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17. 설산의 사냥꾼 (10)
* * *
처음부터 사냥꾼과 싸우려던 건 아니었다.
윤 씨의 말대로 퀘스트를 깨며 포인트와 보상을 얻어나갔다.
초월자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월─」
꿈속에서 봤던 기억.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느껴지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만은 않은 감각.
좀만 더 가까이 간다면.
그리한다면 잡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수색! 아기 예티 4마리를 구하자!를 완료했습니다!]
[10 Point, 예티의 털 모자를 얻었습니다.]
[남은 행동력 3 / 5]
“으음…”
아기자기한 새햐얀 털 모자를 쓴 다윤은 고민했다.
분명 퀘스트를 깨면 보람이 있고 나름 포인트도 쏠쏠했다.
도중에 사용해야 하는 아이템이나 소모품들은 전부 윤 씨가 마련해 줬다.
덕분에 모인 포인트는 전부스텟에만 투자할 수 있었다.
현재 스텟은 방어 4, 공격 2.
이아에게 들은 바로는 이정도만 돼도 상위권의 도망자라고 할 수 있었다.
퀘스트를 통해 얻은 보물 상자에서 ‘10 이하 스텟 선택권 4개’를 얻었기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한계가 찾아왔다.
‘퀘스트가 없어…’
더 이상 남은 퀘스트가 없다.
낮에는 비교적 쉬운 퀘스트나 안전한 퀘스트를 위주로 진행했고,
밤에는 다소 위험한 퀘스트나 야생동물 사냥에 나섰다.
가끔씩 사냥꾼과 마주치긴 했으나 그들은 다른 볼일에 바쁘다는 듯 다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정확히는 더 맛있는 먹이를 쫓기 위해 포기한 것이었다.
물론 잡기 쉬운 사냥감이라면 겸사겸사 잡았겠지만 상대는 온갖 도망용 아이템으로 무장한 도망자.
꽤나 규모가 있는 사냥꾼이라면 모를까, 스텟과 초월의 힘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사냥꾼들로서는 오히려 잡는데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했다.
다윤 역시 몇 주를 다니다 눈치챈 사실이기에 가끔은 서로의 위치가 뻔히 보이는데도 당당히 지나치기도 했다.
‘...윤 씨를 쫓는 이들일 텐데.’
시스템은 더 이상 다윤에게 퀘스트를 내어주지 않았다.
마치 그녀에게서 볼만한 이야기는 전부다 보았다는 듯이.
다윤은 월광검을 꽈악 쥐었다.
‘해볼까…?’
다윤은 저 멀리 소규모의 사냥꾼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윤 씨와 하페루아의 특징을 언급하며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들과의 차이는 그리 나지 않는다.
정확히는 서로가 약해진 지금.
스릉.
다윤이 좀 더 강했다.
삐릭─
■ 보조! 동료를 돕자!
┏ 내용: 당신은 이 설산에서 가장 유명해진 도망자의 동료입니다! 당신의 동료를 도우세요!
┣ 목적: 도망자, ‘김윤’외 한 명을 쫓는 ‘부락’급 사냥꾼 무리 무력화.
┣ 보상: 300 Point, 설산의 영향력 0.5%
┗ 행동력: 2 소모 / 남은 행동력 (3 / 5)
■ ※ 불펌 금지!
역시 시스템은 내 행동과 인과관계를 토대로 어울리는 퀘스트를 내주었다.
‘처치가 아니고 무력화인가.’
개인적으로는 다행이었다.
아무리 다윤이 좀 더 강하다더라도 그것은 개인전.
즉 1 대 1의 상황.
다수로 간다면 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1 대 1로 싸우자니 그들이 그리 나서줄 것 같진 않다.
차원을 넘는 초월자라 하면 본디 수백, 많게는 수천 년을 살아온 괴물들.
그런 자들이 아무리 오만하다고 해도 어설픈 수작 당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멍청할 수가 없었다.
“...보름달.”
푸른색과 보라색의 별들이 운항하는 밤.
회색의 구름들이 보름달을 가리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이곳은 어드벤처가 아니다.
제멋대로 낮밤을 뒤바꾸거나 강제로 보름달을 띄우는 행위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구름을 옮기는 것 정도라면.
「▼▼월─ 」
다윤의 손끝에 쥐어진 월광검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손끝에서 뻗어 나온 마력은 검 끝으로 향한다.
스르륵…
구름이 서서히 걷힌다.
동그랗고 서늘한 보름달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다윤은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아.”
다르다.
분명 힘은 더 줄어들었고, 몸을 가득 채운 마력은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사라졌지만.
티각.
「▼▼월광」
느껴진다.
‘멀지 않은 곳에 이 힘의 주인이 살고 있다고.’
노란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별을 바라본 다윤은 월광의 검을 높이 치켜올렸다.
월광식(月光?)구월(九月) ─ 구광참(九光?).
아홉 개의 빛이 사냥꾼 무리를 그대로 베어냈다.
“...해서. 셋은 잡았는데 나머지 둘은 엄청 쎄 더라고요.”
하핳.
다윤은 웃으며 날아오는 거대한 도끼를 막아냈다.
비샨과 주환은 입을 떠억 벌린 체 등 뒤에 숨었다.
“...저, 괜찮으세요?”
“네?”
콰앙!!
대포가 쏘아지듯 날아온 또 다른 도끼가 월광검과 충돌했다.
티이이잉~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울려 퍼지고 뒤에 서있던 둘은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귀가 얼얼한 듯 비샨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피가 엄청나시는데.”
“아, 그쵸.”
다윤은 다친 곳 하나 없는 사람처럼 싸우고 있었으나, 실은 이미 몸의 군데군데가 멍이 들고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적에 의한 외상은 아니었다.
내상이었다.
그것도 자기 자신에 의한 피해.
‘윤 씨를 뭐라 할 처치가 아니네.’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무턱대고 힘을 끌어다 기술을 쓰다니.
이러면 최강자의 기술을 쓰고 쓰러지는 윤 씨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딱 그꼴이네.’
마음에 안 드는 악마가 해주었던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말.
다윤은 피식 웃으며 행동력 회복 포션과 장거리 이동 아이템을 나누어 주었다.
“가요.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위험하니 같이 가죠.”
“맞아요. 그 다윤 씨도 행동력 바닥난 거 아니에요?”
스텟을 올리지 않은 약한 사냥꾼은 잡아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더군다나 지금껏 계속 싸운 탓에 행동력은 물론 행동력 회복 포션까지 전부 사용한 상황.
[남은 행동력 2 / 5]
이대로 가다가는 ‘절대 구속’ 이후의 죽음이 명확했다.
다윤은 고개를 돌렸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모습.
그런 와중에 또 아이템은 잘 챙긴 그들을 향해 다윤은 웃어줬다.
카앙─!!
“읏!”
“설마요. 전 윤 씨 놔두고 멋대로 떠날 사람이 아니에요.”
고작 스텟 총합 6으로도 시작부터 기본 합계가 8이 넘는 사냥꾼을 이길 수 있는 이유.
[...포션을 사용합니다.]
[보급형 육체 강화 포션을...]
[보급형 한계 돌파! 포션을...]
태생부터 부족한 행동력으로 무려 1시간을 넘게 치열하게 공방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
[행동력 과다 증폭 포션을...]
■ 스텟 현황
┏ 공격: 2단계 (+6)
┣ 방어: 4단계 (+8)
┣ 이속: 0단계 (+4)
┗ 행동력: 남은 행동력 (9 / 5) ─ (제한 시간 4분 59초...)
■ ※ 불펌 금지!
“아, 완전히 가진 마요.”
월광의 검이 전보다 선명한 빛을 내뿜었다.
“나 쓰러지면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네?”
=하… 어딨는 거야.
토잉은 설산을 누볐다.
데구르르르…
정확히는 굴렀다.
설산의 유명 인사.
설산의 황금 고블린.
설산의 움직이는 보물 상자.
김윤과 하페루아를 찾기 위해.
=으으… 그때 연락처라도 구해뒀어야 했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어버버 거리다 그냥 보내준 게 한이었다.
만일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다면 결코 그냥 보내지 않았으리라.
=우웅…
데구르르르…
얼마나 굴렀을까.
어느새 토잉은 거대한 언덕만 한 눈덩이로 변했다.
=에잇!
푸파파파파!!
눈덩이를 털어낸 토잉은 다시 본래의 조그마한 흰색 털 뭉치로 변했다.
토잉은 다시 구르며 생각했다.
바벨 님은 그들을 데려오라 말씀하셨다.
그들이라면 악독한 사냥꾼 놈들을 잡을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어줄 것이라고.
아! 물론 드레드님은 예외다.
그분은 불쌍한 차원 유랑자들을 잡지 않으시니까.
푸파파파…?
=...어?
“?”
“토잉?”
또다시 차오른 눈덩이를 걷어낸 토잉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앞에는 그토록 찾고자 했던 두 명이 선명히 보였다.
=와악!
토옹~
토잉은 그대로 점프 뛰어 김윤의 품에 안겼다.
“뭐야.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너희 집은 저 반대편 아니었어?”
=너희들을 찾고 있었어!
“우리?”
김윤이 그리 묻자 토잉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라고도 하기 애매할 정도로 목이 없었지만.
=도망자들을 위한 집단이 있어. 러너라고. 알지?
“알지. 러너.”
=그래! 그 수장인 바벨 님께서 너희가 그곳에 오시길 바라셔. 같이 가줄래?
“그래.”
=...진짜?
“응.”
토잉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쉽게 수락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비록 토잉이 그들을 집에 안내해 주긴 했으나 그건 고작 하루밖에 안되는 인연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설산의 온갖 사냥꾼, 도망자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토잉을 따라간다고 하는 것이 이상했다.
“뭐해. 가자.”
=어, 어? 어…
일단 가보면 알겠지.
토잉은 품에서 내려와 이들을 안내했다.
러너.
도망자들의 최대 집단이자 여태껏 진행된 게임 중 유일하게 도망자 신분으로 ‘군단’을 이룬 무리다.
“생각보다 크네.”
=당연해! 바벨 님께서 엄청 신경 썼는걸.
이 ‘탑’을 다 합치면 스텟 30개는 나올걸?
토잉은 통통 튀며 마공학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무려 199층까지 있는 탑.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보안을 위해서 일부로 많은 층을 지었다 한다.
띵.
[199층입니다.]
문이 열리고 공간이 꽤나 넓은 거대한 대관이 눈이 보였다. 검붉은 연기를 내뿜는 보랏빛 왕좌 위, 거체의 남자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왔구나 토잉. 그리고 유망주…?]
“오랜만이네. 바벨.”
하페루아는 싱긋 웃으며 가려진 손목을 드러냈다.
얇고 하얀 손목 위에는 흑백의 팔찌가 선명히 걸려있었다.
바벨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하페루아! 언제부터 성녀의 사냥개가 된거냐!]
콰아아아아!!!
강대한 기세와 함께 쏘아진 보랏빛 마력이 우리를 덮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