을 내뱉었다.

[난 당신보다 약해서… 둘 밖에 못 상대해요… 그러니 당신이 나머지 넷을 맡아요.]

[...알았다.]

그라티아는 분노를 다스리며 미누아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아크와 주드를 제외한 나머지를 멈춘 체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당신이 거짓된 존재를 부정하지 않다니.”

미누아의 눈 위로는 무표정했지만 입꼬리는 조금 올라갔다.

“이것도 위대한 분의 안배일까요?”

[시끄럽구나. 미누아. 영웅들을 멋대로 살려낸 대가는 그 어떤 죄보다 무거울 거다.]

“죄라.”

푸훗.

미누아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당장이라도 저 얼굴을 짓뭉개 버리고 싶었으나 미누아의 주위를 호위하는 영웅들 때문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잘려나갈 뻔한 목의 회복 시간도 필요하고.

“죄의 무게, 법칙, 규정… 뭐 그런 것들은 전부 힘없는 자들이나 따르는 거죠. 강한 힘과 자격이 있는데 굳이 그런 걸 따를 필요가 있을까요?”

[자격? 무슨 자격? 너에게 그 어떠한 자격도 없다 미누아. 멋대로 영웅들을 되살려내 부하로 쓸 자격도, 감히 나의 힘의 파편을 가로채고 아이들을 이용할 자격도.]

파드득!

[네 위대한 존재에게 구원받을 자격도. 그 무엇도 없다.]

“...구원? 누가요?”

한참을 웃던 미누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마치 들으면 안 될 것을 들었다는 듯이.

그녀의 마력이 들끓자 영웅들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구원을 받는단 말입니까.”

[그야, 너지. 미누아. 너의 존재는 에레에서 비롯됐다. 에레는 널 새로운 육체로 쓰기 위해 만들었고 너는 50년 전에 사라졌어야 마땅했다.]

미누아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베덴디스는 널 수용했다. 널 어떡해서든 구원해 주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네가 그걸 발로 차낸거다.]

“...”

[구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 부모를 죽여서까지.]

헛소리.

헛소리다.

애초부터 베덴디스는 날 구원해 줄 능력 따위 없었다.

제라드의 죽음과 그라티아의 멍청한 행동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

대체 어느 누가 그딴 걸 구원이라 부른단 말인가.

“뭔가 착각하고 있군요. 제가 당신이 아닌 위대한 분을 모시는 건 구원을 바래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분이 존재할 뿐이고 저는 그저 그 길을 따라가…”

[글쎄다. 미누아.]

그라티아는 마치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볼 때의 너는 구원을 간절히 바랬다.]

“...”

[매번 나무에 앉아 기도하는 널 보았지. 그때마다 너는 공허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받은 구원이 구원이 아니라 생각했으니. 헌데, 그거 아느냐?]

“...?”

[내가 베덴디스에게 준 파편을 말이다.]

일곱의 영웅이 모두 죽고 난 뒤, 그라티아는 몹시 슬퍼하며 살아남은 둘에게 자신의 파편을 때어주었다.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앞으로 태어날 생명을 잘 보살펴 주도록.

죄를 집행하고 악을 처단할 루소니아에게는 날카로운 검을.

[백의 나무를 기리며 죽어버린 동료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따스한 마음을 내어 주었다.]

“...”

[너는 그저 믿으면 됐던 것이다. 베딘디스와 나를. 그러면 너의 공허함도 자연스레 사라졌을 거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다.]

“아니, 거짓말이야.”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진작에 공허함을 떨쳐냈을 것이다.

에레는 비록 부활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안배는 꽤나 정교했다.

지금의 본인조차 완전한 상태의 주술을 풀어내라 하면 풀 수 없을 정도다.

비록 두 초월자의 문제로 주술이 흐려지긴 했으나 고작 그딴 것으로 내 상황이 해결됐을 리가 없다.

“...설령. 정말 그렇다 해도 진실을 말해주었어야지. 믿으라고. 그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파지직! 미누아의 마력이 점점 더 들끓었다.

인간으로서 내려놓은 감정은 전부 의미 없었다.

그녀는 분노하고 있다.

“어머니인 에레는 날 그저 육체를 위한 껍데기로 사용했고, 아버지인 베덴디스는 나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어. 나도, 어머니도 존중한다는 얼토당토않는 생각 때문에.”

[.....]

“그런데.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

어쩌면 시작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용사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대로 살았을지도 모르지.

그래, 이대로 시간이 쭉 흐른다면.

자신은 그들을 믿어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후회.

하지만 늦었다.

‘너무 늦었어.’

믿음은 흐려지고, 새로운 믿음은 이미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

다윤은 쓰러진 루소니아의 두 눈을 덮어주며 착잡한 마음으로 싸움을 바라보았다.

두 그라티아와 되살아난 영웅.

그리고 미누아.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서로의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다윤은 자신의 옆에 앉은 김윤을 보았다.

윤 씨 역시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닌가 보다.

“다윤아.”

“네.”

“이런 상황… 익숙하지?”

윤 씨의 말에 다시 한번 싸움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다들 말 한마디 더 꺼내기보다는 주먹 하나, 기술 하나를 더 사용한다.

이전에도 십수 번 봐온 익숙한 장면들.

테라딘의 이랑과 공작.

디틴베리의 형제.

로루닌의 리라.

망령 지대의 로미와 줄리.

콜트의 환각에서의 신들.

그리고 지난 2년간 통합 서버에서 마주한 비슷한 여러 사건들까지.

전부 있었던 일이고 꽤나 안타까운 사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대부분 초월적인 누군가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

“그러네요…”

과거에는 힘이 없었기에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수련이 되었든 퀘스트가 되었든 반드시 해결했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은 최악에 달할 테니까.

하지만 힘이 생긴 지금.

메인 퀘스트를 비롯한 그 어떠한 목적도 없는 지금.

저 싸움에 개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서로 마주할 수 있는 판은 깔아줬으니 이제 그들의 손에 맡기는 맞지 않을까?

“...그런데 저나 베린이야 그렇다 쳐도 윤 씨는 명분이 있지 않나요.”

사건의 중심인 미누아가 윤 씨를 이용하려 들었으니.

다윤이 그리 묻자 김윤은 어깨를 으쓱했다.

“집안싸움은 집안에서 해결해야지.”

“...정말 그 이유가 다예요?”

“그것도 있고.”

김윤은 허전한 손을 허공에 뻗었다.

“내가 나서기보단 그라티아가 해결해야 돼.”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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