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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5화 〉 17. 설산의 사냥꾼 (4) (225/318)

〈 225화 〉 17. 설산의 사냥꾼 (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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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철채찍이 힘을 잃고 허무하게 풀렸다.

당황한 놈의 눈이 더 커질 공간도 없이 커진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채찍을 잡아당겨 놈의 팔에서 채찍을 가져왔다.

그리곤 바로 공간이동을 사용했다.

“이건 내가 유용하게 써줄게.”

“...! 머, 멈춰! 개자식아!”

당황하는 놈을 뒤로하고 우리의 몸은 사라졌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왠 동굴 앞이었다.

몇 없는 나무의 풀을 이용해 엉성하게 가려놓은 입구.

“뭘까?”

“도망자들의 아지트 같은데.”

하페루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하다.

사냥꾼이라면 이렇게 숨어살 이유가 없으니까.

[남은 행동력 (0 / 5)]

[‘절대 구속’이 부여됩니다!]

순간 몸의 전원이 꺼지듯 몸이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다윤이와 함께 벌러덩 눈밭에 눕혀져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페루아가 한심한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포션좀.”

“...”

[디버프 저항 포션을 사용합니다.]

딸기맛이 나는 포션을 마시니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만했다.

다만 행동력은 없는 터라 어딜 이동하거나 뭘 하기가 애매했다.

“우선 여기 들어가야 할 것 같네.”

하페루아는 턱짓으로 동굴을 가리켰다.

저기에 뭐가 있든 당장은 우리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지스리라는 사냥꾼이 언제 쫓아올지도 모르고.

나는 몸을 끙끙 일으켜 다윤이를 안고 일어났다.

몸을 움직이지 힘든 거지 근력 자체가 떨어진 건 아니라 드는 데는 별 문제 없었다.

하페루아는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 주나 싶더니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개방 포션 좀 줘.”

“포션? 왜?”

포인트는 언제든 끌어다 쓸 수 있지만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월드 어드벤처와 달리 이 게임에서의 ‘재화’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포인트만 있다면 아무리 강한 초월자 수십도 이길 수 있을 정도.

그런데 그러한 능력을 마구잡이로 쓴다면 게임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관리자가 우리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어드벤처의 관리자를 생각하면 안 된다.

게임에 존재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그녀와 달리, 이 관리자는 직접 게임을 보고 언제든 제제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관리자는 신적인 존재가 절대 아니다.

자신과 같은 수준의 초월자들을 대상으로 게임을 진행하고 있고, 엄밀히 따지면 게임 내의 아이템을 이용한 것이기에 극단적으로 제제를 내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차원 유랑자.’

이곳에 멋대로 참여하는 것부터 불법인 우리가 버그를 쓰듯 포인트를 미친 듯이 뽑아낸다?

이건 우리를 그냥 죽여주세요~ 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공격’과 ‘방어’ 같은 중요한 스텟은 일정량만 찍어두어 우리가 밸런스를 해칠 생각이 없다는 걸 피력했다.

‘...그래도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대로 그냥 가려두면 금방 들켜. 우리가 쫓아온 녀석은 분명 추적 관련 능력이 있었을 거야.”

“음… 위장용 아이템을 사서 가려두는 건?”

분명 상점 중에는 그런 아이템이 몇 개 있었다.

하페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이템 정도로는 못 막아. 우리가 그냥 걸어온 것도 아니잖아?”

맞다.

많지는 않지만 추적 분산용 아이템을 몇 개 둘렀는데도 걸렸으니까.

나는 남은 포인트로 능력 개방 포션을 사서 하페루아에게 넘겨주었다.

「▼맹약 」

포션을 떨군 그녀의 손이 동굴 입구를 그었다.

스륵.

어느새 동굴이 있던 자리는 새햐얀 언덕으로 변했다.

“뭘 한 거야?”

“뭘 하긴. 이 근방의 공간과 계약했지.”

하페루아의 이마에 또 다른 문양이 하나 새겨졌다.

나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지만 그래도 마냥 작지만은 않았다.

하페루아의 맹약은 생명체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격과 능력만 된다면 ‘공간’이나 ‘시간’같은 법칙과도 계약이 가능하다.

말도 안 된다고 볼 수 있지만 애초에 이 세상은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다.

“계약 대가로 뭘 줬는데?”

“안 줬어.”

“응?”

동굴로 들어온 하페루아는 뚜벅뚜벅 안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공간 관련 초월자한테 지어둔 빚이 있거든. 대가는 녀석이 줄 거야.”

“그게 가능해?”

“안될 거 없지.”

여기는 얽혀있는 게 많거든.

하페루아는 후후 웃었다.

과거에 안 좋은 기억만 있나 싶었지만 마냥 그런 건 아닌가 보다.

­

“기네.”

“길어.”

동굴 안쪽은 생각보다 길었다.

하페루아는 제 몸 상태가 아니고 나는 구속 효과에 골골대고 있다.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동굴은 꽤나 길었다.

“이 정도면 누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네.”

거의 터널과 맞먹을 정도의 동굴이다.

필시 관리자나 다른 도망자들이 파 놓은 인위적인 동굴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조금씩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

­!!!

우리를 눈치챈 듯 저 멀리서 들리는 소음.

그 흔한 청각 강화도 없어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다만 우리를 경계하는 것은 확실했다.

“김윤.”

“음.”

패앵─ 소리와 함께 은빛의 화살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화살은 뒤로 날아가다 그대로 유턴해 다시 내 머리를 노렸다.

‘유도 화살이라…’

나는 손을 뒤로 뻗어 화살을 잡았다.

“...너.”

“함부로 쏘면 안 되지.”

꽤나 날카롭게 벼린 화살.

나는 그 화살을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읏!”

어둠 속의 도망자는 본능적으로 두 팔을 교차 시켜 머리를 보호했다.

화살은 그의 왼쪽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처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보통 화살이 아닌 듯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 사이 우리는 남자의 앞에 다가갔다.

“뭣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다, 다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 뒷 걸음질 친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내뱉었다.

“제발, 아이들만은…”

“비켜! 주환!”

주환?

전혀 들어볼 일이 없을 거 같던 한국적인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석제 골램을 탄 한 여자가 나와 주환이라는 남자가 있던 자리에 발길질을 내질렀다.

꽈아아아앙!!

동굴 내부의 먼지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비키라는 말만 하고 아군까지 공격해버린 여자를 보고 의아함이 들었으나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도망자 전용 / 고대 석제 골렘은 같은 도망자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도망자, 이주환이 받은 데미지 만큼 석제 골렘이 그 피해를 대신 입습니다.]

콰앙!

골렘의 어깨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발길질에 움푹 파였다.

골렘은 균형을 잠시 잡지 못하고 기우뚱 거렸으나 곧바로 제 위치를 되찾았다.

같은 도망자를 공격할 수 없다는 ‘규칙’을 이용한 나름 쓸만했던 공격.

하지만 골렘 위에 탄 여자, 비샨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간단히 피하다니.’

도망자 세력 중 가장 크기가 큰 세력, ‘러너’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구매한 골렘.

자신들을 세력에 합류시켜줄 수 없다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데 도움은 주겠다며 값싼 가격에 구매한 골렘이었다.

골렘의 방어력과 이동 속도는 하위급 사냥꾼과 맞먹을 정도.

때문에 시간을 끌며 행동력만 잘 소진시킨다면 ‘절대 구속’을 통해 묶어 둘 수 있었다.

만일 그리된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피신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으니까.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골렘의 발길질을 피했다.

그것도 한 명을 안고, 다른 한 명의 손을 잡은 채로.

‘......’

비샨이 잡은 골렘의 손잡이가 벌벌 떨렸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이곳에 떨어지고 수십 번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비샨. 우리는 이미 틀렸어… 차라리 빌어서 애들이라도…

귀에 꽂힌 통신기기로 주환의 말이 들려온다.

애들이라도 살리자고?

“지랄하지마! 주환! 우리가 사라지면 애들은 어떻게 살라고!”

화가 났다.

통신기기로 말해야 하는 걸 버럭 입 밖으로 내질렀다.

사냥꾼의 로프를 팔뚝에 찬 남자는 공격을 멈추고 우리들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는 그 행동이 더 두려웠다.

마치 자신들을 다 잡은 물고기 마냥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로운 개미들을 관찰하는 것 같아서.

주환의 피가 더욱 흐른다.

─...하지만 비샨, 어차피 우리는 죽어. 알잖아.

그는 눈앞에 세 사람을 보았다.

자신들은 한없이 약하지만 알 수 있다.

오히려 약하기 때문에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다른 둘과 달리 저 남자는 진짜라고.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이런 골렘 따위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괴물이 우리를 잡아먹으러 온 것이다.

비샨은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의 손이 손잡이를 더욱 움켜쥐었다.

고민했다.

차라리 죽더라도 저들에게 조금의 피해라도 입히고 죽을지.

개죽음 일지도 모른다.

아니, 개죽음이 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비샨의 솔직한 심정은 개죽음이라고 해도 조금이나마 발버둥 치고 싶었다.

‘하지만…’

비샨은 잘 안다.

사냥꾼의 심기를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그 여파는 자신과 주환뿐만 아니라 더 안쪽에 있는 다른 어린 도망자들에게도 여파가 갈 것이다.

“...제발.”

[도망자 전용 / 고대 석제 골렘이 해제됩니다.]

“제발 아이들만은 살려주세요. 뭐든 하겠습니다.”

“비샨...”

“...네 말이 맞아.”

...이게 맞는 거겠지.

무릎을 꿇은 둘의 위로 난감한 표정의 남자와 고개를 젓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오래 박혀 살아서 그런가. 구분도 못하…’

남자는 뭐라 중얼거렸지만 비샨은 그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

“이만 자라.”

여자의 손이 우리를 긋자 그대로 둘의 눈이 감겼다.

­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었다.

“...??”

비샨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더듬더듬 만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 이상이 없는 몸.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생각과 감각을 거부하기 위해 서둘러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러곤 낡은 쇠문을 열었을 때.

“아.”

“깨어났네.”

작은 아이 하나를 안은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주위로 벗어날 수 없는 듯 쉴터의 아이 전부가 있었다.

비샨은 절망했다.

‘양식업자’가 찾아왔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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