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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화 〉 17. 설산의 사냥꾼 (6) (227/318)

〈 227화 〉 17. 설산의 사냥꾼 (6)

* * *

­

“...”

끼익…

쿵!

“...!”

“뭘 그리 놀래.”

“그, 그러게요.”

비샨과 김윤은 빈방에 들어와 앉았다.

쉴터는 오래되어 있는 것도 낡아 부서지기 직전이었지만 공간 하나만큼은 넓었다.

김윤은 탁자에 잔뜩 놓인 과자봉지를 보았다.

이곳에 처음 올 때 아이들에게 나누어준 식량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어치운 흔적이 가득했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지?”

“...5년 됐어요.”

“오래 살았네.”

5년이라.

생각보다 길었다.

물론 어드벤처에서의 시간에 비하면 긴 시간까지는 아니지만 ‘생존’을 위협받으며 5년이나 사는 건 굉장히 힘이 들었을 거다.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까지.

“...살려고 노력하니 살아지긴 하더라고요.”

“고향은 어디지? 이주환이랑 같은 곳은 아닐 텐데.”

이름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자의 육체는 지구인과는 사뭇 달랐다.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한 차원 높은 초월의 시각으로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이 묘하게 다르다고.

“아… ‘에티널’이라는 행성인데… 그 주환이랑 비슷하더라고요.”

“어떤 게?”

“생김새나 문화 같은 거요. 전 처음에 같은 행성 사람인 줄 알았죠.”

비샨은 자신의 이야기를 대충 설명했다.

오래전 대학 수업을 들으러 가던 도중 우연찮게 보았던 소설의 작가에게 메시지가 온 것을 확인했다.

소설이 게임화가 진행되니 한번 찾아오라고.

당시 비샨은 별로 관심도 없던 소설이었지만 구경이나 해볼 겸 링크를 클릭했다.

그리곤 정신을 차리니 여기였다.

“함부로 링크를 누르면 안 되지.”

“...그 소설 페이지 링크랑 똑같더라고요. 게다가 꽤 유명한 작가였고요…”

댓글 잘 못 써도 툭하면 빙의되는 게 현실인데.

‘뭐, 우리보단 나으려나.’

월드 어드벤처는 게임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냥 전부 전이시켰으니까.

“시스템창과 게임 같은 인터페이스, 게다가 설산까지. 전부 소설 속에서 봤던 것과 똑같더라고요.”

설산에 떨어진 비샨은 극심한 추위에 몸을 떨며 살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왜?”

“...전 5화까지 밖에 안 봤으니까요.”

소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아는 친구의 소개로 잠깐 봤던 터라 그다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자신처럼 설산을 떠도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게 이주환이었어요. 걔는 댓글을 썼다 그랬나…?”

비샨은 생각을 떠올리듯 고개를 까닥였다.

전개가 틀어진 부분에 시원하게 5700자를 박은 주환은 댓글을 입력하자마자 이곳에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많이 겁먹고 제발 돌려보내달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주환이도 방법을 모른다고 했고. 결국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만난 둘은 설산을 떠돌았다.

가끔 사냥꾼을 만나면 죽음을 코앞에 두고 간신히 도망쳤다.

처음에는 사냥꾼을 보고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주환은 기겁하며 비샨을 말렸다고 한다.

그 뒤로 힘겹게 도망치다 러너라는 도망자 무리를 만났다.

“기뻤어요. 드디어 정착할 곳을 찾나 싶어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이미 아득히 멀어진 상황.

비샨은 죽을 걱정 없이, 먹고 살 걱정 없이 따듯하게 생활할 공간이 간절했다.

하지만.

“거절했구나.”

“네…”

그들은 둘을 받지 않았다.

약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러너라는 집단은 단순히 도망과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곳이 아니더라고요. 그들은 목표가 있었어요.”

‘도망자’라는 신분임에도 사냥꾼을 이겨낼려는 자들.

그런 그들에게 약한 둘은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물었죠. 약하면 스텟을 올리면 되는 게 아닌가. 어째서 우리를 매몰차게 구는 건가. 그리 물었더니 러너의 부단장이란 사람이 말하더라고요.”

‘내가 말을 잘못했네.’

‘네?’

‘약하다 라는건 너희들의 태도나 앞으로의 미래를 말하는 게 아니야. 너희는 격이 없어. 차원을 넘을 만한 격이.’

개미가 강해져야 개미일 뿐이지.

“...”

“분했어요. 비참했고. 그런데 더 비참한 건…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우리의 적이 아님에 감사해 해야 했다는 거예요.”

만일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도망자가 아닌 사냥꾼이라면.

그랬다면 뭐라 반박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죽거나 장난감처럼 이용당했을 테니까.

투욱.

비샨은 낙서가 가득한 벽면에 몸을 기댔다.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눈앞에 있는 건 그토록 원망하던 사냥꾼인데.

어째서 이리도 편하게 말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래서인지 우리한테 일을 하나 맡기더군요.”

정 그렇게 살고 싶다면 일을 하라고요.

“그때부터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이 장소도 러너 쪽에서 마련해 준거고 지금 있는 아이들의 절반 이상은 그쪽에서 온 거예요.”

“떠념겼구만.”

“......네. 그렇지만 그들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않아요. 정말 나빴다면 아이들을 맡기는 게 아닌 죽이거나 병사처럼 이용했겠죠.”

그렇게 씁쓸한 마음에 몸을 웅크렸다.

...배가 고팠다.

“러너 쪽에서의 지원은 가끔씩 왔어요. 다만 아이들을 맡겨두고 많은 식량이나 포인트를 내어주지 않았죠. 아마도 자립하기를 바랬나 봐요.”

절대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점차 많아졌어요. 러너 쪽에서 건너오든 아니면 정말 우연찮게 저나 주환이 데려오든, 입은 많아지는데 포인트는 항상 부족했죠.”

“...”

“가끔씩 받는 퀘스트로 포인트를 간간이 벌긴 하지만 그게 운영자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나 봐요.”

그녀는 더더욱 몸을 웅크렸다.

배골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곳에 5년 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포인트를 쓸 수 없었지만 비샨과 주환의 스텟은 아무것도 없는 도망자보다 조금 높았다.

기껏해야 2~3 정도의 수준.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평범한 인간은 아닌지라 한 달을 굶거나 일주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식사를 한지 얼마나 지났지?”

“...글쎄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렇군.”

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샨은 후련한 듯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토해냈지만 아직도 얼굴에 불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동정을 바래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그런 불쌍한 이야기 따위로 넘어갈 사냥꾼들이 아니기에.

그리고 그건 김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쌍하고 암울한 사연은 동정할 시간은 충분히 지났다.

과거에는 분명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괴로워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럼.”

김윤은 동정해 주기로 했다.

“식사나 좀 하지.”

“...네?”

그녀는 적이 아닌 같은 도망자니까.

나는 웃으며 아공간을 열자 무수히 많은 당근 꼬치가 탁자로 떨어졌다.

­

“놓친 건가.”

쯧.

사냥꾼 무리의 대장, 믹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보내놨더니 차원 유랑자 하나 이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다니.

­대장. 그냥 차원 유랑자가 아니야. 러너의 고위 간부가 분명해.

“간부든 아니든 졌다는 게 중요하지.

­...면목이 없네.

지스리의 통신을 들은 믹스는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잘 됐다.

하찮은 미물 따위 한테 내가 선택한 녀석들이 죽었다면 자신의 선구안을 의심했을 거다.

개미 따위에게 질 용을 골랐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상대 역시 용이었다.

그것도 하천을 기어 다니는 이무기로 천상의 용을 이긴 존재.

“재밌군.”

요즘 너무 잠잠하다 싶었다.

다른 사냥꾼 쪽도 그렇고 러너 놈들도 준비만 하고 있을 뿐, 전면에 나서는 일은 그리 없었다.

­철채찍을 뺏겼는데 어떡하지?

“...멍청한 놈.”

­아, 아니. 그걸 그냥 회피해버렸다니까? 완전 미친놈이야. 이속 스텟을 몇 개를 찍은 건지…

“초월자의 힘 일 수도 있겠지.”

뭐가 됐든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건 분명하다.

이것이 러너의 선전포고인지.

다른 세력의 수작인지.

­

“뭔 당근이 이리 많아?”

“레빗이 가득 채워둔 모양인데.”

하페루아는 나와 비샨이 있는 곳으로 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비샨은 흠칫 놀라더니 당근 꼬치를 입으로 계속 가져갔다.

“맛있어?”

“예? 예, 맛있어요…”

“천천히 먹어. 안 뺏어가니까.”

내가 볼 땐 그다지 맛있어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억지로라도 먹는 것 같다.

원래는 산해진미가 아공간 속에 가득했다.

그런데 레빗이 뭔 난리를 친 건지 지금은 당근 관련 음식밖에 없었다.

켁, 켁!

비샨은 급하게 먹느라 체했는지 탁자 옆에 있던 주황색 물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저건 당근을 갈아만든 쉐이크였던가.

“...하하…”

비샨은 살짝 망설이더니 그대로 들이켜 숨을 골랐다.

“많이 배고팠나 보네.”

“어… 네. 원래 신경 안쓰면 어거지로 버틸 수 있었는데 한번 먹기 시작하니 체감이 확 되더라고요.”

“그럴 수 있지.”

초월에 근접한 나나 애초에 초월자인 하페루아는 육체적인 소모 값이 없다.

그저 존재하는 ‘격’만으로도 자가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니까.

하지만 비샨은 아주 조금 강해진 일반인에 불과했다.

콜트의 환각으로 따지자면 F급 헌터와 비슷하려나.

“그… 주환이는요?”

“곧 깨어날 거야. 아마 지금쯤…”

덜컹!

“비샨?”

“주환! 깨어났구나.”

꼬치 두 개를 양손에 든 비샨은 적색이 감도는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주환을 와락 껴안았다.

그에 주환은 손을 들고 어버버 거리다 이내같이 그녀를 껴안았다.

‘5년이라. 뭐 그럴만하지.’

5년을 생사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갔는데 저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한 거겠지.

─...멍청이.

‘뭐?’

─됐다~

왜 저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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