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3화 〉 18. 다른 세계의 마왕 (2) (233/318)

〈 233화 〉 18. 다른 세계의 마왕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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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을 역으로 제압한 뒤 나타난 메세지들.

[러너 소속, ‘바벨’(상태이상)을 퇴출하시겠습니까?]

[Yes / Yes.]

그중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이는 시스템 창이 나의 선택을 강요했다.

[관리자가 기대합니다!]

‘...’

선택지가 없는 선택지.

초월자들을 위한 게임이니만큼 관리자의 적극적인 개입에 자제되고 있지만.

[관리자가 얼른 선택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과한 능력을 사용한 대가인 듯하다.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경고.’

“할게.”

[Yes]

[러너 소속, ‘바벨’이 추방당합니다.]

화려한 빛과 함께 바벨은 설산 어딘가로 날아갔다.

­

“푸하!”

바벨은 새햐얀 눈밭에서 눈을 떴다.

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심장 부근에 손을 대었다.

아무런 상처 없이 멀쩡한 가슴.

허나 바벨은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런 빌어먹을…”

「▼▼층탑 」

가슴에 새겨진 칠흑의 문양.

용사에게 걸려고 했던 ‘주종의 저주’가 자신에게 걸려있었다.

그것도 지금의 자신으로선 절대 풀 수 없을 정도 강력한.

“제길. 성녀의 개 따위에게…”

[관리자가 웃습니다.]

“벤시…!”

망할 관리자.

성녀, 아르테이라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이지경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 중 하나.

“닥쳐라.”

[관리자가 더 크게 웃습니다!]

[관리자가 더더 크게 웃습니다!!]

[관리자가 더더더 크게 웃습니다!!!]

초월을 하고 스스로 차원을 넘을 수 있음에도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이유.

저 망할 성녀를 찢어 죽일 수 없는 이유.

자신이 여태껏 사냥꾼이 아닌 도망자로서 쫓겨야 하는 이유.

초월자, 벤시.

관리자가 그를 영원히 이 게임 속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관리자 권한과 초월의 힘으로.

[관리자가 깔깔 웃다 뒤로 넘어집니다.]

“...”

[관리자가 머쓱한 표정을 감추며 자세를 바로잡습니다.]

꽈악 쥔 주먹에서 보랏빛의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언제까지.”

[관리자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언제까지 날 가지고 놀 셈이냐. 장난감 생활은 이쯤이면 되지 않았나?”

분명 자신이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벤시와 자신은 협력 관계였다.

바벨은 힘의 수복과 초월의 힘의 완정화를,

벤시는 나날이 파리만 날리는 이 게임을 살리기 원했다.

그녀는 단순히 사냥감에 불과한 도망자들에게 변수를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를 이용했다.

바벨은 완전한 초월자가 아니지만 힘 자체는 3등위 이상이었다.

제아무리 사냥꾼이라 할지라도 관리자의 지원만 있다면 전투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설산의 사냥꾼은 강대한 ‘보스 NPC’를 내세우며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바벨의 조언대로 기존의 무능력한 차원 유랑자를 데려오는 게 아닌, 처음부터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이들을 데려왔다.

전투에 능하거나 특수한 종족.

혹은 반 초월자까지는 아니지만 신이라 불리는 자들까지.

만일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 재능이나 장비를 지원해 주는 식으로.

도망자들은 평범한 NPC에서 벗어나 사냥꾼의 흥미를 돋우는 특별한 사냥감이 되었다.

도망자가 특별해진 것만으로 차원이 달라진 게임은 정보 관련 최대 행성인 ‘디드락’에 자주 언급이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래, 모든 게 완벽했다.

아르테이라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말이다.

“너의 부탁대로 설산의 사냥꾼을 100위 안쪽까지 올리지 않았나. 더 이상 뭔가가 필요한가?”

[히히.]

푸른색 화면 너머의 바벨을 바라본 벤시는 귀여운 고양이 문양이 박힌 보랏빛 모자를 고쳐 쓰며 팝콘은 우물우물 씹었다.

[관리자는 당신보다는 아르테이라양의 계약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그녀보다 내가 먼저 계약을 했다. 내 공을 전부 잊은 거냐.”

[관리자는 당신의 위치를 상기시키라고 말합니다.]

위치.

바벨은 차원을 넘을 수 없는 초월자. NPC.

반면 아르테이라는 직접 ‘유저’의 신분으로 이곳을 찾아온 초월자다.

둘의 신분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차이가 났다.

애초부터 벤시를 너무 믿은 것이 패인이었다.

불완전함은 언제든 완전함에 휘말릴 수 있는 법인데.

“...러너에서는 왜 추방시킨 거냐. 이제 나보다 그 연놈들이 더 잘 할 거라 생각한 거냐?”

[관리자는 깜짝 놀랍니다!]

[관리자는 자신이 추방시킨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용사놈이 자의로 했다. 이거냐? 아니면 아르테이라의 명령이었나?”

[관리자는 말할 수 없지만 자신은 절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대체 뭘 하려는 건가.’

바벨은 혀를 차며 어디론가 향했다.

­

새로운 러너의 수장이 된 순간.

그리고 러너에서 바벨이 추방 당한 순간.

러너에 있는 모든 도망자 들은 그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그들은 199층으로 급히 올라왔다.

본래라면 특별히 바벨이 부르는 일이 아니라면 절대 올라올 일이 없는 곳이겠다만, 그 보스가 사라진 지금.

그들은 확인해야만 했다.

자신을 지켜줄 새로운 왕인지,

아니면 천천히 자신들을 잡아먹을 사냥꾼인지.

띵~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읏…”

“바벨 님이…”

“바벨 님을 어찌한 겁니까!”

대충 30명 정도 돼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 소음을 내뱉는다.

도망자들의 최대 집단인 만큼 고작 이 정도 인원이 다일리가 없다.

[현재 인원 347 / 999]

오.

딱 알맞은 시스템 문구가 떴다.

340명이라.

생각보다 많은 것 같으면서도 적다.

설산은 제법 넓고 사냥꾼도 대략 300~400명을 넘는다고 들었으니까.

아마도 그보다 훨씬 많을 도망자들은 비샨과 주환이 그랬듯이 설산 곳곳에 흩어져있겠지.

나는 그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가지각색의 인종, 종족, 성별, 마력.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른 도망자들이 모여있다.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여기가 우주 단위, 차원 단위의 게임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물론 어드벤처에서도 특이한 종족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인간이었고 유저들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전부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어드벤처 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종족도 종종 보였다.

불안감에 떨고 있는 강아지 수인.

우리와 무리의 전투력을 계산하고 있는 빅데이터 로봇.

온몸에 화가 많은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붉은색 피부의 인간.

9개의 촉수에 각각 무기를 달고 있는 오징어까지.

참 별 종족이 다 있다.

서로에 대한 파악이 끝나갈 무렵 무리의 대표처럼 보이는 한 여자가 나왔다.

푸른색 머리칼에 등 뒤로는 둥근 아기 천사 날개를 달고 있는.

“당신은 누구죠? 사냥꾼인가요?”

최대한 덤덤히, 그리고 평온한 말투로 말하지만 그녀 역시 상당한 불안감에 잠겨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 차원 유랑자 / 오르덴

┏ 소속: 러너

┣ 직업: 도망자

┣ 포인트: 70 Point

┣ 남은 행동력: 4/ 5 (다음 충전까지 23시간 22분…)

┗ 위험 수치: ●○○○○○ (사냥꾼들은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나서지만 않는다면 표적이 될 일이 없을 겁니다.)

■ ※ 불펌 금지!

“오르덴.”

“어떻게 제 이름을...”

“나오던데.”

수장의 권한으로 보니 그 아래에 있는 일원들의 정보가 한눈에 보였다.

간단한 정보 외에도 창을 넘기기 더 자세한 정보가 나왔다.

오르덴.

행성, 아크리아의 마지막으로 남은 천사이자 3년 전 이곳에 떨어진 가련한 도망자.

사냥꾼에게 잡혀 능욕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바벨이 그녀를 구해줬다고 한다.

“어째서?”

“네?”

“바벨은 너를 싫어할 텐데.”

바벨은 빛과 관련된 모든 걸 싫어한다.

마기를 몸에 담은 나조차 여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죽이려 들 정도.

오르덴은 용사를 넘어 천사이니 마왕인 바벨의 확실한 적이 분명했다.

한데 어찌 바벨이 그녀를 구해줬을까.

오르덴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럴 리가요! 바벨 님은 종족이나 소속 때문에 도망자들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맞습니다! 바벨 님은 저희를 구해줬습니다!”

“맞아요! 그러니 바벨 님을 돌려주세요!”

다시 소란스러워진 199층.

오르덴은 고개를 돌리더니 손을 휘저으며 제발 침착할 것을 부탁했다.

상대가 또 다른 구원자인지 악인인지 모르니.

그녀의 표정을 본 도망자들은 그제야 다시 조용해졌다.

‘뭘까. 최면? 환각?’

─둘 다 아냐.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하페루아는 피식 웃었다.

─진짜로 바벨은 이들은 차별 없이 이들을 보호해 나갔어. 약한 이들은 바벨에 넣어주지 않았지만 그편이 그들에게 더 나았을 테니까.

─정확히는 그렇게 하게끔 명령 아닌 명령을 받았을 테지만.

‘그럼 나는?’

─너는 대놓고 성녀의 편으로 왔잖아. 아마 가면이 깨진 거겠지. 바벨이 추방당한 이유도 가면을 깬 것에 대한 처벌일 테고.

상당히 복잡한 사연이 얽힌 건 잘 알겠다.

자 이제 그럼 뭘 해야 할까.

─우선 성녀의 말을 적당히 따르면서 기회를 노려야지. 어디까지나 우리의 목적은 시간을 버는 거야.

“우선.”

꿀꺽.

오르덴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모인다.

과연 새롭게 러너의 주인이 된 남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키려는 걸까.

“밥부터 먹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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