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9화 〉 15. 세 개의 빛 (4) (219/318)

〈 219화 〉 15. 세 개의 빛 (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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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아의 계획은 간단했다.

이면의 마기를 본체에 흘려보내 이성을 잃게 만든 뒤 나를 공격한다.

녀석이 믿고 있는 나라면 별 어려움 없이 그라티아를 죽이거나 제압할 테고.

그렇게 된다면 미누아의 계획대로 시간을 끌게 되어 이들의 힘을 모두 흡수한 성역이 나를 완연한 초월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역 이용하기로 했다.

두 그라티아의 ‘성역’ 과 ‘초월’의 힘을 동일하게 구성한다.

정확히 반반을 이룰 정도로.

그렇게 구성한 두 그라티아를 새로이 이전한 성역과 이어, 불안정한 그라티아의 상태를 안정화 시켰다.

균형을 되찾은 그라티아는 외부로부터 힘이 빠져나갈 일이 없었고 미누아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홀리에린을 박차고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런 선택을 할 줄이야.’

아무리 내가 나서지 못하더라도 다윤이나 베린이 나서면 이 상황을 유리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그라티아에게 사건의 해결을 맡겼다.

스스로 이겨낸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이건 단순히 의지나 마음가짐, 그래야만 하니까! 같은 감성적인 이유가 아니다.

초월의 힘은 항상 시전자 스스로의 격과 자격을 시험한다.

그중 고유 능력은 자기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힘.

그러한 힘의 주체를 결정짓는 일까지 남에게 떠 맡긴다면 그저 그런 힘으로 치부될 뿐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고유’라는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그랬기에 그라티아에게 맡겼지만 솔직히 질 거라고는 생각 안했다.

‘상황만 봤을 때 훨씬 유리했으니.’

그라티아가 안일한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도 진작에 되살아난 영웅 전부를 죽이고 미누아까지 죽였을 것이다.

[어, 어어어어어?!]

미누아 역시 마찬가지였겠지만.

­

이면은 생전 처음 느껴지는 힘에 몹시 당황했다.

아니, 처음 느껴보는 게 아니다.

‘그라티아의…’

정확히는 본체의 기억 속에 있던 힘.

완연하고도 찬란한 빛을 가진 육체.

도시 전체를 비출 때의 감각은 정말이지 ‘전능’ 이라는 감각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힘이 자신의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답답하지 않아.’

더불어 자신을 묶고 있던 영원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자신은 수십 번씩 죽지 않아도 된다.

그 무서운 칼에 목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

사악한 마기에 머리가 타들어 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 더 이상 가짜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

아래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수십 번 죽여왔던 남자의 목소리.

이해는 할 수 있었으나 꼭 그랬어야만 했나 하는 남자.

허나 그 목소리가 몹시 반가웠고.

[어?]

몹시 존경스러웠다.

어느새 자신의 몸은 고개를 수그리듯 김윤의 앞에 내려앉았다.

“이제 널 뭐라고 불러야 하지?”

[...원하시는 대로 부르셔도 상관없어요.]

이제 자신은 그라티아가 아니고 새로운 존재니까.

뭐가 됐든 상관없으리라.

그리 생각하던 찰나 입이 열렸다.

[나의 신이시여.]

“?”

[에?]

바보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금까지 가득 찼던 전능함이 우습다는 듯이 상반된 말에 의문이 들었다.

허나 입은 계속해서 멋대로 말을 내뱉었다.

[이제 김윤님을 완벽한 상태로 마주 볼 수 있게 됐군요. 정말 기쁩니다.]

자, 잠만!

[조만간 이면에 김윤님을 위한 거대한 신전을 지을 예정입니다. 어때요?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멈추세요! 이게 무슨…

[김윤님의 뜻대로 장검과 장비들에는 매우 큰 축복을 걸어주었습니다. 혹여나 원한다면 더 큰 축복을...]

[그만!!]

하아… 하아…

머릿속에서 멋대로 말을 내뱉던 여자를 강제로 멈추었다.

앞에는 멍하니 얘기를 듣는 용사가 보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여자는 칫­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는데, 멈추다니 너무하네요.]

[다, 당신은 이 몸의 주인이 아닙니다!]

[알아요.]

황당한 듯 머리를 부여잡는 이면.

기껏 풀려났다 생각했는데 다시 제 몸을 조종하는 존재가 있다고 하니 절망스럽겠지.

그런 이면이 재밌다는 듯 미누아는 쿡쿡 웃었다.

[걱정 마세요. 난 곧 사라질 테니.]

“사라져?”

[네.]

미누아는 이면의 입을 빌려 김윤의 물음에 대답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으니까요. 할 일을 마쳤으니 이만 악역은 퇴장해야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미누아는 살고자 하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이미 격과 육체는 충분히 강했고 그라티아를 죽이더라도 그 힘을 이면에게 내어준 뒤 도망갈 수 있었다.

아니면 지금처럼 이면의 또 다른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도 가능했고.

하지만 미누아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연료 삼아 이면의 완벽한 초월화를 도왔다.

이제 미누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거다.

그녀는 웃었다.

[제 목적은 영생이 아닙니다. 이미 목적은 이루었고...]

“이루었고?”

[설령 제가 이 육체를 차지했더라도 절 죽였을 거 아닙니까.]

“음.”

부정 할 수 없군.

물론 죽이진 않고 영혼만 분리시켜서 ‘저장’에 담았을 테지만.

[비록 곁에 머물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어머니도 이해해 주시겠죠.]

에레는 자신과 영웅들을 억압하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생전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고 죽어서까지 영웅전에 묶여 있어야 했다.

그런 굴레를 결국 벗겨냈다.

더불어 그 굴레를 만들던 그라티아까지 그 자리에서 끌어내면서까지.

그녀로서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거다.

[후후… 속이 후련하군요. 김윤님이 그라티아의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축복을 해줬다는 건 뭔 소리야?”

[이겁니다.]

미누아는 기다란 백색의 장검을 내어주었다.

[ 메티아스의 장검 (레전드리******)

설명 ­

신성한 대륙 홀리에린의 절대적인 초월자, 메티아스의 힘이 담긴 장검입니다.

위대한 분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이 검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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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

요구 레벨 : 349

공격력 : 3599

성신(??) : 1

요구 스텟 : 김윤

특수 효과 : 타격 시 ‘김윤의 적’ 에게 700% 추가 피해, 타격 시 30% 확률로 '성신의 빛' 발동.

패시브 : 모든 스텟 100증가, 모든 상태 이상 저항력 90% 상승.

액티브 ­ 천벌 : 전방으로 2000%만큼의 광역 피해를 주고 맞은 적에게 낙뢰를 떨어트립니다. (쿨타임 60분)

액티브 ­ 성지(??) : 주위를 장악하는 구 형태의 영역을 설정합니다. (쿨타임 500분.)

성지 안에서 모든 능력치가 70% 하락하고 상대는 95% 하락합니다.(자신보다 높은 격을 가진 이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 천벌은 성신의 믿음에 따라 대미지가 증폭합니다.

* 천벌은 성신의 믿음에 따라 쿨타임이 감소합니다.]

새롭게 받은 장검.

역시 찬란한 빛과 마찬가지로 6성급에 스펙도 괴랄하다.

게다가 요구 조건은 스텟이나 계약이 아닌, 그냥 나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검.

이걸로 미누아가 얼마나 미친 짓을 한 건지 몸소 알 수 있었다.

“...메티아스?”

[저의 이름이라고 하네요.]

이면이, 아니 메티아스는 그리 말했다.

무기 설명을 읽느라 미쳐 확인하지 못했는데 미누아는 이미 사라진 모양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해해.”

그간 목표나 복수를 위해 날뛰는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미누아는 정말이지… 특이했다.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껍데기로 태어나 복수를 꿈꿨다.

자신의 어버이와도 같은 베덴디스와 루소니아를 죽이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죽은 영웅까지 되살려내 병정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마저 나락 끝까지 떨궈버렸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본인 스스로 야망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제아무리 내 보복이 두렵다고 해도 피하고자 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누아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또 남긴 말은?”

[...아! 어… 그라티아님은 곧 나온다고─]

“히이이익!!”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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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티아는 죽지 않았다.

다만 그라티아가 가지고 있던 모든 빛과 격, 초월의 힘은 전부 메티아스에게 전해졌다.

그라티아는 굉장히 우울해했으나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이해… 하고 싶은데 하기가 힘들구나...“

“왜 이해 못 해요?”

“히히, 엄마 까맣다!”

두 아이를 안고 있는 그라티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라티아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무사했다.

다만 그들에게 나누어준 빛조차 전부 사라졌지만.

그라티아의 자식, 미카와 히딘은 전과 같은 백색이 아닌 옅은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그녀는 메티아스와의 협의하에 과거 둥지가 있던 곳에 그대로 머무르기로 했다.

몬스터로 전락하진 않았으나 검게 물든 몸으로 세상에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라티아는 ‘마기’ 그 자체였으니까.

[우선… 모두를 살려야겠죠.]

메티아스는 그라티아의 도움을 받아 나무에 흡수된 모든 이들을 되살려냈다.

그에 따라 이면과 홀리에린을 연결하던 이그드라실은 생기를 잃고 완전히 바스라졌고, 새롭게 부활한 사람들은 새로운 신, 메티아스를 따랐다.

그렇게 더 이상 이면의 마수에게 침공을 받지 않는 홀리에린은 평화로워졌다.

더불어 메티아스는 죽은 영웅들을 살려냈는데…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다.

­

3년 후.

자박.

한 남자가 아무도 오지 않는 들판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 푸른 들판 위에 놓인 큰 석판과 작은 석판을 보았다.

“에레. 난 아직도 후회가 된다.”

“어째서 너의 뜻을 이해해 준 건지.”

“왜 둘 모두를 도우려 한 건지.”

되살아난 영웅, 베딘디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큰 석판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자 부스럭 거림이 들려왔다.

그의 뒤로 은발을 찰랑거리는 검은 옷차림의 루소니아가 다가와 풀석 옆에 앉았다.

“당신도 어지간하네요. 맨날 찾아오는 것도 힘들지 않아요?”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당연한 거 아니겠나.”

베덴디스는 허허 웃었지만 루소니아는 질린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그러곤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심장을 꿰뚫리고 그대로 뜯겨나가는 기분.

다시는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

“...”

그렇게 한참을 석판을 바라보다 루소니아가 말을 꺼냈다.

“무트라가 깨어났어요.”

“오! 그러면 다들 일어난 건가?

“네.”

“결혼은?”

“다음 주래요.”

“흐흐… 아즈라랑 크로아가 결혼을 하다니. 역시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군.”

“이미 충분히 오래 살았어요.”

루소니아는 그리 말하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평화로워지고 더 이상 남은 힘은 하나도 없지만 어쩐지 마음은 더 평온하다.

‘이게 에레가 바란 삶일까?’

어쩌면 우리는 에레의 뜻대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부속품도 병정도 아닌 평온한 삶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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